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4화 〉 30. 세계의 주축 (2) (304/318)

〈 304화 〉 30. 세계의 주축 (2)

* * *

***

“다들 피해! 최소 300레벨 이상이야!”

“뭔데 저건! 마왕 잡혔다며!”

“아이스 필드!”

과거 멸망당한 천사들의 도시, 오르바틴에 세력을 가꾼 용사 길드는 거칠게 몰아쳐 오는 거인들을 상대했다.

분명 자신들은 불과 하루. 아니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축제를 즐기며 스텟 보너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비록 마왕을 잡은 게 누군지 모르지만 마왕이 잡힌 후 그들은 전보다 훨씬 강해지며 나름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렇다. 과시했었다.

“미친…”

길드원 중 한 명의 마법 기술인 ‘아이스 필드’가 작렬한다.

수준만 놓고 본다면 일반적인 냉기 계열의 자연신의 능력과 버금갈만한 기술.

아주 잠깐 동안 거인의 이동이 제어된 틈을 타, 이름난 유니크 직업을 가진 길드원들이 각자의 기술을 구사하고.

푸화악!

전방에 있던 전사 직업군 셋의 목숨이 날아갔다.

특별한 공격이나 기술도 아닌 단순한 발구름에.

나름 3대 길드와 맞먹는다고 명성이 자자하던 정예들이었는데…

“도망쳐!”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용사 길드는 혼비백산하며 이동 스킬을 사용해 도망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웅­ 소리와 함께 회색 거인의 붉은 눈이 번뜩이자 반파된 도시의 2할이 행성에서 삭제된다.

“......”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건 이길 수 없다.

최근에 보았던 상급 악마보다도. 아니, 그것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이건 차원이 다르다.

길드장은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회색의 거대한 발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

꾸어어어…

소름 끼치게 울려퍼지는 짐승의 울음 소리에 길드장은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회색빛으로 가득 찬 공간에 눈이 부실 만큼의 노란 광채가 터져 나온다.

쿠구구궁….

거인의 육신이 세 갈래로 쪼개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길드장은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거인의 시체를 바라보다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기다랗게 포니테일을 한 노란빛이 나는 검을 든 여자.

여자는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이보다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다, 당신은.”

“피하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그녀는 손을 까딱이더니 구름 같은 것이 자신의 몸을 낚아채 어디론가 날아간다.

“저기!”

“가시면 다들 모여있을 겁니다.”

뭘 모여있다는 걸까.

길드장은 그 의미를 한참을 날아가다 깨달을 수 있었다.

밤 하늘에 노란색을 머금은 구름 수천 개의 덩어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

“냐아아아아!!”

콰가가가각!

레빗이 앞발톱을 강하게 내리찍는다.

그에 따라 종잇장마냥 찌그러지는 거인들.

레빗은 회색빛의 공간을 갈기갈기 찢으며 그 시체 위에 털썩 앉아 아공간을 열었다.

한참을 뒤적이던 그녀는 과거에 김윤이 직접 만들어준 당근 꼬치를 베어 물었다.

“...슬슬 다 먹어간다냥.”

분명 레시피는 똑같은데 길드의 요리사가 아닌, 자신의 주인인 김윤이 만든 게 훨씬 맛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만든 사람이 김윤이니까 맛있는 걸지도.

이 일이 끝나면 조만간 다시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

아쉬운 듯 꼬치 막대만 질겅이던 레빗의 뒤로 거인 수십이 다가온다.

「▼변혁 」

벌써부터 공간 왜곡 현상이 발생된 대지.

저 앞은 이미 어드벤처 행성이 아니었다.

“흐으으으…!”

퉤. 막대를 뱉은 레빗은 고양이 자세를 취했다.

쭈욱 펼쳐지는 긴 팔과 긴 다리.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드러나고 코앞까지 다가온 거인들을 향해 레빗이 튀어나갔다.

거의 탄환 쏘아지듯 튀어나간 레빗은 주황빛의 잔상을 남기며 거인들의 목을 하나씩 뜯어냈다.

마력도 불균형하고 공기와 중력, 여러 법칙들이 뒤틀린 공간.

하지만 레빗은 그런 것에 휘둘릴 만큼 약하지 않았으며 이미 그녀는 용신과의 전투를 통해 한차례 더 성장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레빗은 살짝 깨진 손톱을 다듬으며 마지막 거인을 쓰러트려 저 멀리에 던져놓았다.

시체가 잔뜩 쌓여 마치 작은 산처럼 보이는 공간.

“조심하라냐.”

스윽. 그녀는 김윤이 있는 곳을 돌아본다.

“이게 끝이 아니라냐. 나의 주인님.”

***

이랑은 여우불을 두르고 하늘로 비상한 체 아래를 관조했다.

쿵쿵. 이동하는 수많은 회색 거인들과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투.

