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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9화 (9/407)

〈 9화 〉 #6. 뱀사골의 주인

아침 8시. 공지한 대로 수색 3팀의 부팀장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모였으니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워그 토벌에 들어갑니다. 발견하면 알리세요. 이상."

간단한 브리핑에 팀원 한 명이 의아함을 표했다.

"고작 워그 한 마리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습니까?"

"그럼 그냥 놔둘 겁니까? 지금 잡습니다. 더 질문 있습니까?"

"……없습니다."

"출발하세요."

그렇게, 헌터들이 지리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

계곡 아래. 열 감지와 기척 감지로 어류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지금부터, 목숨을 건 도박에 임한다. 확신을 가지고 하는 사냥이 아니라 확신 없는 모험.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선 해야만 하는 모험이기도 했다.

수면으로 몸을 담그자 물고기들이 관심을 보였다. 송사리처럼 작은 녀석들은 곧 겁을 먹고 도망쳤지만, 커다란 놈들은 되려 잘 걸렸다는 듯이 이를 드러냈다.

검은 늑대가 나타났을 때, 잔뜩 겁먹고 숨었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저건 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다.

[위협(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위협(F) Lv.1 → 위협(F) Lv.2]

몸을 부풀려 겁을 주자 하나같이 도망쳤지만, 딱 하나 통하지 않은 놈이 있었다.

'뱀사골의 주인.'

그 거대한 뱀장어만큼은 이미 알고 있다.

일전, 어린 너구리에게 풍선처럼 터져버린 순간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 모습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다.

소용없는 위협. 모습을 되돌리고 물속으로 잠수하자 놈은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어차피 뱃속에 들어갈 먹이라고 생각한 건지 이내 턱을 벌렸다.

[남은 스킬 포인트 2]

놈을 사냥하기 위해 쏟아부은 스킬 포인트.

돌고래를 모티브로 유선형으로 몸을 바꾸어 물의 저항을 최소화했다. 스킬 포인트로 획득한 수영과 잠수. 두 스킬 덕에 수중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촉수를 지느러미처럼 이용해 방향을 전환하고, 가까스로 놈의 첫 일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자신이 생겼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6레벨이 된 관찰로 확인한 놈의 수영 속도는 시속 6km. 평지에서라면 느리지만, 수중에선 빠르다.

뱀장어는 자신의 수영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공격을 피한 내가 퍽 불쾌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 기색을 숨기지 않고 두 번째 돌진. 수면을 가르고 달려오는 커다란 몸집은 그 자체가 크나큰 위협이 된다.

'……!'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거센 물살에 휘청였다. 태어나 평생을 물속에서 나고 자란 놈에게 수영 실력을 뽐낼 순 없다.

매끄럽게 회전해 방향을 트는 뱀장어가 이번에야말로 집어 삼키겠다는 듯 턱을 벌린다.

그 순간, 촉수를 뻗어 고무줄을 튕기듯 자신을 튕겼다. 물의 저항과 촉수의 부족한 힘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리 획득한 탄력 스킬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수중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뱀장어는 자신의 공격이 세 번이나 무위로 돌아가자 방법을 바꿨다. 물살을 가르며 다가와 기다란 몸을 둥글게 말아 조이려했다.

탄력으로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녀석을 계속 피할 순 없다. 이제껏 피한 것도 직선적인 공격의 타이밍을 이용했을 뿐, 속도에서 우위를 점한 건 아니었으니까.

'…….'

조이는 공격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질식시키는 것이고 하나는 뼈와 살을 으스러뜨리는 것. 둘 다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임을 묶는다는 마지막 한 가지만큼은 의미가 있다.

뱀장어는 마치 아나콘다처럼 긴 몸을 이용해 졸라 그 커다란 턱으로 단숨에 집어삼키려 했지만, 경화를 풀고 경직된 몸을 되돌려, 점액으로 이루어진 몸을 이용해 녀석의 조르기에서 빠져나왔다.

[물리피해 감소(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물리피해 감소(E) Lv.1 → 물리피해 감소(E) Lv.2]

죽어라 오르지 않던 E등급 스킬의 첫 레벨업에 기뻐할 새도 없이 달려드는 놈을 피해야했다. 쉴 새 없이 쇄도하는 공격과 수압에 휘청이며 결국 한 번 당하고 말았다.

'……!'

고작 한 번 부딪쳤을 뿐인데 체면적의 30%는 날아간 것 같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도 물리피해 감소가 잇ㄹ어서.

[수영(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수영(F) Lv.1 → 수영(F) Lv.2]

[잠수(F)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잠수(F) Lv.1 → 잠수(F) Lv.2]

타이밍 좋게 오른 덕분에 움직이는 게 수월해졌다. 물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감이 잡힌다. 나라고 계속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공격을 당한 순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경화를 사용해 데미지를 줄이는 게 맞겠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래서, 반격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여태까지와는 다른 한 걸음. 그리고 그 한 걸음은 명백한 차이를 낳았다.

