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7화 〉 [외전] 귀환 (317/318)

〈 317화 〉 [외전] 귀환

* * *

***

모든 싸움이 끝이 났다.

관리자와의 최후의 혈투는 김윤과 그 일행의 승리로 막을 내렸으며 죽거나 파괴되었던 행성은 전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페루아는 관리자와 이제는 제약이 없는 특이점을 이용해 수복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지구로 잠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구가 그립기도 했고.

“다녀와 윤아.”

“금방 올게.”

하페루아는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푸르른 게이트를 열었다.

만약 이게 소설이라면 이제 쌍방향 게이트가 열리며 지구는 헌터와 같은 세계가 되겠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하지 마. 골치 아파져.”

이제 치열한 머리싸움이나 목숨을 건 괴물과의 싸움은 사절이다.

진짜 힐링 라이프를 즐기러 가야지.

“아, 참고로 말할 게 있다.”

“응?”

하페루아는 무너진 산을 재건하다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길 한번 한 번에 다시금 재건되는 자연.

“지구에도 신이 있어. 초월자는 아닌데 전 관리자한테 강제로 계약을 맺어진 녀석.”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산은 푸른 하늘과 함께 세계를 비추었다.

“강해?”

설마 아직도 넘어야 할 적이 남아 있는 건가?

더 싸우는 건 진짜 싫은데.

하페는 묘한 웃음을 짓다 킥킥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냥, 귀여운 녀석이야. 가서 잘 말하면 문제없을 거야.”

“...? 그래.”

뭔데 그래.

***

지구의 태초부터는 하나의 신이 존재했다.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자 천지의 대리자, 태초의 인(人), 지구를 다스리는 유일 신.

에고(EGO).

비록 지구 내에서 그를 아는 자는 몇 없지만 그의 위상은 그 어떠한 자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위대함은 하나의 행성, 하나의 차원에서만 비롯된 법.

에고는 태초부터 강하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도 없었기에 처음 느껴보는 ‘약자’라는 신분에 몹시 당황했다.

초월자라는 거대한 벽을 만난 에고는 한순간에 쭈그러 들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지구의 생명체 반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에고는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깊게 체감했고 나름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전히 초월이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오래 살아온 만큼 그녀와 버금가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엣.]

그러나 그의 생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지구의 생명체가 돌아온 것이다.

[잉?]

자신을 옭매던 계약과 함께.

관리자가 막아놓은 초월의 길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고 에고는 어마어마한 힘을 체감하며 순식간에 초월의 경지에 들어섰다.

「▲지구 」

이 힘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만 그때의 관리자와 비교하면…

‘아무튼 강해!’

에고는 강렬한 감정을 느끼며 처음으로 지구의 독방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발을 내밀었다.

이제 자신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

드디어 이 고난과 수모의 시간을 겪고 ‘지구의 유일신’ 에고로 돌아갈 순간이다!

그래야 했다.

“음… 안녕?”

[……]

또 강하잖아…

***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힘의 파동이다.

과거에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힘.

나는 그곳으로 곧장 향했고 그곳에는 청아한 빛 한 덩이가 흑흑 거리며 울고 있었다.

빛의 방울방울들이 깜깜한 독방에 뚝뚝 떨어진다.

나는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뭘 했나.’

내가 한 거 라곤 그저 여길 찾아온 것 밖에 없는데.

딱히 힘을 뿌리거나 초월의 힘을 과시하지도 않았고 생각해 보면 도리어 저 지구의 신이라는 녀석을 구해준 셈 아닌가.

“야.”

[히익…! 때리지 마세요!]

“...안 때렸어.”

빛 덩이는 방구석으로 후다닥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덜덜 떠는 빛 덩이.

녀석에게 다가가자 떨림이 더 심해진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녀석이 당황한 듯 고개를 획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하페가 귀엽다는 말이 이 말이었군.

나는 피식 웃으며 머리 부분을 마구 헝클었다.

“다 끝났다.”

[...뭘요?]

“관리자. 그거 죽었다고.”

히끅. 녀석이 숨을 삼킨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저, 정말요?]

“그럼. 너 계약도 풀리고 사람들도 다 돌아왔잖아.”

[그, 그렇긴 한데…]

관리자는 몸을 바꾸거나 상황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녀석이라면 이것조차 녀석을 골리기 위한 장난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 금화 하나를 만들어 건네주었다.

하페의 문양이 새겨진 금화.

녀석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건…]

“하페루아. 알지?”

[아, 알죠. 저한테 막, 발길질하고.]

“.......”

뭔 짓을 한 거야…

괜히 보여줬나.

