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8화 〉 22. 정비 (2) (258/318)

〈 258화 〉 22. 정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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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간은 꽤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명과 내가 벌인 일에 뒷수습이었다.

왜 무명이 똥 싼걸 우리가 치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오류든 아니든 랭킹 1등의 특성을 얻은 건 맞으니 이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본래라면 로루닌의 숲을 넘어 로루닌 전체와 그 바깥까지 영향을 주었어야 하지만 하페루아의 결계로 인해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결계만으로 모든 걸 막지는 못했다.

“...냐아.”

그다음에 한 일은 쓰러진 길드원들을 깨우는 일이었다.

그 날 이후로 3일이 지난날 베린이 일어났고 5일 간격으로 콜트와 채림, 레빗이 일어났다.

베린은 일어난 후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하더니 한 달이 지난 후 세피드와 함께 길드를 떠났다.

콜트는 또 망가진 베타의 에너지 전송 기관을 보고 오열하며 기계도시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어지간하면 부르지 말아야겠다.'

물론 급하면 언제든지 부를거다.

채림은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괜찮냐?”

“주인님. 멀쩡하다냐.”

“난 멀쩡해.”

“다행이다냐.”

레빗은 전처럼 당근 요리를 먹으며 평소처럼 지냈다.

나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채림과 마찬가지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20일이 지난날, 다윤이가 일어났고 길드는 대대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길드가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앞선 싸움으로 다들 압도적인 적을 목도했다.

나름의 경각심을 주기 위한 장치라고 하페루아는 말했지만 그런 장치가 없어도 다들 잘 해내고 있었다.

***

이랑이 깨어나고 한 달이 더 지났다.

우리는 회의를 통해 계획을 세웠지만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무명과의 전투는 행성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고위신들이 죽거나 가사상태에 빠지고 초월자들이 대거 죽어나갔다.

이랑의 부모인 이린은 힘을 잃은 체 길드에서 오랜 수면을 취하고 있다.

아마 수백 년은 그대로 잠들어 있을 거라는 것이 이랑과 치료사들의 말이다.

‘애초에 수천 년을 산 고위신들은 한번 잠을 자면 백 년 이상은 자니까.’

비어버린 고위신의 영역은 이랑이 대부분 가지게 되었다.

영역을 취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초월자와 고위신들이 대거 죽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신들은 수준 이하의 약자들이었고 이랑은 이린의 후계였다.

게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초월자, 지주 자환이 그녀를 옹호했으니 이랑을 막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받아도 될까…?”

“받아. 그래야 더 강해지지.”

이랑은 행성의 4할.

대륙으로 따지면 6할에 가까운 면적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 이린이 행성의 3할을 차지했던 것보다 더 많은 면적.

이랑은 행성 역사상 가장 많은 자연을 차지한 고위신이 되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나를 도와주고 엄마를 구해줘서.”

“당연한 건데. 뭘.”

이건 당연한 거다.

이랑이 날 돕고 내가 이랑을 돕고.

비록 첫 만남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없었다면 일이 굉장히 어렵게 돌아갔을 거다.

지금은 다들 강해져서 이랑의 역할이 돋보이지 않지만 과거에는 분명하게 이랑이 큰 도움이 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참고로 용신의 영역의 일부는 청린과 홍린에게 주었다.

그들은 이 일의 원흉인 무명을 원망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슬퍼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본 기억이 몇 번 없거든요. 오라버니야 많이 봤지.’

‘뭔 소리야? 아버지는 널 더 좋아하셨다.’

‘아무튼 이용당하시는 아버지를 막아내 주셔서 감사해요. 이랑씨 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

“소모된 유니크 장비는 2217개. 레전드리 장비는 27개. 그중 1성급 이상이 12개입니다. 3성급 이상은 소모되지 않습니다.”

네츠리 루아는 전투에서 소모된 장비들을 보고했다.

유니크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려 레전드리 장비가 27개가 소모됐지만 상대가 무명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다.

아직도 레전드리 장비가 수십 개 남아있으니까.

“단순히 피하기만 해서 그 정도 들었지만, 만약 공격을 막으려 했으면 전부 사용해도 막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겠지.”

수많은 창조석을 행성에 돌리고 얻어낸 힘이다.

아무리 레전드리 장비를 때려 넣는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다윤이 했던 건 단순한 ‘회피’니까.

나는 주위를 보았다.

앞에는 루아가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고 바로 옆쪽에는 하페루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그 옆에는 채림과 소환수들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다윤이 보였다.

