소설리스트

〈 241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 (10) (241/318)

〈 241화 〉 18. 다른 세계의 마왕 (10)

* * *

***

피로 흩뿌려진 설산.

잔뜩 해진 옷을 수복하던 아르테이라는 싸늘한 주검이 된 시신을 보았다.

새햐얀 시신.

‘...정말 잘 해낼 수 있겠니?’

아르테이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고개를 휙휙 돌리자 그제야 제 시신이 눈에 보였다.

아르도스의 심장은 뻥 뚫려 있었고 그 주위는 검붉은 피로 가득했다.

광군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그는 심장이 뚫려도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더불어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힘이 강해지는 그의 특성상, 심장이 뚫린 그는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다.

불멸을 가진 초월자, 브테아를 제외한 다른 사냥꾼 모두가 죽어 게임을 이탈했다.

성녀, 아르테이라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장정 12시간의 전투 끝에 광군왕을 잡을 수 있었다.

“역시 광군왕이군요.”

문자 그대로 행성을 ‘부순’ 존재.

그는 격이 다름을 증명했다.

“허나… 끝이 났군요.”

그가 격이 다른 존재라는 소리는 그 만 잡는다면 위험한 인물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만일 광군왕이 간부들을 둘, 아니 하나라도 데리고 있었다면 위험했을 거다.

하지만 광군왕은 이명에 걸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전투를 이어나가다 목숨을 잃었다.

간부들은 전부 성녀 쪽에 의해 각개격파 당했다.

이제 남은 건 믹스와 도망간 바벨.

그리고 김윤.

‘아마 지금쯤 눈치챘겠지요. 하지만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 옆에 있는 하페루아가 거슬리긴 하나 그녀 역시 정상태는 아니기에 문제 될 건 없다.

그리 생각하며 브테아와 함께 믹스를 공격하려던 그때.

[피하십시오!]

콰자작!

검은 기운을 내뿜던 해골이 성녀를 밀쳐내고 곧장 브레스에 박살이 나 그대로 눈밭을 굴렀다.

브테아는 불멸인 만큼 다른 초월자보다 내구성 면에서 굉장히 취약했다.

재생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브테아를 한 번에 산산조각 낼만큼의 강자는 몇 남아있지 않았다.

‘김윤? 아니, 팔찌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요.’

그는 이곳에 없다.

바벨은 상대정도야 할 수 있지만 이만한 위력을 낼 수 없다.

남은건 믹스.

‘...하지만 그는 이런 브레스를 쓸 수 없는데.’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쏘아낸 공격.

성녀는 아껴둔 사냥꾼 전용 아이템을 사용해 시야를 대폭 늘렸다.

보이는 인영은 여섯.

그중 세명은 인간으로 보이고 크기는 대충 비슷하며 한 명의 주위로 세 마리의 무언가가 둥둥 떠있었다.

그중 붉어 보이는 무언가의 입이 서서히 벌려졌다.

브레스.

방금 브테아를 산산조각 낸 것이 바로 저것…

“읏!”

콰아아아!!!

붉고 은은한 황금빛이 도는 브레스가 아르테이라를 직격했다.

신의 심판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일격.

카가가각…

“...!”

“...제법이지만.”

허나 흑백의 빛을 평평히 둘러 방패로 만들어낸 아르테이라는 공격을 무로 돌렸다.

방패가 사라지고 더욱 가까이 온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도망자?”

성녀는 어벙한 태도로 그들을 보았다.

고양이 수인과 인간 둘.

그리고 해츨링의 레드 드래곤과 님프, 자그마한 정령까지.

꽤나 독특한 조합이었지만 아르테이라에겐 외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찌 유랑자가 그런 힘을…”

“흐엑! 빠리…!”

무리의 가운데에 있던 가장 작은 여자는 헤롱거리며 자신의 주위를 도는 드래곤을 향해 말했다.

드래곤은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금 브레스를 준비했다.

「▲공유 」

성녀는 자그마한 브레스를 보며 급하게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군요.’

뭔 짓을 한 건지 몰라도 게임의 참여를 위한 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즉, 저들은 본연의 힘을 그대로 들고 온 셈이다.

콰아아아아!!!

다시금 쏘아지는 브레스.

평소의 아르테이라 였다면 우선 후퇴해 상황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설산의 영향력은 42%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합니다.]

[행동력이 20 증가합니다.]

푸스스스…

[...음?!]

“뭐냥? 안 통하잖냥.”

“애초에 안 통한다고 윤 씨가 말했잖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광군왕을 잡음으로서 ‘군단급 수장 사냥’이라는 영향력까지 얻은 그녀는 압도적인 힘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저들은 본연의 힘을 들고 왔지만 고작 2등위 수준.

허나 지금의 자신은 3등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당신, 기억나군요. 김다윤 이었던가요. 김윤의 곁에 있었죠.”

“......”

“의외의 변수를 들고 와 행동력이 떨어진 저를 기습할 생각이었겠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아르테이라의 가느다란 손이 빛을 발하고 하늘로 뻗어진다.

우르릉. 하늘의 구름이 서서히 열리더니 흑백의 빛기둥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홀리에린이 생각이 나네.”

“냐? 주인님하고 갔던 그때를 말이냥.?”

