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화 〉 30. 세계의 주축 (6)
* * *
***
이랑을 찾았다.
그녀는 어린 외형인지라 초등학교의 학생으로 있었는데 다행히 별 탈 없이 무사했다.
“다윤이 명계로 갔다고?”
다윤의 소식을 들은 이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명계… 내가 아는 명계라면 그다지 큰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말이야.
“네가 알고 있는 게 뭔데?”
“죽은 자의 환생. 그들을 관장하는 저승의 신. 수준이 초월자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봤자 2등위 정도라 그다지 강하진 않아.”
김다윤 정도면 충분해.
이랑은 나를 보고 안심하라는 듯 그리 말했고 하페가 말을 받았다.
“게다가 명계는 지금 난리가 났을걸.”
“무명이 있어서?”
“그래.”
생태계 파괴자급의 무명이 명계에 있다.
비록 내가 무명을 잡긴 했다만 그것은 무명이 외부 차원의 초월자. 즉 유저 신분으로 이곳에 왔기에 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설산의 사냥꾼의 초월자들과 마찬가지.
만일 동등한 조건에서 무명과 겨뤘다면 나 역시도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을 거다.
아마 지금쯤 무명이 귀찮군… 이라면서 명계를 휩쓸고 있겠지.
이랑은 음음 거리며 동그란 무지개 사탕을 쪽쪽 빨았다.
그녀는 빤히 보는 시선이 머쓱한지 사탕을 와그작 씹어 삼켰다.
“...여기 있으니 자꾸 변질돼서 그래. 원래 이러진.”
“뭐라 안 했어.”
“.......”
아무튼. 남은 인원들은 다 찾았다.
마지막은 채림과 그 소환수들.
내 탐지 마법에도 안 잡히고 있다.
폭주했다면 폭주했지 절대 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채림은 하페의 조각 중 하나야. 정확히는 특이점의 파편을 일부 습득한 인간.’
특이점은 아무나 얻을 수 없는 하나의 권능 같은 것이지만 가끔가다가 특수한 존재가 나오곤 한다.
평범한 영혼인데 이상한 부분에서 극대화를 일으키는 변종 같은 부류.
채림은 어드벤처 내에 퍼진 특이점의 파편을 우연히 습득했다.
그 파편은 채림의 영혼과 동조해 모든 힘을 흡수하는 신비한 능력을 탄생시켰다.
정신이 나가버리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 파편을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 이유는 그 파편을 흡수하는 것보다 채림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모습을 보면 그러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몇 년간 다른 세계에서 우연히 생긴 힘으로 인해 고생만 하며 살아온 녀석이다.
이제 와서 힘의 주인이랍시고 멋대로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가져가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내어줬을 테지만.
“아무튼 채림을 찾아야 해. 도시 대부분은 숲의 종달새로 절반 이상은 파악했으니 이제 나머지만 파악하면.”
“파악 안해도 될 거 같은데.”
“응?”
하페는 손을 까닥이며 내 몸을 돌려 시야를 바꾸었다.
저 멀리, 퍼져나가는 붉은 마력과 보랏빛 안개. 하늘을 관통하는 붉은 원기둥의 빛.
그리고 그 주위를 맴도는 세 개체의 무언가까지.
“예상이 빗나가지 않네.”
채림이다.
***
“한채림!”
나는 힘의 여파로 다가갔다.
내가 가장 선두에 서고 그 뒤로 하페가.
나머지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기에 안전한 위치에서 대기 중이다.
붉은 원기둥의 빛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채림이 서서히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원기둥은 쩌적쩌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이내 산산 조각나 대지를 두들긴다.
허공에 붕 뜬 채림의 주위로 보라색 안개가 휩싸이더니 하나의 옷감을 만들어 내어 채림의 육신을 감싼다.
“길드장님.”
또렷한 목소리.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필시 베리의 개입이 있었다.
‘자꾸 선을 넘는데.’
“그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대답해 주실 건가요?”
“뭐든지.”
아직은 순수한 모습을 한 채림이 고개를 끄덕이곤 왼팔을 펄럭인다.
「▲변혁 」
그에 따라 보랏빛 옷감에서 뽑혀져 나오는 자색의 사슬.
사슬은 나를 묶으려 들었고 나는 디스펠을 이용해 사슬의 구속을 상쇄했다.
채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대답해 주신다면서요.”
“이건 대답이 아니라 구속 같은데. 혹시 내가 대화의 방법을 잘 못 알고 있는 거니?”
“묻는 말에 대답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식을 선택할 뿐이에요. 이번에는 멋대로 도망치지 말아주세요.”
멋대로 도망친다라.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을 텐데.
곤란한 질문을 회피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하페와의 관계 같은 사적인 질문뿐.
나는 어지간한 것은 전부 대답해 주었다.
채림이가 궁금한 것이라면…
‘자신의 능력.’
하지만 그것은 채림이 직접 물어본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채림의 성격이든 뭐든 나는 채림을 우리의 길드원으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지원도 물심양면으로 해주었다.
