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0. 전쟁 (8)
* * *
***
“뭐야 미친.”
이린의 영역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추락한 거체의 용과 그 위에 선 자그마한 고양이였다.
냐아아아아아! 포효하듯 소리 지르던 레빗은 내 쪽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다시 수인의 형태로 돌아온 레빗은 머쓱하게 주황색 머리를 긁적였지만 빈말로라도 괜찮지 않은 상태였다.
온몸이 붉게 물들고 팔 주변은 멍 자국으로 가득했다.
레빗을 감싸던 수많은 힘 역시 불안정해진 상태.
그녀는 뽈뽈 다가왔다.
“...별거 없었다냐.”
“고생했어.”
“......냐.”
투욱.
내 품에 안긴 레빗은 잠시 머리를 부비다 다시 고양이로 변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이제 레빗은 꽤 긴 잠을 자게 될 거다.
“엄마. 엄마를 찾아야 해.”
화륵. 여우불을 온몸에 두른 이랑이 빠른 속도로 다 부서진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행성의 반대편에 있는 이곳까지 급히 오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은 이유는 모든 힘을 이동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랑은 다시 한번 힘을 쥐어짜냈다.
“채림.”
[어떻게 된… 네?]
“네가 따라가줘. 뭔 이상이 생겼을 거야.”
용신이 초월자가 되었고 그것이 이린의 결계에서 나왔다면 필시 이린에게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었을거다.
그런 의미로 지금 저 안은 무명의 힘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네. 용용아 빠르게.]
펄럭.
레드 드래곤을 탄 채림이 이랑의 뒤를 따랐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윤의 불안한 시선에는 나무에 기대앉은 베린과 어른 형태가 된 세피드가 보였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가 나서야 했던 건 아니지?]
“어.”
세피드는 외부 차원의 추격을 당하고 있기에 함부로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나와 하페루아의 목적은 최대한 외부의 눈에 띠지 않는 거니까.
“베린.”
“...아. 쪽팔리게 진짜…”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베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베린은 힘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다.
‘정확히는 나와 다른 동료들에 대한 욕망이지.’
동료들을 뛰어넘을 순 없을지라도 적어도 옆에 나란히 있을 정도의 힘을 원했다.
나와 다른 동료들과 달리 베린은 따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으로 베린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동료들은 더욱 강해졌다.
“잘했어.”
“...뭐?”
“버터 줬잖아. 레빗 혼자서는 못 막았어.”
레빗과의 연결이 무명으로 인해 잠시 혼선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베린과 레빗은 같이 용신을 상대했다.
물론 세피드가 베린의 보조를 도왔지만 굳이 지금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베린이 용신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주었기에 레빗이 간신히 이길 수 있던 거다.
“...너 혼자였다면 다 막았겠지.”
“그럴지도 모르지.”
“재수 없어.”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당연히 그런다.
하지만 베린은 내가 아니다.
이걸 누군가를 탓할 무언가도 아니다.
나 역시도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게 있고, 지금도 그렇기에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는 거니까.
“그래도 잘 했다.”
“......”
“우선 쉬고 있고… 다윤아.”
“네?”
“지금 움직일 수 있지?”
착잡한 눈으로 보고 있던 다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윤이 역시 나와 같은 선상에 서기 위해 노력 중이니까.
나는 곧장 이동하기 전에 세피드와 베린을 길드로 보내기로 했다.
“가서 루아에게 콜트한테 연락하라고 그래.”
[루아? 하페루아를 말하는 거야?]
“아니, 네츠리 루아.”
연녹색 머리의 푸른색의 새를 이고 있는 여자로 길드의 전체적인 관리와 보조를 담당하고 있다.
나를 스승님으로 부르는데 딱히 가르쳐 준 건 없다.
“콜트한테 가서 미르틱의 여의주를 가져오라고 말해줘.”
[알았어.]
“그리고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능력 써도 돼. 한 번 정도는 어떻게 서든 막아볼 테니까.”
세피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베린과 함께 어둠에 잠겨 사라졌다.
나는 용신의 사체에 다가가 살폈다.
여의주는 없지만 무명의 힘을 온몸으로 받은 듯 남색의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대충 파악을 마치곤 다윤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튀어 올랐다.
‘목적지는 고원, 지주의 땅이다.’
***
콜트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지난 수개월간 기계도시, 드리트리아의 대부분의 전력을 망가진 베타의 수복과 업그레이드에 집중했고 한 달 전부터 유효한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전에 보았던 제힘을 쓰는 어둠의 정령왕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흡수할 힘의 충전과 좋은 성능의 초월자의 힘들이 많아야 하겠지만 샘플은 넘쳐난다.
