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 29. 오래된 적수 (3)
* * *
***
초월자들은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난 이들이다.
작게는 죽음부터, 크게는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존재들.
완전한 초월자가 된다는 건 하나의 세계에서 절대신과도 같은 위치에 올랐다 해도 무방하다.
다만 그러지 못하고 한 세계에 수십의 초월자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격을 가진이가 그 세계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일부를 제외하곤.
***
최강의 힘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초월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매번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전투를 벌일 것 같지만 실제로 큰 파괴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힘은 퍼지면 퍼질수록 위력이 줄어들고 파괴와 관련된 힘이 아니라면 자신이 밟고 있는 터전을 부수기 꺼려 하니까.
애초에 초월자들이 대거 모이거나 많은 시선을 받고 있는 행성은 그 자체만으로 격이 실려 매우 견고해진다.
나는 검을 내렸다.
연푸른 힘이 완전히 통제되어 내 몸으로 흡수되고 복사된 마왕이 아닌, 저 차원 너머의 ‘진짜’ 마왕의 힘으로 만들어진 마왕성은 여전히 견고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 여신과의 만남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마왕 제르노스 토벌 월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대륙의 평화 월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레벨 한계치를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레벨이 360으로 올랐습니다. ]
[ 온 대륙에 당신의 명성이 널리 퍼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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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대적의 용사를 획득했습니다. ]
[ 칭호 / 대적의 용사(?).
축하합니다.
?
? ]
정말 오랜만에 보는 시스템 메시지들.
최대 레벨이었던 349 레벨을 달성하고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메시지들이었다.
조금, 아주 많이 반갑네.
“레벨 한계치라. 이게 업데이트인가.”
전 시즌에도 제한되어 있던 레벨 제한선이 뚫렸다는 것.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단순히 더 강해지니 좋다의 문제가 아닌.
‘진짜가 온다.’
지금까지 떠나있던 관리자는 지금부터 시작될 업데이트를 기점으로 다시 이곳에 돌아올 거다.
아니, 어쩌면 벌써 도착했을지도.
“역시 용사야. 용사는 마왕을 잡아야지.”
여신은 음음 거리며 콜라의 빨대를 쪽쪽 빨았다.
아까까지는 입이 떡 벌어져 있더니 지금은 평온하게 콜라나 먹고 있다.
“즐거우십니까.”
“조금. 근데 완전 좋지는 않네.”
엘레노아는 제르노스의 오래된 친우이자 적수.
비록 방금 죽은 제르노스가 진짜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진짜나 다름없었을 거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이렇게까지 해서 관리자랑 싸우려는 이유가 뭐야. 솔직히 너희 둘이면 주변 인물만 챙겨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벗어난다라.
본래라면 관리자의 손안에 들어간 게임, 행성 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는 특이점을 가진 이레귤러.
규격을 무너트리고 다른 차원 머너로 나아간 최강자처럼 나 역시 그 경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최강자의 힘에 특이점까지 있으니 훨씬 더 쉽게 차원을 뚫고 넘어갈 수 있겠지.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초월이라는 경지에 올랐음에도 인간처럼 치열하게 싸우기 위해.
“글쎄요. 분명 이게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나는 그저 재미가 있었으면 했다.
나 주변만 잘 챙기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큰 적을 쓰러뜨리고.
그러다가 위험하면 도망치고.
마탑을 무너트린 내가 본격적으로 전면에서 나서 활동하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사람들의 큰 비난과 위험을 두려워했으니까.
그냥 이 재밌고 행복한 세계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으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자부하지만 오히려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여기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너무 오래 이곳에 있었다.
이미 지구의 생 보다도 수 배를 넘게 살았다.
이곳의 사람들과 영물들, 신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그때처럼 두려워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뭐 사실 다 핑계고 그게 재밌어서 하는 겁니다.”
아무튼 그렇다.
괜히 부끄럽네.
“...풋.”
하하핳! 하고 웃음을 터트린 여신은 한참을 웃다 웃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곧 빛이 된다.
「▲여신 」「▲신성 」
“조심하렴.”
그녀는 어느새 신성의 광채를 내뿜으며 순백의 옷을 펄럭이고 있었다.
가느다란 손이 움직이자 신성의 검이 더욱 번뜩인다.
무리라도 한 듯 숨을 조금 몰아쉰 엘레노아는 씨익 웃으며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원래 이렇게 키가 컸나?
