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3)
* * *
***
“오늘은 도시에 가볼래?”
“도시? 저번에 한번 갔다 오지 않았어?”
하페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맞다. 불과 한 달 전에 고블린 코의 교환과 이것저것을 사러 도시에 갔었다.
보통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도시에 가니까.
“음, 근데 저번에 갔을 때 보니까 무슨 행사? 축제? 같은걸 한다더라고. 어차피 이번 달에는 코도 많이 모았으니까.”
“으음… 좋긴 한데…”
“한데?”
그녀의 표정은 조금 굳어있었다.
“축제라면 저번처럼 성녀가 오지 않을까?”
성녀.
신전에 소속된 사도로 지금의 나와 하페루아는 신전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전은 왠지 위험한 사람들일 거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들은 소마을의 아이들이 가질 생각은 아니다.
보통 마을이나 도시의 주민들은 한정적인 정보로만 생활하고 신전이나 후작가, 왕국이 선전하는 내용은 신전은 고귀하고 우리를 위한다! 이니까.
하지만 뭔가 느껴지는 꺼림칙함은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능력만 쓰지 않는다면 걸릴 일은 없을 거야.”
우리를 의심한다고 해도 3년이나 지났다.
아무래도 모종의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다.
잘만 숨긴다면 이번에도 별 탈 없을 거다.
...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
“윤! 윤! 저기! 저기 가보자!”
하페루아는 내 손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폭죽들이 밤하늘에 흩뿌려지고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사방에서 넘실넘실 흘러간다.
어찌나 신났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다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오기 잘한 것 같다.
하페루아의 목적지는 커다란 곰인형이 쭈그려 앉아 솜사탕을 만드는 곳.
기계가 아닌 바람 마법과 열 마법을 이용해 만든 솜사탕이었다.
곰인형은 덥지도 않은지 묵묵히 솜사탕을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2동화란다. 옆에 친구 것까지 하면 4동화.”
“엄청 싸다. 윤! 너도 먹을 거지?”
“당연하지. 주세요.”
나는 4동화를 내밀었다.
큼지막한 손바닥은 동전을 못 잡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쉽게 잡어 동전통 같은 데에 넣어졌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손에는 노란색과 자주색의 솜사탕이 들려져 있었다.
“우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꾸벅 인사를 하며 떠났고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곰인형은 인형탈을 벗었다.
“.....”
***
축제는 세 가지 행사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3개의 신전과 후작가의 진행 하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
연설은 지루하기에 처음부터 패스했다.
두 번째는 불꽃놀이와 축제의 음식, 놀이를 즐기는 것인데 이건 재밌게 참여했다.
솜사탕을 먹고 요상한 기구도 타보고 연극 같은 것도 감상했다.
지금의 김윤과 동조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나도 제법 재밌다고 느끼고 있었다.
‘...모르겠네.’
아직까지는 확실치 않은 감정이다.
“마지막은… 신전의 의례 같은 거래. 성녀가 오나 봐.”
“성녀…”
나와 하페루아는 백색과 노란색, 자주색이 뒤섞인 단상과 조금 많이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아무리 능력을 쓰지 않는다 한들 가까이서 성녀를 보는 건 조금 부담이 된다.
‘애초에 쉽게 잡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온다.”
의례가 시작되고 삼색이 혼합된 단상의 세 가지 방향의 계단에서 성녀들이 올라왔다.
어색하고 떨리는 표정을 지은 자애의 성녀.
멍청한 표정을 짓는 달빛의 성녀.
마지막으로 틈 하나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예언의 성녀까지.
데브론 후작령에 있는 세 가지의 신전의 성녀들이다.
세 명의 성녀는 각자 위치에 앉았고 그 뒤로 각 신전들의 세 명의 사제들과 기사 여럿이 올라와 주위를 호위했다.
일순 조용해진 분위기.
축제이지만 신전의 의례인 만큼 이 순간만은 조용했다.
또각.
“아, 아. 뒤쪽까지 잘 들리는지 모르겠군요.”
예언의 성녀.
본명은 에린 론브디아.
나이는 스물셋. 성녀가 된지는 13년.
새햐얀 백색의 머리카락과 백색의 눈을 가지고 있는 성녀는 눈의 성녀라고 해도 믿을 법 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백색의 나풀나풀 한 기다란 옷차림은 바닥에 끌려 더러워지지 않을까 심히 의심이 들었지만 특수한 옷인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주위 사람들에 비하면 어린 나이지만 성녀로서는 꽤나 긴 인생을 살아왔기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다른 성녀는 몰라도 저 성녀는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 같다.
