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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4화 〉 26. 인류의 적 (3) (284/318)

〈 284화 〉 26. 인류의 적 (3)

* * *

***

시야와 관련된 능력을 가진 모두가 성문을 집중했다.

백색의 기다란 장발과 붉은 눈.

인형처럼 자수가 박힌 옷과 귀공녀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7~8살 정도의 아주 어린 소녀.

품 안에는 바늘로 꿰매진 작은 곰인형이 들려있다.

‘...저건.’

문이 열렸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비슐을 공략할 수도 있는 일.

허나 누구 하나 발을 떼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소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뒤 편에서 확성 마법이 걸린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악마입니다. 지금 당장 저 소녀를 죽이세요.”

이곳의 유일한 예언의 성녀, 에린 론브디아의 목소리.

“...!”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수준 이상의 강자들이 각각 기술을 준비한다.

불과 번개, 검기와 파동.

무수히 많은 능력들이 어린 소녀에게로 쏘아졌다.

어린 소녀를 공격한다는 것이 죄책감이 들했으나 상대는 악마라지 않은가.

모습을 바꾸는 것 정도야 악마에겐 일도 아니다.

“...헤.”

콰가가가강!

한차례 폭발이 일어난 비슐의 성 앞.

워낙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비슐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으나, 여전히 공격의 여파가 성에 닿지 못했다.

“이럴수가…”

“저 소녀는 괴물인가.”

더 놀라운 점은 소녀 역시 모든 공격을 받고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전장의 모두가 싸해지고 소녀는 히죽 웃는다.

“아냐. 분명 상처를 입었어.”

하페의 별빛으로 물든 눈이 소녀를 노려보았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던 그녀는 한쪽 눈을 부비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다만 티가 안 날 뿐이야.”

“티가 안 난다면 어딜 상처 입은 건데?”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상처를 입었어. 뭔가 근본적인 어딘가가─”

[나빠.]

전장에 울려 퍼진 작은 목소리.

허나 그 목소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전장의 전체를 압도했다.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소녀에게 공격을 더 퍼붙지만 의미가 없었다.

[나쁜 거. 돌려줄게.]

소녀의 작은 손끝이 둥글게 회전하며 이윽고 붉은색의 작은 원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수만 배는 커진 거대한 원. 아니, 마법진.

거대해진 마법진은 그대로 붉은색의 무언가를 토해냈다.

“이, 인페르노 메테오?!”

“말도 안 된다! 저게 어떻게!”

인간군의 하늘에서 떨어지는 용암의 운석.

마법사들을 속히 방어진을 구사해 운석의 충돌을 대비한다.

비록 8서클의 대 마법이라 한들 이쪽도 대마법사가 둘에 부족한 마력을 채워줄 마법사들이 제법 있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막을 수 있으리라.

[하나 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가가가가!!

대지가 뒤틀리고 방금 전 두 발을 안착하고 있었다는 것이 거짓인 듯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진다.

어스퀘이크.

인간군이 실행했다 사라진 두 개의 마법이 저 소녀에 의해 다시 한번 발현되고 있다.

‘단 한 명. 아니, 악마로 인해.’

“윤아!”

“하페! 꽉 잡아!”

땅이 무너지고 방어진을 구사하던 마법사들이 중심을 못 잡자 방어진 역시 흐려진다.

쿠르르륵─!

그 사이 군데군데 뚫린 방어진을 뚫고 들어오는 용암의 운석.

수준 이상의 강자들은 마력이나 기공을 둘러 몸을 보호할 수 있지만 일반 병사들은 아니었다.

“끄아아아!”

“뜨거워!!!”

이대로 가다간 전멸도 우수운 상황.

하페를 챙기고 마력을 원형처럼 두른 나는 큼지막한 운석들을 파괴해 가며 소녀를 응시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녀는 하품만 내쉬며 곰인형을 안고 있을 뿐이었다.

‘마법사들의 절반 이상이 마력 탈진에 걸렸어. 이대로 가다간…’

파아앗!

그때, 백색의 오오라가 전장의 모두를 감싼다.

“백색…?”

“다들 전진하세요. 이대로 있다간 모두가 죽습니다.”

시전자는 예언의 성녀.

그녀를 중심으로 전쟁에 참여한 성녀와 성자가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전장의 대다수는 더 이상 불에 타거나 깔려죽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무한하지 많은 않을 터.

“윤아!”

“그래, 가자.”

빠르게 악마의 본체를 쳐야 한다.

하페의 별빛이 나와 하페에게 스며들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한가닥 하는 기사단장이나 마법사들도 앞서 나가는 상황.

저길 보니 창신의 사도, 브아타도 보인다.

[강한 인간.]

소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가 깃들고 다시 한번 손가락을 둥글게 긋는다.

“저 주문을 막아라! 사악한 사술이다!”

“막아!”

이제는 코앞까지 접근한 하나의 기사단장과 마법사.

기사단장은 푸른색의 마력을 두르며, 마법사는 녹색의 마나를 사용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푸른 검기가 소녀의 심장을 꿰뚫고 녹색의 나무줄기는 소녀의 발과 팔을 쥐어틀어 박살 냈다.

연결이 끊기듯 쓰러지는 소녀.

“...?”

“뭐야. 본신은 엄청 약하잖아?”

생각보다 쉽게 죽은 탓에 허무하게 소녀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두 사람.

