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21. 무명 (5)
* * *
***
‘그것’은 날뛰었다.
푸르른, 붉은, 어두운, 밝은.
검이, 권능이, 마법이, 심판이.
무수히 많은 능력들이 휘몰아쳤다.
평범한 이라면.
아니, 그저 강한 수준의 초월자라면 저 육체와 영혼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을 거다.
하나의 영혼에 ‘고유’한 힘이 수십 개가 들어있다.
쉽게 말해 한 영혼에 자아와 조종권을 가진 사람이 수십 명이라는 소리.
그러나 ‘특이점’을 가진 이레귤러.
모든 차원을 뒤트는 ‘변칙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특성, 나이아스의 축복이…]
폭풍은 계속 몰아쳤다.
***
“윤 씨!”
다윤은 여신의 빛이 스며든 월광검을 휘둘렀다.
다른 차원에서 온 거대한 리치가 괴성을 내지르며 반으로 갈라졌다.
리치는 그냥 쓰러지지 않고 짙은 어둠을 내뿜으며 저주를 남겼다.
저주는 다윤의 몸을 옭아매려 했으나 ‘신성’에 가로막혀 그대로 사라졌다.
“윽!”
적을 해치운 기쁨도 잠시, 다윤은 새로운 적을 맞이해야 했다.
4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백금의 창을 내지른다.
공간이 비틀리고 백금의 빛이 다윤의 옆구리를 찌르고 지나갔다.
창이 비집고 지나간 상처는 마치 더러운 것을 정화하듯 다윤의 몸을 갉아먹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다윤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고대 악마의 손 무리를 피하며 검을 반원으로 휘둘렀다.
월광식(月光?).구월(九月) ─ 여월신주(月??).
다윤은 월광의 가호를 받는 검사이자 여신의 사도인 용사.
여신의 빛인 ‘신성’까지 얻은 그녀는 ‘빛’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지배력을 가질 수 있었다.
스르르…
상처를 갉아먹었던 빛은 오히려 여신의 빛에 의해 이물질로 처리되어 사라졌다.
아래에 있던 고대 악마의 손도 신성한 빛에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다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월의 검강을 날려 악마를 소멸시켰다.
“하아… 하아…”
다윤은 전장을 살펴본다.
무수히 많은 초월의 힘들이 자신과 윤 씨를 덮친다.
자신이 상대하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무명과 김윤의 전투에 끼어들지 못하는 ‘부가적’인 능력들이 다윤을 공격하는 것뿐.
진짜는 이미 저 멀리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더, 더.”
더 강해져야 한다.
다윤은 이를 악물며 목에 걸린 다섯 개의 보석 중 하나를 깨트렸다.
윤씨가 구해다준 4성급의 목걸이.
효과는 육체와 힘을 극도로 강화시키고 효과가 끝난 뒤 리바운드가 오는 부작용이 있다.
‘뒤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
힘을 강화시킨 다윤은 다가오는 능력들을 하나씩 베어 나갔다.
***
푸르른 파동이 나에게 몰아친다.
수천 개의 푸른 고리. 하나하나가 극도로 압축된 고밀도의 에너지가 나의 목숨을 노린다.
나는 피의 혈선을 가늘게 뽑아 고리를 낚아챈다. 고리는 공격이 안된다는 것을 눈치챈 듯 그대로 펴져 가시처럼 내게 쏘아진다.
푸부북!
내 육체에 가시가 꿰뚫리고 피가 흐른다.
피는 잠시 바깥으로 빠져나가다 일제히 허공에 떠 다른 ‘잡다한 것’들을 노린다.
무인, 용, 괴물, 악마, 천사, 로봇, 신…
잡다한 것들은 마혈의 선에 꿰뚫려 명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것들의 주인인 무명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나에게 접근해 팔을 베어낸다.
베어낼 뻔했다.
“어딜.”
「▼─ 」
대검을 집어넣고 메티아스의 장검을 꺼낸다.
‘김윤’의 적에게 효과적인 검.
이제야 흐릿한 모습이 보이는 ‘최강’의 힘이 무명의 공격을 상쇄했다.
마기를 집어넣고 연푸른 에테르로 온몸을 감싼 나는 최강의 기술을 시전했다.
「▼─ 」
“일격.”
순간 내 몸에 가득 차 있던 마나가 쭈욱 빠져나가고 공간이 부욱─ 터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무명은 기술의 위험을 읽었는지 ‘비전’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쾅! 쾅! 쾅! 쾅!!!
공격 범위 안에 있던 것들은 전부 사라지고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 종류의 무언가들은 여파에 휘말리며 사방팔방을 튕겨나간다.
그야 말로 재해였다.
재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힘.
“...할만하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부여잡는다.
그간 쓴 최강의 힘은 쓸 수 있는 ‘조건’에 맞춰서 쓴 거였지만 직접 능력을 ‘구체화’를 시키고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즉, 내가 방금 쓴 건 현재의 최강자가 사용하는 기술과 같다는 것이다.