“반갑습니다. 예언의 신님의 사도이자 예언의 신전의 성녀, 에린 론브디아입니다.”
조용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기에 성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벌써 4년마다 오는 신전의 의례 행사가 스무 번째를 맞이했군요. 제가 겪은 것은 네 번째 입니다만…”
성녀는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뭐, 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이것도 다 예언의 신님의 뜻이겠죠.”
다른 두 신과 함께가 아닌 예언의 신을 가장 위로 치켜세우는 발언.
그에 뒤쪽에 불안하게 앉아있던 두 성녀가 움찔했으나 차마 나서거나 뭐라 하지 못했다.
나이대는 비슷할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자신은 얼마 되지 않은 성녀들이고 눈앞에 에린은 대선배니까.
‘예언’의 신의 위치와 힘이 강력한 탓도 있었다.
“...읏.”
“왜?”
갑자기 하페루아는 질겁한 듯 내 손을 붙잡곤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나랑 눈이 마주쳤어.’
‘너랑? 그냥 마주친 건 아니고?’
‘...아냐. 뭔가 눈이 이상했어.’
나는 예언의 성녀를 보았다.
그녀의 두 동공이 하페루아를 향해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있었기에 나까지 시선을 받아야 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빛이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듯한 눈빛.
나는 손을 두 번 톡톡 건드렸다.
‘어쩌면 눈치챈 걸지도 몰라. 끝나면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가자.’
‘으, 응.’
현재 우리의 위치는 좌석 중간.
지금 상황에서 일어난다면 안 그래도 받는 의심이 더 커질 수 있다.
끝나고 사람들이 나갈 때 휩쓸려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거다.
그 뒤로 성녀는 의례의 형식적인 말을 이어나갔다.
뒤쪽에 있는 두 명의 성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병풍처럼 앉아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의례가 막바지로 도달할 무렵.
“저는 예언의 신 님께 중요한 예언을 받았습니다.”
술렁.
여태껏 조용하던 의례의 장이 요동쳤다.
신의 예언.
예언의 신전이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예언’이라는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세력과 왕국은 예언의 사도를 찾기를 원했고, 그것을 일찍이 찾은 데브론 후작가는 공작가 못지않은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예언은 성녀가 그의 힘을 빌려 직접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 자체가 하는 예언은 그 무게가 다르다.
나라의 중대사, 봉인되어 있는 마왕의 소식, 국가 간의 정세 등등…
하나같이 무게감이 있는 예언뿐이었다.
“조용.”
싸아…
성녀의 단호한 말 한마디에 모든 이들의 입이 닫혔다.
성녀의 시선은 정확히 나. 아니, 하페루아를 향했다.
“별빛의 힘을 타고난, 별빛의 사도가 이 땅에 나타났다는 예언입니다.”
들켰다.
***
“허억… 허억…”
“윤… 윤아… 나 힘들…”
덥석.
“으엣.”
“시간 없어!”
나와 하페루아는 의례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레. 아니,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빠져나간 뒤 도망쳤다.
도중에 하페루아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녀를 업고 뛰었다.
그동안 수련을 많이 한 영향인지 아니면 깃털처럼 가벼워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무게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 마을로 향하는 숲에 들어섰다.
어둡고 빛도 잘 보이지 않는 위험한 숲.
평소라면 날이 밝아야 들어가겠지만 지금은 그런것 하나하나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다, 다들 안 쫓는 거 같은데?”
“혹시 모르지. 아직 정체는 성녀만 알고 있는 걸지도.”
이백 년 만에 나타난 별빛의 사도.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신이기에 그 힘과 위치는 가히 강대하지만 사도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전 세계를 통 들어 그 숫자가 셋을 넘지 않으며 그 유명한 예언의 사도보다도 적다.
때문에 그 누구든 하페루아를 발견한다면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 들 거다.
“위험해… 위험하다고…”
널, 널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건 싫다.
지키고 싶다.
지켜낼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
“...이런.”
“왜, 왜? 멈춘 거야? 더 달려야…”
하페루아는 히끅 말을 삼키며 주변을 마구잡이 둘러본다.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숲.
백색의 안광을 가진 기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그 가운데에는.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새햐얀 자태를 가진 성녀.
“별빛의 사도님.”
예언의 성녀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