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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4화 (4/407)

〈 4화 〉 #2. Lv.10 첫번째 진화!

기온이 내려간 걸 보니 완전히 밤이 된 모양. 밤이 되자 열 감지가 더욱더 또렷해졌다. 심지어 활동하는 동물들도 더 많아진 것 같다.

'야행성…'

동물들은 야행성이 많다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기척 감지와 열 감지가 수많은 동물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중에는 낮에 잠들어 있던 커다란 동물들도 있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이길 수 있는 녀석들은 아니다. 은신을 활성화하고 기척 감지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더니 금세 멀어져갔다.

'휴.'

십년감수.

만약 호기심에 건드리기만 했어도 지금의 내게는 치명상이었으리라. 이젠 나뭇잎을 먹어도 거의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스템도 나뭇잎 정도로는 일일이 메시지를 출력하지 않게 됐다.

역시 이제부터는 사냥을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그 전에 잠시 스스로 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무기는 뭐가 있을까? 굳이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건 촉수뿐이었다. 그 외에는 몸으로 덮쳐 질식시키는 것뿐.

'지금 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은신으로 속이고 유인해서 한번에 덮친다. 그게 내 황금의 원패턴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들쥐를 세 마리나 먹어 치우고 포식은 5레벨이 됐지만, 여전히 레벨이 오를 기미는 없다.

마치 게임처럼 느껴진다.

고비라고 해야 할까? 특정 레벨에서만 이상하게 요구 경험치가 증가하는 구간이 있다. 아마 10레벨이 그런 모양. 지금까지의 페이스라면 들쥐 3마리면 레벨업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니면 뭔가 다른 조건이 있는 걸까?

예를 들어, 보스. 더 큰 녀석을 먹어 치우라든가.

하지만 모험하기는 싫다. 처음 들쥐를 잡았을 때 얼마나 위험천만한 싸움을 했던가?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 같다. 뭔가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청설모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청설모를 잡았음에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역시 무언가 조건이 있는 것 같다.

그 증거로 시스템이 포만감만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경험치를 뚝 떼어놓은 걸 보니 내 경험치는 이미 최대치에 도달한 것 같다.

'조건… 짐작 가는 건 있는데.'

[레벨 10 달성 조건 : 3kg 이상의 동물을 섭취할 것]

의외로 이번엔 순순히 알려줬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조건에 있지도 않은 눈쌀이 찌푸려졌다. 3kg이면 쥐나 청설모랑은 격이 다를 정도로 무거운 녀석이라는 뜻이었으니.

'멧돼지. 너구리. 삵…'

언뜻 떠오르는 동물들. 난도가 너무 높다. 높은 걸 떠나서 불가능하다. 단번에 찢어져서 쟈끄의 패시브처럼 되고 말리라. 당연히 부활은 안 할테고.

도무지 이거다 싶은 만만한 녀석이 떠오르질 않는다. 고양이 들개… 기타 등등 전부 무리였다.

'망할…'

야생 동물이라는 게 이렇게 강한 애들이었나? 아마 도시의 인프라 없이 자연 속에 살았다면 나 같은 건 금세 도태되고 말았을 거다. 좀 커다란 쥐 같은 건 없나? 문득 뉴트리아를 떠올렸지만, 어떤 빨간 가면 아재 뉴튜버의 영상이 떠올라 그만두기로 했다.

'걔네는 잘못하다간 사람도 손가락이 나간다는데.'

게다가 산이 아니라 하천에 살 테니까 찾을 수도 없다.

뉴트리아는 포기다. 손발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가능하면 이빨이 날카롭지 않으면서 멧돼지처럼 힘이 세지도 않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열 감지와 기척 감지를 사용했다. 여러 동물들이 포착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녀석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없는 걸까? 포기하려고 할 때, 겨우겨우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척 봐도 3kg은 넘을 듯한 크기. 늘어진 몸. 느릿하고 손발이 없고 이빨도 없다.

심지어 녀석은 경계심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지 내가 지척까지 다가왔는데도 경계하지 않는다. 혹시나 해 지근거리에서 기척 감지를 한 번 더 사용해 녀석의 전체적인 외형을 훑었지만, 이렇게 생긴 녀석은 달리 없다.

