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화 〉 24. 그녀의 친구, 그녀의 기사 (10)
* * *
***
갑작스러운 폭발.
거대한 불기둥이 반응할 틈도 없이 가게 근처를 전부 덮었고 하늘 위로 신의 심판이 내리듯 가게를 흔적도 없이 집어삼켰다.
아마 이 공격에 휩싸인다면 쉽사리 대응할 수 없을 거다.
“끄앗!”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는 기준 하에 말이다.
4서클, 워터 체인 (Water Chain).
촤아아악! 뜨거운 불기둥의 가장 안쪽에서 터져 나온 푸르른 물의 사슬이 불기둥을 휘감았다.
불과 물은 아주 짧은 대결을 펼쳤지만 승자는 당연하게도 물의 사슬.
푸시시… 하고 회색의 연기가 솟아 올라오고 불기둥은 머지않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으아아…”
“...건방지게.”
나는 불기둥에 휘말렸음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은 로브를 펄럭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목표는 나를 공격한 겁도 없는 마법사.
나의 두 동공이 푸르게 물들고 이 일대의 시야를 전부 장악한다.
거대한 건물부터 아주 작은 벌레와도 같은 생명체까지.
“저기 있군.”
불기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자 허겁지겁 텔레포트를 쓰는 남색의 마법사.
나는 역추적 마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그의 뒤를 붙잡아 바닥에 내리쳤다.
“끄아아악!!”
“...남색 마탑이군.”
남색의 로브에 원색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남자는 마탑 소속이었다.
로브의 등짝에는 뱀을 상징하듯 비늘을 가진 기다란 생물체가 원형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플레임 필드를 단박에…”
“고작 그런 것 따위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남자의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내가 공격한 건 아니었다.
“미, 미친 괴물…”
그저 이 일대의 마력의 사용량을 급증시켜 남자가 억지로 시전하려던 텔레포트의 값을 증가시킨 것뿐.
간단히 말해 10마력의 소모할 걸 500가까이 늘렸다는 소리다.
취소도 못하게 했으니 마력은 마력대로 나가고 사용은 안 되는 게 당연지사.
나는 쪼그려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지시했느냐.”
“워!”
“?”
“원로님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가, 감히 남색 마탑의 영역을 침범한 죄를!”
남자는 피를 울컥울컥 내뱉음에도 나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솔직히 좀 놀라웠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나를 협박하는 것이.
이들에겐 목숨이 전부일 텐데.
“아니, 꼭 전부만은 아니지.”
“...?”
육체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니.
뱀의 심볼을 한 번 더 흘겨본 나는 손을 뻗었다.
“원치 않아도 말하게 될 거다.”
***
“...마법의 신이라.”
나는 가게로 돌아오며 실토해낸 남자의 말을 곱씹었다.
어드벤처의 평행세계인 이곳은 수많은 신들이 있고 그중에는 마법과 특화된 신들이 여럿 있다.
하페가 만들어낸 별빛의 신부터 용언을 사용하는 용의 신.
혹은 인간의 신분으로 대마법사를 뛰어넘어 마성(??)이 된 마법의 신이 있으니까.
마법사란 일종의 병기와도 같다.
하급 마법사는 같은 기량을 가진 병사 다섯과 맞먹는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상급 마법사는 작은 부대부터 하나의 군단.
대마법사는 하나의 나라.
그리고 마성은 대륙 전체와 비견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쪽에서만 통용되는 내용이고 실제 어드벤처는 시스템을 비롯해 다른 차원의 용사, 초월자가 있어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그래도 마성 정도면 이곳의 대마법사 위치 정도는 되지.’
아미아 리엔. 혹은 아미아 리진 정도면 나라는 물론이고 반 초월자와도 싸울 수 있을 정도는 될거다.
애초부터 그 둘은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키워둔 인재들이니까.
‘언젠가 쓰일 일이 있겠지.’
아무튼 남색 마탑의 마탑주가 마법의 신의 사도인 모양이다.
원로들도 은빛 기사단처럼 어느 정도의 능력을 공유하고 있는 모양이고.
그런데 왜 깡패짓이나 하는 애들을 받아주고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내 가게…”
가게였던 곳으로 돌아오니 갈색 머리의 주인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땅을 더듬고 있었다.
“가게! 가게가 사라졌어요!”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범인도 이미 잡았다. 아마 마탑쪽에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
“...그, 예, 그렇긴 한데… 그 제 작품은 돈으로 살 수 없는데.”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알겠어요. 부탁이 있는데 같이 가─ 저기요? 어디가신…”
***
“...”
