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30. 세계의 주축 (5)
* * *
***
시작은 아주 작은 인연이었다.
그저 조금 더 편리한 이동을 위해서.
그다음은 최강자의 직업을 얻기 위해.
좋은 동료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같이 수많은 이야기를 넘고, 위기를 거쳐오다 보니 그리되었다.
그러니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
이렇게 끝나는 건 용납이 안돼.
Ⅳ.
용납할 수 없다.
***
“김윤!!!”
허공으로 솟아오른 푸른 결정의 숫자가 미친 듯이 회전한다.
어마어마하게 증폭되는 힘.
뒤에 급하게 쫓아오는 하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하페.
이걸 보고 어떻게 참으라는 거야.
다윤이 눈앞에 있다.
날카로운 암기에 심장을 꿰뚫려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다윤.
연푸른 검의 궤적이 붉은 암기를 쏘아낸 녀석을 찢어놓는다.
영혼은 수복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소멸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간을 구성하던 붉은 마력이 검기의 쇄압에 터져나가고 균열 너머로 다시 어드벤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균열을 시작으로 도시 전체에 균열이 퍼져나간다. 모든 사람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이대로 간다면 필시 도시 전체가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정신 차려!”
퍼억.
하페는 나에게 가볍게 주먹을 날린다.
아주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다윤에게 달려갔다.
“다윤아!”
“...헤. 오셨네.”
“...리지렉션.”
파앙! 내 뒤로 신성의 날개가 펼쳐지고 부활 주문이 시전 된다.
마성의 마법과 삼색의 빛을 혼합해 만든 부활 마법.
그 어떤 죽음에서도 부활할 수 있으며 수십 년전에 죽은 사람마저도 부활시킬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회복과 부활의 추가 마법을 걸고 있지만 다윤의 상태는 영 나아지지 않았다.
다윤의 손이 나의 떨리는 손을 붙잡는다.
“영혼. 찔렸어요. 안 해도, 돼요.”
“...지랄하지 마.”
“...윤 씨는 너무 좋은데, 가끔 말이 험하다는 게.”
“개소리하지 말라고.”
[A 1 코드를 사용합니다.]
[과도한 사용은 해당 차원의 관리자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모든 차원을 관통하는 권능의 조각이 다윤의 흩어지는 영혼을 이어붙인다.
동시에 나에 대한 압박이 거세진다.
압박은 당연히 어드벤처 행성 전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의 힘.
그 본질에는 관리자가 있다.
“...난 이래서 윤 씨가 좋은데 싫어.”
“무리 안 해.”
“안 붙여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윤 씨 놔두고. 혼자 죽을 거 같아요?”
절대 안 죽지.
아니, 못 죽지.
“안 했다면 적어도 백 년은 넘게 잠들어 있었을 거야.”
“...윤 씨가 무리하는 것보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내뱉는 다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아주 잠깐의 접촉 이후,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사실 잠들기 싫었어요. 나도 언니처럼 더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다윤의 시선에 잠시 멀리 떨어진 하페가 비친다.
그녀는 복잡한 심정으로 다윤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충분히 도움 됐어.”
“......”
“난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이미 세상은 괴물 천치다.
그들은 수천, 수만 년을 살아왔고 우리의 이야기는 고작 백 년도 덜 됐을 뿐이다.
그 간격의 격차가 드라마틱 하게 줄이기엔 현실은 냉혹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윤은 진심으로 잘 해주었다.
나와 하페처럼 특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랑처럼 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레빗이나 채림처럼 특수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윤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진심이야.”
“...후하. 떨린다. 심장이 막 뛰어요. 아, 이제 없나.”
“야.”
그녀는 피를 울컥이며 큭큭 웃는다.
분명 찔린 건 그녀인데 내가 다 아프다.
그녀를 붙잡은 손에 더욱더 힘이 들어간다.
“조심해요. 부디.”
“...그래.”
파스스슥… 다윤의 영혼이 균열 너머로 흩어진다.
월광을 닮은 빛은 달빛에 비치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명계다.
행성의 규율에 따라 다윤의 영혼은 명계로 가버렸다.
“찾아갈게. 모든 게 다 끝이 나면.”
“...하아. 곤란해지네.”
“이미 개판이었어.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지.”
이미 다윤이 명계로 간 순간부터 계획의 절반 이상이 꼬여버렸다.
…그러고 보니 레빗도 이 근처에 있었을 텐데.
“주인님은 나를 너무 무시한다냥. 요즘 나의 비중이 무척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냐.”
“레빗?”
“이제야 여기를 봐주는 거냥.”
주황색 고양이의 레빗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나를 흘겨보았다.
