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화 〉 25. 진심 (6)
* * *
***
“아! 다시 오셨네요.”
“레이나?”
“네! 레이나에요. 기억하고 계셨네요.”
가게에 들어선 나를 보고 싱글벙글 웃는 가게 주인 레이나.
“가게가 많이 바뀌었네.”
나는 주변를 둘러보았다.
전에는 어지럽게 벽면에 걸려있거나 바닥에 굴렀던 마법 도구들은 규격에 맞춰 제자리에 배치되어 있었고 마법의 선들 역시 깔끔했다.
가게의 마력 역시 전보다 훨씬 짙어진 상태.
“그… 금화가 많이 들어와서 이것저것 바꿔봤어요. 어때요? 괜찮나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마도구 하나를 들어 올리는 레이나.
뭔가 싶어 봤더니 가게에 처음 찾아왔을 때 붙잡고 있던 은색의 오브였다.
마법의 연산 없이 스크롤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저장 장치.
자세히 보니 5서클의 링크 로드가 저장되어 있다.
“링크 로드를 넣었군.”
“네. 돈을 워낙 많이 받아서 뭘 해야 할까 싶었는데 이걸 쓰면…”
부웅─ 소리와 함께 은색의 오브가 푸른빛으로 변화하며 가게 전체를 덮었다.
티딕, 티딕. 마도구들을 탐색하다 하나의 물건을 찾자 마법의 사용을 멈추었다.
그녀는 작은 태엽시계가 들어간 나무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죠? 찾으러 오신 게.”
“맞다.”
“후후, 이 오브도 드릴게요. 이건 덤이에요.”
“오브는 제법 비쌀 텐데?”
오브는 소모성인 스크롤과 달리 마력만 충분하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뛰어난 오브는 대륙의 내로라하는 장인이 제작한 명검과 맞먹을 정도.
5서클의 마법이 들어갈 정도면 내가 준 돈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많을 거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에요.”
‘이만한 마법사와 연을 맺는 것에 비하면.’
레이나는 흐흐 웃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대충 금화 주머니 몇 개를 더 던져주고 가게를 나왔다.
***
유적.
설정상 고대의 문명, 혹은 숨겨진 강자나 고대의 종족의 유산이 묻힌 보물 상자 같은 곳.
나 역시 시즌 1 때 무수히 많은 유적을 돌아다녔고 나름 짭짤한 이득을 많이 취했었다.
‘시즌 2는 그다지 돌아다니지 않았지. 그때는 메인 퀘스트가 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 메인 퀘스트가 끝날 때쯤에는 초월과 하페와의 계획으로 인해 유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곳이 되었다.
컹! 컹!
유적은 보물 상자지만 보물 상자에는 항상 함정이 뒤따르는 법.
컹! 컹! 컹!
“시끄럽군.”
눈앞의 개들처럼 말이다.
짙은 회색빛의 갈기를 가진 늑대 무리는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것에 화가 났는지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휘저었다.
3서클, 플레어(Flare).
파짓. 하고 터져나간 불의 씨앗은 단숨에 그 크기를 키웠고 어둡고 기다란 통로는 어느새 붉은 불빛에 의해 점령당했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남은 건 재만 남은 늑대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으로 흩어졌다.
“확실히 전과 다르네.”
하페와 함께 들어갔던 유적은 이런 경비병도 없었다.
그저 다 털려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
고작 입구임에도 느껴지는 거대한 힘의 여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몸속의 담긴 최강자의 힘이 저 안에 힘과 공명하고 있다.
「▼▼─ 」
걸어갈수록 기다란 통로는 점점 넓어지고 마력이 담긴 공기의 순환도 많아진다.
길은 수십 갈래로 나누어져 자칫하면 유적 미아가 될 수도 있었지만 10서클의 마법사인 나에게 길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다가갔을까.
「▼─ 」
“드래곤?”
“...크르르.”
거대한 문 앞에 웅크려있던 레드 드래곤은 용안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그대로 브레스를 날렸다.
아까 내가 썼던 플레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화염이 나를 덮쳤고 이제는 조금 밝아진 넓은 공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드래곤은 인간이 당연히 죽었겠거니 하고 다시 몸을 웅크리지만 아쉽게도 나는 죽지 않았다.
“...!”
얼음으로 이루어진 방패는 브레스의 칩입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브레스는 얼음 결정의 가운데, 빙정의 한구석에 모여 그대로 방출된다.
7서클, 리플렉스(Reflex).
브레스보다도 강렬한 붉은 선은 정확히 드래곤의 심장을 꿰뚫었고 드래곤은 바닥을 기었다.
“평소였다면 다윤이나 채림이한테 줬을 텐데.”
나야 이 정도는 티도 안 나지만 드래곤 하트는 중요한 영약이기도 하니까.
끼기긱…
거대한 문이 열리고 나는 드래곤의 사체를 뒤로 한체 문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딱히 특별하다고 느껴진 건 없었다.
레전드리 급으로 보이는 무기와 방어구, 악세사리들이 즐비하고 금화도 제법 쌓여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장비들.
유적의 가운데에는 인간 모형의 목재에 익숙한 장비들이 착용되어 있다.
“최강자.”