“응. 그때도 이렇게 빛기둥이 내려왔거든.”

하나하나가 압도적인 공격이었다만 그들은 무척이나 침착했다.

미간을 찌푸린 아르테이라의 손이 땅으로 향하고 무수히 많은 빛기둥이 저들을 집어삼키는 순간.

“이꺼, 지짜, 시러…”

「▲─ 」

채림의 눈이 번뜩이며 흑백의 빛기둥은 사라졌다.

성녀의 눈 역시 커졌지만 그다음 일어날 일에 눈이 더더욱 커졌다.

“으끄그그끄!]

콰라르르르륵!!!

「▼명암 」

‘능력을 흡수…?’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이미 흑백의 파도는 성녀를 덮쳤다.

「▼명암 」

성녀 역시 제 힘을 발휘하며 파도의 흐름을 멈추고 피해를 흡수했다.

공간이 뒤틀리고 능력의 충돌이 가속된다.

레빗과 다윤은 정신을 반쯤 잃은 채림을 향한 공격을 막아주었다.

지금 상황에서 채림의 방어는 매우 취약했기에.

‘어떻게 유랑자 따위가 완벽한 균형을…’

「▼명암 」

「▼명암 」

다시 한번 부딪히는 능력.

능력치가 극대화되고 설산의 무소불위의 존재가 된 아르테이라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상대는 그 무소불위의 힘을 ‘흡수’ 할 수 있는 채림.

그녀는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강해진다.

심지어 그 한계는 없었다.

그녀의 문제는 오직 정신력뿐.

콰르르륵!

「▲공유 」

[헤으으으으읏…!]

소환수 들과 능력 공유를 받는 채림의 뒤로 님프의 흑백의 날개가 씌워지고 삼지창에는 흑백의 용의 기운이 깃들었다.

파직.

마지막으로 네르토르의 번개가 흑백의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푸슉.

삼지창은 성녀의 몸을 꿰뚫었다.

[...소원권의 시전 시간이 종료...]

***

바벨이 미친 짓을 벌인지 어연 3000년이 흘렀다.

그간 무수히 많은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 50년은 어떻게든 탑을 올랐다.

무슨 수를 부렸는지 전처럼 쉽게 부서지지 않았고 결국 하나씩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악마와 마족은 강했다.

성녀 혼자 탑을 오른 것도,

성기사 부대와 같이 탑을 오른 것도,

아니면 그들 따로 탑을 오른 것도.

그저 과거의 일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결국 50년 동안 탑의 절반조차 오르지 못했고 결국 학살의 때가 도래했다.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무수히 많은 재생을 거친 육체와 피뿐이었다.

마왕은 모든 것의 파멸을 앞두고 탑으로 돌아갔다.

여신과 소녀는 허탈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았으나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자신들의 도움을 바라는 이들이 많았기에.

“......”

두 번째 재건은 많은 걸 준비했다.

단순히 인류 문명의 재건을 넘어 병력을 기르고 굳게 닫힌 탑을 철저히 조사했다.

다른 차원의 강자를 불러와 힘과 명예를 주고 수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녀와 여신은 이전보다 수십배는 강한 전력을 준비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바벨은 괴물이었다.

그 무엇도 바벨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탑을 오를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실패했다.

그리고 세 번째.

문명의 재건을 포기한 여신과 성녀는 철저히 자신을 강화시켰다.

인류 문명은 단순히 숭배를 위해.

모든 병장기는 여신과 성녀의 위해.

모든 건 여신과 성녀를 위해.

[제법 강해졌구나. 하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너희는 아직 무엇이 진짜인지를 파악하지 못했어.]

‘…’

[허나 너무 걱정하진 마라. 이 몸의 완전함이 곧 끝을 보는 거 같으니. 너희의 발버둥도 머지않아 끝나겠지.]

그때가 되면 너희의 자유─

콰장창!

성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소녀는 손에 잡히는 족족 마구 벽면에 던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신전의 책, 공물, 비석 등등이 부서진다.

소녀는 삭막한 신전의 제단을 본다.

제단에는 말끔한 복장의 눈만 뜨고 있는 여신이 있었다.

지난 마왕간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천년째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수천 년간 믿어온 여신.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소녀는 그런 여신을 계속 돌보았으나 이제 그것도 내일이면 끝이다.

약속된 천년의 마지막 밤이 돌아온다.

다시 바벨을 올라야 한다.

바벨에 올라서 마왕을 죽여야 한다.

그의 심장을 뜯어내고 눈을 파내어 영원한 고통을 주어야 한다.

‘헌데, 그럴 수 있나.’

네 번째는 그 무엇도 준비하지 않았다.

인류 문명의 재건도,

다른 차원의 강자도,

여신과 성녀의 강화도. 그 무엇도.

소녀는 천천히 제단에 올랐다.

자신의 신을 내려다본다.

내일이면 깨어날 나의 여신, 어머니.

“......어머니께선 늘 말씀하셨죠. 분명히 이 모습을 지켜볼 더 높을 존재가 있을 거라고.”

그 존재는 여신을 넘어 마왕보다도 더 강한 힘과 위치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스릉.

소녀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깜깜한 밤하늘 속 모래처럼 퍼진 별.

이윽고 ‘아르테이라’의 로자리오는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