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2화 〉 23. 만상(??)의 도서관 (3) (262/318)

〈 262화 〉 23. 만상(??)의 도서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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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의 활대가 흔들리고 전방을 가득 메운 악마들이 한 남자를 쫓는다.

남자는 익숙한 듯 마(?)의 문양이 새겨진 보라색 기둥을 넘어 옆으로 튼 뒤 기둥 뒤에서 활시위를 당긴다.

쭈욱. 펭펭한 실이 흔들리고 이윽고 도착한 악마들을 향해 쏘아낸다.

‘대지 포화.’

파바바박!!! 하늘에 비가 떨어지듯 셀 수도 없이 많은 양의 화살이 내려 악마들을 꿰뚫는다.

어느새 악마들을 화살 꼬치 모둠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후우… 슬슬 몰이사냥도 별로 안오르네…”

김윤.

월드 어드벤처를 즐기는 평범한 유저이자 활을 쓰는 레인저다.

오늘도 레벨 업을 위해 최상위 악마 지대를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고 있다.

목표치는 310레벨.

300레벨부터는 레벨이 극악하게 안 오르니 이런 식으로 악마를 한데 몰아 몰이사냥을 해야 했다.

“길드 공세가 빡세서 슬슬 돌아가긴 해야 하는데…”

김윤은 투덜거리며 악마가 떨군 각종 드랍템을 주웠다.

상급 악마의 뿔과 날개 일부.

재료 탬으로는 쓸만하지만 워낙 흔한 아이템인지라 그다지 비싸진 않다.

그는 별 감흥 없이 물건을 챙긴 뒤 다음 포인트로 이동했다.

과거 처음 통합 서버가 나왔을 당시, 김윤에게는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로 이루어진 작은 소수 정예 길드.

정말 작아 인원수가 다섯 정도였지만 정말 우연히도 숨겨진 ‘분리 도시’라고 불리는 홀리에린에 입성할 수 있었다.

통합 서버가 열린지 시간이 좀 지난 상태였으나 아직 어떠한 유저도 입성한 적이 없는 곳.

김윤과 그 길드원들은 도시를 가장 먼저 탐사하고, 또 퀘스트를 깨어 높은 등급의 장비 하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라티아의 갑주.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이 갑주는 모든 피해를 30초간 무효화하는 희대의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그들은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이 ‘모든 피해 면역’을 막을 사람이 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뚫을 수 있는 것도 나오겠지.’

‘파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가 최초 발견자잖아. 뭔가 더 이득 볼만한 게 있지 않을까?’

‘...으음.’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

‘그건…’

“미친 짓이었지.”

김윤은 픽­ 웃으며 은밀히 암살을 노리는 악마를 향해 빛의 화살을 날렸다.

악마는 키엑­ 소리를 내지르며 화려한 빛에 사그라들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10대 길드 중 하나를 치는 것.

당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만든 길드와 수십만이 넘는 길드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는 하늘과 땅. 아니, 그 이상의 차이였다.

계란으로 다이아몬드 치기 정도의 수준.

하지만 그 계란은 다이아몬드에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과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김윤 일행은 ‘마탑’이라는 마법사들의 성지라 불리우는 길드에게 당당히 선전포고를 했다.

그들은 선전포고를 듣고도 그냥 넘겼다.

대응할 가치도 못 느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해는 됐다.

수억 명이 같이 하는 게임인 만큼 유명인인 10대 길드에게는 이런 ‘이벤트’가 많았을 테고, 이런 사소한 일에 하나하나 대응해 주기에는 그들의 몸집이 너무 거대했으니까.

개미들 여럿이 코끼리의 발톱을 갉아먹는다고 코끼리가 반응하지 않는다.

“큭.”

‘그랬지.’

파박.

그리고 그 결과는 가장 치명적이고 최악의 상황을 낳았다.

하나의 성이 무너졌다.

평소처럼 최소한의 방비만 해놓던 마법 수성 기기들은 우리들의 공격에 부서졌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공격은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우리는 개미들이었지만 소수 정예인 만큼 하나하나의 강함은 마탑의 낮은 수준의 정예와 엇비슷했다.

게다가 우리는 홀리에린의 칠 영웅의 시험 중 하나를 전부 통과한 상태.

공격만 통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마탑이라고 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파바박!

화살을 맞고 악마 셋이 죽었다.

그때도 한발을 쏘면 셋의 마법사들이 그대로 죽어나갔다.

당시 달의 영웅, 무트라의 시험을 통과했던 나는 활에 굉장히 능통했고, 그라티아의 갑주까지 입어 ‘빛’에 있어 굉장한 능력을 자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빛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화살을 쏘자 마법사들이 우수수 죽어나갔다는…

뭐 그런 얘기가 듣기도 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갑주를 가장 잘 쓰고 또 가장 많은 이들을 죽인 건 나였기에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다른 길드원들도 못하진 않았다.

