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 맹약. 그리고 계획
* * *
***
푸르른 광자의 빛이 세상을 덮는다.
붉은 광자의 마기를 뿜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던 마왕들은 순식간에 입자 단위로 분쇄되어 사라졌다.
파직. 그대로 고장 나 바닥으로 추락하는 베타의 에너지 기기.
나는 하늘로 높이 떠 이격을 비처럼 내렸다.
과거 로드리아의 환각 속, 제라드에게 했던 것처럼.
연푸른 에테르의 빛이 황금의 힘과 얽혀 마치 오로라처럼 적을 뭉갠다.
“......”
붉은 원형의 보호막을 친 관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막고 있던 손 대신 다른 손을 뻗었다.
순간 내 뒤로 쏘아지는 거대한 행성 파편.
그것을 쳐내니 쪼개진 파편 사이로 또 다른 파편이 숨어있었고 그것을 한 번 더 베어내니 자연적인 폭풍에 의해 날아온 거대한 산이 나에게 충돌했다.
충돌한 산은 용암을 머금고 있어 마기의 흩뿌려진 입자와 함께 충돌해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우연하게도 연쇄작용을 일으켜 초월의 힘을 가진 초월자조차도 피해를 입힐 만큼 거셌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
「▲역장 」
저장에 담긴 힘중 하나인 역장을 이용해 모든 파편과 힘을 밀어낸다.
그그극… 소리와 함께 확률의 힘이 우연을 멈추고 그 끝에는 붉은 지팡이를 든 여자의 입이 달싹인다.
‘추방.’
“...!”
[A 1 코드를 사용합니다.]
관리자의 시스템과 동시에 나의 특이점이 서로 충돌했다.
‘관찰자’가 만들어낸 힘, 시스템.
모든 차원의 규칙을 관통하는 힘, 특이점.
두 이치에 벗어난 힘이 격돌하고 가뜩이나 불안정한 행성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가 가속화된다.
‘미쳤군…’
관리자는 지금 행성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이미 행성은 소모품 따위가 됐으며 무명 역시 이미 이런 범법 행위를 전달했을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치 뒤가 없는 사람처럼.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건가.’
관리자의 목적은 하페와 내가 가진 이레귤러의 힘.
그녀는 이미 이 전 우주 차원에서 가장 이치에서 벗어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남은 하나는 그 존재도 기원도 알 수 없는 코드라 불리는 특이점.
두 힘을 모두 가진 다면 지금 그녀를 구속하는 제약들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을 거다.
나는 힘의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솟아올랐다.
어디까지나 나는 일개 유저.
상대는 해당 게임에서는 무적으로 불리는 관리자이기에 이런 식의 ‘이치’의 충돌은 불리하다.
나는 순수하게 힘으로 관리자를 상대해야 한다.
검을 든다.
검이 부족하다.
이미 두 검을 잃었다.
제아무리 끝을 본 시스템의 힘이 깃든 검을 가지고 있다 한들, 상대는 시스템의 주인.
차원의 틈은 잘 비집고 들어갔다만 그 이상으로 끝을 보는 건 어렵다.
검을 집어넣는다.
“...?”
관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도 공격을 계속하겠다는 듯 손을 움직여 새로운 마왕을 꺼낸다.
나는 내 이름의 기원이 되는 힘을 떠올린다.
최강자.
분명 그의 힘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최강의 검은 어디까지나 최강자의 근본 과도 같은 힘.
아무리 내가 그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 한들 그의 근본까지 따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연연하지 않는다.
머리 위로 전보다 훨씬 정교해진 푸른 결정의 숫자가 돌아간다. 점차 속도가 거세지는 숫자.
최강자를 내려놓는다.
최강자 김윤이 아닌, 그냥 나. 김윤으로서.
하페의 오래된 바람이나 내가 걸어온 최강의 길을 배제한다. 오로지 나만을 관조한다.
나의 본질만을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모두 배제한다.
오로지 나 하나만을.
Ⅲ
Ⅴ
Ⅵ
나만의 검을 만들어낸다.
Ⅷ.
『▲▲재화 』
됐다.
***
거대한 세계가 갈라진다.
아득한 힘을 담은 황금빛의 검의 궤적이 세 개의 선을 그려낸다.
상대가 나와 다른 이치를 넘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나와 같은 수준이라면 어떻게 그를 상대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택할 것은 하나다.
‘새로운 이치를 만들어낸다.’
차원의 틈이 보인다.
그 틈 사이로 두 명의 아이가 보인다.
분명 두 번이나 마주했던 이들.
자그마한 티비를 보며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남자아이.
그런 남자아이의 머리에 자신의 턱을 올린채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여자아이.
저들이 ‘관찰자’일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향하는 대신 시선을 다시 아래로 돌린다.
‘마무리는 지어야지.’
영혼이 세 갈래로 나뉜 관리자에게로 천천히 향한다.
수복이 어려워 보이는 관리자.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둔다면 얼마든지 회복해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페루아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관리자는 매번 이런 상황에서 적의 방심을 유도해 살아남았다.