'세상천지 슬라임보다 만만한 먹이가 어디 있겠어?'

크고 느릿하고 약하고… 정말 최고의 먹잇감이다. 다만, 문제라면 녀석이 나보다 조금 더 커 보인다는 점이었다. 얘는 래서 슬라임이 아닌 걸까?

그럼 조금 위험할 것 같기도. 촉수로 바닥을 쓸어 적당한 돌멩이 하나를 쥐었다. 어느새 3레벨씩이나 된 촉수도 조금은 쓸만해졌다. 그대로 휙 던지니 놈은 그게 먹이인 줄 알고 냅다 몸을 말았다. 하지만 어림없지. 제아무리 슬라임이라고 해도 돌멩이를 녹일 순 없다. 녀석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꾸륵거리다 홱 뱉어냈다.

'이거지.'

이번엔 돌이 아니라 흙을 뿌렸다. 다른 동물이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놈은 슬라임. 오감 중에서 촉감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나처럼 꾀를 쓰지도 못하는 진짜 단세포 생물. 닿지 않으면 감지할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던지는 족족 흙을 모두 집어삼키고 뱉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흙에 반쯤 뒤섞인 녀석이 무기력해져 축 늘어지고 말았다.

거기에 방심하지 않고 몇 번이고 확인한 끝에야 겉에서부터 녀석을 뜯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동족상잔이라고 손가락질할 지도 모른다. 어떻게 같은 종족을 먹을 수 있냐고 야만적이라고.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어우~ 쫄깃한 것 봐.'

단언컨대 나보다 더 약한 녀석을 먹는 건 자연의 섭리다!

[슬라임을 섭취하였습니다.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Lv.10 달성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9 → Lv.10]

[스테이터스가 추가 개방됩니다]

[촉수(F)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촉수(F) Lv.3 → 촉수(F) Lv.4]

[포식(F) Lv.5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5 → 포식(F) Lv.6]

길었던 여정. 돌이켜보면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쥐에게 살해당할 뻔하고 나뭇잎이나 곤충을 주워 먹으면서 연명하는 한심한 슬라임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달라지리라.

진화(進化).

진화론에서 진화는 A보다 우월한 B라는 우월종이 되는 게 아니라 자연 선택에 의해 환경에 적응한 종이 살아남은 거라고 말한다.

호랑이가 고양이보다 우월한 게 아니며, 공룡보다 새가 우월한 게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은 틀렸노라고! 자연 선택설은 틀렸노라고!

적어도 판타지에서 진화란, 우월종이 되는 것이 맞다고!

[획득 가능 스킬 목록]

1. 촉수(F)

41. 미약한 시력(F)

마침내 미약한 시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눈 앞이 조금 트였다. 형태만 가까스로 볼 수 있는 정도였지만, 앞이 보인다.

'드디어…!'

감동의 물결이 나를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진화 가능 목록] 또한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열쇠는 시각이었던 것.

다만, 메시지 창이라도 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건 알 수 없는… 형태를 짐작할 수도 없고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

촉수를 가져다 대봐도 아무것도 없다는 듯 통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자, 머릿속에 [획득 가능 스킬 목록]이 그랬던 것처럼, 시각도 음성도 아닌 메시지가 떠오른다.

[진화 가능 목록]

1. 슬라임

2. 포이즌 슬라임

3. 부정형 점액체

어느새 눈앞에 [진화 가능 목록]… 아니, 형언할 수 없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도대체 뭐였던 거지? 아무튼 떠오른 메시지는 세 개. 1번과 2번은 알겠는데, 3번은 도대체 뭘 뜻하는 걸까? 부정형 점액체라는 게 슬라임 아닌가?

'생각해보니까.'

획득한 관찰을 어떻게 사용할 수 없나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글을 관찰할 방법이 있겠나 싶어 포기하려 한 순간.

[슬라임 : 지능이 없고 나약하고 아둔한 생물. 닿는 것을 녹여버릴 수 있다]

바라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미 Lv.2의 숙련도를 뽐내는 경력있는 신입, 관찰 스킬이 빛을 발한 것. 역시 사기스킬이었다.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점. 아무래도 정말 쓸모 있어 지려면 숙련도가 더 올라야 하지 않을까.

