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0화 〉 25. 진심 (7) (280/318)

〈 280화 〉 25. 진심 (7)

* * *

***

“...이런 건 또 오랜만인데.”

영혼 상태의 나는 축 늘어진 목재 인형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의문과 힘.

하페와의 접촉 이후 어지간한 것은 전부 하페를 통해 알게 되었고, 단순히 게임을 넘어 차원 세계와 초월자에 대한 정보 역시 많이 습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지에 잠겨있던 건 최강자에 대한 정보.

것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정보를 제외한다면 그 정도 인물이 실존하는 게 가능한가.라는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최─ 」

느껴진다.

영혼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최강자의 힘이 뚜렷이 보인다.

본래의 육체로 돌아간다면 더 확실시하게 되겠지.

쿠구궁…

유적이 무너진다.

나는 목재 인형의 무구들을 대충 챙긴 뒤 유적을 빠져나왔다.

***

3개월.

내가 2주간 기절하고 수련을 거듭한지 3개월 만에 마왕군의 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몬스터는 물론이고 하급, 중급 마족은 소규모의 마을을 습격했으며, 상급 마족과 악마들은 도시를 습격했다.

그들은 영악하게도 신전이나 마탑같은 주요 군사력이 있는 곳이 아닌 약한 곳만을 습격했고, 그 피해는 지난 수백 년간의 평화의 시대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나와 하페의 마을이 걱정되긴 했으나 다행히 우리 마을은 후작령의 도시와 밀접해 있어 습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야. 영역이 점차 넖어지면 마을까지 습격당하겠지.”

여태껏 서로의 눈치만 보며 쉬쉬하던 인간 세력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곧장 인간 연합군을 소집했고 데브론 후작령의 주요 세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와 하페는 급히 황실로 이동했다.

하페는 평소라면 드레스처럼 하늘하늘한 옷을 입었겠지만 전시라는 점을 감안해 얇은 로브 형식의 옷을 입었다.

하페는 마법의 종주인 별빛의 신의 사도.

갑옷보다는 로브가 더 전투에 효율적이다.

“어서 오십시오. 별빛의 성녀님, 검신의 사도님.”

“네.”

“네.”

황실의 기사는 나와 하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황실의 기사는 나름 위치가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지만 신의 힘을 받은 사도들 보다 높지는 않다.

‘그것도 누구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데브론 후작가는 아론디 왕국의 산하 가문이다.

아론디 왕국은 유서 깊은 왕국으로 수십 개의 가문이 있지만 그중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가문은 두 가문 정도밖에 없다.

신전이 넷이나 있는 데브론 후작가.

아론디 왕국의 핏줄이 다스리는 하츠브루 공작가.

하츠브루 공작가에는 녹색 마탑이 있다.

데브론 후작가는 핏줄도 없고 가문의 위치 낮지만 신전이 무려 넷이나 있다는 것에 많은 입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는 완전 박살 났지만.”

“응? 뭐가?”

“아냐.”

아무튼 아론디 왕국은 세계를 통틀어 나름의 전력과 힘이 보유한 왕국이니 앞으로의 마왕전에서 발언권과 위치를 확보할 확률이 높았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황실의 복도를 걸으니 어느새 중요 인물이 모인 어전에 도착했다.

세로로 펼쳐진 기다란 탁자의 맨 앞에는 가문의 가주들이나 기사단장이 앉아있었고 뒤로 갈수록 제법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녹색 마탑의 마탑주.

하츠브루 공작령의 가주.

데브론 후작가의 가주.

황실의 기사단장.

마지막으로 눈치를 살피는 자애, 달빛의 성녀와 여전히 무표정한 예언의 성녀까지.

가운데 왕좌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갖던 순간 누군가 사람을 이끌고 들어와 왕좌에 앉았다.

황제… 라기에는 조금 젊은 인물.

검회색의 머리와 회색빛의 눈을 가진 그는 고풍스러운 옷을 두르고 있었다.

­제 옆에 앉으세요. 사도.

전음.

전음의 끝에는 은은한 미소를 짓는 예언의 성녀가 있었다.

나와 하페는 비어 있는 두 자리에 앉았다.

워낙 분위기가 엄중하던 터라 하페는 평소처럼 말을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휙휙 돌아보며 멀뚱히 앉아있었다.

­그동안 어디 갔던 겁니까.

­할 일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보는 일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니까요.

­...왜 그러신겁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이따 따로 대화를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나는 전음을 끝내고 고개를 돌렸다.

이 미친 성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다.

“다들 모인 것 같군.”

그때 위쪽에서 들린 젊은 목소리.

황제다.

젋은 황제.

‘...?!’

