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최후의 결전
* * *
***
무명.
시즌 1 최초로 마왕을 토벌한 이름 없는 구원자이자 7등위의 초월자, 이레귤러.
그는 외부 차원의 뒷배를 받고 어드벤처 행성의 유저로서 게임을 참여하고 있다.
그 뒷배는 관리자조차도 건들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
때문에 관리자는 이레귤러라는 좋은 먹잇감이 들어왔음에도 건들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무명이 지금 명계에 있다. 너도 알고는 있겠지.”
건들지만 못할 뿐.
[...그래서요?]
“무명이 우리의 편이다. 그리고 내 행적 하나하나 이미 무명의 귀와 눈으로 들어가고 있어.”
[웃기는 소리를.]
스륵. 벌써 9할 이상의 조커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힘이 고스란히 베리에게로 전해진다.
[무명은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그에게 뭔가를 행하거나 전할 권한 같은 건 없습니다.]
“이전까진 그랬지.”
나는 여신의 성검을 뽑아들었다.
이전과는 달리 특수한 빛을 내뿜는 성검.
순간 관리자의 분신이 힘의 운반을 멈추었다.
마왕을 참살한 성검. 모든 메인 퀘스트에 도달해 최후의 승자가 된 무기.
관리자가 지정한 게임은 이미 끝이 났고 관리자는 그다음을 준비하지 않았다.
뒤이어 준비한 보너스 이벤트는 그저 본편의 자그마한 외전일 뿐.
가장 큰 줄기의 이야기는 끝이 난지 오래다.
“이미 게임은 끝났어.”
성검은 분리돼있던 차원의 틈을 파고들었다.
***
어드벤처가 존재하는 차원은 하나의 분리 차원이다.
본래의 따로 떨어진 차원이 관리자에 의해 중앙과의 완전한 단절이 이루어진 것.
하지만 이레귤러의 등장과 무명과 그 뒷배의 개입, 최강자와 차원 절단으로 인해 차원 간의 틈이 점점 커졌다.
아델리나 왕국의 리나에게 ‘검술’을 가르친 료진 비카니야, 네츠리 루아 대신 그 자리에 있었던 ‘외부인.’
채림의 소환수, 설산의 아스트라의 외부 차원 연결 같은 것이 그 예시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자 쳐놓은 방벽이 얇아지고 그 틈을 타고 다른 차원의 초월자들이 해당 게임에 개입하는 것.
물론 그들은 이곳에서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나 연결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가시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효과는…
“삼격(三?).”
바로 차원의 양방향 통행.
시스템의 힘을 담은 성검이 빛을 발한다.
그 어떠한 무리도 없이, 마치 자신의 기술이라는 것 마냥 움직이는 검의 흔적.
세 갈래의 검로가 허무의 공간을 뚫고 차원 간 사이를 가로막던 벽을 두드린다.
아주 짧은 저항과 함께 처음부터 이런 건 존재하면 안 된다는 듯이 유려하게 갈라지는 벽들.
쿠구궁…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무너짐의 소리가 들렸다.
차원의 벽이 완전히 부서지고 거대한 외부 차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세계.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생명체와, 문명, 행성,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얽혀있는 중앙 차원까지.
관리자의 분신이 웃는다.
[미친놈… 역시 최강자랄까요. 하지만 당신의 선택은 틀렸습니다.]
차원 간의 벽이 무너진 만큼 ‘베리’에게 있던 제약 역시 급격히 줄어든다.
고작 네 번째 서클을 열기 위해 수많은 확률을 조작해야 했던 베리는 이제 힘의 제약 없이 초월자, ‘에드라스 베리’의 힘을 온전히 끌어올 수 있다.
네 번째 서클이 열린다.
어드벤처 행성의 상공에 거대한 눈이 떠오른다.
주시하는 모든 것을 변혁시키는 눈.
저 눈이 완전히 뜨이는 순간 행성의 모든 이들은 그 무엇으로든 변하게 된다.
[변혁의 힘은 6등위 이하의 초월자조차 무력화 시킵니다. 행성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이제이를 노렸다라… 꽤나 기발한 생각이지만.]
당신은 틀렸습니다.
“......”
[그럼 안녕히.]
스륵. 눈이 떠지고 아득한 힘을 담은 거대한 눈이 나를 주시한다.
찌릿한 감각과 함께 내 구성요소를 분자 단위까지 탐색하는 시선.
물리적이라기보다는 법칙에 가까운 힘이다.
『▲변혁 』
치직.
「▼변혁 」
그러나 변혁은 나의 구성요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릅뜬 눈은 힘을 과하게 사용한 듯 충혈되었다.
동시에 관리자 본체 역시도.
내 머리 위로 푸른 결정의 숫자가 미친 듯이 돌아간다.
나는 두가지의 검을 더 꺼냈다.
“확률은 너만 조정하는 게 아니라서.”
[A 1 코드를 사용합니다.]
