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8화 〉 26. 인류의 적 (7) (288/318)

〈 288화 〉 26. 인류의 적 (7)

* * *

***

[야! 너 미쳤어?]

[미치긴 뭘 미쳐.]

사도의 임명이 진행된 지 정확히 하루째.

예언은 새롭게 바다의 사도로 임명된 인간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힘을 그렇게 무지막 하게 주면 어떡해?! 힘은 극히 조금만 줘야지!]

보통의 신의 사도들은 힘의 파편.

파편의 파편 정도의 아주 작은 힘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힘은 사도들이 점차 수련과 고행을 통해 키워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힘을 한계 이상으로 내어준다면 급격한 격의 손실이 유발되기에.

바다는 조금 줄어든 육체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내 새끼들이 싸운다는데 어떻게 부스러기만 주냐. 적어도 덩어리는 줘야지.]

[그러다 격 잃고 이명도 잃어. 하늘 못 봤냐.]

영물들에게 힘을 나눠주다 격과 이명을 잃고 존재 자체가 흐려진 ‘하늘’.

인간과 달리 영물은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의 총량이 많았고, 하늘은 그 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걔는 아둔하게 영물들 챙겨주다 그런 거고. 영물들은 그런 거 없어도 잘 사는데 말이지.]

그 영물들은 거조나 신화의 용으로 남아 아직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어휴…]

예언은 고개를 저으며 바다의 사도를 보았다.

신비한 힘에 바다의 신을 향해 감사를 표하며 해적들을 소탕하는 모습.

그들은 해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마수들 역시 전보다 훨씬 쉽게 처치하고 있다.

확실히 그들은 강해졌다.

‘좀 과할 정도로.’

[왜, 내가 뭐 사라지는 미래라도 있냐?]

[......]

예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미래를 보는 최상위권의 신이지만 여신이나 마왕 같은 그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중대한 미래는 낮은 격의 존재에게 발설할 수 없었다.

‘설령 그 존재가 죽거나 죽음에 가까운 수준이 된다 하더라도.’

[있구나. 그치?]

[모른다.]

[흐음…]

바다는 고민했다.

사실 힘을 덜 주고 더 주고는 바다에게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바다는 여전히 강하며 자신의 힘의 5%를 때 준다고 해도 95%가 남아있으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이라면 삼 할 가량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예언이 말하는 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겠지.

‘절반, 어쩌면 그 이상.’

[...뭐, 적당히 할게.]

***

인간계의 수많은 신들의 사도가 탄생하고 예정대로 마왕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도들은 각자의 힘을 발휘하며 마수와 마족을 처치해 나갔고 여신 역시 마왕의 활동을 억제했다.

[힘을 더 달라고?]

“위대한 바다시여. 감히 당신의 땅을 노리는 악마가 있습니다.”

둘로 시작했던 사도는 어느새 일곱으로 늘었다.

사도가 많아진 만큼 그 힘 역시 줄어들어야 정상이지만 모두를 사랑했던 바다는 하나의 사도와 동등한 만큼의 힘을 내어주었다.

“감히 마왕의 간부라 칭하는 악마가 바다에 자리를 잡고 민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것을 토벌하고 싶사오나 그만한 힘이 부족합니다.”

[...]

바다는 사도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악마 간부는 강하고 고작 사도 둘 셋 정도로는 간부를 이길 수 없으니까.

‘둘 셋이라면 말이지.’

사도의 수는 총 일곱.

그중 다섯만 전투에 참여해도 악마 간부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인간관계와 정치적인 관계에 엮여있다.

지금 시대는 여신과 신이 활동하는 시대.

인간 전체가 모일 필요까지는 없는 시대로, 사도가 다 모인다 한들 셋 정도가 전부였다.

‘만일 내가 전부 나서라 하면 나서겠지.’

하지만 그들 역시 지켜야 하는 곳이 있고 자리가 비워진다면 수많은 피를 더 흘리겠지.

이러나저러나 피는 흘리게 되는 것이다.

[...주겠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대신.]

처억.

푸르른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3개의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도 셋을 더 늘려주겠다. 그들과 함께 간부를 처리해라.]

다른 곳에서 지원을 얻을 수 없으니 사도의 힘을 강하게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른 이들 역시 강하게 해주어야한다.

모두에게 힘을 줄 바에 새로운 이를 사도로 만드는 것이 바다에겐 더 이득이었다.

“예?!”

“저희에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

“아, 아닙니다! 이보게! 말조심하게!”

“그… 알겠습니다.”

사도 둘은 끄응 표정을 구기며 돌아섰다.

당연히 바다는 그 이유를 알았다.

‘자기들의 힘이 더 강해지면 했을 바람이겠지.’

