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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화 〉 [외전] 명계에서 (1) (315/318)

〈 315화 〉 [외전] 명계에서 (1)

* * *

***

“아.”

다윤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에 찔렸던 비수는 온데간데없었고 상처도 없었다.

가슴을 아리던 고통도 없다.

손에는 이상한 모래가 묻어있었는데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본다.

적갈색의 기묘한 하늘과 마치 붉은 모래사장처럼 느껴지는 강가.

탁한 강물 사이로 다 썩어가는 배 한 척이 있었다.

‘...여기가 명계 인가.’

윤 씨가 늘 언급하던 명계.

다윤은 명계에 실제로 가본 적이 없다.

게임 시절에는 죽을 시 부활 대기 장소로 이동해 부활했으며 그런 식의 부활이 불가해졌을 때는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었다.

자신은 강하고 방금 전과 같은 대적할 수 없는 적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윤 씨는 잘 해내겠지.’

마지막.

마지막 전투다.

다윤은 김윤이 전투에서 승리하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꽤나 거물이 오셨군.”

썩어가는 배에 다가가니 다 해진 긴 도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 작은 의자에 기대 앉아 있었다.

노인은 삿갓을 올려세우며 다윤을 올려다보았다.

다윤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명계.

죽은 자들의 땅.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다.

명계에서의 영혼은 강한 구속력을 지니지만 동시에 외부의 타격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만일 자신보다 훨씬 강한 자의 공격이 이루어진다면 손쓸 틈도 없이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

끼익.

지팡이에 기대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배에 올라탔다.

다윤 역시 같이 올라탔다.

노인이 그녀를 막는다.

“...아. 타는 거 아닌가요.”

“그냥 타나.”

노인이 앙상한 손을 내민다.

다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월드 어드벤처의 금화를 내밀었다.

노인은 그것을 취하곤 다시 한번 더 손을 내민다.

“부족한가요?”

“아니. 금화는 이제 되었네. 다른 걸 주게.”

다른 거라.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이미 한계 이상을 사용한 터라 무기나 장비는 다 박살 난 지 오래고 딱히 보석 같은 류를 들고 다니는 편은 아니다.

금화를 가지고 있던 건 어드벤처의 재화 시스템에서 가지고 온 것뿐.

다윤은 고민하다 월광의 힘을 조금 운용해 자그마한 구슬을 만들어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달의 구슬정도 되려나.

“오오…”

노인이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는 냉큼 구슬을 챙기곤 배의 중앙으로 가 바닥에 놓인 노를 집어 들었다.

“편안한 여행 되시게.”

다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끼익… 소리와 함께 배가 탁한 강물 사이를 가로지른다.

다윤은 멍하니 배에 앉아 생각했다.

윤 씨는 괜찮을지.

하페루아는 잘 도와주고 있을지.

그 관리자가 만약 이곳까지 온다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수많은 상념이 그녀의 머리속을 채울 동안 배는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쿠궁…

“...도착한 건가요?”

“아니. 강의 악의를 만났네.”

“...강의 악의요?”

다윤이 칙칙한 공간 너머로 배를 막은 존재를 바라본다.

어두운 몸체와 몸에 아무렇게나 뜨여진 일곱 개의 눈.

양팔에는 기다란 채찍이 있었고 입은 상어 이빨처럼 무수히 많은 이빨이 망자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악의를 가진 망자를 만나면 그의 죄를 심판하지.”

“심판이라… 저 괴물도 명계의 신인가요?”

“아닐세. 저건 어디까지나 심판을 자처해 이득을 취하는 마수에 가깝지. 그 죄에 대한 잣대를 본인이 정하거든.”

노인은 침착하게 노를 옆으로 튼다.

강의 악의는 다윤과 노인을 지켜보다 한쪽 팔에 깃든 채찍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하려는 거 같은데요?”

“자네는 죄인인가 보군.”

“아까는 제멋대로 정한다면서요?”

“그렇지. 저 악의의 기준에서.”

채찍이 날아든다.

다윤은 월광의 빛을 가볍게 휘둘러 채찍을 가볍게 찢어버렸다.

노인이 역시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에 반해 잔뜩 화가 난 강의 악의.

촤아아악! 강에 몸을 담고 있던 거대한 악의가 모습을 드러내고 일곱 개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어… 화났니?”

크르르륵.

짐승의 울음소리를 낸 강의 악의는 채찍을 내팽개치고 거대한 주먹을 쥔다.

그대로 배를 향해 직격하는 주먹.

그러나 배의 탄 모두는 그 주먹에 두려워하거나 겁을 먹지 않았다.

「▼월광 」

달을 닮은 궤적이 주먹을 베어내고 뒤이어 이어진 달의 참격이 일곱 가지로 나뉘어 일곱 개의 눈을 모두 터트린다.

