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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5화 (5/407)

〈 5화 〉 #3. 닭과의 한 판 승부!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잘 생각해보면 E등급 스킬씩이나 가지고 있는데 고작 닭 한 마리와 싸우지 못할 리 없다. 나중에 이 망할 세계관에서 진짜 괴물들이 어떤지 생각하면…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내게 쉬운 상대는 아니다.

조심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꼬꼬꼬꼬!"

녀석 또한 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인지 경계해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속도로는 이길 수 없다. 녀석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발을 묶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 조심스레 녀석의 배후로 촉수를 늘어뜨렸다.

먼저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닭은 싸움을 받아주겠단 듯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견제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맞고 나서야 맞았단 걸 알 수 있었다. 미약한 시력으로는 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

'견딜 만 해.'

물리피해 감소와 더불어 E등급으로 상승한 약한 재생이 찢어진 몸을 빠르게 복구했다. 한 두 번 공격하는 걸로는 날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닭은 스탠스를 낮추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쏟았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둔 촉수가 녀석의 발목을 올가미처럼 묶을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 이제 당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꼬꼬댁! 꼬꼬꼬!"

놈은 가소롭다는 듯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곤 제법 떨어진 곳에 유유히 착지한다. 설마 닭 주제에 날 수 있다는 건 계산 밖이었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야생닭은 조금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리 떠올리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심지어 녀석은 내가 촉수를 늘어뜨리고 있단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곧바로 관찰을 사용했다.

[청계 724g : 닭의 시야각은 360도에 가깝다]

360도라면 전방위를 볼 수 있다는 뜻. 사실상 녀석에게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기습도 불가능. 속도도 부족하다.

야생의 놀라운 순발력 앞에서 기가 죽었지만, 곧 방법을 생각해냈다.

촉수를 사용해 그 모양을 마치 숟가락처럼 넓은 볼을 가지게 만든 다음 흙을 펐다. 제법 많은 흙이 담겼고 그걸 그대로 녀석한테 던졌다.

놈이 날겠다면, 투석기가 되어야 한다…!

흩뿌린 흙이 마치 산탄총처럼 녀석을 강타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닭은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이제 깨달은 모양. 그래도 도망칠 생각은 없는지 깃을 뻣뻣이 세우며 사자를 흉내낸 것 같은 갈기를 만들어 보였다.

'이게 닭이야 사자야?'

적어도 내게는 사자로 보였다. 놈이 아무리 피하는데 신경을 집중해도 던진 흙을 전부 피하는건 불가능하다. 화가 잔뜩 난 놈이 다시 한 번 홰를 치며 다가왔다.

물론 거리를 두면 유리하겠지만, 놈이 나보다 빠르다면 다가오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결국엔 정면승부. 숙련도가 올라 Lv.4가 되었다곤 하지만, 내 촉수는 아직 약하다. 아무리 흙을 던진다 한들 귀찮을 뿐이지 데미지가 쌓이진 않는다. 또한, 체면적이 부족하니 질식사 시키는 것도 무리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떠오른 무기는 블랙 잭.

19세기 서양의 경찰과 경비들이 치안유지용으로 사용했던 둔기와도 같은 무기.

'그걸 만든다.'

촉수를 뽑아내 그 끝을 둥글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이래선 단순히 물렁한 슬라임 덩어리에 불과하니까. 녀석에게 타격을 주기엔 한참 부족하다.

그러니,

[획득 가능 스킬 목록]

1. 촉수(F)

6. 미약한 경화(F)

경화를 습득한다. 둥글게 만 방울에 경화를 사용하자 형태가 잡히고 단단해졌다.

"꼬꼬?"

[촉수(F) Lv.4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촉수(F) Lv.4 → 촉수(F) Lv.5]

최고의 타이밍에 촉수의 레벨도 상승. 좀 더 단단해지고 힘이 실리게 됐다. 몸 전체를 마치 훌라후프를 하는 것처럼 돌렸고, 자연스레 내 머리 위로 뻗어 나온 방울 또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빙빙 돌았다. 부족한 힘은 원심력을 이용하면 된다.

모 게임의 슬라임처럼 변해 있을 내 모습에 닭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꼬꼬꼬…!"

고작 닭이어야 할 녀석이 마치 맹금의 눈을 하고선 승부의 때를 점하고 있다. 서로의 간격이 좁혀진 순간, 녀석이 뛰어올랐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제자리에서 50cm는 뛰어오른 녀석이 위에서부터 날 내리 꽂으려 했다.

하지만 쉽게 당해주진 않는다.

섬뜩하게 공기를 부순 방울이 닭을 노린다.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움직임을 취하지만, 공중에서 방향전환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방울에 직격당하자 놈은 그대로 지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에 난 쾌재를 질렀다. 상상 이상으로 타격이 유효했으니까.