“그럼 네가 사랑하는 만큼 우리를 꼭 구해줘.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노력해 보죠.”
“고맙다. 나의 용사.”
파스슥… 여신은 서서히 사라진다.
죽는 게 아니라 제 신전으로 돌아갔을거다.
과거에도 공개되지 않았던 천계인가 하는 공간.
지금의 나도 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게 우선은 아니니.
쿠구궁…
마왕성이 무너진다.
원래는 유지가 됐었는데, 새롭게 업데이트된 지금은 아예 무너트리나 보다.
하페는 무형의 기운을 움직이며 옆방의 길드원들을 옭아매었다.
“우선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그래. 일단 나가자.”
하페가 허공에 수인을 긋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세계는 기뻐했다.
비록 과거 하페와 나처럼 마왕이 모든 세계를 위협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왕은 대부분의 적이 이었다.
세계는 용사를 축복했다.
매일매일 축제가 열리며 들어보니 무슨 용사인 유저들한테도 이벤트가 잔뜩 열려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봐야 반 초월자도 못되겠지만.”
애초에 초월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틀 안에서는 나올 수 없는 힘이다.
자신의 오래된 힘과 경지를 넘어 세계를 넓게 보는 일은 하나의 갇힌 세계에서는 쉽사리 이뤄내기가 어렵기에.
한 수천 년쯤 그렇게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보는 게 맞을 거다.
뭐가 됐든 다들 기뻐하고 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폭풍전야 같군요.”
콜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수없이 펼쳐진 인터페이스를 만지작거렸다.
360도 전부 푸른 홀로그램이 나타나 있는 하늘섬 조종 공간.
베타를 비롯해 연산과 파악을 도와주는 수십의 안드로이드들이 24시간 내내 전 행성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관리자의 무언가가 나올지 모르기에.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긴 하지.”
마왕을 토벌한지 어느덧 일주일.
세계는 여전히 들썩이지만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관리자는 어디까지나 게임을 관리하는 총괄.
자신의 만든 게임을 부술려하지 않는 이상 행성 전체를 타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고.
‘암살. 아니면 전체적인 역사나 특정 인물을 건드리는 쪽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마성에 달한 아카데미 소속의 아미아 리진과 리엔을 포함해 각 중요 인물의 행선지와 위치를 모두 파악해두었다.
고위신과 같은 인물 외의 존재도 이랑이 전부 파악한 상태고.
“애초에 고위신은 무명으로 인해 대부분이 죽었어. 그들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그렇다면 뭘까.
어째서 왜 나서지 않는 걸까.
분명 뭔가 심어둔 안배가 있을 텐데.
“혹시 직접 오는 게 아닐까요?”
“직접 온다면 오히려 좋아.”
지금의 우리가 가진 최고의 전력으로 부딪힐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만일 길드원이나 나의 지인들. 혹은 지역을 습격한다면?
다들 약하지는 않지만 뭘 준비해놨는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관리자와 대적할 수 있는 정도는 나와 하페뿐이니까.
이건 단순히 힘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라는 게임 내의 절대적인 힘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이레귤러의 힘을 가진 나와 하페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페는 스윽 나타나며 말을 받았다.
“맞아. 그게 아니라면 그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져야 해. 뭐, 7등위쯤 되면 되려나.”
“......”
“확실히 정면 승부는 질 것 같지 않은데 말이지.”
관리자는 강하다.
그녀의 힘은 적어도 6등위 이상, 높으면 7등위 중에서도 상위에 속할 정도로 강하지만 그녀의 힘의 본질은 관리자에 있다.
특이점으로 그것만 잘 커버한다면 순수 힘 싸움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F 82! F 82 부분 강력한 파동의 여파가 일어났습니다.
최소 위험도 7레벨. 적색 개체입니다.
길드원 정예 중 두 명 이상의 전력이 필요합니다.
푸른색으로 둘러싸인 홀로그램 중 한곳에 붉은 점이 들어오고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이 정보를 이어받았다.
“시작인가.”
“누군데?”
“내가 가서 처리하겠다냥.”
우리는 한곳에 모여 중앙에 뜬 고도 위성이 찍은 사진을 보았고.
“...얘가 왜.”
위성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것’의 손이 움직이자 행성 상공에 있던 위성이 터져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