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크리스마스 외전] 산타 다윤
* * *
★★★
“윤 씨. 그거 아세요?”
“?”
서버 통합이 이루어지기까지 한 달 전.
모든 메인 퀘스트를 끝내고 우리는 길드에서 쉬고 있었다.
다윤이는 따스한 집안 침대에 반쯤 기대 있는 나에게 물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래요.”
“...크리스마스?”
“네!”
나는 다윤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쳐다보았다.
이곳에서의 날짜는 현재와 다르긴 하지만 확인해 보니 정말 크리스마스긴 하다.
12월 25일.
우리는 날짜와 시간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달려왔기에 잊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트리 하나 만들어요.”
“트리라… 좋네.”
마침 길드 광장 가운데를 비워두고 있었으니.
★★★
“뭔 트리를 세운다고 그래?”
길드 광장.
한창 수련을 하던 베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광장으로 나왔다.
저 작은 키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난 재밌을 거 같은걸? 용사 세계의 특별한 날이잖아.”
“베타 업그레이드를 해야 합니다만…”
이랑 역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도착했고 콜트는 옆에 베타를 대동한 채 왔다.
“냐아?”
“어서 와.”
마지막으로 꼬치를 잔뜩 문 레빗까지.
하페루아는 진작에 광장에 도착해 다윤이가 세워둔 청록색 나무를 몇 번 둘러보더니 알듯 말듯 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말로는 일이 바쁘다고 하다던데.
정말 그럴지는 의문이다.
“자, 자! 그럼 트리부터 꾸미죠?”
다윤이가 수북한 트리 장식들을 꺼내온다.
별, 인형, 양말, 종, 막대, 상자…
다양하게 준비해온 모양이다.
“그전에.”
“네?”
“눈이 오면 좋잖아?”
항상 일정한 날씨를 유지하던 천공의 섬의 하늘이 뒤바뀐다.
이윽고 깨끗한 하늘에서 새햐얀 눈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와아…”
너무 많지는 않은, 아주 소복이 쌓일 정도의 얕은 눈.
그렇지만 전혀 춥거나 방해되지 않는 순수히 마법으로 이루어진 눈이다.
나는 입을 작게 벌리고 있는 다윤이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시작하자.”
★★★
“아! 제일 위에는 왕별을 달아야지!”
“뭐래. 여우 장식 다는 게 좋아. 너희 세계에선 그게 맞는 거 같지만 이쪽에는…”
“베타 빨리 달아봐. 그래야 빨리 끝내고 가지.”
─마구잡이로 다는 건 좋지 않습니다. 마스터. 부로드께서 열심히 수정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기는 당근 꼬치를 장식으로…”
“앗! 거기 내 자리야. 레빗! 비켜!”
“냐아! 내 꺼다냐!”
2층 높이를 자랑했던 거대한 트리가 고작 3시간 만에 차곡차곡 빈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것도 다른 길드원들이 멋대로 놓은 걸 다윤이 예쁘게 배치해서 그 정도 시간이 걸린 거다.
“정말. 너무 막 놓네요. 다들.”
“딱히 기준이 없으니. 막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윤 씨는 로망이 없네요. 이런 건 예쁘게 해야 하는 거에요.”
다윤은 얼굴에 산타 장식 스티커를 붙이고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웬 산타? 다윤이 산타야?”
“아, 아!? 그, 그냥 크리스마스니까 해봤어요!”
다윤이는 허겁지겁 스티커를 떼어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빤히 보다가 그대로 두었다.
나는 전깃줄 대신 마나의 줄을 트리에 돌려가며 걸고, 다윤이는 예쁜 선물 상자들을 나무 밑에 둔다.
어느새 난잡했던 트리도 예쁜 모양을 띠고 있었다.
따악!
나의 손짓과 함께 트리에 불이 들어오고 마나로 이루어진 줄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주위를 더욱 빛냈다.
“예쁘네…”
“그러게요…”
포옥.
다윤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트리 사이로 길드원들이 웃으며 돌아다니고 광장 주위에는 길드 소속의 거주민들이 웃으며 축제를 즐겼다.
이시간 만큼은 다들 일이나 걱정 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각자의 행복을 누렸다.
모두가 행복했다.
더불어 다윤은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소원할 것을 말했다.
베린은 산타는 없다며 동심을 파괴하는 발언을 했지만 다윤의 핵 꿀밤 한대를 맞고 트리를 향해 소원을 빌었다.
레빗은 빠른 속도로 소원을 빌고 콜트와 안드로이드인 베타도 마찬가지.
이랑은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우리를 한번 둘러보고는 이내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다윤이도 주위를 확인하듯 휙휙 둘러보다 소원을 빈다.
음, 나는…
★★★
3시간 후.
“후, 좋아.”
다윤은 트리 장식을 끝내고 이후 벌어진 파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산타 복장을 입었다.
윤 씨에게 들킬 뻔했지만 다행히 완벽히 눈치 채진 못한듯하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트리의 중앙에 다가가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빨간색 구슬이 하나 그녀의 손에 잡혀나왔다.