모두가 의문을 가진 그때. 하페는 기겁하듯 외쳤다.

“당장 벗어나! 함정이야!”

“뭐─”

콰득!

콰득!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몸의 절반이 날아간 두 명.

어느새 나타난 소녀보다 수십 배는 큰 지옥불의 늑대가 두 명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

콰득.콰득.콰득…

[아쉽다. 다 먹을 수 있었는데.]

소녀의 시체가 사라지고 뒤에서 나타난 소녀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으아아아!!”

“진정해! 협공을…”

콰득!

[하나 더?]

“...멍청한 놈.”

창신의 사도 브아타는 흥분해서 달려든 남자를 보고 인상을 썼다.

저 악마는 적어도 마왕의 최측근이다.

그것도 수준이 높은 간부.

‘그것도 아니라면 대마법을 역으로 돌려주거나 저만한 괴수를 소환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브아타는 주변을 살폈다.

마탑주들은 마법을 막느라 정신이 없고 아론디의 왕을 비롯한 힘을 가진 권력자는 비슐이 무너진 후 합류하기로 했다.

‘비슐 따위는 별거 없다고 생각했겠지. 망할, 그런데 간부 악마가 나오다니.’

악마의 도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허나 그렇다고 저 정도로 강한 간부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드 마스터급의 강자가 둘. 나머지는 열은 기사단장과 상급 마법사. 성녀와 성자는 사상자를 억제하고 있는 중이고…’

빠르게 계산을 내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원으로 간부를 잡기는 꽤나 어려웠다.

어찌어찌 잡더라도 절반 이상의 사상자는 반드시 나올 거다.

‘...지금 그걸 써야 하나?’

창신의 오래된 비기.

신과의 연결성을 높여 한순간 신의 기술을 모방하는 능력.

다만 그 기술을 쓰기 위해서는 마력 이상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단순히 돈과 재산 같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 기억이나 수명.

어쩌면…

“브아타님.”

“...무슨 일 인가.”

“제가 녀석을 잡겠습니다. 시간을 좀 끌어주세요.”

“뭐?”

브아타는 김윤을 돌아보았다.

그는 김윤에게 한마디 쏘아붙일 예정이었다.

비록 소드 마스터가 되었지만 상대는 마왕의 간부.

쉽사리 볼 상대가 아니며 이제 막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이길 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그리 말할 생각이었지만.

“......맡겨주십시오.”

단결한 김윤의 눈빛의 조금의 파문이 일었다.

‘정말로 가능하다는 건가?’

단순한 믿음이나 오만이 아닌 확신에 가까운 눈빛.

주위 사람들을 보니 이미 김윤의 설득에 응한듯 하다.

결국 브아타는 한숨을 내쉬곤 창을 돌려 잡았다.

“얼마나 필요하지.”

“3분이면 충분합니다.”

“요구가 많군.”

저런 괴물을 상대로 3분이라니.

“내가 죽으면 호수의 성녀를 봐줄 수 있겠나?”

“거절합니다.”

“거절은…”

꾸욱…

“받지 않는다!!!”

콰아앙! 소리와 함께 쏘아진 창이 다시 한번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다 얘기했어?]

김윤이 모두를 설득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악마.

악마 소녀는 늑대와 악의 마법을 사용해 이들을 유린한다.

푸른 창이 한순간 여러 개로 분리되어 늑대의 피를 흩뿌리고 마법과 검기가 늑대의 발목을 끊는다.

그사이 소녀는 마법을 한두 개씩 보내지만 상대 마법사에 의해 막혀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소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소녀는 검기가 담긴 검을 피하며 작게 외친다.

[오르고.]

콰직!!!

하늘에서 거대한 발이 내려와 기사단장 하나를 내려찍었다.

방어할 틈도 없이 한 줌의 핏덩이로 변한 시체.

외눈을 가진 붉은 거인이 몽둥이를 휘두르자 마력을 두른 기사들이 바람 앞의 갈대처럼 사방팔방으로 튕겨나간다.

콰득!

유일하게 튕겨나가지 않은 창신의 사도, 브아타.

창을 바닥에 꽂아 충격파를 막아낸 그는 더더욱 창을 빠르게 휘둘러 늑대의 목을 베어낸다.

[...너!]

잔뜩 화가 난 소녀는 거인을 시켜 브아타를 공격했다.

푸르른 창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거인의 공격을 모두 쳐내고 외눈을 찔렀다.

끼아아아아… 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거인.

브아타는 거인을 완전히 확인 사살하며 참아왔던 숨을 몰아쉰다.

‘이 정도라면 할만하다.’

비록 기사단장들이 날아가고 마법사들이 마력 탈진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지만 지원만 해준다면 충분─

[짜증나.]

콰르르륵…

끔찍한 검붉은 파도가 소녀를 향해 몰아치고 전장을 수습하던 모든 이들이 오싹함을 느꼈다.

기이한 무언가가 태동하듯 세상의 껍질을 깨고 나온다.

브아타는 급하게 소녀를 향해 창을 내질렀지만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

‘곰인형?’

[짜증 난다고 했어.]

창을 막은 것은 자신만 한 크기로 변한 검붉은 검을 든 곰인형.

그 기세는 지금껏 만난 그 어떠한 이보다도 더 강했다.

“무슨…”

[죽어.]

단추 모양의 붉은 눈이 번뜩이더니 브아타의 왼팔이 잘려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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