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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6화 (6/407)

〈 6화 〉 #4. 여기는 지리산 뱀사골!

늑대 소리를 피해 한참을 굴렀다. 중간에 표지판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완전히 바스러진 탓에 관찰을 사용해도 읽을 수 없었다.

이 세계의 설정은 몇십 년 후의 지구. 다만, 몬스터가 나타나 더 이상 과학 기술이 진보하지 못한 채 많은 국가가 무너진 반쯤 멸망한 그리고 멸망해가는 세계.

그런 세계관에 누가 산을 오르고 있겠는가? 시설을 보수할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표지판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늑대 소리… 한국에 늑대가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들개일 수도 있고. 강아지나 개들도 가끔 하울링을 하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늑대든 개든 간에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절대 아니라는 거다. 닭 정도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지만, 아직은 그 정도가 한계이리라.

개든 늑대든 간에 도망치는 게 맞다. 제아무리 빨리 구를 수 있다고 해도 따돌릴 자신이 없으니까. 어느새 변형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달해 2레벨이 되었다. 종일 사용한 만큼 빨리 오르는 것이리라.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기척 감지를 사용해보니 웬 개구리가 있었다. 열 감지로는 감지하지 못했는데, 아마 체온이 낮기 때문일 듯 싶었다. 열 감지는 열을 받아들이는 거니 나보다 체온이 낮으면 감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양서류는 아직 먹어본 적 없는데.'

확실히 변온동물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들은 이야기로는 개구리 뒷다리가 닭다리랑 비슷한 맛이라던데. 조금 기대가 된다. 둥글게 만 몸을 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은신을 사용하니 금세 개구리가 관심을 표해 다가왔다.

이게 정말 은신인지 도발아지 헷갈렸지만. 개구리가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그대로 덮치자 녀석이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양서류가 폐호흡이랑 피부 호흡을 같이 했던가?'

아마 피부가 마르면 죽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녀석은 얼마 가지 않아 괴로워하더니 숨을 거뒀고 식포 속에 넣어 소화했다.

[북방산개구리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다시 포만감이 경험치의 앞에 자리했다. 개구리 정도로는 큰 경험치를 얻지 못하는 모양.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EXP가 133에서 201로 늘어있었다.

한 마리에 68 경험치. 레벨 업까지 아직 5마리는 더 먹어야 한다는 소리다.

개구리가 있다는 건 근처에 계곡이나 수원이 있다는 뜻일 터. 거기까지 가서 물고기를 포식하면 레벨 올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이동하는 길에 몇 번 배가 꺼지긴 했지만, 나뭇잎이나 곤충들을 주워 먹으며 견뎠다. 한참을 구른 끝에 또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글인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네…'

이럴 때 쓰라고 관찰이 있는 거 아니겠나. 그나마 방금처럼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라 부서졌을 뿐이니까. 표지판에 스킬을 사용하자 뱀사골이라고 적혔음을 알 수 있었다.

뱀사골.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기억나진 않는다. 한국인 건 확실하리라.관찰에 번역 능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나마 외국에 던져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뱀사골에 도착하자 제법 넓은 계곡에 감지에 느껴지는 생물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하기야 사람들의 발길이 수십년 간 닿지 않았을 테니 이렇게 증식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코로나가 잠깐 휩쓸고 가니 자연 생태계가 풍부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가.

다만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닌 것 같다. 기척 감지에 물고기들이 걸렸듯이 열 감지로 제법 다양한 동물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건 그중 대부분이 나보다 커다랗다는 점이고.

심지어 기척 감지로 느낀 형태 중 하나는 곰. 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곰이라곤 반달가슴곰 뿐일 텐데… 역시 지리산일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곰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안 들키면 되는 장땡. 들키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리라.

여우를 피해 호랑이를 만난… 아니, 늑대를 피해 곰을 만난 격이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도 많이 있는 만큼 조심만 하면 굳이 반달가슴곰이 나를 먹이로 삼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걱정은 물에 들어갔다가 녹는 건 아닐까하는.

