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3화 〉 19. 태초의 이름 (2) (243/318)

〈 243화 〉 19. 태초의 이름 (2)

* * *

***

날카로운 비수가 무방비한 여신의 심장을 파고든다.

성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창 육신과 영혼을 강화하던 시기의 성녀는 수많은 방법을 모색했었다.

신적인 강화부터 인간 고수의 수련법, 정체불명의 존재와의 계약 등등…닥치는 대로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도중 아주 오래된 유적 하나를 발견했다.

여신도 마왕도 찾지 못한 아주 깊은 곳.

그곳에 위치한 작은방에는 오래된 책들이 몇 권 있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자신보다도 오래된듯한 책.

어째서 이리도 오랫동안 보관된 건지 알 순 없지만 성녀는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초월’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면 초인이, 초인의 한계를 벗어나면 신이, 신을 벗어나면 초월자가 된다.

초월자는 ‘벽’을 넘는 존재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격을 스스로 시험해야 한다.

“이건…”

짧은 문장들이 적힌 책.

페이지를 보니 몇 장 안되어 보인다.

어찌 보면 간단하고 유치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성녀는 자신이 찾고자 한 것이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얼른 다음 장을 넘겼다.

─초월자는 ‘고유’함을 증명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의 고유한 힘을 담아 하나의 존재 자체로 거듭나야 한다.

즉, 고유한 힘이란 초월자 본인을 뜻한다.

“...초월.”

그렇다면 마왕은 이러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 역시 초월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인가요.’

성녀는 고개를 저으며 다음 장을 넘겼다.

─이토록 초월은 고유함을 증명하지만 그 고유함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줄 수도 있다.

“...뭐?”

─고유한 힘은 오직 한 존재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한 존재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초월자가 증명한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초월의 경지에 들어서지 않아도 그 힘을 쓸 수 있다.

팔락.

─하지만 그것은 일부. 즉 파편일 뿐, 진정한 초월자의 능력은 사용하지 못한다.

본연의 능력은 오직 초월자 본인만 가능하다.

“본인만이...”

팔락.

팔락.

“...? 마지막 장인가요.”

그녀는 마지막 장을 팔락거렸다.

나름 유용한 정보들이었지만 결국 초월을 어찌 하는 건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적혀있는 거라곤 인고의 시간과 스스로의 시험.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하고 포괄적인 내용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뒤집었다.

그리고 하나의 문구를 보았다.

─본인을 재단하는건 이름이다.

“...!”

이름.

아르테이라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자신과 여신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여신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심장에서 울컥울컥 피가 터져 나오고 있다.

“...”

꾸우욱…

아르테이라는 칼을 놓지 않았다.

오래전 마왕의 간부 하나를 죽일 당시 놈은 이러한 말을 했다.

‘킬킬… 아쉽구나, 아쉬워! 복제 전이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면 네년 따위는 금방 제압했을 텐데 말이야.’

‘복제 전이? 그게 뭐죠?’

‘그야… 킬킬 나보다 강한 놈의 것을 빼앗는 게 아니겠나. 왠지는 몰라도 동조율이 끝내주게 좋아서 쉽게 얻었지.’

그때 당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이 책을 발견한 뒤로 놈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었다.

놈은 원래 마왕의 간부가 아니었다.

놈은 마왕의 간부 밑에 있던 흑마법사 중 하나였고, 육체 강화를 도와준다는 목적으로 그의 힘과 자리, 육체를 모두 빼앗았다.

‘그리고 그 둘의 이름은 렉킬로 같았다.’

“.......”

“아이야.”

여신은 성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성녀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칼을 붙잡았다.

여신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칼을 빼내거나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상처가 없지만 모순적이게도 상처가 많은 손이 소녀의 손을 붙잡았다.

“...!”

“잘, 해낼 수 있겠니…?”

여신은 소녀가 아르테이라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녀가 자신의 힘을 받아들일 때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지막에 와서 구한 소녀가 자신의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을.

그랬기에 이번에 일어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려고 했다.

눈앞의 이 아이라면 이 기나긴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상처 많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짐을 내어주는 것 같아 망설였다.

헌데.

“...네.”

이미 소녀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니, 이미 오크의 눈을 찌른 그날부터 준비가 되어있던 걸까?

소녀는 여신을 바라봤다.

세상을 봐.

마왕은 날뛰고, ‘아르테이라’는 실패했어.

‘우리’는 실패한 거야.

그러니.

“이제는 내가 할게요. 그러니 쉬세요.”

여신은 눈을 감았다.

***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아르테이라는 다시 아르테이라로.

“돌아. 갔을 뿐이죠.”

