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5. 공포에 맞서 도약을 준비하다.
'이럴 땐 관찰이 국룰이지.'
스킬에는 환불이 없으므로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 이제 와서 탓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손해 본 적은 없지 않나? 어쩌면 진화 때처럼 또 당첨일지 모른다. 아니, 그럴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관찰(F) Lv.5 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관찰(F) Lv.5 → 관찰(F) Lv.6]
[소화消化 : 소화하는 속도를 상승시킨다]
생각했던 그대로인 능력. 과연 이게 쓸모가 있을까 싶었다. 슬라임이 되고 배탈이 난 적도 없고 변비에 걸린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육감이 괜한 짓을 한 건 아니리라.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소화 : 먹은 음식물이 체내에 흡수될 수 있도록 잘게 부수거나 화학 물질로 바꾸는 작용]
소화의 사전적 의미. 문득 깨달은 것에 머릿속에 전기가 스쳤다.
슬라임은 식포 속에서 먹이를 소화한다. 슬라임의 신진대사는 먹이를 소화하는 것밖에 없고 소화라는 스킬이 그 소화 시간을 줄여주는 스킬이라면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는 뜻. 더 적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에너지의 축적.
더 많은 에너지의 축적은 당연 활동량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사전적 의미에 따라 '잘게 부수거나 화학 물질로 바꾸는 작용'을 스킬로서 돕는 것이라면 식포의 기능 자체가 강화될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경험치 버프와 비슷한 느낌.
실제 버프와는 다르지만 효율이 상승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물론, 이 모든 전제는 포식이라는 스킬이 있어서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 소화 스킬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면 소화제가 필요 없는 몸이 되는 것으로 끝났을 터.
앞으로 소화 레벨이 크게 올라 식포가 그만큼 강화된다면 식포를 섭취용만이 아닌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금상첨화를 넘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전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시험해보면 된다.
곧장 은신으로 쥐를 유인한 뒤, 냉큼 식포로 집어넣었다. 약한 재생도 있으니 설마하니 쥐에게 죽을 일은 없을 터. 예상대로 쥐는 있는 힘껏 식포 바깥으로 벗어나려 발버둥쳤으나, 쓸데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찌직! 찌지직!"
그렇게 완전히 소화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가능하다. 쥐까지는 말이다. 아직 그 이상은 무리일 터.
경화까지 생각하더라도 산채로 삼킬 수 있는 건 청설모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기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본래의 효과를 생각한다면 기대하던 경험치 버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F등급에 심지어 1레벨인 소화 스킬의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혹시 체감도 못 하면 어쩌나 싶었던 불안감을 단번에 해소하고도 남았다.
물론, 사전에 알려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투덜대며 스테이터스를 열어보자 [EXP 282 / 1582]라고 적힌 게 보였다. 남은 경험치가 네 자릿수라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봤자 하루 이틀이면 채울 수 있는 수준일 터.
문제는 분명 10레벨에도 있을 게 분명한 달성 조건. 이전 진화에서 3kg 이상의 동물을 섭취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떤 조건이 걸릴 지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저번보다는 어려운 게 당연할 테고… 제발 재촉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가능한 한 유유자적 넉넉히, 안전하게 성장하고 싶었으니까.
일단 뱀장어나 커다란 물고기가 있는 이상, 뱀사골에 더 있기는 무리. 저번에야 몸을 부풀린 위협이 통했지만, 이번에 또 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떠나야…?
저 멀리서부터, 기척 감지와 열 감지도 닿지 않는 거리인데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몸이 떨려왔다.
[미약한 육감(F)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미약한 육감(F) Lv.2 → 미약한 육감(F) Lv.3]
천천히 느린 속도로 걸어오는 무언가에 육감이 미친 듯 경종을 울렸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뱀사골의 주인? 뱀장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격이 다른 괴물.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데 그 존재가 몬스터라고 칭할 수 있는 무언가임을 알 수 있었다. 두려움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번뜩 정신차렸다.
곧바로 굴러갈 생각으로 몸을 말았다. 다른 동물들은 아직 놈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5레벨에 달한 열 감지가 멀리서부터 녀석의 위치를 포착했다. 이건 절대 희소식이 아니다. 그만큼 거리가 줄어들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이젠 도망치는 것도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획득 가능 스킬 목록]
1. 촉수(F)
…
161. 약한 은신(E)
[약한 은신(E)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미약한 은신(F) Lv.7이 약한 은신(E) Lv.1에 통합되었습니다]
[약한 은신(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약한 은신(E) Lv.1 → 약한 은신(E) Lv.3]
[남은 스킬 포인트 6]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발악. 약한 은신을 사용하려는 순간,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변형(F) Lv.4 스킬을 연계할 수 있습니다. 연계하시겠습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스템 메시지를 치운 순간,
[일시적으로 흉내(F) Lv.1 스킬을 획득합니다]
가지고 있지 않던 무언가가 잠깐 스며들었다.
