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 30. 세계의 주축 (4)
* * *
***
채림은 근처의 토스트 카페로 들어왔다.
난쟁이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 창가 자리에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개의 토스트가 나왔다.
냠. 한입 베어 문다.
“묘하게 맛있네.”
“그렇습니닷…! 길드의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부정할 수 없군.”
“우우웅!”
다른 소환수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
한 2시간 정도 빠르게 도시를 배회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공간의 제약.
지금 우리가 서있는 도시는 한없이 넓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다지 크지 않다.
크기만 따지자면 중소도시 두 개 정도를 붙인 수준.
본래의 침식당한 대륙을 생각하면 한없이 작은 크기다.
두번째는 능력의 제약.
“우리뿐만 아니라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능력이 하락했다.”
“맞아요. 그건 우리에게 좀 다행이죠.”
만일 자신을 비롯한 길드원들만 힘이 약해진 상황이고 본래의 힘을 가진 이들이 적으로 돌아섰다면 꽤나 까다로웠을 거다.
하지만 다른 이들 역시 평범하게 바뀌고 폭력성은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타악. 토스트를 내려놓는다.
탁 트인 통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으음… 보통 이런 식의 변화는 시전자를 무력화 시켜야…”
“어떻게든 이 힘을 파악해서 우선 균열을 틈타 나가는 식으로…”
“우우…”
의견을 나눴다.
어드벤처 태생의 정령인 령령이는 그렇다 쳐도 님님이와 용용이는 다른 차원의 수환수다.
길드장님의 말로는 어드벤처에는 차원의 균열이 많이 생겨났고 그 틈 사이로 이들이 소환되었다고 한다.
아카데미의 친구들과 어찌어찌 잘 소환식을 구성했긴 했지만 아직도 이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원리는 알 수 없었다.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
그때. 누군가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았다.
백색의 머리칼을 가진 깔끔한 복장을 한 소년.
“베리!”
“위험합니닷…!”
덜컹! 자리를 박차고 채림이 일어난다.
채림 쪽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시선.
잠깐의 정적 후 채림은 다소 머쓱한 시선을 느끼며 주르륵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풀지 않는 긴장.
용용이와 님님이도 눈을 가늘게 뜨며 눈앞의 소년을 경계했다.
그는 하하 웃으며 주문받은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문다.
.”오해가 좀 있는 것 같네요. 저는 당신들을 공격할 마음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그쪽들을요.”
“...그쪽 들이라 하면.”
“당신을 포함한 소환수를 말입니다.”
냅킨으로 입을 닦아낸 소년은 싱긋 미소 짓는다.
묘하게 기이한 웃음.
“당신과 김윤. 그 자와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이 활동한 기간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무척 적고요.”
“...부정할 수는 없네요.”
비록 과거와 비하면 힘과 능력은 강해졌지만 다른 길드원에 비하면 친밀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자신은 합류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십수년을 훌쩍 넘어가니까.
타앙! 채림이 탁자를 거세게 내리친다.
정말 부순다기보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하고자 하는 행동.
“하지만! 그게 길드장님과 저 사이를 이간질할 정도로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난 이미 인정받았다고요.”
채림이 필요하다.
그저 하나의 유저.
대륙의 소문난 강자도, 초월자도 아닌 그녀를 자신들의 편에 합류시킨 이유는 채림의 능력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을 흡수하고, 심지어 초월자의 힘마저 흡수하는 능력.
부작용이 있긴 하나 가진 능력의 위시에 비하면 사소한 부작용이다.
설산에서도 위기에 처한 길드를 구한 것도 채림이며 F 구역 너머로 퍼져나가는 힘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도 채림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기기가 파손되어 행성의 절반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인정이라.”
하하.
베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표정을 굳힌다.
“...뭐가 우습죠?”
“결국 능력이지 않습니까.”
그의 붉은 눈이 채림을 옭아맨다.
채림의 눈동자가 요동친다.
“당신이 아닌, 당신의 능력을 필요로 해 당신을 고용했습니다. 동료나 친구로서가 아니라요.”
마치 저와 같죠.
“그게 무슨…”
“간단한 얘기입니다. 그들은 이미 강한 전력을 보유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도 이미 둘이나 있고 자신의 자존감과 위치를 높여줄 노예들도 있죠.”
하지만 그들은 부족했습니다.
“그분을 대적하기에는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통합된 세계에 먼저 온 틈을 타 기반을 마련하고 행성 전부를 탐색합니다.”
자신의 훌륭한 말이 되어줄 사람을요.
그것이.
“당신입니다.”
“허, 헛소리를.”
