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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4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2) (264/318)

〈 264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2)

* * *

***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는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정확히는 데브론 후작령의 작은 소마을 이라고 하던데, 워낙 영역이 넓은 터라 우리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워낙 작고 영역 끝자락에 있어서 세금도 많이 걷지 않는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저기 봐 저기. 기사님이야!”

마을의 유일한 동갑내기인 나와 하페루아.

또래가 둘 밖에 없는 심심한 마을에서 우리는 특별한 일이 생기면 항상 같이 구경을 다녔다.

척. 척. 척.

은빛의 투구와 갑주, 창을 든 수십의 기사들이 마을을 돌아다닌다.

평범한 마을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위엄이 있어 보이는 모습.

그들 중 선두에 서있던 장군 같은 사람이 촌장과 대화를 나눈다.

장군은 단호하게 뭐라 뭐라 말하지만 촌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를 친다.

혹시 사고라도 일어날까 ‘나’는 두려워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그대로 돌아섰다.

“우와… 완전 멋있어! 저게 후작령의 은빛 기사단인가…? 이래!”

하페루아는 초롱 초롱 한 눈으로 떠나는 기사를 바라본다.

“은빛 기사단…”

그리고 ‘나’ 역시 주먹을 불끈 쥐고는 깊게 다짐한다.

“나도 기사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야 당연하지! 윤이는 뭐든 잘 할 거야.”

씨익.

“물론 나도!”

짜안~ 하페루아는 엄지를 척 들며 나와 자신을 가리킨다.

상큼하게 웃는 그녀는 정말 귀여우면서도 예뻤다.

***

마을에서의 생활은 극히 단조롭다.

아침에는 하페루아의 수동 모닝콜에 일어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돕는다.

제법 힘든 일이지만 예전부터 육체 하나만큼은 튼튼했고 농사의 신이 돕기라도 하는지 매년 풍작이었다.

일을 다 마치고 나면 하페루아가 쫄래쫄래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손은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었는데 보아하니 또 빨래와 같은 청소를 도맡아 했나 보다.

뭐, 농사일을 하는 나도 마찬가지니 서로의 손은 피차일반이었다.

오후에는 서로 손을 잡고 마을 주변을 탐방한다.

출입이 금지된 고블린의 숲부터 공동묘지, 마을 주변 가장 높은 산 등등.

모두 하나같이 어린아이들이 가기에는 위험한 곳이지만 둘이 함께라면 그다지 위험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꽉 잡아.”

“응. 윤이도 조심해.”

나는 앞장서서 뒤따라오는 하페루아를 끌어준다.

으짜! 하고 힘을 주어 하페루아를 위로 올리자 그녀는 격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달라붙는다.

“으앗!”

“괜찮아?”

“으, 응…”

그녀는 바짓단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머쓱하게 발을 땅에 디딘다.

산 정상에 도달했다.

노을빛이 밀려오는 마을의 풍경.

왼쪽에는 길게 뻗은 숲이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에는 이곳에서 맡아질리 없는 달콤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밤하늘은 깨끗한 하늘에 색색의 별들이 모래알처럼 잔뜩 퍼져있어 아름다웠다.

마치 하페루아처럼.

“예쁘다…”

“그러게…”

꼬옥.

나와 하페루아는 가끔씩 산 정상에 올라 전경을 감상한다.

이곳에 올라오면 왠지 모든 일이 잘 될 거 같은 느낌이다.

“좋다…”

'......'

아니, 어쩌면…

***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어느새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긴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달랐다.

우리의 생활은 앞선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어나 각자의 일을 하고 식사를 한다.

그런 뒤 마을 주변을 탐방하고 돌아와 식사를 한 뒤 잠에 든다.

단조로운 일상.

매번 똑같은 곳을 수십, 수백 번 가야 하지만 매번 지루하지는 않았다.

꼬옥.

“내일은 고블린 숲에 갈까?”

하페루아.

항상 함께하는 그녀가 있으니 지루하지 않았다.

“어딜 가니?”

“또 놀러 가? 너희들도 참 사이좋다. 결혼은…”

“에이~ 아직 애들인걸요. 때 되면 하겠죠. 호호~”

“왜? 요새야 좀 다르지만 옛날에는 다 그 시기 쯤에…”

물론 매번 그녀와 함께 다니다 보니 마을 어른들께 저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조금 부끄러울지도 몰라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소소한 일탈을 숨겨줄 수 있으니 좋기도 했다.

“검 챙겼어?”

“응, 하페는?”

“나도 지팡이 챙겼어. 가자!”

하페.

그녀의 애칭이다.

언젠가 하페루아는 ‘하페보다는 루아가 어감이 더 좋은데 왜 하페라 불러?’ 라고 물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흔해보이잖아. 난 네가 특별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치겠네.’

