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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6화 〉 [외전] 명계에서 (2) (316/318)

〈 316화 〉 [외전] 명계에서 (2)

* * *

***

“이름!”

“김다윤입니다.”

이랑은 번호 순서에 맞춰 진작에 들어갔고 다윤은 이제 막 심사를 받는 중이었다.

청색의 도깨비불을 머리에 단 붉은 털의 도깨비가 허공에 둥둥 뜬 스크롤을 마구 넘기며 이름을 찾는다.

마치 홀로그램 같은 형식.

과학과 현대의 미묘한 접점이라고 해야 하나.

“여깄네, 여깄어. 용사고… 김다윤…”

스크롤을 그대로 허공에서 뜯어낸 도깨비는 큼지막한 도장을 인주에 묻혀 꽈앙 찍었다.

붉은색의 저승의 인장이 표기된 스크롤.

「▼명계 」

그리고 초월의 힘이 깃든 종이다.

그는 스크롤을 이상한 펙스 기기 같은 곳에 집어넣고는 버튼을 눌렀다.

스크롤은 덜덜 걸리며 펙스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끝자락 틈 사이에서 희미한 불빛이 어딘가로 쏘아졌다.

“됐어. 끝났으니 다른 곳으로 가!”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 그것도 몰라?”

“네.”

쯧.

과로로 잔뜩 피로해진 붉은 도깨비는 책상 밑에 서랍을 열어 누런 종이를 던지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다음!”

띵동~ 8020010번 오세요.

다윤은 종이를 받고는 옆으로 물러났다.

다음 차례를 받는 도깨비.

더 질문하고 싶었지만 많이 피곤해 보여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부스럭.

“이건… 지도네.”

도깨비가 건넨 건 저승의 일부가 적힌 지도였다.

지금 이곳은 저승의 시작점인 ‘판별의 장’.

망자의 가장 기본적인 죄질을 판단하고 죄가 아주 무거운 이들을 쳐내는 일종의 거름막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본래의 판별의 장은 저승의 심판자 다섯이 한명씩 차례대로 죄를 판단했는데, 요새는 수백만 명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냥 인적만 확인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즉, 어지간한 죄를 지지 않는 한 그냥 넘어간다는 셈이다.

“다음은 ‘살생의 장’.”

살생을 얼마나 했는지, 또 왜 했는지를 판단하는 곳이다.

다윤은 식은땀을 흘렸다.

…너무 많이 죽였는데.

***

“죄인 이랑은 들으라.”

“네. 삼촌.”

삼촌이라 부르지 말거라!

살생의 장을 심판하는 저승의 신, 테베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랑은 어떻게든 정체를 숨기려 했지만 명계는 어드벤처와 긴밀히 연결된 장소.

아무리 숨긴다 한들 시스템으로 판별하는 정보까지 숨길 수 없었다.

이랑은 판별의 장에서 이미 정체를 들켰고 화들짝 놀란 도깨비에게 인도되어 곧장 살생의 장으로 오게 되었다.

“너는 신의 자식인 영물로 태어나 너무 많은 생물을 죽였구나. 또 이건 뭐냐?!”

그의 손에 들린 스크롤.

그 안에는 단순히 수백, 수천이 아닌 수십만이 이랑에 의해 죽어간 행적이 적혀 있었다.

비록 이랑이 죽이진 않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이랑이 가지고 있다.

“아, 그거 다른 세상인데.”

“뭐라?”

“삼촌도… 아니, 테베스님도 알고 계시지 않나요? 이곳 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거.”

테베스도 오랜 기간 명계에 머물며 초월의 길에 접어들었다.

굳이 파고들지 않는다면 모를 수 있겠다만 은연중에 이곳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게 됐을터.

테베스는 침음을 삼켰다.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너의 죄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의 세상의 많은 죄 없는 생물을 죽인 죄가 더 크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단순히 살아가는 게 아닌, 높은 초월자들이 아래 세상에 신처럼 군림하는 곳이었거든요.”

작은 생물로 시작해 부족을 꾸리고, 부족은 마을로, 마을은 도시로 발전해 최종적으로 가장 뛰어난 문명이 되는 게임.

이랑은 신과 같은 위치로 참여했기에 이를 저항할 수는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진행하는 것뿐이었어요. 음… 지금 생각하니 좀 그렇긴 하네요. 갑자기 저희를 NPC라 칭하는 녀석을 참교육 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튕겨져 가서 개고생하고 왔더니 걔가 김윤의 동료가 되어 있고 그래서 와서 한 번 더 참교육하고 또 어찌어찌 잘 살아오다 미친 관리자 여자 때문에 다 몰살─”

“...됐다! 네 죄를 심판하겠다.”

“정상 참작해 주시나요?”

“조용히 해라 좀!”

검은색 법복을 입은 테베스는 재판 망치를 들었다.

“죄인 이랑은 듣거라.”

“예이.”

“네 죄질은 가히 무거우나 현시점의 여러 상황과 명계의 주인 께서 너를 뵙기를 원하니, 살생의 장은 무죄! 를 선고한다.”

땅땅땅.

재판장을 울리는 법봉의 소리.

이랑은 여우 귀를 쫑긋 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뭘 뵙기를 원해요?”

“뭘 뵙기냐 이 자식아. 하스피님한테 들어야 할 말이 있지 않니?”