김윤과 하페루아, 채림 같은 특수한 초월의 힘들의 샘플을 아주 조금이지만 몇 개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흡수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본신의 내구성과 힘까지 상향시켰으니, 정말 진정한 의미의 대(?) 초월자용 병기가 탄생한 셈이다.
그래, 모든 게 완벽했다.
“...뭘 가져오라고요?”
눈앞에 이 여자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어두운 머리칼과 보석처럼 빛나는 자안.
요정이라 불리는 정령답게 자신이 연모하는 홍린과도 맞먹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세피드.
자신이 몇 달동안 업그레이드의 목을 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미르틱에 가서 여의주를 가지고 오라는 김윤의 명이야.]
“근데 왜 연락을 먼저 안 하시고…”
[네가 문을 닫아서 연락이 안 되니 직접 올 수밖에 없잖아. 얼른 가서 구해와.]
“바쁩니다. 게다가 아직 완성이 덜 됐는데 도시를 열면 진행 속도가 급감할 겁니다.”
아무리 연구를 한다고 해도 왜 몇 달째 도시의 문을 열지 않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분리 도시인 만큼 차원 자체가 불안정해 외부로 힘이 자주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콜트는 도시 전체를 봉쇄해 모든 힘을 베타의 개발에 힘을 썼다.
그리 생각하며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의문이 들었다.
‘가만. 근데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보안 레벨만 최종에서 바로 전 단계인 9단계인데.
콜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세피드는 짜증 나는 듯 바닥을 쿵 쳤다.
도시가 흔들렸다.
[급해. 지금 니 여친 평화로이 개발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뭔 일입니까?”
[참 일찍도 물어보네. 우리 베린이 쓰러졌어. 더불어 초월자들이 미쳐날뛰고.]
“초월자들이…”
[게다가 용신있지? 네가 좋아하는 원본의 부모.]
“...예.”
원본이라니.
콜트는 너무 직설적인 말에 부정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도 급하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 일단 수긍했다.
[걔가 미쳐날뛰어서 여우 부모가 죽고, 죽었나? 아무튼 지금 위기 상황이야. 그러니까 니 여친 데리고 빨리 가져와.]
“하지만 아직 베타는 완성이…”
찌릿.
세피드의 자안이 매섭게 빛난다.
콜트는 의자를 뒤로 굴려 살짝 물러났다.
뭘까, 분명 힘을 제대로 못쓴다고 들었는데.
이 위압감을 대체…
[구해와.]
“네…”
세피드는 콜트를 흘겨보고는 그대로 어둠에 잠겨 사라졌다.
콜트의 기계안으로 자세히 보니 어둠 속에는 눈을 감고 있는 베린이 보였다.
“허… 돌겠군.”
한숨을 내쉰 그의 창가 뒤로 도시를 가로막은 가짜 하늘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
─지주는 고원에 있어. 따로 이동할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우선 가봐야겠지.
나는 하페루아의 말을 들으며 고원으로 이동했다.
기왕이면 하페루아가 같이 움직인다면 좋겠지만 그녀는 할 일이 따로 있다.
아스트라와의 일도 정리해야 하고.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가야겠네.”
수많은 버프와 스킬들이 있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육체의 능력을 통해 날아가는 게 훨씬 빨랐다.
“...그런데 정말 무명님이라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요?”
“글쎄. 힘이 부족했을지도 모르지.”
무명은 오래전부터 이세계의 창조석을 통해 자신이 가진 창조세계의 능력을 불러오고 있다.
특성을 여러 개 가진 것도 그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얼마나 많은 힘을 끌어왔을지가 의문이지만 많이 못 모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아서 그렇지.
나는 하페루아의 부탁을 받아 창조석의 일부를 모았다.
관리자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명이 얻을 수 있었던 창조석의 개수가 조금 들었을 거다.
그에 따라 당연하게도 얻을 수 있는 힘이 줄어들고.
내 설명을 들은 다윤이는 품 안에서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초월자들을 만든 건… 그걸 대체하기 위함인가요?”
“아마도. 그런데 초월자를 모으는 거나 그 힘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는 좀 부족할 거야.”
무명은 이미 강하다.
1~2등위의 초월자니 고위신이니 하는 것들의 힘은 무명보다 훨씬 약하며 설령 흡수한다고 해도 그리 유효한 상승이 되진 않을 거다.
고위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초월자의 힘은 고유성이 깊어 멋대로 다루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이 물건들의 뭔가가 있어.”
주인들의 물건으로 만든 무기.
분명 이것에 뭔가가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