***
[그 사람 왔었나요. 아니 소식이라도~ 그 분에게 전해…]
늘 듣던 익숙한 벨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팀장님. 저 우택입니다.]
"어. 왜?"
팀장은 전화를 받으며 벽에 걸린 달력과 그 옆의 시계를 슬쩍 바라봤다. 토요일 새벽 6시. 아직 전화하기엔 이른 시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짜증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럴 만한 일이니까 전화했으리라.
[예. 워그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진 오늘 보낸 거 아니었어? 벌써?"
[아닙니다. 설치해놨던 관찰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의뢰는 넣어놨는데 답변은 도착 안 했고요.]
그 말에 팀장은 대강 끄덕였다. 수원(水原) 주변에 설치했다던 카메라이리라.
[방금 확인했습니다. 칠선봉 근처에서요]
"열심히도 한다. 쓰러질라. 쉬면서 좀 해."
[…예. 알겠습니다]
"찾았으면 잡긴 잡아야지…"
워그는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여명의 팀원이라면 누구나 처치할 수 있는 수준. 다만, 문제는 녀석을 찾아야한다는 점. 워그의 시속은 보통 시속 100km를 넘긴다.
평지도 아닌 넓은 산맥에서 저런 속도로 돌아다니는 녀석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에 잡아도 피곤하고, 금전적인 면에서 손해다. 그럴 바에 차라리 다른 클랜이나 정부에 넘기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이 놈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 뭐가?"
[너무 많이 먹습니다]
"뭔 소리야?"
[찍힌 영상에서만 자기 몸뚱이만큼 먹어치웠습니다. 아무래도 포식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
스킬을 가지고 있다. 즉, 특수종이라는 말에 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특히 가지고 있는 스킬이 하필이면 포식이라는 게 껄끄러웠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달하면 마치 게임 속 경험치와 비슷하게 성장동력으로 치환하는 스킬.
이렇게 들어보면 사기적인 스킬 같지만, 치환되는 양이 쥐꼬리만 한 데다가 결국 생명체라면 제아무리 먹어 치워봤자 한계가 있는 법이다. 공복감이 든다고 해봤자 뇌는 이미 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을 거부한다. 쉽게 말해서, 물려서 못 먹는다.
제아무리 몬스터라 한들 먹다보면 입에 물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종을 벗어날 가능성이 펼쳐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정말 만약에 그런 식으로 경험치를 축적하고 진화에 이르게 된다면? 삭초제근. 화근이 될 싹은 미리 잘라둬야 한다.
"토벌.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영상 나한테 보내고. 팀원들 전부 청학동으로 오라고 해."
이미 도의적 차원에서의 도리는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워그의 실존여부를 확인한 것만 하더라도 토벌 의뢰를 다른 곳에 떠넘길만한 최소한의 명분은 생기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했으니 너희도 이 정도는 해라~ 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확실하게 처리해두지 않으면 자색의 흑호 같은 괴물이 또 나타날지 모른다. 아무래도 워그의 숨통이 끊어지는 걸 보지 못하면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
팀장은 서랍을 열어 애마인 XT16의 키를 쥐었다.
***
변형과 은신의 상승효과인지 파생된 흉내 스킬에 더불어 경화까지 사용하자 완전히 바위처럼 변했다. 그것이 스산한 바람을 몰고 나타나자 모든 동물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것의 등장에 뱀사골의 주인조차 화들짝 놀라 계곡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피식자 포식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공포에 떨어 달렸다.
놈은 나보다 토끼 한 마리를 단숨에 낚아채 삼켰다. 스산한 바람에 퍼진 피냄새는 방금 먹은 토끼가 아니라 훨씬 많은 동물들의 것…
"아우우우우!"
숨을 멎게 하는 높은 음의 하울링. 칠흑처럼 검은 털.
아침이 밝아오는 와중에도 놈의 주변만이 검게 보였다. 보통의 늑대와 다르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황소만큼 커다란 몸집과 광기에 물들어있는 붉은 눈은 그 존재가 정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언뜻 보기엔 커다란 늑대일 뿐이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그것이 몬스터라고 말하고 있다.
슬라임과는 격이 다른, 동물들과는 결이 다른 진짜 괴물.
토끼를 한입에 집어삼킨 놈은 입가심하듯 계곡으로 가 물을 마셨다. 동물들이 도망가건 말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는 광기에 찬 눈을 하고 있는 놈을 본능으로 움직이는 야생의 존재가 아니라, 이성으로 움직이는 사냥꾼처럼 보이게 한다.
이질적이고 이해할 수 없으니 괴물이리라.
관찰을 사용해서 들킨 경험이 없었다면 섣불리 관찰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십중팔구 들켰을 테고 먹혔을 거다. 아무리 몸을 부풀려봤자 놈에겐 통하지 않는다. 4m의 커다란 뱀? 두 배는 커다란 뱀이라도 녀석에겐 사냥감에 불과하리라.
