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27. 가치있는 선택 (1)
* * *
***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진 마왕성은 평범한 공간이 아니다.
마왕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탑은 층과 층사이의 너비가 제각각이고 공간의 크기 또한 달랐다.
이번 층 역시 여태껏 올라온 층에 비해 공간의 크기가 매우 컸다.
“하하하핫!!”
콰아앙~!
콰과가강!!
“...신나보이네.”
“그러게.”
폭탄을 잔뜩 던지는 레이나.
그런 레이나 뒤에 있는 우리.
그녀는 층과 층을 연결하는 칠흑의 문을 타고 올라온 우리를 눈치채지 못한 체, 마수를 열심히 녹이고 있었다.
어찌나 신난지 다 죽었는데도 폭탄을 던지는 모습.
저 푸른 오브에서 폭탄이 계속 생성되는데 폭탄을 만든다기보다는 어디선가 가져오는 소환 마법일 확률이 높았다.
‘오브에는 별다른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엣.”
“아.”
“으잉.”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까지 다가가자 그제야 두 손에 폭탄을 들고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는 레이나.
어린아이가 집안에 장난을 치다 부모님께 들킨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게 물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레이나 님이시죠?”
“네, 네!”
그녀는 황급히 손에든 폭탄을 허리에 찬 뒤 클린 마법을 이용해 손을 완전히 정리한 후 하페의 내민 손을 붙잡았다.
“어… 방금 건 제가 심취를 해서.”
“이해해요. 그런 건 저도 보니 놀랍더라고요.”
하페는 일순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 놀랍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말했다.
“엄청 대단하시네요. 저런 마법을 쉼 없이 쓰시다니.”
“어… 엄밀히 따지면 마법은 아닌데, 그렇다고 마법이 완전히 아닌… 음…”
레이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끙끙 거리고 있자, 나는 손을 저었다.
“추궁하거나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대단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마도 공학이라는 새로운 기술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 회의장안에서 대충 들었습니다.”
“아! 마도 공학 아시는구나! 마도 공학은 마법의 신비한 능력과 공학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만든 특수한 기술입니다. 마법의 파괴력과 특수함을, 공학의 제어력과 구현율을 이용해서, 지금은 폭탄이 전부지만 조금만 더 연구가 진행된다면 더 실용성 있는 기술로…”
그녀는 자신의 기술이 정말 대단한지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다.
나와 하페는 힘이 궁금하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까지는 궁금하지 않았기에 대충 대답을 해가며 탑을 같이 올랐다.
마기가 퍼져나가고 다가오는 마수들을 베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마법은 보통 통제되지 않으면 위험한 경우가 많은데 이 마도 공학은 제어력이 뛰어나 평범한 이라도 별다른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아 잠깐 폭탄 좀. 됐다. 아무튼 구현율도 뛰어나 마법이 해내지 못했던 부분들을 대신 처리할 수도 있습…”
그녀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폭탄을 이리저리 던진다.
보면 설명하느라 대충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저게 유도 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기가 막히게 마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그들을 처리했다.
“......”
“그래서 최근에는 마탑주님의 도움으로 추가적인 개발도 이어나가고…”
어느새 층은 39층.
신명 나게 설명을 듣다 보니 벌써 모이기로 한 층의 바로 아래층까지 와버렸다.
나는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었다.
하페는 뭔가 생각하고 있던 표정을 멈추고 진지해졌다.
레이나 역시 설명을 멈추고 눈앞의 문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의 문들 보다 더욱더 짙은 어둠을 내뿜는 칠흑의 문.
나는 올라가기 전 레이나를 돌아봤다.
“레이나님.”
“네? 혹시 마도 공학에 설명이 더 필요─”
“그건 더 필요 없고요. 그 마탑주님에게 도움받았다는 게 남색 마탑주 입니까?”
노인이었던 다른 마탑주들과 달리 아주 젊은 마탑주.
대충 흘려듣긴 했지만 설명을 들어보자면 그녀의 마법을 도운 게 남색 마탑주일 확률이 높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분이 제 연구를 도와주셨죠.”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어떤 분이요?”
레이나는 아주 잠깐 움찔 거렸으나 미리 정해둔 답이라도 있는지 거침없이 대답했다.
“저의 기술을 가장 먼저 인정해 주시고 제 기술 역시 알고 계시는 분이세요. 물론 그분은 남색 마탑만의 마법을 쓰시지만 전쟁이 끝난다면 제 마도 공학 역시…”
“......”
어마어마한 살상력에 비해 너무나도 간편한 작동 방식.
그저 던지기만 해서 마왕성의 마수를 쓸어버리는 파괴력.
