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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2화 〉 26. 인류의 적 (1) (282/318)

〈 282화 〉 26. 인류의 적 (1)

* * *

***

인간 연합군은 출정을 시작했다.

참가 왕국만 일곱.

여러 부족과 소수 민족을 포함한다면 그 수가 수십이 넘었고 은둔 고수를 비롯해 수많은 신전과 마탑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측정된 전력만 해도 인류의 8할에 가까운 수준.

인류 최대의 연합군이 탄생한 셈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합니다.”

미라크 왕국 해안 근처.

군사를 넷으로 나눈 인간 군의 전력 중 하나인 통칭 ‘바다’는 이름난 기사와 전략관들, 뛰어난 마법사들이 모인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넷의 기준은 ‘예언’의 성녀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전쟁에서 일어날 모든 변수를 감지해낼 인류 최대의 대비책.

또 다른 예언의 성녀, 오른 아토브는 백색의 묶은 머리를 찰랑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인류의 연합군이 창설된 만큼 곳곳에서 전투가 속속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의 마기는 급격히 치솟고 있으며 머지않아 마왕의 모든 힘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인 것 아니겠소 성녀. 이봐, 바다는 완벽히 준비된 건가?”

연합군의 기사단장 중 하나가 미라크의 해군장에게 묻자, 검푸른 제복을 입은 남자는 막대기로 탁자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바다는 우리의 영역이고 모든 해로는 우리가 장악하고 있소. 그쪽 마법사들이 풍향만 조절해 준다면 이틀 안에 마왕성에 도달하겠지.”

확실히 바다는 무역 왕국 미라크의 영역이다.

항해를 도와줄 여러 중요 인력들이 포함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

적색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손을 들었다.

제복이나 전시라는 것을 나타내듯 무게감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과 달리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인.

그러나 비춰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지 그 기세는 이곳에서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대는…”

“헌신의 성녀 아프로 테이라다. 바다에도 신전과 신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건가?”

헌신의 성녀의 말에 주위가 급격히 싸해졌다.

정확히는 바다와 밀접한 왕국들에게만.

“무엇입니까. 바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왕은 세계의 적일 터인데.”

“맞습니다! 바다의 성녀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그 어떠한 손실도 없이 진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크흠…”

바다 쪽 사람들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본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미라크의 해군장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바다는 도움을 받을 수 없소. 오래전부터 그쪽과 연락이 끊어졌으니.”

“연락이 되지 않는 건가 해군장?”

“그렇소. 이미 백 년도 더 된일이라 연락을 할 수단 자체가 없소이다. 아마 어찌어찌 연락이 닿는다 한들 설득할 시간도 부족할 것이오.”

“설득이라. 그 말은 이런 중대사를 고민할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단 소리인가.”

“잘못이라니!”

바다 쪽 사람들이 벌떡 일어난다.

그러나 앳된 외모와 다르게 이백년 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헌신의 성녀의 분위기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자리에 앉는다.

성녀는 예언의 성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른. 바다의 미래는 어떠한가.”

“조용합니다.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아직까지는.”

탁자를 톡톡 치며 뭔가를 고민하는듯한 헌신의 성녀는 자리를 벌떡 일어난다.

이에 신전 쪽 사람들이 그녀를 붙잡았지만 그 누구도 헌신의 성녀를 막지 못했다.

“바다 쪽은 답이 없구나. 나와 헌신의 신전은 ‘암흑산’쪽으로 가보겠다. 그대들은 바다를 공략해라.”

“암흑산이라니!”

전략관들이 기겁한다.

암흑산이 어떤 곳인가.

마왕이 오래전 여신과의 전투 중에 세운 높은 고도의 불길한 산이지 않는가.

수많은 마수들이 들끓고 입구 쪽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온몸이 갉아 먹히는 것 같은 끔찍한 곳.

때문에 인류의 연합군은 일부로 가장 쓸모가 없는 예언의 성녀와 소수민족만을 그곳에 투입시켰다.

그런데 이곳의 중요 전력인 헌신의 성녀가 그곳으로 빠진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이 빠지면 이곳의 전력이 줄어듭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암흑산에서 전투가 많이 일어나면 마기 역시…”

회의실 안에 사람들이 마구 소리쳤으나 헌신의 성녀는 싸늘한 눈빛만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아둔한 것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멋대로 재단하는구나.”

“그대들은 모른다. 저 너머의 무엇이 있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해라.

헌신의 신전은 그렇게 암흑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바다 쪽 인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출정을 시작했다.

***

“헌신의 신전이 암흑산…”

“뭔데 뭔데?”