뱀장어에게 미리 매를 맞은 것이 차라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다. 멀어지는 녀석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망쳤다면 어찌 됐을지 모른다. 역시 숨는 것이 정답이었다. 제아무리 놈이라 한들 여러 스킬을 겹쳐 완전히 바위처럼 변한 나를 발견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생각을 읽힌 것처럼 녀석이 몸을 돌렸다.
말소리가 나올 리도 없건만, 촉수를 뻗어 있지도 않은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명백히 향하는 시선이 이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어금니가 보일 만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얘졌다가 다시 복잡해졌다.
지금 도망쳐? 도망칠 수는 있나? 그냥 숨어 있어야 하나?
온갖 생각에 어지러워졌다.
"크르르―"
끓는 듯한 울음소리가 청각을 완전히 지배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턱을 쫙 벌린 녀석의 주둥이 사이에 방금 먹은 토끼의 살점이 아직 남아 있다. 그걸 보자 얼어붙은 몸은 딱딱히 굳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먹힌다!'
이미 늦었다고, '죽었다'라고 생각해 움츠러든 순간, 놈은 자신을 넘어 지나쳤고, 으드득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해가 밝아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다가 감지로 녀석이 이젠 정말 없단 걸 확신하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살았다. 들키진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약한 은신(E)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약한 은신(E) Lv.3 → 약한 은신(E) Lv.4]
스킬 레벨이 올랐음에 기뻐할 새도 없이 돌아보자 먹다 남은 멧돼지가 남아있었다. 마치 '이 고기는 이제 질렸다'는 듯 남겨둔 멧돼지 반쪽. 아득해진 정신과 별개로 공복에 굶주린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걸 멋대로 먹으며… 비참함을 느꼈다.
살았다는 안도에, 놈이 먹다 남긴 것이 탐스레 보인다는 것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분명, 저런 놈조차 소설 속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를 단숨에 때려죽였다.'라고 한 줄로 표현할 것만 같은데 내 현실은 이렇게나 초라해서.
만약 인간으로 전생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그럴 리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겁쟁이인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두 번 다시 이런 공포를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차올랐다. 시체를 주워 먹은 내 모습이 한심했다. 그런 주제에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한심함과 반례하는 분함이 차올랐다.
'소설 속에선 잡몹이었어.'
고작 그런 몬스터에게 공포를 느꼈다는 것에 울분이 차올랐다.
싸우기는커녕 두려워 벌벌 떨면서 지나가달라고 빌었다. 제발 들키지 말라고 떨었다.
'씨발……'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자신의 한심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슬라임이 되고 나서,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도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했을까?
이제껏 너무 안일하지 않았냐는.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았냐는. 안전만을 추구해서 움츠러들진 않았냐는 뒤늦은 한탄이 찾아왔다.
[멧돼지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이제 와서 그게 조금 후회됐다. 시스템의 말은 경고였을 것이다.
진화 전의 10레벨 달성 조건으로, 그 외의 수단으로 시스템은 나를 자각시키려 했다.
시간이 없다고. 살고 싶다면 빨리 성장해야한다고. 그런데 난…
안전하게 성장하고 말겠다고 낄낄거리고 자빠졌다.
고작 몇 년만에 멸망할 운명인 풍전등화의 세계.
머잖아 멸망할 것이 뻔한 세계에서 고작 슬라임으로 전생해놓고 안전을 추구하고 천천히 성장하겠다는 자신의 안일함에 질려버렸다.
알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스스로가 새삼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돌아보면, 더 나은 선택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좀 더 위험을 감수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숨어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만약에 위험을 감수해 성장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지금부터라도 그럴 수 있을까?
……아니, 그래야한다. 그래야만 한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지레 겁먹고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비겁하게 한계를 단정지어온 대가였다.
시스템이 달성 조건을 걸어서 나를 시험한 이유― 정신차리지 못하는 나를 자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울분이 들끓었다.
시스템은 언제나 그랬듯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등을 떠밀어줬다.
죽을 위기를 겪고서야 실감하는 자신이. 야생에 놓여 낄낄거리는 한심한 자신이 싫어서, 울분이 들끓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면, 죽진 않았으니까. 나는 살아있으니까.
어쩌면 눈치채고도 살려준 걸지도 모른다. 같잖은 벌레라고 무시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최악의 기분이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소화(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소화(F) Lv.1 → 소화(F) Lv.2]
[포식(F)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9 → 포식(F) Lv.10]
[포식(F)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포식(F) Lv.10 → 탐식(E) Lv.1]
[소화(F)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소화(F) Lv.2 → 소화(F) Lv.3]
놈이 남긴 사체를 먹어 치우며 분함을 곱씹었다. 가슴 깊숙이 울분을 새겼다.
그러자,
[레벨 10 달성 조건 : '뱀사골의 주인'을 처치할 것]
―마치 바래왔다는 듯, 그게 정답이라는 듯 시스템이 등을 떠밀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