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6화 〉 20. 전쟁 (3) (246/318)

〈 246화 〉 20. 전쟁 (3)

* * *

***

도깨비는 용암 웅덩이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평범한 생명체들은 물론 강자라 불리는 영물들이나 강력한 몬스터도 순식간에 타오를 정도로 강력한 용암이었지만 도깨비에게는 따뜻한 정도로 끝이었다.

[뭐야 미친…!]

­지팡이였나? 생긴 건 봉에 가까운데.

­지팡이랑 봉이랑 비슷하긴 하지.

­완전 화난 거 같은데요?

­...더워요.

웅성거리는 인간 무리.

아니, 자세히 보니 다른 종족도 얼핏 보인다.

인간, 님프, 드래곤, 여우… 여우?

[이린의 자식!]

“오. 알아차렸네.”

[건방진 놈!]

푸확! 튀어나온 도깨비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느 틈에 날아온 도깨비방망이가 그의 손에 쥐어들었다.

갈색빛의 둥근 방망이에는 원뿔 모양의 뿔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천벌을 내리듯 거대한 방망이가 우리를 향해 떨어진다.

“적당히 자를게요.”

「▼월광 」

밤은 아니지만 이제는 뚜렷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다윤이 노란색 광휘를 내뿜으며 앞서 나갔다.

유려한 검의 궤적이 방망이를 긋고.

[뭣…?!]

그, 그극….

쿵!

정확히 두 조각 난다.

[...]

“후우… 평범한 무기가 아니네요. 초월의 힘이 깃들어 있어요. 보통이 아닌─”

후웅!

힘을 고르던 다윤의 머리 위로 도깨비의 주먹이 날아든다.

카각! 월광검을 옆면으로 세워 공격을 받아낸 다윤은 그대로 검면을 틀어 베어낸다.

월광식(月光?)이월(二月) ─ 화진참(火??)

카라락! 노란색의 월광이 여러 개의 검신을 만들어냈다.

수개의 검신은 그대로 펼쳐져 도깨비의 왼쪽 손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크읍!]

도깨비는 팔이 완전히 잘리기 전에 급하게 뒤로 빠져 팔을 빼낼 수 있었다.

어느새 그의 팔은 검 초록색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강해졌어.’

확실히 다윤은 강해졌다.

티르빙에서의 수련이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낮도 아닌 밤에서 이 정도. 게다가 상대는 차원만 못 넘었지 완연한 초월자에 가까워.’

비록 1~2등위 수준이지만 상대의 영역에서, 그것도 자신의 페널티를 받은 상태로 압도적인 격차라.

조건만 갖춰진다면 레빗과도 팽팽한 승부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쿠구궁!

화산이 뒤집히고 장비를 만들던 드워프들이 기겁하며 화산 밖으로 도망친다.

쿵! 쿵! 거대 드워프 수백이 때를 지어 도망치니 장관이었지만 우리의 시선은 오로지 도깨비에게로 향했다.

도깨비는 화산 속에 손을 집어넣어 ‘용암’을 꺼냈다.

액체 상태의 용암은 그대로 도깨비에게로 스며들어 갑주로, 투구로, 무기로 변했다.

[죽을 준비는 되었나.]

끈적한 용암은 어느새 튼튼한 무구들이 되어 도깨비를 보호했다.

상처도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다윤은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싸워보겠다는 소리.

도깨비는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흔적도 없이 녹여 없애주마!]

“......”

용암과 월광이 부딪혔다.

***

“빨리 오라냥.”

고위신 보호를 맡은 속칭 2팀은 이린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베린과 세피드, 레빗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특화된 이들이었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린의 영역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가 이랑 엄마의 땅인가 보네.”

베린은 무언가 ‘억제’ 하는 힘을 체감하며 걸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의 허락이 있지 않는 한, 가진 대부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다 상대적인 법.

초월자가 아닌 이린은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 이들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쪽이다냐.”

타악! 타악!

과거 500년간 숲에서 생활을 해왔던 그녀답게 레빗은 빠른 속도로 지형지물을 타고 이동했다.

어느새 그들은 이랑이 말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 인데냥…”

“내가 문을 열어볼까?”

[내가 열면 화들짝 놀랄 것 같은데.]

“모르진 않을 거다냥. 여우의 말에 따르면 이미 들어온 것도 다 알테고냥.”

종족이 전부 다른 세명은 이랑의 거처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딱히 숨기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은 이미 아는 상황.

그러면 문을 열어야 하는데 왜인지 문이 닫혀있다.

레빗은 주황색의 고양이 귀를 움찔거리다 오른발을 뒤로 빼었다.

“부셔보겠다냥.”

“잠만, 우선 얘기를…”

“냐!”

솜방망이처럼 나간 정권은 무형의 장막과 충돌하고 어마어마한 파장을 내었다.

응축된 거대한 에너지가 한 번에 터져나가 일대의 숲 전체에 퍼져나갔다.