어느 격투 만화에서 파괴력=스피드X체중X악력이라고 했다. 심지어 공중에서 내려오는 힘을 이용당해 카운터로 맞았으니 놈이 받은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할 터.

이대로 녀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불굴의 투사처럼 날갯죽지를 비틀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더 기다려주지 않고 원심력을 유지한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딱 한방. 딱 한방이면 된다.

그걸로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 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공격을 피했지만, 말 그대로 마지막이었다. 나는 아니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헐떡이는 놈. 놈에게 남은 여력은 없다. 야생의 본능. 궁지에 몰린 닭은 승부를 집어던지고 푸드덕 날아올라 후일을 기약하려 했지만, 떨어진 체력이 녀석의 발을 묶고 덕지덕지 붙은 흙이 날갯짓을 방해했다.

보내줄 생각은 없다. 뻗은 촉수로 발이 묶어 끌어당기자 그대로 추락하는 놈. 이젠 도망가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렸다.

"꼬꼬꼬…"

원심력에 따라 빙빙 도는 방울을 마치 철퇴처럼 휘둘렀다. 이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는지라 방울은 점점 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기가 질린 걸까? 겁을 먹은 걸까? 닭은 자포자기한 채 달려들었다. 하지만 무작정 달려드는 일직선적인 돌진이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내게 성공할 리 없다.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녀석의 머리와 커다란 방울이 큰 소리와 함께 충돌했다.

"꼬꼬꼬꼭꼬꼬…!"

마침내 청계가 쓰러졌다.

놈은 분명 강적이었지만, 신중하지 못했다. 처음 싸움에서 함부로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더욱 힘든 싸움이 되었으리라. 약간의 경의를 표하며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꼬꼬꼬" 우는 녀석을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두드린 고기가 더 쫄깃하고 맛있으니까.

물리적으로 연육시키니, 어쩐지 원통한 눈으로 숨이 끊어진 닭을 조금씩 집어삼켰다.

[청계 섭취 중… 12%]

마치 뱀이 커다란 먹이를 삼키듯 청계는 조금씩 내 식포에서 소화되어갔다.

***

"염병. 이 시국에 등산이라니…"

"이것도 다 일입니다."

불만을 토로하는 팀원들에게 우택이 주의를 주었다. 저번엔 고작 둘이었지만, 이번엔 팀장이 붙여준 팀원들까지 무려 열 여섯. 수색 3팀의 절반 가까이 되는 수가 지리산을 찾은 셈이다. 우택은 박수를 쳐 팀원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오를 만큼 올랐으니 슬슬 조를 나눌 생각이었다. 이 넓은 지리산을 함께 다니며 찾을 순 없는 법이니까.

'나눠도 무리겠지만.'

16명이 다 함께 찾는 것보단 조를 나누는 게 쥐꼬리만큼은 나아지겠지.

"자. 지금부터 2인 1조로 조를 나누겠습니다."

"우택 씨."

"예? 뭡니까?"

작게 손을 내밀고 있는 팀원에 우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외근 갔다 와서 아직 뭐 찾는지 못 들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그럼 다시 브리핑하겠습니다. …그 전에."

우택은 쪼그려 앉아 뭔가를 찾아 눈을 부라리는 은하에게 다가가 꿀밤을 먹였다. 도대체 이 넓은 지리산에서 그 슬라임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슬라임 특수종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얘는 대체 머릿 속에 뭐가 들었을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너 진짜 집중 안 할래?"

"아니이이! 진짜 특수종 슬라임…"

"무슨 특수종… 휴. 언제 철들래? 언제?"

"나중에 그 슬라임 찾기만 해봐요!"

"제발 그놈의 슬라임 말고 워그를 찾아라. 워그를! 네가 워그 찾으면 다신 안 부를 테니까. 응?"

"진짜요? 진짜죠?! 콜! 콜!"

기뻐하는 은하를 뒤로하고 다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자자. 방금 말했다시피 탐색 대상은 워그입니다. 2인 1조로 발견한 즉시 처치해주세요. 생포할 필요는 없습니다."

"워그? 그 까만 늑대?"

팀원의 물음에 우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워그입니다. 목격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또 뻥카 아니에요? 저번엔 무슨 설악산에서 예티를 봤네 어쩌네 하더니…"

"아뇨. 고원이 흘린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에휴. 고원? 부팀장님 없으니까 우택 씨만 괜히 중간에서 고생하네."

안쓰러워하는 팀원들의 말에 우택이 쓰게 웃었다.

"아무튼 찾아야하는 건 워그입니다. 찾는 즉시 알려주세요."