“싫은데요?”

“싫으면 지옥으로 떨어져라 이것아.”

“......”

***

“넌 무죄다.”

“네?”

다윤은 살생의 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말에 의문을 표했다.

이곳은 살생의 장.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인지에 대한 죄를 심판하는 곳.

다윤은 꽤나 많은 생물을 몬스터란 이유로 죽였고 이유가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이곳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자마자 무죄라니.

왜?

“죄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악으로 판단되는 행위. 아닙니까?”

“맞다. 그 악은 누가 정하나.”

악을 정한 다라.

다윤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전에 강의 악의란 녀석을 만난 적이 있다.

노인은 그가 악의 기준을 자신의 잣대로 정한다 했고 그로 인해 앞에 있는 심판자가 아닌 마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다윤이 정의하는 악은 이유에 있다.

악행이라 불릴만한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그러한 이유가 타당한지.

그 타당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지만 어찌 되었건 다윤은 현대의 기준과 초월자로서의 기준이 오묘하게 뒤섞여 있다.

악의 기준은 모두에게 다르다.

그리고 이곳은 명계다.

“...명계의 주인? 아니에요?”

“맞다. 위대한 명계의 주인, 하스티님이 정한 기준이 죄의 기준이다.”

“그러면…”

“하스티님의 기준하에 너는 살생의 장에서의 죄가 무겁지 않다. 그러니 너는 무죄다.”

땅땅땅.

법봉이 재판장을 울리고 다윤은 고개를 숙였다.

“음…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은 선의의 장이다. 얼마나 많은 선의를 베풀었는지에 대한 재판의 장이지.”

과연 너는 하스티님의 기준을 통과했을까?

테베스는 기대된다는 듯이 웃었고 다윤은 그저 머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거랑 좀 다른데.’

***

“콜트. 그대는 많은 선의를 베풀었구나.”

“그렇습니다!”

선의의 장.

명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새햐안 옷을 입은 갈색 머리의 여성이 기다란 테이블 위에 모습을 드러낸 체 콜트를 바라보았다.

그 아래로는 죄를 지은 망자들이 수레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 동력은 이곳의 환경과 물레방아 같은 조성을 꾸미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기기 장치들을 어려움이 있는 자들에게 베풀고, 가난한 자는 자신의 도시로 받아들였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닮은 로봇을…”

여성은 밝은 미소로 스크롤을 읽다 미간을 찌푸리며 콜트를 내려다보았다.

콜트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적막이 감도는 재판장.

“...해서 그대의 죄는 무겁지 않구나.”

“......감사합니다.”

“근데 로봇은 왜 만든 건가.”

“.......”

***

“이번에도요?”

“그렇다. 선의의 장에서의 그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선의의 장의 심판자는 법봉을 세 번 두드렸다.

그녀는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은 다윤을 향해 말했다.

“착각하지 말거라. 비록 하스티님의 뜻이 있다 한들 그대는 많은 선의를 베풀었다. 그 목록은 이렇게나 많다.”

심판자에 손에 들린 스크롤은 테이블을 넘어 아래까지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작은 선행부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친 모습까지.

다윤은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니 그대가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으로 가보거라.”

***

그렇게 몇 개의 장을 더 넘었을까.

어느새 다윤은 최종의 장에 도달해 있었다.

모든 명계의 주인이자 최종적으로 죄를 심판해 다음 생을 결정하는 초월자, 하스티.

「▲명계 」

명계 내에서는 그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으며 그 힘과 위치는 어드벤처 내에 여신과 마왕에 필적한다.

“그러니 좀 살려주지 않겠니.”

…그런 명계의 주인이 누군가의 발밑에 추하게 깔려 있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체 황금빛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남자.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군. 너희들은.”

“아…”

무명.

7등위의 초월자이자 윤 씨의 손에 의해 죽어 명계로 돌아간자.

무명이 명계에서도 밀리지 않고 제 힘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다윤은 반사적으로 월광의 검을 소환했다.

“.......”

「▲전승 」

“엣.”

그대로 사라지는 월광검.

다윤이 얼탄 표정을 짓자 무명이 손을 까딱였다.

“김다윤!”

“다윤님! 구하러 오셨군요!”

“...부 길드장님도 잡힌 거 같은데요.”

“.......”

“뭐야.”

길드원들이 죄다 잡혀 있다.

그리고 자신도 곧 잡힐 운명인가 보다.

다윤은 허공에 솟아오른 밧줄에 묶여 길드원 사이에 던져졌다.

“얌전히 있어라. 놈들이 일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 혹시 바깥 상황을 보실 수 있나요?”

“그래.”

“그렇다면!”

뚜벅.

무명은 으엑! 하며 밀려나는 하스티를 뒤로하곤 천천히 걸어왔다.

그 당시 싸울 때보다도 훨씬 강한 것 같다.

‘...윤 씨는 어떻게 이긴 거지?’

황금빛의 눈이 다윤을 노려본다.

“맞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나?”

“...잘 되게 기도는 할 수 있겠죠!”

“기도.”

의미 없는 짓이군.

무명은 몸을 돌려 다시 명계의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하스티가 하악! 거렸지만 무시한 체 말했다.

“기도 따위는 의미 없다. 이 싸움은 놈들이 이길 테니까.”

“어떻게 확신하시죠?”

“이미 한번 당해봤거든.”

“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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