[과도한 사용은 해당 차원의 관리자의 제제를…]
[중앙 차원과의 연결의 확인합니다…]
[연결 확인. 제한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검은 굳이 잡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베고 하자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검은 다시 한번 이전의 동작을 반복한다.
저 멀리 차원 너머로 관리자의 얼굴이 보인다.
당황했나?
아니면 화가 난 건가.
하지만 행동하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는 점에서 이미 늦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드르르륵! 어마어마한 양의 재화가 한순간에 소실되고 그만함 소모 값을 치른 나의 검에 황금의 힘이 들어찬다.
Ⅵ.
『▲재화 』
나의 고유한 힘.
황금의 빛이 관리자의 영혼을 꿰뚫었다.
***
‘드디어.’
하페루아는 최후의 결전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할 일은 간단했다.
그저 김윤을 믿고 그에게 힘을 보태주고 주위의 여파가 퍼져나가지 않게끔 막아주는 것뿐.
그 이상의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때가 온 거야. 드디어.’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수많은 시간과 고통 끝에 찾아온 순간이다.
차원 유랑을 통해 무수히 많은 죽음의 위기를 거치고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그녀 스스로 조차 자신을 의심하며 준비한 최후의 최후까지 생각한 계획.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이 계획도 완벽하다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도서관.’
만상의 도서관에서 본 관리자의 속내에는 수만 가지가 넘는 시뮬레이션과 계획이 있다.
하페루아조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존재의 생각.
애초에 그녀는 하나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존재를 집어삼킨 그녀는 늘 다양한 모습으로 생을 살아왔고 지금은 그저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스위치를 키듯 모습을 바꿀 수 있다.
하페루아는 이마에 새겨진 맹약의 문장을 만지작거렸다.
‘...김윤, 미워하지는 마.’
이건 숙명이야.
반드시 적을 물리쳐야 하는 숙명.
***
다 부서져 가는 행성을 바라본다.
복구할 수 있다.
행성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시간은 상대적이며 영혼은 고유하다.
영혼만 멀쩡하다면 시간과 공간, 그 외의 모든 것은 돌릴 수 있다.
나는 너덜너덜한 육체를 보았다.
힘이 조금 과했다.
재화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치 없는 것.
‘소모’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다른 초월의 힘들 보다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대가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검을 잃었다.
빛의 정령왕, 히아트가 깃든 찬란한 빛과 메티아스가 만들어준 메티아스의 장검을.
재화는 단순히 돈만을 칭하는 게 아니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물론 무형적인 재화 역시 포함한다.
그래도 이만한 힘을 냈다는 건 생각보다 내가 두 검에 많이 의지하고 정을 주었다는 뜻이다.
“...허전하군.”
벌써부터 씁쓸함이 올라온다.
두 검은 초월의 힘에 의해 소모되었기 때문에 시공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히아트는 초월자니 영혼 자체는 명계에 가있겠지.
“김윤.”
법칙과 힘들이 불규칙한 공간 너머로 하페가 다가온다.
손을 쓰지 않는다면 필히 어드벤처 행성은 이대로 소실되리라.
그리된다면 행성과 연결된 명계도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복구는 되겠어?”
“해보긴 할 텐데… 아무래도 시스템이 있어야 될 거 같아. 지금으로서는 조금 무리야.”
하페는 최대한 파편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며 그리 답했다.
아직 관리자는 죽지 않았다.
여전히 어딘가 남아 우리를 노리고 있다.
“피해!”
순간 하페가 무형의 힘을 날려 나를 강하게 밀쳐냈다.
밀쳐나간 자리는 그대로 삭제되었다.
“아, 놓쳤네.”
무너진 행성 파편 사이로 빨간 옷을 질질 끌고 오는 여자가 보인다.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는 거친 적갈색 머리의 여자.
여자의 주위로 행성의 파편들이 하나로 뭉쳐 무언가를 생성한다.
하페에게 아주 익숙한 누군가.
“왜 자꾸 벌레들이 깝죽대는 거야.”
“...너!”
마왕.
일곱의 마왕의 권능이 우리를 공격했다.
***
어둠의 파동이 우리를 휩쓴다.
평범한 마왕의 힘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일격.
나는 힘을 끌어올려 다가오는 마기에 대항했다.
마기와 마기가 충돌한다.
‘...마기가 아니야.’
치이익… 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나의 마기.
마기를 흉내 낸 무언가.
흡사 베타의 광자 에너지와 비슷한 무언가다.
하나의 마법을 시전했다.
행성 전체로 초월의 힘을 담은 마법이 스며들고 그 가닥 끝에는 부서진 베타의 장비가 잡혔다.
즉시 끌어와 하늘로 높이 뜬다.
추아아악! 소리와 함께 내 발끝을 잡으려 달려드는 흑색 광자의 물결.
터업.
─대(?) 초월자용 병기.
─코드(Code) ─ ?■□■(?■□□□■■).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12,210,129%).
─광자 에너지 무기 연동. 연동률 ■■% 성공!
─광자 에너지 저장률(100 / 7,280,195%).
─섬멸을 시작합니다.
광자의 빛이 세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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