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21. 무명 (4)
* * *
***
“읏…!”
다윤은 월광검을 피가 날 정도로 꽈악 쥐고는 반쯤 감긴 눈을 치켜세웠다.
더이상 숲이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곳.
땅이고 나무고 고위신이고 모든 게 사라진 이곳의 하늘에는 두 명의 사람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나는 전 랭킹 1등인 무명.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목표이자 연인인 김윤이다.
붉은 기운을 내뿜는 대검이 수직으로 내리긋다 일순 가로로 틀어져 무명의 목을 노린다.
카각. 가볍게. 아니, 조금은 무겁게 막아낸 무명의 칼에서 대검을 갉아먹듯이 거친 선들이 몰아친다.
날개를 펼친 김윤은 대검을 한 손으로 쥐어잡고 평소에 쓰던 장검처럼 사용한다.
본래라면 절대 불가능한 검술.
하지만 김윤은 가능했다.
그에게 있어 대검이나 장검이나 무게의 차이는 없었다.
“워, 월광 개화!”
다윤은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충격파를 막기 위해 월광식의 방어 기술을 사용했다.
월광의 꽃이 자신의 마력을 먹고 피어나 쏟아지는 에테르와 마기의 피해를 상쇄했다.
다윤은 검을 더더욱 쥐었다.
‘약해…’
자신은 약하다.
윤 씨에게 도움을 주러 따라왔지만 이래서야 짐만 되지 않는가.
저 틈에 다가갈 정도로 자신은 강하지 않…
“아냐.”
강하다.
강해지기 위해 그간 노력했다.
베린은 그저 옆에 나란히 있을 정도의 목표를 가졌지만 다윤은 달랐다.
그녀는 김윤과 검을 맞댈 정도로 강해지길 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표가 점차 흐려지긴 했어도 근본적인 목표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란빛의 월광(月光)을 내리는 달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
거친 선과 보라색이 세상을 점칠한다.
그에 따라 나는 대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한다.
쿠궁…!
카가가가가각!!!
한번 한번 충돌할 때마다 주위 환경이 거칠게 요동치고 공간이 아우성친다.
피의 날개가 거대해지고 주위의 존재하는 모든 마기가 나에게로 당겨진다.
대검의 검신이 피로 변환되고 점점 거대해져 그 길이가 200M가 훌쩍 넘었다.
마혈식(?血?).
원(?) ─ 마혈신검(?血??).
“...!”
공간을 가르듯 200M가 넘는 검이 무명을 덮쳤다.
그나마 남아있는 숲의 흔적들이 전부 피로 산화하고 가뜩이나 파인 대지는 일자의 긴 협곡을 남겼다.
푸화악! 공격을 막아낸 무명에게서 피가 터져 나온다.
마혈식의 추가 공격.
마혈식은 맞은 대상의 피를 앗아가는 효과가 있다.
물론 4등위 이상의 초월자이자 이레귤러인 무명에게는 어지간한 저주, 공격은 통하지 않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마혈 」
내가 쓰는 힘도 초월자의 힘이고 특이점의 힘까지 있으니 부분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보통은 한번 맞으면 피를 전부 잃고 죽는데, 좀 흘리는 정도로 끝이네.’
역시 무명이다.
자신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를 내려다 본 무명은 잠시 검을 까딱이자 몸에 묻어있던 피가 전부 사라졌다.
“이해할 수가 없군. 잠시 잠들어 있으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어렵지. 그사이 네가 마왕을 잡을 거 아니야.”
“마왕은 다시 부활한다.”
무명의 보라색 검신이 빛이 나자 위, 아래, 사각. 모든 곳에서 보랏빛 검강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붉은 혈류를 조종해 검강을 상쇄시키고 가장 강한 무명 쪽에서 날아온 검강은 그대로 ‘저장’에 흡수한 뒤 다시 돌려보냈다.
그극. 무명은 검을 틀어 공격을 막아냈다.
“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이 기회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아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마왕전을 비롯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관리자와의 전투까지.
모든 걸 이번 한 번에 전부 끝내야 한다.
무명은 이해 안 된다는 듯 잠시 멈칫하다 이내 더 이상 묻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다시 한번 충돌이 일어난다.
전투가 지속될 때마다 나와 무명의 상처가 하나씩 늘어났다.
물리적인 상처만이 아니다.
‘영혼.’
초월자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격들에 조금씩 상처가 일어난다.
검을 틀어쥔 무명은 그대로 검을 비틀자 거친 선의 파도가 나를 향해 덮친다.
막기는 어렵다.
나는 높게 치솟아 공격을 회피했다.
“걸렸군.”
「▼차원 」
어느새 내 위에 올라온 무명의 뒤로 푸른색의 이질적인 차원이 열린다.
익숙한 기운.
‘무명의 창조세계. 전에 썼던 힘이다.’