"―――!"

놈의 아가미에 찢긴 내 몸의 일부가 엉켜 있었다.

변형을 사용해 촉수를 갈고리 모양으로 바꿔 걸어둔 것이라 쉽게 빠지진 않을 터. 아가미에서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자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약한 재생이 내 몸을 재생시키고 있다. 시간을 끌면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몸 전체의 탄력과 더불어 수영과 잠수를 이용하자 순간적인 속도가 20km에 이르렀다. 뱀장어가 정신 차리기 전에 놈의 아가미를 노린다.

빈틈을 노린다한들 내 촉수는 아직 약하다. 물의 저항을 생각하면 타격으로 녀석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려야하는 건 질식사. 그것도 놈이 질릴 정도로 틈을 주지 않고 집요하게 달라붙어야 한다. 괴로워하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더한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시종일관 피하기만 하던 내가 찰싹 달라붙자 어지간히 놀랐는지 몸 전체를 뒤틀며 어떻게든 떼어내려 했다. 그에 맞서 몸을 밧줄처럼 바꿔 휘감았으나 미끈미끈한 점액질 몸에서 버티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촉수를 밀어 넣었다. 꾸물꾸물 몇 가닥의 촉수가 녀석의 아가미 내부를 마구 헤집는다.

섬세한 아가미 속에서 뿜어나오는 물을 경화 시킨 촉수가 억지로 틀어막았다. 빠져나와야 할 물이 역류하자 괴로운 듯 꼬르륵거리던 녀석은 방법은 이것 뿐이라는 듯 커다란 바위에 몸을 부딪쳤다.

'……!'

물리피해 감소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데미지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게 풀리고 말았다. 그렇게 짓이겨져 체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반대로 놈은 내가 완충재가 돼서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보인다. 내 몸의 일부가 녀석의 아가미 안쪽으로 들어간 만큼 놈도 여유는 없겠지만.

약한 재생으로 실시간으로 회복되고 있는 나와 반대로 놈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당장은 내가 불리할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유리해진다. 따라서 놈에게 기다린다는 선택지는 없다.

먼저 싸움을 거는 것은 놈이어야 한다. 기다려서 타이밍을 잡고 반격하기 위해 스킬을 획득했다.

[남은 스킬 포인트 0]

변형한다.

얼른 마무리 짓고 쉬고 싶어 하는 놈이 2m가 넘는 기다란 몸으로 헤엄쳐온다.

이전처럼 물살을 가르고 유려하게 헤엄친다는 느낌이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상대를 쫓는 황소 같은 난폭한 느낌.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드는 괴물.

벽이 성큼 다가오는 것처럼 암담해 보였으나 오히려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놈을 직시한다.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에 열 감지와 기척 감지를 더해 녀석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거리를 재고 30cm를 남겨둔 순간, 탄력을 이용해 몸을 크게 튕겼다. 새총처럼 쏘아진 순간 남은 체면적이 크게 줄었다.

'20cm…'

남은 체면적의 지름. 마치 슬라임이 된 첫 순간처럼 작아진 몸. 본래의 반의반도 남지 않았다. 체중으로 따지면 고작 1kg은 될까? 남은 몸은 파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작다.

하지만, 공격을 당해서 줄어든 것이 아니다.

[약한 경화(E)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미약한 경화(F) Lv.4가 약한 경화(E)에 통합되었습니다]

[약한 경화(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약한 경화(E) Lv.1 → 약한 경화(E) Lv.2]

아까 획득한 스킬의 알림을 뒤늦게 확인했다.

돌아보자, 놈은 낭패한 기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놈의 아가미 근처 기다란 상처. 거의 몸 전체를 가르며 피를 흩뿌린다.

기다란 촉수를 뽑아내 얇고 매끄럽게 변형 시켜 E등급으로 상승한 경화로 얇은 칼날을 만든 것. 타이밍에 맞춰 탄력을 이용한 데다 카운터로 들어갔으니 아무리 두꺼운 가죽이라 한들 버틸 재간이 없다.

다만, 얇고 예리한 칼일수록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하는 법.

그 대가로 상당량의 체면적을 포기해야했다.

단번에 죽일 셈이었는데 실패했다…….

놈의 척추가 상상 이상으로 두꺼웠기 때문에. 2.5m에 달하는 괴물 뱀장어의 척추는 경화한 칼날로도 쉽게 자를 수 없었다.

물론 놈은 빈사 상태지만 그건 나라고 다르지 않다. 체면적 대부분을 잃었으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전법 또한 그만큼 줄어든 것. 방금과 같은 공격을 시도했다간 단번에 사망이다.