사도가 늘어난다 한들 자신들은 강해지지 않고 입지만 줄어드니까.

[어렵구나 어려워…]

사랑으로 시작한 일인데, 모두를 신경 쓰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했다.

[창조신… 아니, 여신님 정도만 되었더라도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씁쓸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가라앉혔다.

이미 3할 이상 줄어든 몸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

마왕과 여신과의 전쟁이 끝이 났다.

여신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마왕을 봉인했고, 마왕은 수백 년이 넘는 기간을 잠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신들이 죽고, 생명체들이 죽고, 사도 역시 죽었다.

여신은 봉인을 완전히 하고 자신이 없어져도 혼란하지 않은 세상을 유지시키고자, 신의 인간계 간섭을 금했다.

수많은 신은 여신의 뜻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그녀의 뜻을 수긍해주었다.

여신은 마왕이라는 대적을 봉인한 구원자니까.

[...너.]

[왔구나… 예언.]

여전히 밝은 빛을 내뿜는 예언은 자신의 오래된 친우를 보았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본신(??).

[...하하, 너의 말을 듣는 것인데.]

그녀는 더 이상 바다의 이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조금의 힘과 격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일 뿐.

[지금이라도 사도들의 힘을 회수해라. 여신의 계약이 세상을 덮으면 다시 회수하기가 어려워진다.]

[......]

[그러고 마왕이 잠든 수백 년 동안 너 역시 잠에 들어라. 그런 뒤 힘을 회복해. 그런다면 옛날의 모습을.]

[안 할 거.]

찰팍.

[알고 있잖아? 지금 힘을 회수하면 아이들이 다 죽는 거.]

예언은 미래를 보는 최상위 신.

‘시간’의 존재를 경계한 마왕에 의해 시간 관련신이 대부분 몰살 당했지만 유일하게 예언만이 살아남았다.

여신과 마왕이 사라진 지금.

예언은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아, 혹시 내가 이 말 하는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건 좀 무섭네.

[...아니다. 나 역시 완벽하진 않아.]

[차기 주신(??)님.]

스윽.

작은 섬 크기의 무언가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나,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

***

[오랜만, 이… 나의… 친우…]

오른은 오랫동안 신전에 내려져 온 이야기를 떠올렸다.

예언의 신전의 성녀, 혹은 성자만이 알 수 있는 ‘예언’이 전한 이야기.

그중에는 사라진 ‘바다’의 신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바다는 인간계를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곳에 남았다. 그리고 삼백 년전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바다는 사라졌지만 바다의 신전과 사도는 남아있었다.

그들은 백 년 전을 끝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비록 몇 줄 안되는 짧은 문장의 내용이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인간을 너무 사랑한 신.

그녀를 찬양하며 그녀의 힘을 갈구한 인간들.

두 사이의 균열이 일어난 것은 힘의 균형이 깨진 순간이었다.

인간은 힘을 원하고, 신은 인간을 원한다.

갈수록 인간의 욕심은 계속되고, 신은 점점 태초의 위엄을 잃고 서서히 약해지자 지독하고 끔찍한 탐욕이 드러났다.

아니, 본래부터 그래왔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다만 그때는 그런 탐욕조차 귀여운 장난으로 여겼던 힘이 있었고.

“바다시여. 어찌 이리도…”

지금은 그런 힘을 전부 빼앗긴 지 오래였다.

푸르고 거대한 물로 된 여성 형상의 형체가 오른의 몸을 쓰다듬는다.

무언가를 갈구하는듯한 텅 빈 동공.

예언의 성녀의 빛이 번뜩일 때마다 바다였던 무언가는 거친 희열을 느꼈다.

오른은 자신의 힘이 깎여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고통을 감내했다.

그렇게 얼마나 어루만졌을까.

동전 뒤집듯 그녀의 분노가 공간을 흔들고 텅 빈 동공이 다시 불타오른다.

[버러지, 같은…!]

인간에 대한 분노.

배신.

더 이상 그녀가 아닌 ‘힘’ 그 자체가 된 바다에 폭풍과 해일이 몰아치고 수면 위에 있는 모든걸 집어삼킨다.

─끄아아악!!

─바다, 바다시여!!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를!

─마법사! 당장 배를…!

도망가던 열 척 남짓의 배들은 단숨에 가라앉고 타락한 바다의 생명체, 마수들이 인간들을 물어뜯는다.

바다의 영역안에 들어간 무수히 많은 이들의 말과 행동, 감정이 바다에게로 스며든다.

그때와 똑같은 일.

사랑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그토록 혐오하던 흑마법에 의해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던 힘까지 전부 빼앗긴 그날의 일을.

‘각인.’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간 최악의 날.

힘을 잃고 존재 자체가 뒤바뀐 순간.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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