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7화 (7/407)

〈 7화 〉 #4. 여기는 지리산 뱀사골! (2)

어느덧 7레벨이 되었다. 뱀사골에서 낚시만 해도 레벨이 주구장창 오르니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고 이따금씩 동물들이 달려들기도 했다.

그래봤자 단백질 공급원에 불과했지만.

작은 뱀 같은 동물들은 이미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따금 들개나 맹금 같은 위험한 동물들만 조심하면 뱀사골은 가히 천국이라 부를만 했다.

[포식(F) Lv.7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7 → 포식(F) Lv.8]

8레벨에 도달한 포식. 아직 10레벨을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조만간 E등급으로 상승할 거라 생각한다.

포식이 E등급이 되면 어떻게 이름이 바뀔지 궁금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확신한 건데, 시스템은 내가 위험을 감수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8레벨까지 오르는 동안 체감한 건 작은 동물을 많이 먹는 것보다, 커다란 동물 하나를 포식하는 게 훨씬 더 숙련도가 잘 오르는 것 같았으니까.

심증은 그것말고도 또 있다. 진화하기 전 10레벨 달성조건. 3kg 이상의 동물을 포식할 것. 돌아 생각해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그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절대 안전하게 살아주겠다고. 절대 위험하지 않게 차근차근 강해지고 말겠다고.

쥐나 닭 때처럼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힘들 것 같다.

이번 10레벨에도 달성 조건이 붙어있을 게 뻔했으니까. 물론 없을지도 모르지만 괜한 기대를 품었다 실망하는 것 보단 나으리라. 혹시 앙심을 품은 시스템이 심한 달성조건을 붙이거나…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그래. 천천히 강해지면 되는 거야. 천천히.'

성장이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살랑살랑 촉수 끝으로 지렁이 비스무리한 게 잡혀서 깜짝 놀랐지만, 곧 물고기임을 알 수 있었다.

'시각이 생기고 벌레는 먹기 힘들어졌어.'

개구리나 쥐 정도는 참고 먹겠지만, 벌레는 거부감이 든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었냐고 물으면 할 말 없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사람 손가락만 한 물고기를 꿀꺽 삼키자 경험치가 조금 상승했다.

[얼룩새코미꾸리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얼룩새코미꾸리라… 대체 왜 이런 이름일까?'

예전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얼룩말과 달리 하얀색은 아니고 확실히 점박이처럼 문양이 있기는 했지. 그래서 저런 이름일까?

'…….'

물을 마시러 계곡까지 오는 커다란 동물들을 피해 감지 스킬을 사용하다 보니 열 감지의 레벨도 쭉쭉 상승한다.

[열 감지(F) Lv.4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열 감지(F) Lv.4 → 열 감지(F) Lv.5]

'기척 감지는 3레벨… 곧 4레벨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좀 느리네.'

열 감지가 5레벨에 도달한 순간, 감지되는 대상이 훨씬 많아졌다.

활동하는 동물들이 많아진 걸까? 아니, 그게 아니다. 원래 나보다 낮은 열은 감지하기 어려웠는데 그 점이 보완된 거다. 그 증거로 새로이 감지에 느껴지는 동물들의 대부분 물속에 있었으니까.

'……!'

화들짝 놀라 촉수를 거뒀다. 지금까지의 송사리같이 조그만 물고기들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원래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는 계곡이었겠지만 수십 년의 시간 동안 흘러 이제 작은 호수라고 부르기에 충분했다.

여태 아무 일도 없던 게 기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커다란 녀석들이 즐비하다. 그중에는 인터넷이나 뉴튜브에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 TOP 10'이라면서 소개될 것 같은 녀석도 있었다.

[뱀사골의 주인(뱀장어) 2m 45cm / 24kg]

뱀장어보다는 차라리 이무기같아 보인다.

2m 45cm면 최홍만보다 더한데. 당장에라도 승천할 것 같은 놈의 모습에 기가 질리는 것도 잠시. 별안간 놈이 눈을 번뜩였다.

'……?'

뱀장어의 시선이 향하는 게 분명 나였다. 왜? 설마 관찰하는 걸 느꼈나? 수면 아래에서 시선을 눈치채는 게 가능한 건가? 아니 애초에 뱀장어가 맞긴 한가?

'지랄! 저딴 뱀장어가 세상에 어딨어?!'

꾸물꾸물 기어 도망가려는데 뱀장어가 단번에 뛰어올랐다. 애초에 뱀장어가 왜 있는데? 여기 산이라고! 급히 타이어 모드로 바꾸려다가 이미 늦었단 걸 깨달았다.

'……!'

머릿 속이 하얗게 변하고 있지도 않은 손발이 달달 떨리는데,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커다란 뱀처럼 변형했다.

순식간에 4m에 달하는 거대한 뱀으로 변한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뱀장어가 뛰어오른 몸을 황급히 수면 아래로 집어넣고 줄행랑을 쳤다.