끄웨에에에에… 소리를 내지르며 강에 그대로 빠지는 강의 악의.

강은 잠잠해졌다.

노인은 가볍게 돌아온 다윤을 향해 끌끌 웃었다.

“망자들의 청소부라고 불리는 악의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하스피님이 아시면 몹시 놀라겠군.”

아, 이미 잔뜩 놀라고 계시려나?

“...하스피님이요?”

“명계의 주인 말일세. 최근에 불어난 망자들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 중이지. 괜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자네가 더 강할진 몰라도 명계라는 지역 자체의 힘은 무시하지 못하거든.

“자네가 아직 ‘망자’라는 것을 상기하시게나.’

노인은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넸고 다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잘 가시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목적지에 도착한 다윤은 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끼익… 끼익… 소리와 함께 배는 강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거대한 성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이 다윤을 반긴다.

주위에는 꽤나 많은 인원의 망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피해자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질 테니. 당연한 결과겠지.

다윤 역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밖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적색과 갈색의 중화풍의 거물 외관과 다르게 안쪽에는 무슨 은행 창구처럼 망자의 안내원들이 쭈우우욱 앉아있었는데, 그 안내원들 위에는 전광판이 있었다.

~띵똥. 7962021번 오세요.

“...?”

번호표를 받아?

“망자들이 워낙 많아서 이렇게 현대의 방식을 채용했어. 실제로 이편이 더 편하더라고 하더라.”

“...누구.”

“날 모르는 거야?”

어느새 다윤의 옆에 선 기다란 청푸른 머리칼을 가진 여인은 잠깐 눈을 깜빡이게 만들었다.

하얀 털이 안상적인 여우 소녀.

“...이랑?”

“분명 네가 일찍 온 거 같은데, 왜 이리 늦었어?”

“자, 잠만. 일찍 오다니. 그러면 어떻게 된 거야 바깥은?”

다윤은 급하게 이랑의 양 어깨를 잡고 물었고 이랑은 모습을 다시 푸른 머리의 여자로 바꾼 뒤 답했다.

“아직 싸우는 중이야. 김윤과 그 악마 빼고는 다 죽은 거 같긴 하지만.”

“...다 죽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다 여기 와 있을걸.”

이랑은 팔짱을 낀 체 번호표를 확인했다.

800만 번대의 이랑이기에 아무래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거 같다.

다윤 역시 번호표를 받아왔다. 이랑보다는 조금 긴 802만 번대.

번호표를 준 건 이상한 도깨비였는데 긴 방망이를 들고 가끔씩 난동 부리는 이들이 머리를 깨트리고 있었다.

“근데 외형은 왜 바꾼 거야?”

“아줌마가 나를 알아서.”

“아줌마?”

“명계의 주인.”

이랑은 쯧. 혀를 찼다.

“영물이나 신은 이런 식의 일반 망자가 아닌 특별 망자로 분리돼서 일을 처리해. 현상 변질에 한복판에 있다 보니 그렇게 처리가 안 됐지만.”

“왜? 특별 망자면 뭐가 안 좋은 거야?”

“안 좋다기보다는… 특별 망자가 되면 명계의 주인을 반드시 마주쳐야 하거든. 좀 마주치지 좀 꺼려지는 신이라.”

“그래?”

그렇단 말이지…

“너는 왜 늦게 왔는데?”

“오다가 강의 악의 라는 걸 만났어. 상대하는 데 별로 안걸렸다 생각했는데, 시간축이 좀 다른가 봐.”

“...그걸 잡았다고?”

이랑은 놀란듯 다윤을 바라보았다.

다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는 초월자잖아. 어려운 건 없어.”

“...그렇긴 하다만 여기서는 초월의 힘 대부분이 봉인돼. 초월의 힘뿐만 아니라 다른 힘들도.”

명계는 망자들을 관리하는 죽은 자들의 땅.

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망자들은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능력을 봉인당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윤은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줄어든 힘.

“하지만 현상 변질로 줄어든 힘보다 여기가 오히려 더 많은데?”

“...그렇긴 하지만 강의 악의는 강해. 명계에서 타고난 존재는 명계의 가호를 받거든.”

“그 가호가 고등위의 초월자보다 더 위에 있어?”

“그렇진 않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육체를 잃고 망자의 상태로 이곳에 와있어. 게다가 행성도 무너지고 있는 중이지.”

어드벤처가 무너질수록 명계의 힘과 위세는 더욱 올라간다.

물론 완전히 무너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어느정도까지는 행성 자체의 위험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명계는 점점 더 강해졌다.

“으음… 확실히 위험할 수도 있긴 하겠네.”

“그렇지.”

“...뭐가 됐든 윤 씨가 이겼으면 좋겠다.

반드시 승리해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내 앞에 도착하길.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이랑과 다윤의 차례가 다가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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