그녀는 과거 미개한 종족들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유저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되살린 이랑은 자신의 귀에 걸린 통신기기를 만지작거린다.

치직. 하고 울리는 고운 목소리.

­F ­ 75 쪽으로 거인 87 개체가 진군합니다. 하늘의 눈 사용을 허가합니다.

베타의 통신과 동시에 행성의 상공을 돌아다니는 위성 일부가 작동을 시작한다.

신호를 받은 고도 위성. 하늘의 눈이 작동을 시작하고 숨겨져 있던 주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깔끔한 외형과 동시에 수많은 마공학적 기계와 마법진이 얽힌 마공학의 결정체.

하늘의 눈에 푸르른 광자 에너지가 차오른다.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광자의 빛은 그대로 대지를 향해 낙하했다.

화륵. 주포에 더해지는 분홍의 여우불, 신성의 불꽃.

불꽃은 순식간에 회색빛의 거인들을 태우고 집어삼켰다.

거인들은 어떻게든 화염을 막기 위해 회색의 빛을 흩뿌리며 공간을 비틀었으나 특이 저항이 탑재된 주포 앞에선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어드벤처 행성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랑이었기에 그 화력은 더욱 강했다.

“다음 사용까지는?”

─여유분을 제외한 다음 구동까지 7분 27초가 소요됩니다.

하늘의 눈은 초월자도 박살 내는 전략 병기.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7분 정도면 아주 빨리 사용이 가능한 셈이다.

이랑은 계속해서 상공을 떠다니며 아직도 많이 남은 거인들을 하나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에 자꾸만 김윤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시선의 끝에서는 붉은 무언가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

붉은 마력이 세상을 뒤덮는다.

진실로 이루어진 공간이 비틀리고 거짓된 세계가 어드벤처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은 내가 검을 휘두른다.

「▼최강 」

연푸른 검이 움직인다.

그에 걸 맞춰 침식된 세계에 길이 그어지듯 수없이 많은 선으로 낙서된다.

그 틈 사이로 드러나는 진실된 세계.세계는 금방 제자리를 되찾는다.

베리는 자신의 몸을 지웠다.

정확히는 몸 자체가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

나는 피식 웃으며 검을 360도로 크게 휘둘렀다.

과거에 내가 사용했던, 정확히는 변한 과거에 내가 사용했던 기술.

주위 모든 것을 터트리는 검의 폭발은 공간을 구성하던 모든 것을 박살 낸다.

거짓된 세계는 물론, 원래 존재하던 것까지도 터져나가는 상황.

공간 자체에 스며들어있었던 베리는 쯧. 혀를 차며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의 지팡이가 완전히 백색으로 물든다.

백색의 마력은 이곳에 잠든 존재를 되살린다.

「▲용신 」

그리고 되살아 난 것은 거짓된 내용으로 고쳐지며 더욱 강력해진다.

나는 최강의 힘을 둘러 몸을 보호한다.

용신은 청색의 비늘이 아닌 백색과 붉은색. 두 색의 비늘을 띄며 브레스를 날렸다.

압도적인 화염이 내 몸을 덮친다.

드래곤은 사기 종족이다.

몸이 튼튼하며 마법도 잘 다루고 마력량도 평범한 생명체에 비해 수십 배 높다.

또한 심장도 두 개라 어지간하면 잘 죽지도 않는다.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마력이 줄어들지 않는 한 노화하지 않고 더욱 강해진다.

때문에 드래곤 관련 직업군과 장비는 항상 좋았다.

그냥 베이스 자체가 사기라는 소리다.

“이상한 걸 꺼내오네.”

물론.

푸화아악!

그것도 어디까지나 하나의 세계에서 국한된 이야기.

초월의 힘이 강해진다면 약하디 약한 고블린도 행성을 수박화채처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이 차원 세계의 현실이다.

종족은 단순히 시작점일 뿐.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

나는 부활한 용신을 정확히 두 갈래로 쪼갰다.

쪼개진 용의 육신은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대신.

“일격.”

나의 검기에 그대로 터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자꾸 이상한 걸 섞어 놔도 절대 터지는 일이 없어.”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는 법이야.

“가짜라… 재밌는 얘기군요.”

베리는 큭큭 웃었다.

나는 몸을 마법으로 정리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외형은 내가 아는 베리가 맞지만 그 안에 든 건 더 이상 베리라고 볼 수 없다.

이미 관리자에 의해 완전히 침식되었으니까.

아마 관리자를 죽이거나 무력화 시키기 전까지는 되돌리는 건 어렵겠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최강자의 힘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당신과 제가 무엇이 다르죠?”

“다르지. 그것도 아주?”

“그게 뭡니까?”

“그건.”

그는 물었고 나는 검을 들었다.

속전속결.

“이격.”

「▼최강 」

그리고.

“이건 보너스.”

「▲─ 」

─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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