살기가 깃든 시선에 앞을 보니 하츠브루가의 가주가 황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나 예언의 성녀, 기사 단장등은 알만한 노골적인 살기였으나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

심지어 그것을 받는 황제도.

“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아 내가 대리로 참석하였다. 이 인류의 중대사가 걸린 사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

‘아들인가 봐.’

‘...응.’

하페는 소곤소곤 내게 말했지만 그 정도로는 숨길 수 없다.

봐봐 저, 다들 우리한테 눈치 주고 있잖아.

“마왕군이 준동하고 있다. 이미 여러 가문은 습격을 받았겠지. 이대로 좌시하다가는 마왕이 온전히 깨어나 왕국에게까지 그 마수를 끼치겠지.”

“맞습니다. 당장이라도 마왕성으로 군사를 이끌어야 합니다!”

벌떡 일어나 외치는 후작? 자작?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황제 대리가 별말 안하는 걸 보니 같은 편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보다 예언의 성녀.”

“예. 폐하.”

“그날 이후로 다른 예언이 들어온 것은 없는가? 그대의 말에 따르면 이제 마왕 부활까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을 텐데.”

마왕 부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말이지만 정말로 부활한다면 소름이 끼치기도 전에 죽을 확률이 높을 거다.

예언의 성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신께서 행한 예언은 없습니다. 부활은 최소가 2개월이라는 것뿐. 얼마든지 길어질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마왕군의 습격입니다.”

드르륵.

예언의 성녀가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황제를 향해 능력 사용의 허가를 요청했다.

황제 대리가 손을 까닥이자 예언의 성녀가 하얀 마력을 운용했다.

“마왕군의 습격은 세상에 마기(??)를 들끓게 합니다. 마기는 여신의 신성과는 상반된 사악한 기운.”

하얀 마력은 고고히 유영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음울하고 사악한 기운에 서서히 잡아먹힌다.

그렇게 잡아먹힌 마기는 점점 그 크기를 키우고 하나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마왕.”

타악.

“마왕군의 습격은 마왕 부활을 앞당깁니다. 마왕군이 세상을 어지럽힐수록 마왕의 힘이 점점 회복되는 것이지요.”

“그,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날뛰는 마왕군을 죽여야 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마기를 들끓게 한다면 그 원인을 죽여 버리면…”

여러 가문의 가주들이 토론하듯이 말을 나눴지만 예언의 성녀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황제가 왕좌의 손잡이를 타악 치자 그제야 어전이 조용해졌다.

“...앞서 말했듯이 마왕군의 습격은 마기를 들끓게 합니다. 그리고 과한 충돌은 그 수를 더 늘리지요.”

“그렇다면…”

“마왕군을 잡기 위해 많은 군사를 동원한다면 그 피와 격돌이 마기를 증폭시키고 결과적으로 마왕 부활은 앞당겨지게 될 것입니다.”

마왕군의 목적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

마왕군을 잡기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면 그 피가 더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 뿐이다.

인간의 희생만이 아닌 마족의 피해도 마기를 들끓게 하니까.

“그렇다면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민간인들이 이대로 당하는 것을 두고 보고?”

하츠브루가의 가주는 예언의 성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황제 대리와 비슷한 머리색과 눈을 가지고 있어 황제 대리와 매우 흡사했다.

성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결과가 두려워 행동을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죠. 어차피 다가올 결과라면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하얀 마력은 하나의 지도를 그려낸다.

수많은 왕국과 바다, 지대가 드러난 지도를 드러나고 그 끝에는 비슐 왕국과 맞닿은 마왕성이 보인다.

“마왕성을 치기 위해서는 비슐 왕국을 통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슐 왕국은 일이 터졌음에도 여전히 문을 열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비슐은 마왕군의 습격이 본격화되었음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유야 제브니아 왕국과의 전쟁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왕군의 습격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왕군은 비슐이 인간들과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일부로 그들을 놔두고 있으니까.

“열지 않겠다면 강제로 열어줘야지.”

황제 대리가 일어선다.

옆에 있던 기사가 검을 건네주자 황제 대리는 검을 집어 들고 그대로 뻗는다.

뭘 하나 싶던 내 눈이 부릅떠진다.

회색빛의 거대한 기운이 검을 가득 채웠다.

검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힘.

검강(??).

“짐이 직접 비슐의 목을 베겠다.”

소드 마스터.

세계를 통틀어 열이 채 넘지 않는 존재.

그것도 서른이 넘지 않는 나이에 그만한 경지에 오른 것에 어전의 수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그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입지를 견고히 다졌다.

“...까득.”

하츠브루의 가주는 이를 악물었고 황제의 후계자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어넘겼다.

‘살벌하다. 그치.’

‘하페 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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