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20. 전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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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식(月光?)사월(四月) ─ 운류참(雲??)
용암을 피해 회색의 구름을 탄 다윤이 빠른 속도로 도깨비의 뒤로 이동한다.
월광검의 검신에 노란빛의 월광의 기운이 스며들고 구름은 그녀의 검의 이동을 돕는다.
[창이여!]
카가가강! 용암의 창이 갑옷에서 튀어나와 칼의 쇄도를 막아낸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도깨비를 두른 용암이 줄어들지만 화산의 용암은 많다.
도깨비의 발이 땅을 억세게 내리찍자 발아래로 용암이 타고 올라와 줄어든 용암의 갑주를 대신한다.
“...빠르게.”
월광식(月光?)오월(四月) ─ 운신기검(雲???)
다윤의 육신이, 기운이, 검이 구름으로 변화한다.
구름과 하나가 된 다윤은 도깨비의 주위를 감싸고 감싼 구름 사이에서 수천 개의 월광의 빛이 쏘아진다.
치이이익...
수천 개로 나누어진 탓에 용암에 대부분이 녹아들긴 했으나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
[잔재주를!]
수천 개의 월광의 빛 역시 용암을 점차 녹여가며 도깨비의 살갗을 꿰뚫는다.
도깨비는 용암으로 방망이를 만들며 구름을 없애려 들었으나 하늘을 넓다.
부족한 구름은 하늘에서 끌어올 수 있다.
화산의 용암과 하늘의 구름의 싸움이 지속된다.
[크윽! ]
결국 밀려버려 잔뜩 꿰뚫린 도깨비는 아예 땅을 완전히 내리찍어 용암 속으로 급히 빠져들었다.
풍덩! 소리와 함께 도깨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름은 도깨비를 쫓지 않고 허공에서 잠시 지켜보다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느새 구름은 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잘했죠?”
“잘했어.”
나는 다윤이의 말랑말랑한 두 볼을 만지작거리며 도깨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놈을 잡으려면 화산 지대 전체를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깨비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닌 경고만 하러 온 거다.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지 말라는 경고.’
이 정도면 됐겠지.
애초에 죽이려고 온 것도 아니고, 초월자인 이상 죽이기도 힘들다.
나와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의 여파 때문에 주위 일대가 위태위태한 상태였지만 우리가 자연스레 막고 있었던 뒤는 비교적 멀쩡했다.
이랑은 녀석이 사라진 자리를 조사하고 있고 채림과 소환수들은 부서진 화산 꼭대기를.
나와 다윤은 드워프들이 만들던 붉은색 봉을 조사했다.
붉은 화염이 터져 나오는 봉.
평범한 무기는 아니다.
“화주(火?)의 광물로 만든 거야.”
이랑은 바닥을 짚으며 나를 돌아봤다.
“고위신들 중에는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자연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거든. 그들의 물건이지.”
“네르토르의 삼지창과 같은?”
“그래.”
전에 네르토르를 참교육하고 나와 레빗에게 심부름 시킨 나뭇가지로 무기를 만든 적이 있다.
녀석이 울며불며 안된다고 했지만 적당히 더 다져주니 결국 내어주었다.
나는 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붉은 색의 기다란 봉의 위쪽에는 황금빛의 문구가 빙 둘러 쳐져 있고 아래쪽은 은은한 보랏빛의 문구가 지그재그로 그려져 있다.
아직 완성이 덜 된 듯 아이템 정보는 뜨지 않지만 공격이 제대로 나가는 걸 보니 완성 직전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 이들만 사용 가능하겠지.’
삼지창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이 몇 명이 더 있는 거지?”
“다섯. 그중 셋은 물건만 남긴 체 행방이 묘해.”
이랑의 말에 따르면 주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그 힘을 담은 특별한 물건이 있다고 한다.
바다의 주인, 해주(??)에게는 푸른 나뭇가지가,
불의 주인, 화주(火?)에게는 붉은 광물이.
“하늘의 주인인 천주(??)에게는 다 알고 있는 여의주가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뭔가 의문이 들어 물었다.
“잠깐. 내가 아는 하늘의 주인? 청룡?”
하늘의 왕이자 이린과 마찬가지로 일만이 넘는 햇수를 산 고위신.
전 시즌 월드 어드벤처의 설정상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이며 홍린과 청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참고로 그 용신의 여의주는 마도 공학의 도시, 미르틱의 중심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용신 청룡, 그 여의주가 미르틱에 있다지?”
용의 여의주.