세 개의 성이 무너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그들은 직접 길드 마스터까지 오며 분전했지만 30초간 최대한 피해를 주다 빠지는 전략을 막을 순 없었다.

그 과정에서 길드 마스터는 죽음을 딛고 계속 부활해서 왔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마탑의 성인 다섯 개의 성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결국 승리했다.

“...그랬지. 그리고 망했지.”

나는 큭큭 웃었다.

결말만 보면 이제 앞으로 이 판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극해 위명을 떨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마탑과 그 친분 있는 네임드들이 운영자에게 항의했다.

‘공격이 안 통하는 것이 말이 되나.’

‘버그 유저다. 제재해야 한다.’

‘당장 보상을 회수처리하고 영구 정지를 시켜야 한다.’

하지만 운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 그건 그분들이 히든 피스를 찾은 것입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통합 서버에는 그런 게 제법 많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신성 보호’는 마기와 같은 신성에 취약하니까요!]

운영자는 사태가 심각해지는 걸 꺼려 했는지 신성 보호의 약점을 알려주었다.

PVP가 권장되는 게임인 만큼 이건 내쪽에서 항의할 일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들이었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커진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취약점을 알아낸 마탑은 다섯 개의 성을 전부 탈환하고 길드를 한차례 박살 내기까지했다.

‘아! 언니! 이 씹어 죽일 것들을 왜 놔둔다고 그래! 당연히 길드 멸망까지 시켜야지!’

‘엘리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아, 언니!!’

‘시끄러. 이분들도 정당하게 한 거니까.’

마스터와 부 마스터로 보이는 이들은 상처를 입고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인원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막 부활한 나를 보았다.

그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신성 보호’ 없이 마지막 성을 혼자 무너트린 장본인.

비록 많은 이들이 전투에서 이탈한 상태였지만 이 남자는 그 버그 같은 능력 없이 오로지 본연의 능력만으로 해냈다.

‘마법사 였다면 이 남자를 데리고 왔을텐데.’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건 좀 매서웠습니다.’

‘아, 뭐, 다들 지친 상태였는데.’

‘아뇨. 그쪽이 잘하신 거죠. 홀리 레인저 씨.’

‘...그 이름좀 안 붙이면 안됩니까. 오글거리는데…’

‘네. 달게 받으세요. 당신은 앞으로 꽤 유명해질 것 같으니까.’

마탑의 수장, 카린은 싱긋 웃으며 그대로 돌아섰다.

그녀는 그리 말했지만…

“...대지 포화.”

파바바바박!!!

정말 그리 되진 않았다.

나를 좋게 봤던 마탑의 길드 마스터와 달리 우리를 안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상대로 그라티아 장비도 시간이 지나니 그냥 네임드 있는 장비로 남았다.

물론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어느정도 있긴 했다.

하지만 길드가 주가 되는 게임인 만큼 소수 정예 길드로는 성장이 어려웠다.

어느새 나의 순위는 쭉쭉 밀려 저 500만등 밑을 엇돌게 되었다.

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레벨.

레벨이 낮으니 당연히 순위가 떨어지고, 순위가 떨어지니 유명세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네임드들은 뭐 종말의 불꽃이니, 신이 벼린 검이니 각자 이명을 붙이며 띄워줬지만,

저 500만등 밑에 있는 나를 불러주진 않았다.

내가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미 수많은 악의를 몸소 받아봤다.

굳이 더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가끔씩 참교육이랍시고 연례행사로 길드 전쟁이 걸려오는 것만 빼고 말이다.

랭킹만 보고 오는 놈들이라 소수 정예로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어 한 번도 밀린 적은 없었다.

“오늘인가?”

나는 마지막으로 리젠 된 악마를 잡으며 날짜를 확인했다.

7월 29일.

오늘 10대 길드들이 한데 모여 마왕을 토벌하러 가는 날이다.

이미 성장이 밀린 자신은 접근할 수도 없는 마왕이지만 다들 이번만큼은 성공한다고 여러 매체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 이상이 하는 유명한 게임인 만큼 게임 속 중요한 사건을 공중파에서 다루기도 했다.

나는 악마의 뿔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왠지 실패할 거 같은데.”

지금껏 수많은 몬스터와 마족, 악마를 상대해왔지만 마왕은 뭔가 달랐다.

비록 화면으로 본 것이지만 마왕은 확실히 달랐다.

뭔가 ‘근본’자체가 다른 것 같은 느낌.

마치 우리 ‘따위’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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