‘어떻게든 살아날 확률.’ 이라는 걸 조작해서 말이다.
나는 그걸 이행시켜줄 생각이 없었다.
“검을 든다.”
“그대로 내리그었다. 관리자는 죽었고 기뻐한 김윤은 자신의 연인이자 동반자인 하페루아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끝이 난 것이다. 우리는 승리를 자축했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갔다.”
…?
『▲맹약 』
이마에 새겨진 맹약이 나를 구속한다.
온몸이 부정할 수 없는 힘에 구속되어 강제로 무릎이 꿇린다.
그 힘의 끝. 저 멀리서 맹약의 기운을 흩뿌리는 하페루아가 다가온다.
“...라고 앞으로 쓰일 거였는데. 좀 별로더라고.”
“...하페?”
“그래서 좀 바꿔보게.”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와 관리자를 돌아보았다.
대항할 수 없다.
하페가 강하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아니어야 했다.
하페의 손이 내 심장을 꿰뚫는다.
저항할 수 없는 보랏빛 마력이 내 코어를 헤집어 놓는다.
나는 부서진 바닥 아래로 추락한다.
그 힘은 온전히 하페에게 향한다.
“죽이진 않을게. 그래도 지금까지의 정이 있는데.”
“끄극… 미친년. 넌… 나보다 더 미친년이다…”
다 죽어가는 관리자가 끅끅 웃는다.
하페가 관리자의 머리를 짓밟는다.
어느새 피가 철철 흐르는 광대의 모습으로 돌아온 관리자가 깔깔 웃는다.
“술수 부리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이게 그동안 시뮬레이션이 틀어진 이유구나? 네년의 미친 행각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어.”
“뻔한 생각조차 상상 못한 네 탓이지.”
“그래서 자신마저 속여가며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인정한다. 내가 괴물을 키웠구나!”
관리자의 영혼이 급격히 불어 오른다.
행성의 3할을 차지한 거대한 영혼이 거대한 증기를 내뿜더니 발을 구른다.
행성이 반파되고 압도적인 여파가 그마나 남아있던 모든 생명체를 갈갈이 유린한다.
하페는 무형의 창을 빠른 속도로 놀려 관리자의 영혼을 찌른다.
크기에 비하면 이쑤시개와 같은 공격.
“증폭.”
하지만 그 창은 영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해졌고 영혼은 반으로 갈라진다.
영혼은 반으로 갈라져 터지기 직전 다시 솟아올라 수백만 개로 분리된다.
하페는 보랏빛 마력을 길게 늘어트렸다.
『▲재화 』
『▼▼최강 』
마력에는 이전에 흡수한 두 힘이 녹아들어가 그 힘의 부하를 가중시켰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녹아사라지는 영혼 무리들.
“하하하하! 너도 괴물이 되었구나! 도대체 복수는 누굴 위한 거냐?! 네 아비? 아니면 네 알량한 자존심?”
“굳이 따지자면 후자겠지.”
“미친년!”
관리자와의 충돌이 계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승리의 방향은 관리자에게로 향했다.
관리자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가진 힘 모두를 사용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들었으나 하페는 추방당할 염려까지 생각하며 전투를 임해야 했다.
물론 관리자는 수백 번 죽고 수백 번 부활했지만 죽음은 초월자에게 익숙한 것.
의미가 없다.
“차라리 김윤이 나를 죽일 때까지 기다리지 그랬니. 그렇게 된다면 너의 소소한 목적이라도 이루어졌을 텐데.”
“고작 소소한 목적 따위에 만족할 것 같아? 넌 내 손으로 죽여.”
“허튼 희망이 너와 그 모두를 옥죄는구나.”
오냐. 너와 이 행성의 모든 이를 집어삼키고 다른 차원에 가있는 내 아비까지 죽여주마.
관리자는 웃었다.
진짜 그 순간이 왔다.
김윤의 급격한 성장으로 자칫 확률을 조작할 여유도 없이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만 멍청한 하페루아의 행동으로 인해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마 이 상태의 나라면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이 몸은 영혼의 한 줌만 남아도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김윤의 공격 같은 이치를 넘는 기술이 아니라면 결코 그녀를 죽일 수 없다.
하페루아는 실패했다.
그것이 진실이다.
관리자의 힘을 모두 담은 정수가 투하 준비를 마쳤다.
이 정수가 떨어진다면 반파된 행성은 완전히 부서져 쪼개질 것이고 명계와의 연결도 끊어지겠지.
그러면 저 멍청한 하페루아와 다 죽은 김윤을 힘만 흡수하면 된다.
이미 그 방안은 준비해놓은지 오래다.
아, 이 순간은 늘 짜릿하다.
오랜 시간을 가꾼 열매를 수확하는 이 순간을 말이다.
“끝이다! 이 벌레 새끼야!”
마침내 정수가 투하되었고.
맹약의 문양 역시 빛을 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