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화 〉 [외전] 귀환 (2)
* * *
***
난 정령 술사였어. 정령을 다뤘지.
정령은 제멋대로여서 어떻게 다루는지조차 의문이었어.
정령을 다스리며 하면 날뛰고, 정령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자기가 우위에 서려 했어.
능력도 뭣도 없는 내가 그리될 수 있었던 건 고유 특성 때문이야.
‘정령 친화도.’
레전드리 등급.
이게 없었으면 아마 통합 서버는 커녕 마을의 방 한구석에서 빌빌대고 있었을 거야.
노력했어. 그리고 나아갔지.
마침내 악마를 이겨내고 통합 서버에 입장했을 때가 생각나.
그때는 엄청 기뻤는데.
친구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넘어오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 같이 올거 라고 생각.
“정령사? 무슨 정령인데?”
흥미롭게 듣고 있던 김윤. 오빠는 내 말을 끊고 말했다.
기껏 열심히 말해주고 있는데…!
“...물의 정령.”
이제는 볼 수 없는.
나의 친구.
김지윤은 괜히 우울한 기분이 들어 갑자기 생겨난 의자에 몸을 기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냥 하다 보니 살고, 때로는 목숨이 위험한 적도 있었으며 마지막은 한번 죽기도 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명계라는 이름을 가진 지옥.
간신히 그곳을 벗어나 다시 환생하나 싶더니만 지구로 돌아왔다.
제힘을 모두 잃은 체.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겠지. 힘들긴 했어도 좋았는데…”
“왜 볼 수 없어.”
“그거야. 다 힘을 잃었으니… 까?”
가만 그러면 오빠는 왜 힘을 안 잃고 저렇게 여유로운 자세인 거지?
부모님은 왜 오빠가 일이 잘 된 걸로 되어 있는 거고?
정말 모든 걸 꾸며서?
하지만 오빠가 그런 짓을 저지를 거 같지는 않다.
그보다 좀 더 게이머 틱한 무언가가…
“...혹시 오빠가 마왕 잡았어?”
마왕을 잡는다.
지겹도록 보여주던 메인 퀘스트의 마지막.
마왕을 잡고 세계를 구원한다.
비록 마왕이나 악마의 악행은 두 눈으로 본 적이 없었지만 마는 세계의 적이었고 김지윤 역시 많은 악마를 죽여왔다.
그리고 뻔한 얘기이지 않은가.
이세계로 이동한 사람이 용사가 되어 마왕을 잡고 다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만일 오빠가 그 이야기의 용사라면 힘을 가지고 귀환한 것도 이해 못 할 만한 일은 아니다.
김윤은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지.”
“...진짜? 진짜 진짜 잡았다고?”
“한 번 뵙긴 해야 하는데 말이야.”
“?”
관리자와의 싸움을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인어른을 베다니.
나도 참 미친놈이긴 했다.
물론 장인어른(분신) 이긴 했지만.
“아무튼. 물의 정령을 만나고 싶다고?”
“어, 어? 그렇긴 한데 오빠도 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딱히 정령사도 아니면서.”
게다가 같은 정령사라고 해도 김지윤이 계약한 정령을 불러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령은 상위 정령의 부탁을 받더라도 종처럼 부리진 못하니까.
‘정령왕이라면 모를까.’
김윤은 김지윤의 말을 듣고 푸하하 웃었다.
한참을 끅끅 웃는 김윤의 모습에 김지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뭔데! 웃지만 말고!”
“흐… 그래. 나는 정령사가 아니긴 하지.”
정령사라 칭하기도,
마법사라 칭하기도,
악마, 천사, 마검사, 마투사, 궁수, 창사, 총사….
너무 많은시간동안 능력을 담아 수많은 직업과 힘을 가지고 있는.
더 이상 무어라 칭하기도 어려운 존재.
8등위의 초월자, 김윤은 손을 들고 푸르른 게이트를 열었다.
“왜 못 부르겠어. 아리아.”
짧은 부름과 푸른 게이트의 문은 열고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아리아가 튀어나왔다.
“이그네아. 내가 몇 번이고 말했는데 좀 구석에 박혀…? 김윤님?”
물의 결정과도 같은 푸른 머릿결과 푸른 눈.
화려한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작은 정령.
전과 다르게 물의 왕관을 쓰고 있는 아리아는 갑작스레 이동된 자신을 보고 얼떨떨한 모습을 취하다 이내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오. 여기가 김윤님의 고향이군요?”
“그래. 잘 지냈어?”
“하페루아님 덕분에 리벤디아는 늘 평안합니다.”
아리아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그네아가 말썽을 부리는 모양이야.”
“아. 정신을 차린 줄 알았는데 혼자 시간과 정신의 방에 틀어박히더니 다시 이상해져서 돌아왔더라고요. 네메린느가 참교육한다고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 그보다… 너 뭐 하냐.”
잠깐 아리아와 대화하고 있는 사이, 김지윤은 의자 뒤로 숨어 빼꼼히 아리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리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김지윤은 다시 의자 뒤로 숨었다.