다윤이는 그 날 이후로 상처는 다 회복되었지만 영혼적인 부분은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아 자주 잠에 들고 있다.

하페루아는 억지로 깨우는 것보다 그냥 자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고 한다.

“...해서. ‘무명전’ 대비 소모된 자원들의 복구를 97%까지 완료했습니다. 필요한 장비들도 속속히 길드로 들어오고 있고요.”

이랑은 길드에 없고 넓은 영역을 관리 중이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이린을 대신해 ‘위대한 여우신’이라는 이름으로 가치 높은 자원들을 길드로 보내고 있다.

그녀를 막을 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수가 4만이 넘은 용사들은 그녀의 발끝조차 건드리지 못한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레전드리 장비를 걸친 용사의 수는 백도 채 안 된다고 한다.

별이 붙은 장비는 손에 꼽히고.

‘아마 4대 길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 정도만 가지고 있겠지.’

마음에 드는 정보였다.

“그러고보니 대몰살은?”

“스승님이 오보로스를 진작에 죽여서 흐지부지됐습니다. 암운은 고위신을 잃고 4대 길드에서 강등당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냥 적당히 강한 세력에 불과합니다.”

대몰살.

4만이 넘는 용사들을 죽이고 자신의 통제할 수 있는 용사만 남기겠다는 계획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고위신인 오보로스는 제법 힘이있었고 만일 내가 막지 않았다면 실제로 가능도 했을 것이다.

‘무명이 없다는 전제하에.’

애초에 무명이 초월자들을 대거 만든 순간부터 실현은 불가능했다.

그 뒤로 내용을 쭉 듣다 회의를 파했다.

채림이는 뭐가 그리 급한지 서둘러 가장 먼저 방을 나가고 루아는 자료들을 정리한 뒤 문을 나섰다.

나는 다윤이를 안아들어 내 방으로 침대에 눕혀주었다.

“...가요?”

“깼어?”

“아까요.”

다윤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 보다 입을 맞추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다윤이는 여운을 즐기다 정적이 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스륵.

“아직도 한참인 것 같아요.”

상체를 일으킨 다윤이 창문을 바라본다.

하늘에는 푸르른 반투명한 고래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 천연기념물로 데려온 영물이다. 그 위에는 레빗과 채림이 타고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멍하니 있더니 금세 잘 놀고 있는 모양이다.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상체를 일으킨 다윤을 다시 눕혔다.

“하지만 자신까지 버려가며 강해질 필요는 없어. 지금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강해.”

“...그렇죠.”

“베린이는 계속되는 수련만이 답이라 생각하지만, 베린이와 너는 다르잖아?”

“네.”

나는 다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와주세요. 깨어났을 때 윤 씨가 보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

나는 방을 나섰다.

검 보랏빛의 악마가 손을 내민다.

“가자.”

“그래.”

‘문’을 열 시간이다.

***

고위 초월자인 관리자는 오래전 자신이 행성에 없을 상황에 대비해 여러 가지의 안배를 심어두었다.

안배는 관리자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아마도 자신의 분신이 대신 사용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추측하고 있다.

“....추측하고 있다고?”

“거의 확실해.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거든.”

무명이 가르쳐준 방법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방식을 요구했다.

열쇠를 다공학 각도로 맞춘 뒤 특이점인 코드를 이용해 공간의 좌표를 뒤바꾸고 17개의 공간의 틈 사이로 초월의 힘을…

“.....”

그냥 뭔 소리인지 몰라서 하페루아에게 맡겼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열쇠의 가동 방식을 풀어냈고 열린 공간 사이로 분리 차원이 나타났다.

정체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기이한 석상들이 잔뜩 올라와 있는 공간.

그 아래의 투명한 유리 너머에는 노란색의 은하수가 가득한 우주가 있었다.

족히 수십 M는 될법한 석상은 원형으로 가운데를 두른다. 그 가운데에는 삼단 케이크 같은 제단이 있다.

흑회색의 제단에 올라가니 열쇠구멍이 보인다.

“자.”

하페루아는 내게 열쇠를 건네준다.

다섯 가지의 주인의 물건으로 만든 열쇠.

나는 열쇠를 그대로 꽂았다.

[ A ­ 1 코드를 실행합니다. ]

거친 선이 몰아치고 열쇠를 잡은 나의 손을 휘감는다.

온몸에 가득 찬 힘이 휘감은 선을 경계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 환영 합니다. 다. ]

이윽고 내 시야는 점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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