'휴우우우…'

[위협(F) Lv.1을 획득했습니다]

[변형(F)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변형(F) Lv.3 → 변형(F) Lv.4]

다행히 성공한 블러핑. 전화위복으로 스킬까지 얻었지만 놀라 까무라칠 뻔했다. 4m라고는 하지만 사실 풍선껌처럼 부풀린 것에 불과한, 속은 다 비어있고 겉은 얇아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위태위태한 가짜. 닿기만 해도 곧바로 들켰으리라.

십년감수했다. 하지만 스킬까지 얻었으니 되려 전화위복이다. 좋다고 낄낄거리고 있는데 이번엔 뒤에서 충격이 왔다.

'뭐야?'

변형된 그대로 펑! 하고 풍선처럼 터졌다.

힘 없이 쭈그리가 돼서 돌아보니, 웬 너구리가 '너 왜 이렇게 질겨?' 하는 표정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몇번 더 잘근잘근 씹더니, '너 왜 아직 살아있어?'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너구리 44cm / 2.1kg]

너구리가 만만하진 않아도 아까 뱀장어를 보고나니 충격 요법으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침 관찰로 확인해보니 성체는 아닌 것 같고 아직 어린놈인 것 같았다.

'할만한데?'

아직 이가 다 자라지 못해서 그런 건지 제대로 씹질 못한다. 녀석이 씹는 것에 집중할 때, 슬그머니 촉수를 뻗어 녀석의 발에 둘렀다. 촉수를 느끼고 화들짝 벗어나려 하는 녀석. 그물처럼 변해 덮쳤지만, 너구리는 촉수에 발이 묶인 채로도 피하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줬다.

뉴튜브에서나 보던 야생동물의 순발력. 하지만 그래봤자 경화된 촉수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씹어봤자 물리피해 감소와 약한 재생이 있으니 의미 없는 발악에 불과하다.

'E등급 스킬… 진짜 괜찮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소설 속에서도 스킬들은 등장하니까.

어쩌면 다 큰 성체가 왔어도 문제 없었던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화하고 나서 강해진 건 사실이니까. 어린 너구리는 결국 찾아온 체력의 한계로 발이 묶인 채로 질식하고 말았다.

[너구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7 → Lv.8]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8 스킬에 의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8 → Lv.9]

[포식(F) Lv.8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8 → 포식(F) Lv.9]

2kg이 넘는 먹이답게 두 번이나 경험치로 치환되며 레벨이 껑충 뛰어올랐다. 생각해보면 내가 먹었던 가장 큰 녀석은 3kg이 넘는 슬라임이지만, 그때는 이미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해있던 터라 경험치를 얻지 못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못내 아쉬웠다.

'차라리 슬라임만 노리는 건 어떨까?'

슬라임을 먹는 슬라임이라면 다크 히어로 같은 느낌으로 괜찮지 않을까? 이름하야 열.파… 아니, 슬라임만 먹는 거 진짜 좋잖아?

***

"어어. 우택아. 전화했어?"

[예. 팀장님. 전화를 안 받으시길래 미리 퇴근하겠다고 문자 드렸습니다]

"아. 그거? 알았어. 다른 사람들도 다 퇴근 한 거지? 지금 집이야?"

[네. 전부 퇴근했습니다. 5시 40분에요.]

"조기 퇴근? 팀원들 20분만큼 네 급여에서 까면 되는거야?"

[팀장님. 엄밀히 말하면 저희는 다섯 시까지가…]

"알아. 이 자식아. 당연히 농담이지. 그래서 워그는?"

[못 찾았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우택이 네 생각은 어때? 이거 더 해야 될 것 같아?"

[못 찾은 대신에… 은하가 묘한 걸 발견했습니다]

"은하가? 뭘 찾았길래? 저번에 그 신기하다던 슬라임?"

[아뇨. 커다란 발자국이었습니다. 저랑 은하는 곰 발자국인가 싶었는데 정우 씨는 늑대 발자국이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늑대가 있던가? 아니 없다. 아무리 인간의 발길이 닿기 어려워졌대도 없는 동물이 갑자기 생겨날 수는 없는 법이다. 수십 년 전부터 한국에서 멸종한 늑대가 갑자기 지리산에서 나타났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럼…"

[예. 전 잘 모르겠는데, 정우 씨는 발가락이 다섯 갠데 발톱이 네 개니까 늑대라고 합니다. 정확한 건 내일 전문가에게 연락해 볼 생각입니다]

"내일? 주말이잖아. 그 양반들 일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헌터 의뢰인데 주말이라고 발자국 하나 안 봐주겠습니까?]

"알았어. 듣고 나한테도 알려줘. 그래도 뻥카는 아닌 모양이네?"

[확실한 건 내일 봐서 알겠지만요. 그리고 팀원들 말입니다]

"어. 팀원들이 왜? 무슨 문제 있었어?"

[문제까지는 아니고 슬라임을 너무 열심히 잡더라고요. 덕분에 지리산에 슬라임 씨가 마르게 생겼습니다]

"거참. 슬라임은 냅둬도 어차피 동물들이 잡아 먹을 텐데 그냥 둬도 될 것을."