'추가 개방됐다는 스테이터스나 좀 볼까?'

[래서 슬라임 Lv.10] [EXP 획득 불가]

경험치 획득 불가라니… 아마 래서 슬라임으로 있을 생각 하지 말고 얼른 진화나 하라고 재촉하는 모양.

'그래. 진화 해야지. 어디 좀 볼까?'

[포이즌 슬라임 : 지능이 없고 나약하고 아둔한 생물. 닿는 것을 독으로 녹여버릴 수 있다]

슬라임이 그냥 산성이라면 포이즌 슬라임은 독 + 산성이라는 느낌일까? 정말 짤막하게 '독으로'라는 문구가 하나 추가됐을 뿐 크게 끌리진 않는다. 굳이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그나마 포이즌 슬라임이 낫겠지만.

마지막으로 부정형 점액체라는 것에 관찰을 사용했다.

[부정형 점액체 : 지능이 없고 나약한 생물. 닿는 것을 녹여버릴 수 있다]

셋 다 비슷한 문구. 아무래도 그냥 슬라임보다는 좀 레어해 보이는 포이즌 슬라임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부정형 점액체에 아둔하다는 문구가 빠져있는 걸로 봐서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는 했다.

'그냥 슬라임보다는 역시 포이즌이나 부정형 점액체가 좋을 텐데.'

무언가 번뜩이는 끌림에 '어?' 하는 순간, 촉수가 멋대로 움직이고 말았다.

꾹-

[부정형 점액체로 진화를 시작합니다]

'아니! 나 아직 선택 안 했다고!'

―의식이 가라앉았다.

***

"그래그래. 은하가 많이 힘들었다고?"

"그렇다니까요? 선배는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혀를 베 내미는 후배를 향해 딱밤을 날려준 선배는 팀장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팀장님. 이 녀석. 정신 교육이라도 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풀어져도 너무 풀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 팀 '유일한' 홍일점이었잖아. 대우 좀 해줘."

"홍일점은요. 이제 우리 팀도 아닌데요."

"선배는 진짜 그러니까 평생 모솔이죠!"

"이게 진짜!"

선배와 후배가 드잡이질하는 사이 팀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너네 어제 지리산 갔었잖아. 뭐라도 건졌어?"

"못 찾았습니다. 지리산이 오죽 넓어야죠. 일일이 다 뒤질 수 있는 크깁니까?"

"하기야 그건 그래. 그래서 은하랑 보낸건데."

"이 녀석은 찾으란 건 못 찾고 슬라임만 보고 있더라고요."

"슬라임을? 왜?"

팀장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후배, 은하는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아니! 진짜 특수종 슬라임이었다니까요! 선배는 뭐 알지도 못하면서!"

"이게 진짜 날 잡고 교육을 하든가 해야지!"

"어허. 우택아. 그래. 우리 은하가 뭘 봤다고?"

"그러니까요…"

설명을 마친 은하에게 팀장이 그만 물러가라 말하자 팀장님도 안 믿어주는 거냐며 볼을 부풀리며 나갔고 곧 우택과 팀장만이 남게 되었다.

"저게… 휴.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교육을 못 시켜서…"

"됐어. 저 어린 애가 벌써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냐."

"그래도 정도가 있습니다."

"그래. 그건 너 알아서 하고. 다른 팀원들도 데리고 몇 번 더 가봐라."

"외람되지만 팀장님. 고작해야 익명 제보 하나에 너무 신경쓰시는 것 아닙니까?"

"그냥 익명 제보였으면 좋겠는데, 그 익명 제보가 고원에서 보낸 것 같다고 하더라."

"고원이요? '드높은 고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고원이 우리한테 넌지시 흘려서 넘긴 것 같다고 하던데."

"아니, 고원이 왜요? 자기네들이 하면 될 일을…"

"머릿수가 적어서 그렇겠지. 노친네들이 귀찮다고 우리한테 돌렸을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고생 좀 하자."

"알겠습니다."