경화한 칼날은 쓸 수 없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나만이 아니다. 놈도 마찬가지로 도망치지 않으리라.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 하다못해 나만은 죽이고 말겠다는 듯이. 서로의 눈빛이 교차하고, 이제까지 없었던 속도로 쇄도하는 놈.

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계곡의 수류만으로도 벅찬데 놈이 다가오자 밀려오는 물살에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아니, 반대로 이용하면 된다.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급류에 몸을 맡길 뿐.

괴물이 다가오는 걸 보며 있지도 않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눈을 감으면 지금이라도 되돌아갈 것만 같은데.

몸을 활짝 펼쳐 면적을 넓혀 급류에 저항했다. 거리가 좁혀지자 놈은 한계까지 턱을 벌렸다. 오히려 바라던 바. 도망치긴커녕 되려 탄력을 이용해 벌린 입안으로 냉큼 뛰어들었다.

"――?!"

놈의 턱이 닫히기 직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

뱉어내려 발악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쫓아낼 순 없다.

아가미로 어떻게든 배출해보려 했지만, 발버둥 치는 내가 배출될 턱이 없다. 심지어 찢어진 아가미로는 더더욱. 그 커다란 덩치가 되려 화를 불러일으킨 셈.

죽을 위기를 겪고 느꼈던 울분이 새삼스레 치솟았다. 억울하고 분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야만 하니까.

경화된 촉수로 놈의 몸속 곳곳을 두드렸다. 몸을 비트는 것만이 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 이미 승부는 정해졌다. 더 깊숙이 들어가 위장을 찢고 나왔다.

E등급으로 상승한 포식 스킬은 그 자체가 무기가 되었다. 점액의 몸 전체가 식포가 되어 녀석의 몸을 천천히 갉아 먹었다. 스스로 보기에도 그로테스크한 장면. 마치 지독한 산에 닿은 것처럼 장기가 녹아내렸다.

[탐식 : 포만감을 경험치로 치환하며, 대상과 접촉한 것만으로 섭취가 가능해진다]

'살고 싶어……!'

오직 그것뿐이다. 검은 늑대를 만났을 때같은 죽음의 위기를 겪고 싶지 않아서,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사선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살아남을 수 있는 위기로 뛰어들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발버둥 쳐 강해지기로 맘먹었으니까.

애초부터 고통은 없었지만, 고통이 없었기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이 없으니 죽음의 신호가 없다.

끝은 말 없이 찾아와 나를 침묵시키리라.

상태는 최악.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놈은 생을 포기한 듯, 나와 함께 죽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그 커다란 몸을 바위에 마구 부딪혔고 내부까지 전해지는 충격에 약해질 대로 약해져 더 잘게 조각났다.

[물리피해 감소(E) Lv.2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물리피해 감소(E) Lv.2 → 물리피해 감소(E) Lv.3]

15cm… 10cm… 점점 더 작아지는 와중에 공포가, 두려움이 다시 밀려와 후회를 불러왔다.

무모했던 게 아닐까. 섣부른 생각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그렇게 생각을 바꿀 필요는 없지 않았나…… 아무튼, 그런 생각들.

그러나 그 모든 걸 떠나서 이겨서 살아남고 싶었다.

공포에서 비롯된 분함이, 분함에서 비롯된 열망이 다른 모든 의문을 웃돌았다. 몸이 깎이고 깎인다. 기다리면 어차피 놈은 죽는다. 그러나 기다려서 주운 승리에, 도망쳐서 얻은 승리에 가치가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사선만큼은 똑바로 마주해야하는 게 아닌가.

'이기고 싶어……!'

갈망이, 집념이, 분함이 후회를 웃돌았다. 이 감정을 확실히 풀 수 있는 형태로 이기고 싶다.

그래서 견디고 견뎠다. 죽을 것 같아도. 남은 체면적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아졌어도 끝까지 견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응어리진다.

이번에 이 감정을 풀지 못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풀지 못하리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응어리진 감정은 하나의 갈망으로 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너머로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Lv.10 달성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9 → Lv.10]

[스테이터스가 완전 개방됩니다]

'……!'

뻗은 촉수를 꽉 쥐었다.

놈에게 승리했다는 기쁨. 한 걸음 나아갔다는 성취감.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한 데 섞여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 사냥이 아닌 모험에서, 마침내 첫발을 디뎠다.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에서 얻은 것은 승리요, 기쁨.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려움과 공포는 씻은 듯 사라지고 후회가 썰물처럼 밀려난다.

마치, 나를 이루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 그 성취감이 형용할 수 없는 황홀경이 되어 다가오자, 홀린 듯 스테이터스를 열었다.

[뱀사골의 주인(부정형 점액체) Lv.10] [EXP 2926 / 3821]

[체장 2.4m] [체고 10.8cm] [체중 29kg]

[힘 : 44 (68.7%)] [민첩 : 31 (46.5%)] [체력 : 116 (-)]

이 순간, 뱀사골의 주인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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