“윤아…”
“......”
“윤!”
선명히 들어오는 환한 빛.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찌뿌둥 하긴 하지만 몸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페.”
“수호 기사라면서 나보다 늦게 일어나면 어떡해?”
“아, 미안. 첫날이라 좀 긴장됐나 봐. 밤을 좀 새 가지고.”
실제로 나는 혹시라도 하페가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어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얼마 안 되는 힘으로 옆방까지 기감을 펼쳐두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으니까.
“...그래?”
하페는 살짝 걱정된다는 듯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늘 하던 접촉인데 묘하게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루비 같은 두 눈이 반짝이고 거리가 이상하게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일단! 나가자!”
“응.”
별빛의 문을 열고 나가자 보조 사제들이 공손히 몸을 숙이며 나와 하페에게 인사했다.
우리는 그대로 나가 사제들이 준비한 식사를 하고 신전을 가볍게 돌았다.
“방이 되게 좋았지?”
“응. 그렇게 좋은 방은 처음 써봐.”
하페와 나는 신전 앞 정원을 가볍게 돌은 뒤 잠시 해어졌다.
하페는 마법과 신의 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제들과 마법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마법의 재능이 딱히 없으니 그녀의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없다.
물론 수호 기사라는 명분이 있으니 단순히 옆에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로 했다.
“왔나.”
“네.”
하페가 수업을 하는 동안 나 역시 기사에게 검술 연습을 하기로 한 것.
당연히 상대는 기사단의 부단장이다.
“의외구나. 너라면 한시도 빠지지 않고 성녀님의 옆에 있겠다 할 줄 알았는데.”
부단장은 묵빛의 검집에 담긴 은색의 검을 건네주며 말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해온 말이나 행동을 보면 하페의 곁에 계속해서 머물 거 같았으니까.
나는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은빛의 검이 태양빛에 반짝인다.
“나도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제대로 된 기사가 되기로 한 이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손해죠.”
“그러냐.”
“게다가 예전에도 매번 붙어있지도 않았고요.”
하페와 같이 다니기 전 나는 농사일을 도왔고 하페는 가사일을 도왔으니까.
비슷한 양상이라고 봐도 되겠지.
“너는 신의 힘을 타고났으니 마나 수련법만 잘 익힌다면 3년 안에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네가 익혀야 할 건 실전 경험이다.”
“실전 경험.”
부단장의 검이 은빛에 일렁인다.
“힘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러니 지금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칠 거다.”
“...네!”
은빛은 찬란하게 일렁이더니 이내 세 개로 분리된 검은 세 가지 검로(??)를 통해 들어온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연푸른 힘을 끌어올렸다.
「─ 」
“시작은 3개로 해볼까.”
검과 검들이 충돌했다.
***
“...죽을 거 같아…”
정신없이 몰아친 공격을 얼마나 막았을까.
어느새 수련은 끝나있었고 나는 난장판이 된 수련장 위에 혼자 누워있었다.
“끄으…”
일어나 지끈거리는 어깨를 붕붕 돌린다.
부단장은 이미 떠난 모양이다.
내가 멍하니 있자 별빛의 사제들이 다가와 손을 젓자 수련장을 복구시킨다.
나는 멍하니 복구되는 장면을 보다 그대로 몸을 돌려 하페가 수련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하페의 수업도 끝났을 테니.
‘역시 단순한 기절로는 동조화가 안 끊기는군.’
완전 수면에 들지 않는 한 동조화를 벗어날 방법이 없는 거 같다.
강제로 끊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시간은 많으니까.’
“역시 성녀님이십니다.”
“능력의 발현이 역대 성녀들 중 최고입니다. 가히 신의 현신이라고 봐도 무방…”
그사이 ‘나’는 하페의 수업 장소에 도착했다.
하페의 재능이 대단한지 사제들은 하페를 대단히 띄워주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사제들은 고개를 숙였다.
마법을 가르치는 신전의 정예 사제들은 위치가 제법 높으나 나 역시 신의 사도이니 이런 대접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윤이 왔어?”
별빛의 은하수를 띄우고 있던 하페는 하늘하늘한 복장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화려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알던 그 하페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마법적인 설계가 들어간 복장이라 다른 복장보다도 훨씬 편한 복장이었다.
“윤아?”
“아, 어. 어. 왔지.”
“뭐야. 갑자기.”
살짝 웃어 보이는 하페는 내 쪽으로 다가왔고 얼마나 정신이 나간 건지 ‘나’의 동조가 조금 끊겼다.
‘미친놈.’
이러다 다윤이는 어떻게 보려고 그러는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