정확히는 유령과도 같은 상태로.
어떻게 명계로 안 갔지?
“나는 시스템에서 비롯된 존재. 나의 영혼은 어드벤처 행성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주인님과 연결되어 있다냐. 그러니 명계로 갈 이유는 없다냐.”
“이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고?”
“그렇다냐!”
당당하군.
뭐, 레빗도 나름 분전했을 테니 칭찬해 주도록 할까.
나는 영혼 상태의 레빗을 품에 안아 몸을 쓰다듬었다.
레빗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기분좋은듯 눈을 감았다.
“서둘러 움직이자. 남은 애들 구출하고 베리를 잡아야지.”
더 이상 휘둘려줄 생각은 없다.
마왕의 말대로 베리를 잡고 관리자를 상대한다.
우리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다.
***
“느껴지십니까?”
“...글쎄, 요?”
“처음은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해진다면 금방 적응할 만한 힘이죠.”
어때요? 마음에 드십니까?
“확실히.”
느낌은 있다.
몸에 가득 찬 마력.
흡사 설산에서 아르테이라라는 성녀의 힘을 흡수한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때보다 조금 더 거칠긴 하지만.
‘...부작용은 없으니. 우선 동조하는 척 힘만 파악하자.’
길드장님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길드장님은 비밀이 많다.
세계니 초월자니 하는 의문스러운 것들 역시 많으며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특히 길드장님 옆에 있는 악마 언니는 그냥 다른 존재 같다.
사람이니 악마니 하는 종족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근본 자체가 다른 느낌.
때문에 불안함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진심을 보았기에 믿을 수 있었다.
‘뭐가 됐든 나를 구원해 준 건 사실이니까.’
항상 민폐만 됬었다.
힘을 흡수하고 정신이 나가는 능력 때문에 다른이 들에게 민폐 덩어리였던 자신을 받아준 사람은 길드장님이 유일하다.
비록 길드장님이 내 능력을 이용한다 쳐도 이 능력이 처음부터 길드장님이 부여한 건 아니지 않은가.
능력은 관리자라는 사람이 부여한 거니까.
그러니 길드장님을 원망할 만한 이유는 조금도 없다.
“그래요. 이런 힘을 보니 아주 나쁜 사람이었군요. 음! 당장 혼내주러 가야겠어요.”
채림은 다소 과장스럽게 말하며 힘을 갈무리했다.
백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년은 그녀를 보곤 피식 웃음을 짓더니 빙글 돌아 하늘로 솟아오른다.
채림 역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도시가 한눈에 보인다.
“저런 조금 부서졌군요.”
“균열이…”
균열이 보인다.
도시의 아주 일부분이지만 확실히 균열이다.
지금의 셋 정도는 아무런 무리 없이 빠져나갈 만큼의 균열.
“혹시 기대하고 있나요?”
“앗! 서, 설마요. 놀란 거였어요. 이 정도 힘이라니. 역시!”
채림은 어버버하며 고개를 돌렸다.
너무 과하게 반응했나?
하지만 채림은 연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성격이었으며 정신이 나가면 그것이 더 심화되었다.
“좋아요. 만나자마자 말 몇 마디에 변할 사람이라면 그분도 원치 않으시겠죠.”
“...?”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도록 하죠. 이건 ‘거짓’이 아니에요.”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붉어진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옭아맨다는 느낌이 드는 순수한 눈.
“당신의 능력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은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
“콜트! 베타!”
공학자 두 명을 찾았다.
다행히 둘 다 어느 정도는 멀쩡했다.
본래의 하늘섬은 거대한 숲으로 변해있었다.
크리스마스날 만들었던 트리는 거대한 세계수가 되어 있었고 건물 역시도 나무나 식물로 변해있는 상황.
거대한 숲은 도시와 제법 떨어져 있어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하늘섬 내에 비전투 길드원 역시 무사했다.
“이번 사태는 좋은 자료로 남을 거 같습니다. 이런 식의 대규모 현상 변환이라니…”
안드로이드가 아닌 진짜 사람으로 변한 베타는 흥미로운 목소리로 숲의 환경과 공간을 기록했다.
역시 공학자라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자료를 알아내려 한다.
나쁠 건 없다.
결국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발전을 만들어 낸 거니까.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우선 여기는 모두가 모여있나?”
“아, 예. 정예 길드원을 제외하면 하늘섬 내의 길드원은 모두 무사합니다.”
숲의 원시인처럼 옷을 입은 콜트는 그리 답했다.
그러면 되었다.
“그럼 잘 지키고 있어. 혹시 위험하면 바로 부르고.”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직은.”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다.
이 정도 선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리해야만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