숲은 한차례의 폭풍을 겪고 난 뒤 후드득 소리와 함께 찬찬히 가라앉는다.

베린이 입을 떡 벌리고 있자 시큰거리는 듯 레빗은 손목을 돌렸다.

“이상하다냐. 너무 강하다냐.”

무형의 장막은 고고한 기운을 내뿜으며 여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조금 금이 가긴 했지만 나름 힘을 가한 레빗이 부수지 못했다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

“주인님을 불러야 할 거 같다냐.”

“잠만. 그러면 저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분명 저 안에 있어야 하는 건 고위신이자 자연신인 이린이고 이 결계도 당연히 이린이 만든 결계여야 한다.

그런데 길드 내에서 3번째로 강한 레빗조차 못 뚫을 정도의 결계라니.

‘있을 수 없다.’

[내가 부셔볼까?]

베린의 머리 위에 있는 세피드는 어느새 일전에 보았던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안의 눈을 번뜩인 세피드의 손에는 자그마한 양산이 들렸다.

“네가? 너 안 나선다 하지 않았어?”

[네가 부수진 못하잖아?]

휘리릭. 양산은 어두운 기운과 함께 결계의 경계면에 닿았다.

결계는 갑작스레 찾아온 어두운 기운에 일렁거렸으나 역시 무너지진 않았다.

“부술, 수 있거든?”

[그래?]

세피드는 베린을 슥 보더니 쿡쿡 웃으며 한 발자국 물러나 행동을 지켜본다.

어느새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레빗은 당근 팝콘과 당근 콜라를 먹고 있었다.

“...두고 봐. 보란 듯이 부숴줄 거니까.”

뚜벅. 뚜벅.

강해졌다.

세피드와 계약해 어둠과 관련된 능력도 대폭 상승했고 수련도 끊임없이 해냈다.

이제는 정말 수련으로 보낸 시간이 평범하게 살아온 날보다 수배는 많을 정도.

더불어 티르빙에서 수없이 많은 회귀를 거쳐 관리자로부터 인정까지 받았다.

‘문제없어.’

레빗은 말했다.

김윤을 불러와야 한다고.

가끔씩 멍청해 보이고 먹을 것만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에 관련된 부분 매우 똑똑한 견해를 보인다.

레빗이 불러와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불러만 온다면 김윤은 보란 듯이 부술 수 있다는 소리다.

‘나도 할 수 있어.’

[호?]

세피드의 고개가 까딱이고 베린의 두 개의 단검에 흑색의 오러가 깃든다.

다른 차원에서 익히고 세피드의 조언 아래 새로이 탄생한 베린의 능력.

“흐압!”

촤가가가각!

검은 수천 개의 단검의 궤적이 결계를 두드리고 베어낸다.

와그작! 결계는 심하게 뒤틀리고 기이한 음성을 토해낸다.

그, 그그극…

“깨진다냐?”

“읏!”

촤가가가각!!!!

좀 더 빨라진, 좀 더 많은 궤적이 결계를 두드린다.

쩍쩍 소리가 들린다.

부서진다.

‘부서지고 있어!’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김윤 처러─’

“위험이다냐!”

츠츳!

삐끗.

단검이 허공을 베어낸다.

당황해하는 베린.

그는 하늘 높이 떠있었다.

“...다 부쉈는데 갑자기?!”

베린은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려다 말을 멈추었다.

레빗의 거대한 주황빛 손에 붙들린 베린과 세피드의 밑으로 무언가 튀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쩍쩍 깨진 결계 너머로 보이는 안쪽에서.

“용…?”

거대한 용족의 푸르른 손.

거친 울음소리를 토해해는 거대한 거체는 대지를 뒤흔들었다.

“...여우의 어머니가 이미 위험해진 거 같다냐.”

***

아주 오래전, 하늘에는 주인이 있었다.

용().

푸르른 용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고 하늘에 기거하는 그 어떤 이도 용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었다.

그런 강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용은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의 주인, 천주(??)였으나 정말로 주인 행세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날으는 이를 떨구지 않았다.

약한 자를 수탈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도 없는 존재였지만.

물론 그런 그에게도 위험한 강자들이 몇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왕과 여신.

허나 마왕은 하늘에 관심이 없었고 여신에게는 천사가 있었지만 천주와의 영역이 다를뿐더러 그마저도 마왕에 의해 전부 몰살 당했다.

그 후로 여신은 분리 차원에 새롭게 도시를 세웠으니 행성의 하늘은 오로지 천주의 것이었다.

그에게는 대적자가 없었고 푸른 용은 어느새 용신(?)이라는 이름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강자들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용신이 된 이후 가끔씩 지상에 내려가 인간들과 유희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그는 하늘에 나는 이를 떨구지 않고 약한자를 수탈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만이 넘는 시간을 천주로서 살았다.

[하늘의 주인이여. 내 말을 들어보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찾아오기 전까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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