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하며 촉수를 아주 얇게 뽑아 물에 담가보았다. 30초를 세었지만 아무 변화도 없자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지만, 들어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만약 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답도 없다. 들어가는 대신 촉수를 몇 가닥 길게 뻗어 낚시 하듯 살랑거렸다. 물고기들은 금세 관심을 보이곤 촉수 끝을 물었고.

'……!'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올리기만 하면 됐다.

…….

[돌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쉬리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꺽지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6 스킬에 의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포식(F) Lv.6 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6 → 포식(F) Lv.7]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3 → Lv.4]

[촉수(F) Lv.5 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촉수(F) Lv.5 → 촉수(F) Lv.6]

시스템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것처럼 들렸다. 희희낙락 즐기며 낚시를 계속한 결과, 4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낚인 물고기를 희희낙락 포식하던 중에 갑자기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물었다.

'……?'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뭔가 얇고 기다란 게 있다. 관찰을 사용해보니.

[누룩뱀 410g 73cm : 독이 없고 비교적 순한 뱀]

관찰 레벨이 5가 됐다는 문구를 들은 것 같기는 했는데, 5가 되면서 이전과 다르게 몸길이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녀석은 나를 먹이라고 생각하고 문 셈이었겠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누룩뱀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리 피해 감소 스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을 테니까. 쉽게 말해 슬라임 잘못 골랐다는 뜻이다.

바로 몸을 펼쳐서 반격해 되갚아줬다. 누룩 뱀은 고작 슬라임이 반격할거라곤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듯 했지만, 금세 기를 펴고 히싱 하며 위협했다.

이가 안 통하면 잇몸으로.

누룩 뱀은 자신의 턱힘이 통하지 않자 졸라죽일 셈으로 칭칭 휘감았지만, 오산중의 오산이었다.

괜히 곰의 심기를 건드리긴 싫어 굳이 쫓을 생각까진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단번에 그물처럼 넓게 퍼져 녀석을 뒤덮었다.

"샤아아악!"

놈은 길게 늘어뜨린 몸을 꿈틀거리며 반항했지만 길게 뻗어서 녀석을 뒤덮었다. 놈이 나보다 긴 건 사실이었지만, 체면적은 내가 더 크니까.

[변형(F)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변형(F) Lv.2 → 변형(F)Lv.3]

이대로 질식시킨다.

누룩뱀은 괴로운 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4kg에 달하는 거대한 덩어리인 나를 떨쳐내는 건 무리가 있었다. 턱에서 몸 절반까지가 완전히 밀폐된 누룩뱀은 결국 질식으로 절명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제 슬라임이 아니라 부정형 점액체였지만. 대체 얼마나 슬라임이 만만했으면 도망치는 녀석들을 못 볼까? 슬라임 조상님들의 인도하심이리라.

[누룩뱀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4 → Lv.5]

[스테이터스가 추가 개방되었습니다]

[진화 가능 목록을 개방합니다]

가장 먼저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부정형 점액체 Lv.5] [EXP 231/866]

[72.5cm 5kg] [힘 : 부족함] [민첩 : 매우 낮음] [체력 : 매우 높음]

스테이터스가 공개됐다. 숫자로 나타내는 수치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부족하니 낮니 하는 것들이 꼭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대체 이 애매모호한 스테이터스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

관찰을 사용해보니 알 수 있었다.

[힘 : '비슷한 체격의 동물들에 비해' 부족함]

'비교…'

5kg 정도 되는 동물들은 개나 고양이일까? 그 녀석들에 비하면 그래. 합당한 평가이기는 했다.

'왜 절대 수치가 아니라 상대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계곡에 있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다. 아마 계곡에 밀집된 포식자들에 먹이사슬 하위권들이 먹혀버린 모양이다. 아까 누룩뱀이 그랬던 것처럼.