상당히 좋은 물건이고 나도 하나 가지고 있긴 하다.
반인반룡인 청린에게서 받아낸 여의주.
하지만 초월자들이 기를 쓰고 탐하려 든다. 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그들이라면 고위신의 물건보다는 제힘을 통해 무기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물건 자체에는 초월적인 힘이 없지만 뭔가 벌어지고 있어. 세계가 통합되고 초월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또 이상하게도 주인들의 물건을 노리고 있어.”
“흐음…”
“게다가 용신의 행방도 묘해졌고. 고위신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텐데.”
“애들한테 물어볼까?”
청린과 홍린이 용신의 자식들이니 여의주를 이용한다면 대강 위치를 알 수도 있을 거다.
이랑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엄마랑 별로 안 친하거든.”
하늘과 지상은 늘 비교 대상이었으니까.
그리 말하는 이랑은 어쩐지 짜증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레빗은 잘 도착했으려나?’
위험하면 연락하라 말해두었으니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다른 차원인 설산의 사냥꾼이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그다지 위험요소가 없다.
‘관리자라도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나는 그리 생각하며 다음 초월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토끼이자 고양이.
고양이이자 토끼인 레빗은 불타버린 나뭇가지에 발을 디디며 자신의 수만 배에 달하는 거대한 생명체를 보며 생각했다.
‘좀 위험할지도… 냐.’
이를 악물은, 아니 당근 꼬치를 악물은 레빗은 욱신거리는 주먹을 꽈악 쥐며 달려들었다.
***
오로보스가 죽었다.
고위신중 나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힘과 권위를 자랑하던 그가 죽었다.
이것은 그간 수없이 열리던 고위신들의 회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원.’
땅의 주인, 지주(??)가 다스리는 영역이자 이 회의의 주최자인 그는 둥근 원탁의 테이블을 두고 앉아있었다.
가지각색의 종족과 형태를 가진 자들이었지만 지주의 명 아래 그들은 수인 형태로 변해 대화를 나눴다.
테이블을 기점으로 대략 스물 정도의 고위신들이 참석해 있었고 둘, 셋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의 고위신들이 다였다.
초월은 커녕, 오천 년도 안된 자연신들.
그들은 비어버린 땅을 자신들이 갖겠다며 아우성치고 있지만 늘 그렇듯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전 고위신이자 현 초월자인 가데르는 생각했다.
‘한심해.’
그간 나서지 않은 이유는 고위신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확신이 없었다.
아무리 초월을 하더라도 고위신이자 자연신.
자연이 파괴되지 않는 한 죽을 수 없는 존재.
과연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정도로 자신이 우세인가.
그들은 자신보다 약하지만 그 수가 많았다.
[벌레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보로스가 죽고 고위신들은 서로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뭉쳐도 모자랄 놈들이 서로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꼴이다.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그녀는 뼈만 남았다고 해도 믿을 법한 얇은 손을 까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를 둘러쓰고, 또 회의 장소가 제법 어두운 터라 그녀 하나 일어섰다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 의견을 피력하기 바쁜 상태였다.
뚜벅. 뚜벅.
회의장을 나서고 회색빛의 돌로된 기다란 복도를 걸어간다.
양 옆으로 고위신들의 편의를 돕는 하인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으나 그녀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하인의 뒤쪽에 위치한 길쭉한 기둥 뒤로는 고원을 가리는 회색의 뭉게구름이 보였다.
─가에데. 가시는 겁니까?
그런 그녀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이곳의 주인.
지주다.
[어, 또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가 끝날 거잖아?]
다른 놈들도 안 왔는데.
‘정확히는 못 오는 거지만.’
그녀는 큭큭 웃었다.
전음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은 어둠에 특화되어 있지 않습니까. 의견을 피력하면 당신의 자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줄거야?]
─당신이 원한다면요.
가에데는 전음이 들리는 회의장을 노려보았다.
분명 녀석도 자신처럼 누군가에게 초월자가 되는 법을 깨우치고 초월자가 됐을 터인데, 우리와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전히 고위신에 편에 서서 고위신처럼 행동한다.
가에데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됐어. 말해봤자 또 의견 차이 날게 분명하지. 그냥 싸워서 정하자니까? 이러다 아주 악마 놈들 입에 넣어주겠어?]
─...고위신 간의 다툼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분열하면 안 됩니다.
[지금 분열하고 있는데?]
가에데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주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휙.
그녀의 로브 틈사이로 어두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지주는 여전히 시끄러운 회의장을 바라만 보았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시길. 가에데.]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