“아, 아, 아. 아니. 어떻게 정려오아오아앙. 만나. 어?”
“뭐래. 말 똑바로 해.”
“아니! 오빠가 어떻게 정령왕을 막! 부를 수 있어! 정령사도 아닌. 데에!”
김지윤은 삑 소리를 내며 발작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진동기가 달린 것 마냥 덜덜 떨렸다.
공포라기보다는 기대와 흥분에 가까운 목소리.
녀석은 벌벌 떨며 손을 내밀었다.
“호, 혹시 아, 악수 한 번만.”
김지윤의 악수 요청에 아리아는 나를 한번 쳐다본다.
“내 친 여동생이야.”
“아, 혈족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물의 정령왕 아리아입니다.”
“네, 네네네, 네네. 그냥 정령 술사 김지윤입니다아…”
“정령 술사셨군요.”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보다 훨씬 큰 손을 맞잡았다.
차갑지만 동시에 따스한 물의 손길이 김지윤을 훑었다.
김지윤은 감전되는 듯이 파르르 떨었다.
왜 저래 진짜.
***
“진정 좀 됐니.”
“으어… 어, 어.”
김지윤은 무려 10분간의 헤롱헤롱함 끝에 정신을 차렸다.
“힘이 사라진 상태에서 거대한 힘은 정신 상태를 망가트릴 수 있습니다.”
“내가 막고 있는데?”
아리아는 2등위 이상의 초월자.
평범한 사람에게 초월자란 몰려오는 해일 앞에 서있는 작은 생명체와 같다.
그 여파의 차이를 절대 견딜 수 없지만 내가 그 힘의 중화와 안정화를 해주고 있었다.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같은 물의 정령을 계약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빛의 정령이면 몰라도 물의 정령에 관해서는 아리아가 조금 더 잘 알 테니.
아리아는 제 몸을 키워 김지윤과 같은 크기로 맞추었다.
김지윤은 어어 거리며 조금씩 물러나지만 이내 방의 벽에 등이 닿았다.
“계약한 정령을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 어. 네….”
“이름이 뭐죠? 원하신다면 제 권한으로 불러오겠습니다.”
순간 김지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날 한번 바라봤다.
정말 되냐는 듯한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쁜 짓만 안 하면 상관은 없어.”
“...그러면 포코에요!”
“......오. 상급 정령과 계약했군요. 알겠습니다.”
아리아는 내 손을 붙잡았다.
어드벤처라면 몰라도 이곳은 다른 차원이기에 아리아의 힘만으로 대상을 불러올 수 없다.
아리아는 내 힘을 경유하듯 이용해 게이트 너머에 있는 포코라는 물의 정령을 불러왔다.
멍멍이네.
“포코!”
와아앙!
“으앗!”
포코는 자신의 친구를 보더니 순식간에 달려들어 김지윤의 얼굴을 핥았다.
좋아 보이네.
녀석은 얼굴이 마구 핥아지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리아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여긴 마력이 거의 없는 세계. 상급 정령 하나만으로 큰 여파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걱정 마.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위험하면 내가 막으면 되고.”
“...그렇군요. 그보다 이곳을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리아는 창문 너머로 향하며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둘러보겠습니다.
***
“야 넌 좋겠다 야.”
“응? 뭘?”
강아지 형태의 물의 정령을 껴안으며 헤헤 웃는 김지윤.
나는 마치 대단한 비밀을 알려주듯 말했다.
“수능 날이 얼마 안 남았을걸. 두 달인가 세 달인가.”
뚝.
순간 헤헤 웃던 녀석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수능.
고3인 녀석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시험.
“망했다.”
“설마 잊고 있었던 거니.”
일전에 내가 망령 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수능 걱정을 하던 애인데.
‘그때는 수십 년 전이라 그런가?’
시간축이 달라서 김지윤이 얼마만큼의 인생을 살아온 지는 잘 모른다.
하페한테 확인해 보라 하면 알 수 있겠다만 안 그래도 재건 일로 바쁜데 일을 시키기도 뭐 하고.
그래도 적어도 7~8년 가까이는 살아오지 않았을까?
“미쳤지 미쳤어. 그걸 다시 준비해야 해? 아니, 다시는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원한다면 좀 미뤄줄 수는 있어.”
“...그게 가능해?”
김지윤의 두 눈이 가늘게 떠진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되게 재밌다.
이런 일상들이.
“그럼. 정령왕도 부르는 마당에 뭔들 못하겠니.”
8등위의 초월자.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생명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뛰어넘는다.
마치 하페가 바스러진 행성과 시공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난 아직도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두 가지만 알고 있으면 돼.”
정령의 능력은 절대 외부로 사용하지 말고.
네가 최대한 해보고 도저히 안될 때만 부탁. 부탁은 가끔씩만.
“오케이?”
“재수 없어.”
“.......”
이게 기껏 생각해 줬더니…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