‘소원의 구슬. 소원을 이뤄주도록 기도하지.’
특정한 물건에 집어넣고 주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뤄지도록 기도하는 아이템이지만…
레전드리 장비가 아닌 에픽 아이템이라 정말 기도만 해준다.
다윤은 기도의 목적이 아닌 ‘기록’의 목적으로 이것을 이용했다.
“소원 목록.”
1. 강해지는 것.
2. 당근 요리?
3. 빨리 이 파티가 끝나길.
4. 마스터의 행복
5…
여러 개의 목록들이 주르륵 나온다.
누가 빌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딱 봐도 누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1번은 딱봐도 베린…
다윤은 아공간 마법이 걸린 빨간색 자루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곤 산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
산타의 활동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강해지는 것을 원했던 베린을 위해 특별히 아껴둔 비싼 영약과 단검을 베린의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꿈속에서 선물을 받고 있나 보다.
2번째 소원인 레빗은 진작에 예측을 했다.
길드의 요리사들에게 배운 요리 실력을 통해 만들기 어려운 당근 요리를 레빗의 집에 두었다.
워낙 기감이 좋아서 들킬 위기에 처했지만 레빗은 당근에 정신이 팔려서 들키지 않을 수 있다.
3번째는… 이미 떠났고.
4번째는…
“음…”
콜트의 행복이라. 조만간 홍린씨를 콜트의 도시에 보내줘야겠다.
그러면 좋아하겠지?
콜트가 알면 기겁할 얘기였지만 다윤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은…”
5. 지금 이 상황이 쭉 유지되길.
“...이랑.”
다윤은 전신 거울 앞에서 복장을 점검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반드시 이뤄지게 해줄게.”
반드시.
모든 싸움이 끝나고도 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오늘은 마지막 휴식이자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마지막 축제인 셈이다.
그녀는 깊게 다짐하며 마지막 소원을 열었다.
“...윤 씨.”
★★★
띵동~
“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현대의 모습으로 꾸며진 문 뒤에는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커다란 선물 상자가 놓여있었다.
“이야~ 산타님이 뭘 보내셨길래 이렇게 크지?”
“......”
“한번 까봐야겠는걸.”
들고 갈 때마다 안쪽에 들은 뭔가가 움직인다.
나는 피식 웃으며 크리스마스의 장식으로 꾸며진 거실 중앙에 상자를 놓았다.
빨간색과 초록색 면으로 나누어진 상자의 리본을 천천히 풀었다.
달그락. 상자를 열자마자 폭죽 소리와 함께 깜빡이는 노란색 눈이 보인다.
머리에는 빨간색 산타 모자를 쓰고 가슴 부분은 하얀색 털로 된 옷감과 그 아래로는 빨간색 산타 복장을 하고 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앞부분은 부끄러운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선물은 계속 쳐다보는 내가 부끄러운지 눈싸움을 계속하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왜. 왜 보고만 계세요…”
“너무 예뻐서.”
“으으…”
“소원 빌기 잘했나 봐. 산타님이 선물로 직접 오시다니.”
“...알고 계셨네요.”
그녀는 투덜거리며 상자에서 일어났다.
역시 일어나서 보니 더 예쁘다.
“그거 없어도 난 다윤이를 소원으로 빌었을 거야.”
“......”
“오늘 꼭 다윤이가 내 옆에 있으면 했거든.”
“...흐윽.”
꿀꺽.
다윤이의 눈이 점차 이성을 잃어간다.
더 이상 참기 힘든 모양.
“그전에!”
“오늘 잠 못잘… 네?”
“다윤이 소원도 들어봐야지.”
나는 다윤이를 내 허벅지 위에 올리곤 가볍게 입을 맞춘다.
쪽. 쪽. 쪽.
흐아아아… 다윤이의 이성이 좀 더 날아갔다.
“우리 다윤이는 소원이 뭐야?”
“...아시잖아요.”
“모르겠는데?”
“...정말.”
푸우우… 얼굴이 새빨개진 다윤이 나를 돌아본다.
부들 부들 떠는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것처럼 달아올랐다.
“저, 저는 윤씨요…”
“그렇구나.”
쪽.
가볍게 이마에 키스한 나는 다윤이의 눈을 바라보곤 말했다.
“다윤아.”
“네…”
“오늘 하루만 편하게 해도 괜찮아.”
“...!”
“힘들다는 거 알고 있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산타님의 소원이니 이해해 주겠지.”
“...내일의 제가 이해 안 해줄 거 같은데요.”
“내일의 너는 내가 잘 설득해 볼게. 그러니 오늘 하루는 편하게 지내.”
“...”
눈과 눈이 마주한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 내가 있다.
나의 눈동자 안에 그녀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담았다.
입을 맞추었다.
서로를 탐하듯 떨어지고 않고 마주한 면적들이 빈공간 없이 채워나간다.
한참을 키스하던 우리를 입술을 떼고 서로를 바라본다.
“...응. 오빠.”
창문 너머로 따스한 눈이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