***

'잘 잤다.'

슬라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잠에 들었다. 피로가 없다고는 해도 잘 자고 일어났을 때의 상쾌함에 오랜만에 푹 쉰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진화했던 것 같은데…'

[미약한 육감(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미약한 육감(F) Lv.1 → 미약한 육감(F) Lv.2]

'……?'

없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마지막에 멋대로 선택지를 고른 게 육감이었다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에 뒷목이 뻐근해져왔다.

시발, 내가 아는 판타지는 이렇지 않았다고… 개만도 못한 슬라임 라이프.

[진화의 영향으로 일부 스킬이 강화 및 추가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보유 스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스템의 알림에 반사적으로 보유 스킬을 확인했다.

[보유 스킬]

포식(F) Lv.6, 촉수(F) Lv.4, 열 감지(F) Lv.4, 약한 재생(E) Lv.4, 미약한 은신(F) Lv.5, 관찰(F) Lv.4, 기척 감지(F) Lv.2, 미약한 청각(F) Lv.3, 미약한 육감(F) Lv.2, 미약한 시각(F) Lv.2, 물리피해 감소(E) Lv.1

[남은 스킬 포인트 1]

무려 10가지나 되는 스킬들. 언제 이렇게 얻었지?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알게 모르게 스킬들의 전체적인 레벨이 상승해 있었고, 심지어 전혀 모르는 스킬이나 급격히 성장한 스킬이 눈에 띄었다.

먼저 약한 재생(E) Lv.4.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스킬은 미약한 재생(F) Lv.2이었는데, 등급이 올라간 것도 모자라 레벨까지 상승해있었다.

'진화 특전? 아니면 이 종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본 스킬 같은 건가?'

포식이나 관찰 같은 스킬도 제법 성장했다. 무엇보다 물리피해 감소(E) Lv.1라는 스킬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스킬이다.

이름만봐도 효과는 알 수 있다. 전투에 관련된 스킬이 부족한 나에게 데미지를 줄여주는 스킬은 불감청 고소원.

나뭇잎을 먹어보며 느낀 건데 진화 전과 비교해 오히려 몸집은 줄어든 것 같다. 심지어 점액체라는 이름에 걸맞게 끈적한 느낌이었다. 수분이 적어졌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부정형 점액체 Lv.1] [EXP 0/342]

진화했다고 레벨까지 초기화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리고 342라니…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하나 사냥해보면 좀 감이 잡힐 것 같은데.

마침 진화하면서 제법 시간이 흘렀는지 배도 꺼져있다. 곧바로 두 감지를 사용해 먹이로 삼을 만한 녀석을 찾아 나섰다. 크기가 줄어들어 민첩해졌지만, 막상 다가가려니 겁이 났는데, 하필이면 놈이 닭이었다.

'…쟤는 안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진화했다곤 해도 무려 닭. 치킨을 생각하면 안 된다. 청설모도 기껏해야 300g이 나갈까 말까 하는데 닭은 큰 놈은 1kg이 넘게 나가기도 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야생닭이니 그렇게까지 크진 않겠지만 체면적이 줄어든 지금 내가 싸우기엔 불리하다.

도망치려 했지만 문제는 놈이 더 빨랐다는 것.

꼬꼬댁 홰를 치며 다가오는 닭. 뒤늦게 은신을 사용했지만, 효과가 미약하다. 이미 날 발견한 상대에겐 그다지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있는 힘껏 도망쳐도 속도에서 너무 크게 차이가 난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뒤뚱뒤뚱 뛰어오는 야생 닭을 한낱 슬라임 비스름한 것인 내가 떨쳐내기엔 무리였다. 곧 녀석의 부리가 나를 쪼려 움직였다.

'무친! 뭐가 저렇게 날카로워?'

새가 공룡의 후손이라더니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인 모양. 닭의 부리가 영화 속에서나 보던 랩터의 발톱과 흡사해보였다. 금세 따라잡혀 그 발톱 같은 부리가 사정없이 나를 쪼았다.

'……?'

쪼았다. 쪼았는데…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꼬꼬?"

의아해하는 녀석과 나.

이거, 의외로 해볼 만 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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