“당신은 아카데미 출신이죠? 그곳에서 처음 김윤을 만났고요.”
그렇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물론 아카데미 내에서가 아닌 아이스크림 가게가 먼저였지만.
지금의 채림에게는 그런 사소한 차이를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그만큼 소년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으니까.
“김윤이 아카데미를 세운 이유가 뭘까요? 단순히 인재 양성을 위해? 아니면 심심하고 돈이 남아돌아서?”
“......”
“스스로 꺼내지 못하는 거 같군요. 제가 대신 답해드리겠습니다.”
소년은 커피잔을 올렸다.
그 안에 갇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검은 커피의 물결.
커피는 커피잔을 들은 손에 주체 없이 움직이다 결국 손의 주인에 의해 그대로 삼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 이유는 당신 같은 쓸만한 말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언젠가 그 말이 제 발로 통발에 들어올 테니까요.
“당신은 처음부터 이용당할 운명이었다는 겁니다.”
타악.
“마치 저처럼.”
***
“심상치 않아. 아주 심상치 않아.”
하페를 만났다.
그녀 역시 어느 정도 본 모습을 되찾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은지 평소보다 조금 더 어려진 상태였다.
평소가 스물 중반이라면 지금은 이제 막 스물이 된 정도?
확실히 더 어려 보이는 감이 있었다.
“으음… 완전 제대로 준비했네. 그냥 쪼개는 건 불가능하겠어.”
도시의 외각 쪽.
불그스름한 장막에 막힌 외각에 손을 가져다 대자 찌릿한 감각과 함께 하페의 손을 튕겨 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손을 털어낸 하페는 내 쪽을 돌아본다.
“우선 애들부터 찾아야겠어.”
“위쪽으로 나가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자칫하다간 천장이 깨져버리면 아래는 몰살이야.”
확실히 골치가 아프다.
부수려면 부술 수 있다.
하지만 동료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응해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 시간 동안 침식은 행성 전체를 집어삼킬 테고 이 안에서도 동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까.
“특이점을…”
“쓸려면 아예 이 공간 자체를 무력화 시켜야 해. 그 정도면 수치면 ‘조치’단계까지 취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하겠지.”
어디까지나 특이점은 차원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게임의 규칙을 뒤트는 능력.
너무나 편리해 보이고 사기처럼 보이지만 당연하게도 제한은 있다.
게임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면 ‘불법’한 유저를 추방할 자격이 있으니까.
지금의 나와 하페는 완전한 초월자기에 일방적인 추방은 불가능하나, 큰 불법을 저지른 유저는 얼마든지 다른 차원으로 추방이 가능하다.
이건 차원 간의 규칙이고 어드벤처 행성은 차원 관리국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반드시 그 룰을 따라야 했다.
“쓸데없는 건 참 많이 만들어놨어.”
“...그래도 그게 있어서 양아치들이 많이 없어진 거야. 과거에는 통수가 기본이었다고.”
결국 차원 관리국이 있기에 이런 식의 복수도 가능하다던데, 우선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나쁜 건 아니다.
차원 관리국이란 억제력은 우리뿐만 아니라 관리자에게도 포함되는 문제니까.
뭐가 됐든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나는 땅에 손을 짚는다.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는 마력의 줄기들.
줄기는 수많은 생명체를 링크하고 곧장 위치와 정보를 빠른 속도로 습득했다.
나의 동료 역시도 정보와 위치가 뜬다.
대부분은 도시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방황하거나 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나는 하나씩 위치를 파악하다 마지막으로 줄기가 맞닿은 곳을 확인한다.
평범한 학교.
아니, 조금은 다른 학교.
줄기가 녹아내리고 현대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마법의 여파가 몰아친다.
학교의 학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즉시 학교를 향해 날아갔다.
***
뚜욱… 뚜욱…
피가 떨어진다.
다윤은 부서진 월광의 검을 부여잡으며 숨을 골랐다.
레빗은 어떻게 됐지?
너무 빠르게 공격이 시작되어 잘 모르겠다.
시작은 가벼운 공격이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을 공격.
하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었다.
고통이 밀려온다.
동시에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주 경험해 본 것도 아니었다.
싸움을 시작하기로 한 이상 마주해야 할 것을 모른척 한 체 살아왔을 뿐.
“가더라도…”
꾸욱…
“혼자는 안 죽어.”
「▼월광 」
적어도 윤 씨의 싸움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정도라도.
그 정도의 피해라도 주고 가리라.
다윤은 월광의 검을 높게 세웠고.
푸슉.
검이 내려오기도 전에 붉은 암기가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