지금은 마수에게 향해있지만 방향만 바꾼다면 얼마든지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런 힘들은 소드 마스터들이나 마탑주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긴 하나…
‘누구나 쓸 수 있다.’
그것이 살짝 걸리는 부분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입하죠.”
“네.”
“응.”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와 하페가 앞에, 그 뒤로 레이나가 문을 통과한다.
스아아아…
우리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마기.
또다시 간질거리는 느낌이 내 몸을 건드리지만 조금 힘을 주니 전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페 역시 별빛을 두르며 마기를 떨쳐냈다.
그리고.
“레이나님?”
레이나가 사라졌다.
***
“형! 좀 천천히 가!”
“사냥할 놈들이 많은 데 무슨! 늦으면 네 몫은 없다!”
마왕의 탑, 41층.
쌍둥이 소드 마스터의 형인 로그는 청색의 검강을 흩뿌리며 마수를 양단했다.
40층을 지나 마수가 한층 더 강해졌지만 소드마스터의 검강은 막을 수 없다는 듯 그대로 잘려나가는 모습.
그 뒤를 이어 한숨을 내쉰 동생, 로데 역시 검강을 이용해 처리되지 않은 마수를 갈라냈다.
‘뭔가 이상한데.’
본래라면 40층에서 모든 인원이 모여 함께 탑을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40층 이후로부터는 가장 밀접해 있던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을 다른 층으로 날려버렸다.
30층에서부터 같이 올라오던 성녀 두 명이 40층에 돌입하자마자 사라졌다는 게 그 증거.
마왕을 잡지 않는 이상 한번 올라온 층은 다시 내려갈 수 없었고, 41층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워낙 크기가 넓은 건지 성녀들을 찾을 수 없었다.
‘죽진 않았을 거야. 40층까지는 특별히 위험한 마수가 없으니까.’
뭉칠 수 없게 만드는 마왕의 권능은 상당히 까다롭지만 마수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성녀들이 소드 마스터들보다 약하긴 하나 그래도 사도는 사도.
어지간한 마수는 그녀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기 어렵다.
그렇게 안심하며 탑을 계속해서 오르던 순간.
“크악!!”
“형!”
회색의 짧은 머리를 가진 로그는 순식간에 불에 휩싸여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강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음에도 불길을 순식간에 강기를 태우고 육체에 피해를 주었다.
“이 자식이!”
로데는 왼손 검에 검강을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층의 1할을 채운 거대한 검강은 이 일의 원흉을 향해 내리쳐졌고.
“...흐음.”
화륵!
“...!”
놈의 몸을 감싼 붉은 빛의 화염구에 의해 막혔다.
층이 불탄다고 착각이 들 정도의 붉은 불과 푸른 검강의 싸움.
여전히 둘 다 힘을 빼지 않고 있지만 어느 쪽이 우세한지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여기가 몇 층이었지. 47, 48?’
40층으로 진입한 이후 마기가 짙어지고 층과 층사이의 괴리가 커져 쉽사리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지금 나올 악마는 절대 아니라는 점.
불은 대치하던 검강을 잘라먹고 악마의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머리칼과 붉은 눈.
검은색의 깔끔한 정장을 입은 그는 그 누가 보더라도 귀족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인간분들. 적열의 악마 레베카입니다.”
레베카는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우아하게 숙여나가는 허리와 흰 장갑을 낀 손.
어느새 상처를 회복한 로그와 로데는 악마에게서 뿜어 나오는 기운에 몸을 주춤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이 머리에 맴돌았다.
‘...강하다.’
비슐에서 나타났다는 어린 소녀 악마.
소환수로 소드 마스터의 팔을 베어내고 대마법사 다섯이 모여야 만드는 마법을 고스란히 되돌려준 존재.
이들은 비슐에 없었지만 그 내용만 들었을 때 다들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한들 자신의 힘으로 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안 오시나요?”
지금 이 시간 전까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악마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가볍게 둥글게 말았다.
마법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마법.
“그러면 제가 가겠습니다.
‘흑마법.’
화륵!
“형!”
“알았어!”
붉은 불의 파도가 층을 덮치고 형제는 빠른 속도로 불을 피해 이동했다.
불은 형제를 계속해서 태우려 들었으나 전보다 매우 기민해진 그들을 잡기는 꽤나 어려웠다.
‘힘을 아낄 상대가 아니야. 단번에 친다.’
쌍둥이 소드 마스터들의 특기이자 그들이 다스리는 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필살기.
이검합일(二??一).
“호오…?”
전혀 달랐던 두 개의 검은 하나처럼 움직이더니.
“죽어!”
푸확!
악마의 어깨를 크게 베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