채림으로서 자신의 능력이 어찌 되었든 그것을 나에게 따져 물을 일이 아닐터.
이건 어떻게 본다면 채림의 마음 한구석에 숨겨진 궁금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예요.”
역시.
“뭘 묻고 싶은 거냐.”
“하페루아. 그 악마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저. 맞죠?”
“파편이라. 틀린 말은 아니다만 맞는 말도 아니야.”
이 와중에도 힘의 대치는 계속된다.
계속되는 실랑이에 화가 났는지 사슬이 추가로 몇개 더 날아온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았다.
촤르르륵! 사슬이 내 몸을 묶는다.
“어디까지나 특이점의 파편은 세계로 흩뿌려졌을 뿐. 그것의 주인들이 딱히 정해져 있는 건 아니야. 그저 특이점은 힘을 잘 이용할 만한 자에게 붙는 습성을 가졌으니까.”
“...하하하. 그게 다인가요?”
“그래.”
하하 웃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뚝 그치고 어두운 마력의 파도가 다시금 몰아친다.
“예상은 했어요. 당신들은 특별했거든요. 이런 고생을 겪은 나에게는 너무 과분할 정도로.”
그런데 아니었나 봐요.
“그냥 처음부터 당신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런 고생을…
꾸드득…
“안 했을 텐데!!!”
「▲변혁 」
「▲변혁 」
「▲변혁 」
「▲변혁 」
「▲변혁 」
.
.
.
사슬이 폭주한다.
수천, 수만 개의 자색의 사슬이 공간 자체에 퍼져나가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꿰뚫는다.
드래곤이 날뛴다. 붉은 브레스가 세상을 뒤덮고 님프의 장난이 남은 사람들을 헤집어 놓는다.
나는 가만히 사슬에 묶인 채로 생각했다.
‘저건 누구의 감정일까.’
채림의 감정이라기에는 너무 지나치다.
가끔씩 정신이 나가지만 그것은 피아식별 못하는 취기에 가까운 상황.
누군가를 혐오하고 모든 것을 죽이려는 공격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다.
베리.
놈은 자신의 상황을 채림에게 투영시켰다.
아주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을 끌고 오고 그것을 키워내 이 정도까지 만들었다.
“어느 정도까지 해야할까.”
평범한 선으로 안된다.
다윤을 죽인 놈처럼 단번에 영혼까지 소멸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계로 간 다윤마저 위험할 수 있다.
“...결정했다.”
「▼최강 」
나는 검으로 가볍게 사슬을 그었다.
형체를 가지지 않은 무형의 검.
사슬은 종잇장처럼 잘려나갔고 나의 변화를 파악한 채림이 사슬을 다시금 쏘아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드래곤을 비롯한 소환수 역시 공격한다.
나는 하페를 돌아본다.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이는 그녀.
이게 최선이겠지.
검을 쥐어잡는다.
최강의 힘이 내 몸에 들어차고 사슬과 브레스가 내 몸을 닿을 때쯤.
“숨지 말고 나와.”
채림의 뒤에 있던 베리.
…보다 뒤에 있던 관리자의 분신이 잘려나갔다.
***
어디까지나 베리의 사고방식과 생각을 뒤바꾼 건 관리자다.
그것도 관리자가 남겨놓고 간 분신.
놈은 강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상으로 강했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세계의 규격을 무너트리는 최강자의 힘.
모든 규칙과 차원을 관통하는 특이점, 이레귤러.
마지막으로 나의 고유한 힘까지.
지금의 나는 약할래야 약할 수가 없는 몸이었다.
그저 동료들이 위험에 처해있고 제약이 나 역시도 걸려있었기에 소극적으로 움직였을 뿐.
빈틈만 보인다면 얼마든지 바로 적장의 목을 칠 준비가 되어 있다.
“...! 위대한 분이시여!”
붉은 광대의 목이 잘려나간다.
채림의 뒤편에 ‘없는 존재’로 있던 베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광대에게로 달려간다.
본래의 베리가 아닌 광신적인 베리로 바뀌었기에 잠깐 드러난 빈틈.
그 틈을 타고 수십 갈래의 이격이 베리를 아작 내어 놓았다.
육체는 진작에 잘려나갔고 영혼은 수복을 반복하다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구우웅…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공간.
하늘의 균열이 생기며 구역을 뒤덮고 있던 변혁이 힘이 소멸하기 시작한다.
“하페.”
하페의 힘이 나에게로 깃든다.
과거의 별빛의 힘을 건네주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
아직 살아있는 광대의 근처까지 다가간 나는 일격을 크게 늘어트려 영혼 자체를 터트렸다.
입자 단위로 터져나가는 광대는 호호호… 웃으며 사라진다.
[재밌군요. 역시 유망주야.]
그리고 나타난 진짜.
아니, 진짜 같은 가짜.
“가짜만 보내지말고 진짜로 와라.”
[제가요? 왜요?]
삐에로 형태의 광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래로는 다 부서져가는 변혁의 공간이 보인다.
…저 아래는 이미 구할 수 없다.
‘그러니 놈을 지금 잡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