말을 하는 우택 또한 기대하지 않았다. 지리산이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고작 며칠 만에 찾기에는 너무 방대했다. 설령 워그가 진짜 있다고 해도 고작 16명으로 찾는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 조를 나눈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은하는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이이! 제가 왜 선배랑 같이 해야 되는데요?"

"네가 다른 사람이랑 붙어있으면 걱정돼서 그런다. 걱정돼서!"

"앗! 혹시 선배 나 좋아해요?!"

발랄하게 입을 가리는 은하를 시꺼멓게 죽은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널 좋아하겠니? 다른 팀원들한테 민폐일까 봐 총대 멘 거다! 총대!"

"아님 말지. 왜 화를 낸담? 그래서 우린 어디로 가요?"

"저번에 갔던 곳. 혹시라도 슬라임 봤다고 날뛰지 마라. 알아 들어?"

"쳇. 선배는 항상 나한테만 뭐라그래."

***

[청계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6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 → Lv.2]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2 → Lv.3]

닭을 먹으면서 몇 번이나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되며 한 번에 레벨이 2개나 올랐다. 그만큼 강적이었단 뜻이지만, 사실 방울을 사용한 이후엔 일방적이었다. 슬라임의 블랙 잭이라니… 과학과 야생의 조합은 때때로 무시무시한 괴물을 낳는 법이다.

'이 정도면 생태계 중위권은 되지 않을까?'

개구리나 두꺼비 같은 같잖은 양서류들이나 쥐 같은 하급 포유류는 더 이상 내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일단 경험치부터 확인해보고.

[부정형 점액체 Lv.3] [EXP 133/561]

레벨 1일 때 요구 경험치가 324였다. 그리고 레벨 3이 된 지금 561이 되었으니 2레벨에서 필요 경험치는 대충 440 정도였다고 생각하면 합리적일 것 같다.

'324 + 440 + 133 = 897.'

한 마리에 900 정도 되는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소리.

직접 계산해보니 너무 많지 않나싶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만 하다. 닭을 처치해서 섭취까지해야 900이라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번처럼 닭이 나를 얕보고 끝까지 덤비는 게 아닌 이상, 도망치기만 해도 닭을 잡는 건 무리였으니까.

[미약한 시력(F)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미약한 시력(F) Lv.2 → 미약한 시력(F) Lv.3]

미세한 차이라서 금방 잊어버릴 것 같지만 아주 조금 더 잘 보이게 됐다. 사람으로 따지면… 색맹 말기?

굳이 따지자면 눈에 락스 세 통은 뿌린 것 같은 시야였다.

형태는 보이지만, 색감은 뿌옇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열 감지가 편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획득 가능 스킬 목록]을 열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시각에 포인트를 투자해서 숙련도를 높이는 건 어떨까 싶었지만, 숙련도가 조금 오른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근처에 먹을만한 동물이 없으니 이동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강해진 것과는 별개로 속도는 정말 느렸다. 진화해서 유일하게 불편한 점인 것 같다.

래서 슬라임 시절에는 레벨업마다 거의 5cm씩 커졌지만, 부정형 점액체로 진화한 지금은 10cm 가까이 커지고 있다. 그에 비례해 무게도 늘어나고 있고. 물론 크기가 커지면 그 이상으로 좋은 거지만.

더 빨리 움직일 방법이 없나 싶어 몸을 말아서 구르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점액화가 심해져 구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포기하려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몸을 길게 말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만들었다. 멋지게 말하면 우로보로스였지만, 그냥 도넛 모양이었다. 그렇게 변한 상태로 경화를 사용하자 몸이 뻣뻣이 굳었다.

'이 상태로도 힘 주면 구를 것 같지만…'

경화한 촉수를 뻗어 바닥을 힘차게 밀어냈다. 그러자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 균형을 못 잡고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자 요령이 생겼다. 엄청 흔들리고 시야가 휙휙 바뀌었지만 시각을 비활성화하면 그만이었다. 반고리관도 뇌도 없으니 어지러움을 느낄 일도 없다.

[변형(F)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획득한 새로운 스킬에 쾌재를 질렀다.

점성 때문에 10초에 1번씩은 촉수로 밀어줘야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오르막에선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평지에서도 생전에 뛰는 속도 비슷하게는 나왔다. 내리막에서 이걸 사용하면 얼마나 빠를지 기대된다.

경화한 촉수로 바닥을 밀어 구르기를 반복. 오랜만의 속도감에 기분이 고양됐다. 떠올린 발상의 전환에 희희낙락하며 한참을 이동하고 나선 밤이 되었다.

스산한 기운을 느끼며 돋을 리 없는 닭살을 문질렀다.

"아우우우우우우!"

어쩐지 늑대 소리가 들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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