[그래도 몬스터니까요]

"그래. 뭐 없어지면 좋은 거지. 알았어. 월요일엔 나도 시간 남으니까 같이 올라가면 되겠네."

[알겠습니다]

"바쁜 나랑 부팀장 때문에 너만 갈려 나가네."

[아뇨. 괜찮습니다]

"어. 그래. 늦게 전화해서 미안하다. 그래. 발자국 사진은 나한테도 보내주고. 끊어."

[예. 주말 잘 보내십시오]

끊어진 통화. 전화기를 보고 한참을 생각하던 팀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클랜장님. 저 진하입니다."

***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왜인지 슬라임이 씨가 말랐다. 슬라임만큼 좋은 사냥감이 또 어딨다고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혹시 날 위험에 처하게 하려는 시스템의 계략인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심 가는 거라곤 시스템 밖에 없는데. 얘가 무슨 특수한 스킬을 사용해서 몬스터들을 끌어온다거나…?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픽 웃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슬라임이라는 맛나고 영양가 높은 먹이가 아쉽긴 하지만, 없는 걸 나오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슬라임이 아니더라도 이제 많은 동물이 내 먹이였다. 어린 너구리를 잡으면서 느낀 건데 지금의 나는 강하다. 강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 뱀장어 같은 괴물은 아직 못 이기겠지만.

그래도 작은 동물들은 이제 어지간하면 다 괜찮을 것 같다. 겨우 너구리 하나 잡고 뭘 그리 기고만장해하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며칠 전만해도 쥐에게 죽을뻔했단 걸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 그러다보면 언젠가 그 뱀장어도 잡을 날이 오겠지.

역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여유롭게 천천히 성장하면 되는 거다.

[남은 스킬포인트가 많습니다]

충고하듯 알려주는 시스템의 메시지. 진화하고 나서 스킬 포인트를 사용한 적이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스킬 획득에 앞서 먼저 보유하고 있는 스킬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보유 스킬]

포식(F) Lv.9, 촉수(F) Lv.6, 열 감지(F) Lv.5, 약한 재생(E) Lv.4, 미약한 은신(F) Lv.7, 관찰(F) Lv.5, 기척 감지(F) Lv.4, 미약한 청각(F) Lv.4, 미약한 육감(F) Lv.2, 미약한 시각(F) Lv.3, 물리피해 감소(E) Lv.1, 변형(F) Lv.4, 위협(F) Lv.1

[남은 스킬 포인트 9]

촉수도 6레벨에 달했고 알게 모르게 스킬들이 조금씩 성장했다. 시력보다 감지에 의존하게 된 습관 탓에 미약한 시각은 고작 1레벨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룬 건 단연 은신이었다. 이 뱀사골에서, 아니 야생에서 은신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 자주 사용한 만큼 포식 다음으로 레벨이 높아졌다.

아쉬운 건 E등급 스킬은 오르지 않았다는 점. 별로 위험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인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스킬 포인트도 9개가 남았네.'

무엇보다 생각 이상으로 빨리 레벨업 했는지라 진화 이후론 스킬 포인트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 있었다. 크게 불편한 점은 없지만, 9개를 고스란히 남겨놓는 건 좀 꺼려진다.

[획득 가능 스킬 목록]

1. 촉수(F)

190. 물리피해 감소(E)

191. 약한 재생(E)

'이제 E등급 스킬도 배울 수 있나 보네?'

획득 가능한 스킬 목록. 191개나 되는 스킬 하나하나가 앞으로 내 성장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F만이 아니라 E등급의 스킬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혹시 공격 계열 스킬이 없나 살펴봤지만, 약한 경화를 제외하고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E등급 스킬은 없어보인다.

'고민인데.'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스킬 포인트를 남겨 놓으면 급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동안 스킬 숙련도를 쌓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소설 속에선 어땠더라?'

당연히 소설 속에서도 스킬은 존재한다. 다만, 등급이나 레벨 같은 건 없었다. 무엇보다 나처럼 원하는 대로 스킬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촉수나 변형 스킬을 얻었을 때 그랬듯이 어떤 행동이나 계기로 인해 스킬이 발현하는 형식이었다. 그건 주인공도 예외가 아니었고, 나처럼 스킬을 고르지 못했으니 참고가 될 수 없다.

[소화(F) Lv.1 획득을 권장합니다]

별안간 들려오는 시스템의 메시지. 소화라고? 그런 스킬이 있었나? 획득 스킬 목록을 뒤지던 중 171번에 있는 '소화'를 발견했다. 이 스킬을 획득하라는 시스템의 의도가 뭘까? 기껏해야 소화시키는 걸 도와주는 스킬 아닌가? 위산이라도 더 분비되는 걸까? 물론 슬라임한테 위산 같은 건 없지만.

왜 굳이 소화 스킬을 획득하길 권장한 걸까?

[소화(F)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소화 스킬을 획득하게 됐다. 내가 한 건 아니고 멋대로 획득하게 된 상황. 되돌아보니 진화할 때도 비슷했는데…

'아. 진짜. 육감 이 자식.'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또 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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