‘육지’쪽의 연합군인 나는 ‘소식이요~ 소식’ 하며 날라오는 신문을 붙잡아 읽었다.

이 신문은 전령의 신전에서 배포하는 신문으로 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기에 정확한 정보만을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정말 정확한지는 신전만이 알겠지만.’

나는 하페를 돌아보며 신문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흑백의 바다 그림과 깔끔한 단발을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성녀의 얼굴.

“바다 쪽으로 진출할 예정이었던 헌신의 신전이 암흑산쪽으로 진로를 틀었데. 그래서 바다 쪽 전력이 줄어들었다나봐.”

“굳이 암흑산을?”

하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마왕성을 가로막고 있는 양옆의 암흑산과 여전히 문을 열지 않는 비슐.

그리고 뒤쪽은 광활한 바다다.

사실상 가장 진출하기 쉬운 쪽은 바다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바다 쪽에는 ‘적’이 없으니까.

“...적?”

“왜?”

“아냐. 아니겠지.”

설마 바다 쪽에도 적이 있을까.

물론 당연히 바다 쪽에도 수중 마수나 간부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 감은 왠지 그것만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든다.

뭔가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무언가가…

“기사단장님.”

“아, 부단장님.”

나는 얼마 전 검강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대륙에서 열이 넘지 않는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당연히 내 이름과 위상은 급격히 솟아올랐고 은빛 기사단의 기사단장도 이길 정도의 강자가 되었다.

나를 가르친 부단장은 허허 웃으며 몸을 숙였다.

“부단장님이라뇨. 이제 어엿한 데브론의 기사단장이십니다.”

“저에게는 수호기사라는 직위가 더 익숙합니다.”

“그러십니까?”

부단장은 자신이 키운. 아니, 키웠다고 하기는 뭐 하지만 가르친 제자가 이리도 발전한 모습이 대견한지 내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

아무리 수호기사에 성자라고 하지만 수호기사가 된지는 4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나이도 적기에 무시당할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부단장은 나의 힘과 위치를 사람들에게 직시시켜 주었고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에게서 제법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출정인가요?”

“네. 제브니아와의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전력으로 돕겠다 하더군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비슐.

그런 비슐과 전쟁 중인 왕국이 제브니아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건 단순히 출정 때문이 아니다.

‘제브니아 왕국에는 수호기사가 있다.’

호수의 성녀의 수호기사, 브아타.

나와 같은 대륙에 열이 넘지 않는 강기의 사용자.

과연 그는 얼마만큼의 강함을 가지고 있을까.

또 어떤 면모를 보여줄까.

나는 기대감을 안고 제브니아로 향했다.

***

제브니아는 호수를 중앙에 두고 있는 왕국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되어 있으며 호수 중앙에는 거대한 신전이 존재한다.

“그대가 새로운 수호기사 군.”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하늘빛의 머리는 짧게 하늘로 뾰족이 올라있었고 복장은 파도처럼 시원시원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뒤에 걸려있는 기다란 푸른빛의 창까지.

이 남자가 창신의 사도, 브아타다.

“네, 검신의 사도이자 별빛의 성녀의 수호기사 김윤입니다.”

“그래, 예를 갖출 필요 없다. 그대가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니까.”

그는 손을 저으며 창을 집어놓고 자리에 앉았고 나 역시 편하게 자리에 마주 앉았다.

참고로 우리의 옆에는 각각의 지켜야 할 성녀가 있었는데 수호의 성녀는 수호기사와 다르게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뭔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모습.

“얘기는 들었나?”

“들었죠. 근데 그게 가능한 겁니까?”

“불가능하진 않지.”

녹색 마탑과 적색마탑의 마법사들의 힘을 통해 단숨에 비슐을 뭉개 버린다는 전략.

비슐은 검이나 창 같은 무기를 다루는 전력이 많지만 마법사들은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인력이 없다.

육지 쪽의 계획은 메태오와 어스퀘이크를 이용해 땅과 하늘. 전체를 박살 낼 생각이다.

그런 뒤 다 뭉개진 비슐의 땅에 전력 투입.

단숨에 비슐을 정리한다.

“마법은 뛰어나다. 나는 창신님의 사도지만 고도로 발전된 마법은 인정하고 있지. 그대도 같은 성녀를 두고 있어 잘 알지 않나?”

“그렇긴 하죠.”

하페는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별빛의 신의 사도니까.

“사실상 비슐은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비슐 이외의 전력이지.”

“...악마.”

“그래 악마.”

악마들이 비슐에게 도움을 줄 확률이 제법 높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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