푸른색의 기운이 무명에게로 쏟아진다. 융합된 세 가지의 힘이 무명에게로 스며들고 지금의 나조차 막기 어려운 기술이 내게로 향한다.
기운은 나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한다.
피할 길은 없다.
나는 억지로 힘을 써 피하는 대신 ‘저장’의 힘을 담은 여신의 검을 아래로 떨궜다.
검은 노란 월광에 합쳐진다.
월광의 두 빛이 번뜩였다.
월광식(月光?).구월(九月) ─ 광천검(光??).
하늘이 갈리고 무명의 뒤가 베였다.
***
“윤 씨!”
“......”
다윤은 덜덜 떨리는 기술 사용의 부작용을 버티며 구름을 타고 떨어지는 김윤을 붙잡았다.
자신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무명의 힘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아무리 윤 씨라고 해도…’
무명의 강함은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윤 씨와 악마에게 들어왔다.
4등위를 넘어서 5등위 이상의 힘을 쓸 수 있는 초월자.
윤 씨와 같은 특이점을 가진 이레귤러.
전 랭킹 1등이자 현재도 노릴 수 있는 김윤의 유일한 대적자.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정신 차려봐요!”
“......”
“윤 씨!”
투욱.
반쯤 걸려있는 팔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진다.
“...윤 씨?”
움직이지 않는다.
다윤은 손목에 손을 짚었다.
“......”
뛰지 않는다.
뛰지 않아.
왜?
“이, 일어나요. 제발요.”
“......”
투명한 물방울이 김윤의 잔뜩 찢긴 옷가지에 떨어진다.
이걸 바란 게 아닌데.
왜 어째서… 자신을 위해…
“윤씨!!!”
“머리 아파.”
“머리가 아파요? 잠시…?”
다윤은 부르튼 눈으로 김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가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이!”
“화내지 마.”
“화가 안나요?! 전 잘못된줄 알고 큰일 난줄 알았단 말이에요!”
“크크…”
뿌드득!
김윤의 손목이 꺾인다.
다행히 다시 뛰고 있었다.
“아, 아! 야!”
“벌이에요. 그러게 누가 그런 장난치래요?”
장난이었다.
화가 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로.
“정말 괜찮은 거죠?”
“살짝 힘들긴 한데… 괜찮아.”
“내던져도 돼요?”
“봐주라.”
“...왜 그렇게 무리한 거예요?”
“......”
글쎄.
왜 무리했더라.
굳이 이유를 찾자면 역시 다윤의 성장에 있다.
다윤이는 강하다.
단순히 힘의 강함, 세기를 논하는 게 아니라 강해질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무명 같은 강자와의 전투는 좋은 성장의 발판이기도 했다.
물론 무명은 발판으로 남을 놈이 아니기에 내가 어느 정도 시선을 끌어야 했다.
무명과의 전투로 보름달이 뜰 때까지 시간을 번다.
그런 뒤 무명이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사용하게 만들고 그 힘을 온전히 받아낸다.
그 사이 나는 모아둔 힘을 다윤이에게 주고 충분한 준비를 끝마친 다윤이가 구월 이상의 기술을 사용한다.
무명은 평범한 기술로는 어림도 없기에 그 정도의 힘은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건 그냥 사족이고.
“그냥.”
“네?”
“뚱한 표정으로 밑에 있었잖아. 그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단 말이지.”
마치 자신은 저들의 영역에 한 발자국도 내밀 수 없다는 자괴감.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보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불안감.
베린도 그렇고 다윤이도 그렇다.
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어때? 이제는 좀 감이 온 것 같아?”
“...몰라요.”
다윤이는 고개를 돌리며 나를 땅에 내려놓아주었다.
주위는 차마 무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마기와 이질적인 힘이 들끓는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수백년 정도는 생명이 못 사는 땅으로 남아있을 거다.
무명을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저 칼을 바닥에 꽂은 채 피를 흘리고 있을 뿐.
초월자에게 육체의 제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윤이 쓴 기술은 영혼을 타격하는 기술이었다.
아마 나처럼 찢겨나간 영혼의 수복을 하고 있으리라.
“남을 위해 몸을 던질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다윤이는 남이 아니지.”
“......그렇군.”
무명은 잡고있던 칼을 떨궜다.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그 어떠한 수도 사용하는 자.
고작 상처 좀 입었다고 포기할 녀석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쉽게 살아온 것 같군.]
푸른 차원이 열리고 그의 품 속에 있던 창조석들이 박살이 났다.
[..치직. 고유 특성, ‘전승’을 사용합니다.][현재 불러올 수 있는 특성의 수는 총 87개 입니다.][차원의 계약을 통해 30개의 특성을 불러옵니다.]
[특성, 세계의 걸음을 불러옵니다.][특성, 다중 아티팩트를 불러옵니다.][특성, 창조신의 가호를 불러옵니다.][특성, 천마신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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