***

고블린 숲.

마을의 유일한 위험요소이자 최대 수입원이기도 하다.

이런 작은 마을에 관심이 없는 데브론 후작령이 유일하게 관리하는 곳.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대충 쳐놓은 줄과 나무 방벽을 넘어 숲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케륵 케륵 소리가 들리고 고블린 외에도 다른 동물의 소리도 제법 들린다.

“오늘은 열 마리만 잡자.”

몬스터는 인간의 적이자 사악한 마왕의 수하.

수많은 인간 왕국과 영물, 신. 그리고 여신은 몬스터를 악으로 규정했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증거품을 바치면 포상금을 얻기도 하고 효용가치 좋은 몬스터의 시체는 비싼 값에 팔리기도 한다.

고블린의 사체는 비싸진 않지만 번식력이 좋아 주기적으로 사냥을 해야 한다.

고블린의 코를 도시의 몬스터 판매소에 가지고 가면 나름의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압!”

도시에서 어렵사리 구한 낡은 칼을 들고 내가 달려든다.

이가 잔뜩 나간 칼이지만 저 눈앞의 초록 괴물들을 베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케륵?

케­

촤악!

흩뿌리는 녹색의 피.

10초 정도의 치열한 싸움 끝에 세 마리의 고블린중 한 마리는 목을 베어내고 다른 두 마리는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각각 베어냈다.

본래는 셋 다 목을 칠려했는데, 실수를 좀 해버렸다.

“윤아!”

화악!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검은색 물결이 나를 덮고 뒤쪽으로 빼낸다.

쿠당당!

기습에 실패해 분개하는 팔 한쪽이 없는 고블린들.

내가 잠시 주춤한 사이 나를 노린 모양이다.

위를 보니 하페루아의 눈빛이 흔들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마법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아. 어, 조금…”

하페루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일으켜 주었다.

나는 실수한 고블린들을 마저 처리한 후 하페루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신비한 마법을 연습하고 나는 검술을 연습한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지만 항상 우리 사이의 규칙처럼 지켜오던 불문율이 하나 있다.

지금 상황은 실수를 한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내가 감사를 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페루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페.”

“...응.”

“그 마법은 함부로 쓰면 곤란해.”

나는 하페루아의 거친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예전에 하페루아와 도시에 갔을 때 신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서적을 본 적이 있다.

세상에는 많은 신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성의 빛이자 마왕의 유일한 심판자인 여신.

그 아래로는 여우신과 용신 같은 ‘영물의 신’.

어둠이나 바다와 같은 특수한 ‘개념 신’들이 있다.

보통의 신들은 사도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힘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중 아무렇게나 힘을 뿌리는 신도 있다.

하페루아는 별빛의 신의 힘을 ‘우연히’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 힘을 쓰면 사람들이 널 이용하려 들 거야.”

“...하지만 윤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는걸.”

“.....전에 기사들이 온 거 기억해?”

“응.”

은빛 기사단.

3년 전, 그들은 갑작스레 마을에 찾아와 마을을 뒤진 뒤 그대로 떠났다.

수십의 기사단이 그냥, 별 볼일 없이 마을에 올 리가 없었다.

촌장과의 대화를 대충 유추한다면 필시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

그게 하페루아라는 보장이 없지만…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어려서 뭘 몰랐지만 그 이후로 도시로 가서 많이 봤잖아.”

“...응.”

“사람들은 신의 힘을 원해. ‘신전’이 널 보면 필시 성녀로 만들려 들 거야.”

성녀.

신의 사도이자 신의 대리자, 신의 우상.

어찌보면 좋은 수식어가 잔뜩 붙은 것 같지만 실상은 신의 힘을 이용해 먹기 위한 단체일 뿐이다.

하페루아와 나는 우연히 성녀의 연례행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고, 뭐랄까… 그 주위에 있던 신전의 사제들을 보니 기분이 나빴다.

무언가 탐욕에 깃든 눈빛들.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하페루아가 소리치며 날 바라본다.

“이 상황이 또 일어나면 난 널 구할 거야. 반드시!”

“......”

“그, 그럴 거니까! 너도 애처럼 취급하지 마. 내가 너보다 한 달 누나니까!”

팔짱을 낀 그녀는 당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녹색의 피가 뭍은 검을 털어내며 웃었다.

“그래. 나도 더 노력할게. 네 도움받지 않고도 잘 할 수 있도록.”

“...조금은 기대도 돼.”

“걱정 마. 그럴 일 없을 거야.”

“흥. 그래놓고 또 지금처럼 구해지려고?”

“이건 실수였어! 다음부터 이런 실수는 없을 거야!”

“흐응~? 저번에도 그런 말 했거든?”

“이번이 진짜야!”

“네네~”

“진짜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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