최강자의 기술을 쓸 당시 보았던 최강자의 장비들.
목재인형의 손에는 최강자가 사용하던 푸른 검이 보였다.
‘레전드리 3성급. 역시 그다지 좋진 않아.’
내가 기대했던 최강의 힘이 깃들은 검이나 초월의 힘으로 압축된 별의 무기 같은 건 있지 않았다.
“남은 건 이거 하나인가.”
최강자의 시작, 검술 강기.
나는 목재인형 앞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고.
[...당신은. 최강자.]
[아니, 최강자가 아니다. 최강자의 후예. 후손?]
[알 수 없음. 판단 불가. 외부의 존재. 변칙자.]
[위험 요소 확인. 이레귤러.]
「▼▼▼최강 」
[제거한다.]
세상은 반전했다.
***
세상이 반전한다.
누구나 이 상황에 처한다면 그 표현을 쓸 것이다.
세상은 휙휙 돌아가며 회전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목이 잘렸다.’
나는 기가 차 나올 리 없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아무리 몸이 약한 마법사라고 한들 이 육체는 초월의 힘으로 빚은 고도의 육체다.
드래곤의 비늘보다 두껍고 이름난 신의 권능과도 필적한다.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에서는 초월적인 창조신과도 맞먹는 육체.
‘최강자.’
그런 육체가 두부 잘리듯 잘려나갔다.
‘진짜 괴물이네.’
나의 목을 벤 건 방금 전까지 가만히 있던 목재인형.
푸르른 검은 나의 목을 자르고 이윽고 내 육신을 완전히 분쇄한다.
푸화아아아악!!
나의 육신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수천, 수만 갈래로 쪼개진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검을 휘두른 목재 인형은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그때.
「▲성신 」 「▲신성 」 「▲정령왕 」
세 가지의 빛으로 만들어진 검은 육신을 잃어버린 영혼의 손이 깃들고 목재인형의 팔 하나를 잘라낸다.
[...!]
“어딜 이 자식이.”
나는 그 기세를 몰아 검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켰다.
육신을 잃어버린 영혼은 귀신과도 같은 불안정한 존재.
하지만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 초월자에게는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영혼이야말로 초월자의 주체이니.’
초월의 힘은 영혼의 활성화를 돕고 자신이라는 존재를 명확히 규정한다.
[...]
목재인형의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고 자세를 잡는다.
‘일격(一?).’
목재인형은 최강자의 기술을 쓸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회전하던 빛의 검을 휘두른다.
목재인형 역시 마찬가지.
이윽고 나의 일격과 인형의 일격이 충돌했다.
“...!”
아주 밝은 빛 뒤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고 했던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터져나간 충격의 여파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파편과 힘, 마나를 넘어 소리와 공간까지도.
일순 정적이 흐르고 뒤이어 나와 인형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간다.
콰가가가가!!!
그제서야 들리는 소음.
유적이 흔들리고 근처에 있던 수많은 장비들과 재화들이 재로 변한다.
인형은 튕겨나다 말고 순식간에 몸을 이동시켜 내 뒤를 잡았다.
그러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나는 「저장」에 있던 초월의 힘을 폭파시킨다.
가뜩이나 망가져 있던 유적에 쩍쩍 금이 가하고 인형의 목재가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될걸.”
나는 영혼 상태의 눈으로 인형을 관조했다.
전처럼 수복을 진행하지만 초월의 힘에 의해 수복이 지연되고 있다.
인형은 수복을 더 진행하다 이대론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검을 내지른다.
이번에는 이격.
세계를 ‘절단’하는 규격을 베는 기술.
다른 기술은 몰라도 이격은 맞으면 위험하다.
‘영혼이 베이면 회복이 안될 수도 있다.’
도서관 속이기에 큰 피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런 ‘규격’을 베는 최강자의 힘을 가진 인형.
최악의 경우 소멸할 가능성도 염두 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한테 뭘 써?”
이미 수천, 수만 번은 써본 이격이다.
일격은 힘겨루기를 위해 정면에서 대응해 주었지만 작정하고 피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검을 쥐고 있는 방향, 검을 휘두를 때 들어가는 힘의 크기를 통해 어디로 공격이 향할지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니까.
두 개의 선이 내 몸을 가르기 직전. 나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
최강자의 유적인 만큼 이 공간은 저 인형의 손바닥 안이지만 나는 특이점을 가진 이레귤러.
특이점을 이용해 이 불합리한 공간을 뒤틀어버렸고 어느새 내 검은 목재인형의 동력 부분을 꿰뚫고 있었다.
목재 인형은 검을 떨군다.
[당. 신은. 최강자. 아니. 다.]
“맞아. 나는 최강자가 아니지.”
[누군가. 의해. 만들어진. 하지만. 완전. 하진 않다.]
“...뭐?”
[새로운. 하지만. 알 수. 없다. 익숙함.]
목재 인형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나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목재 인형을 붙잡았고 무언가를 깨달은 목재 인형은 들릴 리 없는 웃음소리가 흘린 것 같앗다.
[그런. 가. 어째서. 그럴 리 없는.]
“뭔 소리를…”
[불가능. 불가…]
투욱.
“...뭐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