으득.

“그런가.”

바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의 신경전이 오갔다.

제법 흥미로운 정보들이었다.

특히 유적에 숨겨진 책이라는 거.

‘최강자도 유적에서 받은 책을 통해 검술 강기를 얻었지. 그렇다면 누군가 특수한 무언가를 일부로 두었다는 건가.’

어쩌면 다른 여신과 마왕이 있는 행성에도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였다.

동등한 힘을 되찾은 아르테이라는 바벨과 치열하게 싸웠고 전장이 황폐화되다 수세에 밀린 바벨은 불안정한 상태로 차원을 넘어 도주했다.

원수를 코앞에서 놓친 아르테이라는 그런 바벨을 잡기 위해 완전한 초월을 한 뒤 추격했고.

오랫동안 황폐화된 땅은 위대한 존재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었고, 그렇게 행성은 몰락했다.

나는 통신을 보았다.

벤시는 지친 듯 빨리 끝내라는 메시지를 잔뜩 보내고 있었다.

나는 대충 알겠다고 대답하며 아르테이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우리와 상황이 같다고 한 이유는?”

=최강자.

아르테이라는 나만 들리는 통신을 통해 말했다.

=당신의 이름. 최강자의 이름이잖아요. 쓰는 것도 최강자의 기술이고요.

“......”

=아마 하페루아가 당신을 도우는 이유도 그 이유겠죠.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최강자의 이름을 아는 자는 많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진 않아요.

안다.

최강자는 차원 세게 내에서도 위명을 떨치는 강자지만, 정작 그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다는 걸.

정확히는 그가 쉬쉬하기를 바랐기에 알려 들지 않는 거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르테이라가 말한다.

=당신이 나처럼 그러진 않을 테지만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이름을 가지고 최강자의 힘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노리는 사람이 무수히 많아질 테니까요.

“...이미 많아.”

나는 피식 웃었다.

***

게임은 끝이 났다.

아르테이라를 처치하고 바벨을 완전히 제압하면서 결국 영향력이 5할이 넘어 승리했다.

[ㅊㅋ]

“...? 이게 끝?”

[그럴 리가.]

통신 너머로 한숨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빛의 돌조각 3개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창조석이야.”

하페루아는 조각을 집어 들었다.

“창조세계를 발전시키는, 뭐 화폐나 다름없지.”

“어디서 나오는 건데?”

“나도 몰라.”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에게 두 개의 조각을 건네주었다.

“게임을 하고 특정 부분을 완료하면 자연스레 행성에서 생겨나. 많은 초월자들이 게임에 참여하고, 또 진행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지.”

“창조석이라…”

결국 게임도 하나의 유희만을 뜻하진 않았다.

[이제 다들 꺼져. 머리 아프니까.]

벤시는 질린다는 듯 말하자 우리의 육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어드벤처로 돌아가고 있다.’

“그전에.”

[?]

“약속했던 건 지켜라.”

[...진짜 재미없게 구네.]

“그래서 답은?”

보랏빛 창 너머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벤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초월자나 되고 와서 이야기해. 짜증 나게 굴지 말고.]

나와 일행들은 어드벤쳐로 전이됐다.

***

하나의 조각은 눈의 행성에 파고들었다.

머지않아 피어나겠지.

이건 그때를 위한 보험이다.

***

[왔군.]

“왔네.”

“왔어.”

푸른 문을 통과해온 우리 앞에 보인 건 커다란 화이트 예티, 아스트라와 뭔가 달라진 베린.

그런 베린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세피드가 보였다.

“와, 진짜 힘들었어. 몇 번을 회귀해서 간신히─”

“둘 다 이리 와.”

나는 베린의 말을 끊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둘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스트라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끌끌 웃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잘 받았는가.]

“선물은 무슨.”

자칫하면 모든 게 망가질 뻔한 게 선물?

나름 운이 좋았던 거지 자칫 잘못하면 계획도 망가지고 우리 존재 자체도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나게 맞을 준비는 됐지?”

[자, 잠만. 기다리게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

이격(二?).

두 개의 선은 예티를 네 등분 하고 티르빙을 절단했다.

***

“일어나 뒤지기 싫으면.”

[...하페루아. 네 동반자 좀 말려주게.]

“내가 왜?”

하페루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참고로 아스트라는 아/스/트/라가 된 상태였다.

그러고도 살아있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뭘 생각한 건진 알겠는데. 좋은 판단까지는 아니었어. 내가 말했잖아. 얘들은 병아리들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쓸려.”

[너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

“그냥 죽여 김윤.”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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