‘언저리 정도지만… 썼다는 게 중요하지.’
피잇─!
잠시 몸을 고르고 있는 사이, 물의 화살이 내 팔뚝을 스치고 지나간다.
물의 정령왕 나이아스.
다른 차원의 물의 정령왕이다.
“나한테도 정령왕이 있지.”
나의 부름에 리벤디아에 있던 네메린느와 이리아가 소환된다.
그들은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돌아보다 이내 물로 이루어져 허공에 뜨고 있는 거대한 거인을 바라본다.
[저거 설마… 정령왕인가요?]
“맞아.”
[다른 세계…]
“맞는 거 같네. 어떻게. 우리가 처리해 주면 되느냐?”
네메린느는 녹색의 바람을 두르며 허공에 솟아올랐다.
같은 색을 가진 녹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래. 위험한 건 건드리지 말고.”
“알았다. 가자 아리아.”
[알았어. 금방 다녀오죠.]
네메린느와 아리아는 다른 세계의 정령왕을 상대하러 몸을 움직였다.
정령왕은 다윤이 보다 약하지만 정령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수많은 능력의 주체들이 죽어 나갔지만 실제로 죽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저들은 무명의 힘 아래 생겨난 초월자들.
무명이 있는 한 언제든지 다시 생겨날 수 있다.
“......최강자. 거슬리는군.”
무명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완벽히 피해 내진 못했는지 그의 자랑인 검은 코트의 절반이 날아갔다.
팔도 반쯤 아작이 난 걸 보니 재생이 안되는 모양이다.
“역시 너는 위험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나는 검을 하나 더 꺼냈다.
찬란한 빛.
빛의 정령왕 히아트가 깃든 검이자 나의 애병중 하나다.
쌍검이 연푸른 에테르를 뿜어내고 하나의 목표를 고정한다.
무명 역시 품 속에서 묵빛의 검을 뽑아들고는 나를 겨누었다.
“그러니 배제하겠다. 그녀의 빚은 나중에 갚지.”
「▲전승 」 「▲차원 」 「▲정령 」 「▲권능 」 「▲지혜 」...
아까까지의 소환수는 그저 장난이었다는 듯이 그의 주위로 수많은 힘이 휘몰아친다.
하나 하나가 3등위 이상.
구체화된 이격을 쓰지 않는 이상 정면승부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지.”
나는 이격을 쓰는 대신 적당한 기술을 두 개 쏘아보낸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을 탄 다윤이 보름달의 밑에서 공격을 준비한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무명은 다 예상했다는 듯 땅을 들어 올려 두갈래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나를 향하던 검은 다윤에게로 향한다.
그대로 묵빛의 공격은 터져나가…
─대(?) 초월자용 병기.
─코드(Code) ─ 스테드리온(Steadrion).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345,920%).
─광자 에너지 무기 연동. 연동률 81% 성공!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280,195%).
철커덕.
내 팔목에 걸린 베타의 에너지 전송 기관이 메티아스의 장검과 찬란한 빛에 연결된다.
새햐얀 백색의 검신에 연푸른 광자의 선이 새겨지고 이 일대가 급격히 무거워진다.
무명은 갑작스러운 에너지에 놀라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일단 다윤이를 배제하겠다는 생각.
다윤이는 쏘아지는 공격을 보고는 빨강과 파랑, 초록의 삼색(三色)을 지닌 끈을 만졌다.
[장비 스킬 결집이 발동됩니다!]
[대상자 김윤.]
[대상자와의 인연도는 99%입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삼조의 끈의 결집 스킬 사용이 처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삼조의 끈.
아델리나 왕국에서 얻은 장비이자 연결된 대상에게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상대는 수많은 초월자의 힘을 가지고 있는 무명.
고작 레전드리 장비의 스킬 따위로 벗어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무기 파괴.”
[장비 스킬 무기 파괴가 발동합니다!]
[*온토니오의 붉은 깃털이 파괴됩니다.]
[그라디온의 방패가 파괴됩니다.]
[**신성의 조화가 파괴됩니다.]
[*암제의 단검이…]
다윤이가 차고 있는 4성급 장비, 오석(五?)의 목걸이의 두 번째 스킬.
가지고 있는 무기를 파괴해 스킬을 강화하거나 무기, 육체를 강화한다.
유니크 장비를 비롯해 수억에서 수십, 수백억을 호가하는 레전드리 장비들이 파괴된다.
비록 초월의 힘이 아닌 평범한 장비들이나 이것들 역시 관리자의 힘이 깃든 장비들.
한두 개라면 모를까 수십, 수백 개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더불어 남아있던 4개의 보석 중 3개가 파괴되었다.
묵빛의 공격은 다윤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으나 다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후우…”
“잘했어.”
나는 다윤이가 뒤에 있다는 걸 확인한 후 검을 내리그었다.
두 개의 선은 세상을 긋고.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280,195%).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180,195%).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80,195%).
무명의 영혼은 네 갈래로 쪼개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