잠깐 머뭇거리던 에고는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하,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같은 적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네, 착한 사람이에요.]

“...내가 그 착한 사람의 연인이야.”

[정말요?]

“그래.”

녀석은 완전히 모습을 돌렸다.

이제 보니 제법 힘이 있어 보이는 녀석.

지구가 생길 때부터 존재했다고 했으니, 그 힘의 무게 자체는 무시 못 하겠지.

녀석이 초월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쟁 대상 없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기에 더 강해질 이유를 찾지 못한 것.

만일 초월의 경지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힌트가 있었다면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진 않았겠지.

“부탁이 있어. 좀 들어줄 수 있니?”

***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서 와 얼른 씻고 밥 먹자.”

“이번에 일 잘됐다며? 아주 아들 덕에 호강하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반겨주는 부모님.

누군가에겐 아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들의 기억은 잠시 봉인해 두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건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가상 현실 게임, 월드 어드벤처가 종료하고 5년이 지난 후.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하다 갑자기 빨려 들어간 그때로.

시간은 상대적이고 내 힘으로도 충분하지만 지구의 신이자 새로운 초월자인 에고의 힘을 빌려 시간대를 돌렸다.

자신의 땅을 제멋대로 바꾸는 일은 여태껏 종속되어 있었던 녀석을 또 한번 종속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동안 지구의 신으로서 살아온 나름의 배려를 해준 셈이다.

“별거 아닌데요 뭘.”

편의점 알바는 그만두었다.

정확히는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다 잘 된 걸로, 그렇게 정한 거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까.’

수많은 음식이 차려진 탁자.

그중 가장 먹고 싶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된장찌개를 한입 떠먹었다.

“맛있지? 너 온다고 네 엄마가 신경 썼다.”

“...네. 맛있네요.”

여태껏 실력이 좋은 수많은 요리사들의 음식을 먹었지만 역시 집밥 만한게 없다.

한입 더 떠먹었다.

맛있네.

진짜 맛있어.

***

“오빠!”

“왜.”

여태껏 밥상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던 김지윤이 내 방을 찾아왔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뭐야? 도대체. 왜 다 기억 못 하는 건데!”

“조용히 좀 해.”

김지윤은 내 여동생이고 대부분의 기억을 봉인당한 사람에 속하지 않은 ‘예외’다.

정확히는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에고가 사용한 ‘단체 기억 봉인’은 초월의 힘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통하지 않았다.

문제는 고위신이든 특수한 초월자를 만나지 않더라도 통합 서버에 들어온 사람들은 초월의 힘을 직간접적으로 겪는다는 점이다.

하려면 내가 해야 한다는데, 그들의 노력과 가치를 없던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뭐해서 일단은 그냥 두기로 했다.

“오빠는 기억하고 있는 거지. 그치?”

“.......”

“대답!”

“어허. 이게 어디서 큰소리를 질러.”

“아악! 나 지금 개 답답하니까 설명 좀 해 달라고!”

김지윤이 나를 향해 마구 달려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염력을 이용해 녀석을 살짝 밀었다.

“잉. 뭐야.”

“아, 실수.”

만일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뭐에 걸렸나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 거렸을 테지만 녀석은 게임 속에서 구를 대로 구른 녀석.

어렵진 않더라도 통합 서버의 입장은 한 녀석이니, 방금 전의 이질감은 당연히 눈치챌 수밖에 없다.

“왜 능력이 여기서도… 있어? 설마, 오빠가 다 한짓이야?”

“내가 뭘 어떻게 해.”

“그럼 방금 건 뭔데?”

“...에휴. 이래서 내가.”

“네가 뭐.”

“아니다~”

나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깜깜한 도시, 빌라 너머로 보이는 자그마한 도시.

저들 중 기억이 있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

아마 정신 보호 같은 특성이 있는 자일수록 기억이 또렷하겠지.

깔끔히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만…

‘뭐, 그냥 놔둘까.’

기억을 봉인한 건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통합 서버의 마지막이 오만 명인가 그쯤 되었을라나.

그들 전부가 기억이 있다 한들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기란 어렵겠지.

그래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곧 있으면 다시 열릴 테니까.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용해 먹기 위해서가 아닌, 순수히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은 유저들을 위해서.

‘...이용해 먹는 건 맞으려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씩씩 거리고 있는 김지윤.

나는 녀석의 뒤로 의자 하나를 만들고 가볍게 밀었다.

주르륵 의자에 앉는 김지윤.

녀석은 당황해하면서도 묘하게 기대되는 듯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 넌 뭐하고 지냈냐. 얘기나 좀 들어보자.”

평화로운 밤이 시간을 타고 유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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