'약육강식의 뱀사골.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물을 다 마신 곰이 계곡에서 멀어져갔다. 열 감지로 느끼건데 그 주변에 제법 있던 동물들이 마치 홍해처럼 갈라져 곰을 피했다. 곰은 유유자적 군주의 포스로 모습을 감췄다.

'야생 곰은 굶주린다던데…'

굶주리긴 커녕 통통해서 돼지인 줄 알겠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안 완전히 곰의 영역이 된 모양. 반달가슴곰은 그렇게 큰 곰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 녀석은 족히 2m는 될 것 같다. 아마 먹이가 풍부한 만큼 거대해진 것이리라. 동물들은 지금이 기회라는 듯 계곡으로 다가와 목을 축였고, 그중 일부는 내 밥이 되었다.

내가 아는 토끼들은 헬로키티처럼 귀여운 녀석들이었는데 이 녀석은 무척 날렵해 보인다. 누룩뱀은 길기만 길었을 뿐인데 녀석은 그냥 전체적으로 커 보인다.

'무슨… 토끼가 삵같네.'

[산토끼 3kg 58cm : 매우 큰 개체]

곧 녀석이 경쾌한 뜀걸음으로 껑충껑충 멀어졌다.

인간 시절에야 쥐나 토끼나 거기서 거기로 보였지만, 새삼 쥐랑 토끼의 차이가 극명함을 알 수 있었다. 타이어로 변해서 굴러가더라도 도무지 쫓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대신 다른 녀석들을 포식했다.

[다람쥐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무당개구리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미약한 독 내성(F) Lv.1을 획득했습니다]

다람쥐에 무당개구리까지. 무당개구리가 독이 있었단 건 알고 있었는데 먹었더니 독 내성이 생겼다. 붉은불개미들은 아무리 먹어도 독 내성은 안 생기던데 무당개구리는 갑자기 생겼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걸까?

슬라임의 몸에는 독이 듣지 않는데도 내성을 얻었다는 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차라리 독이 있는 녀석들을 지금부터 먹어두면 나중에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도 슬라임일지는 모르는 일.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슬라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독 내성을 미리 키워두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진화 가능 목록을 개방했다고 시스템이 말했었지. 스테이터스를 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까먹고 있었다.

[진화 가능 목록]

1. ―

'……?'

한데 어째서인지 하나도 없다. 의문에 차 관찰로 확인해보니.

[부정형 점액체 진화 가능 목록 : 자신이 섭취한 대상으로 진화할 수 있다]

내가 섭취한 대상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그럼 사람을 먹으면…

'…….'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했다. 그럴 일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사람이 되고 싶어도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인육을 먹는다는 걸 상상하기만 해도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다.

애써 생각을 전환했다. 조건이 섭취라면 방금 먹은 뱀 같은걸로는 진화할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1번 항목에 누룩 뱀이 나타났다. 급히 고개를 젓자 다시 항목이 사라졌다.

겨우 누룩뱀으로 변할 거면 왜 이 고생을 하겠는가.

새삼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진화할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왜 육감이 멋대로 진화 하나 싶었는데 이런 거라면 대환영이었다. 포이즌 슬라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비록 섭취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앞으로 내가 강해진다면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육감은 날 배신한 게 아니었다. 부정형 점액체엔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런 사기적인 진화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아마 한 번뿐인 찬스일 테니 최대한 강한 동물, 아니 기왕이면 몬스터를 섭취할 필요가 있다.

인간으로 변할 길이 뻔히 보이는데 포기해야 하는 게 아쉬운 건 내가 쓰레기여서 그런 걸까? 아니, 시스템이 악랄한 거였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떠올릴 법한 생각. 이건 분명 시험하는 것이리라.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현재로서는 토끼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다. 어차피 다음 진화까지는 한참 남았으니 성장하는 데 집중해야한다.

[쉬리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뱀사골은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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