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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0화 (10/407)

〈 10화 〉 #7. 지리산의 괴물 늑대

[뱀장어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탐식(E) Lv.1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소화(F)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소화(F) Lv.3 → 소화(F) Lv.4]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탐식(E) Lv.1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탐식(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탐식(E) Lv.1 → 탐식(E) Lv.2]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0 → Lv.11]

전투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었는데, 먼저 스킬 레벨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한번에 이렇게 많은 스킬을 활용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새삼 죽을 위기를 겪고 사선을 넘었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건 사선을 넘을 만한 가치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할 만큼 달콤한 과실이었다.

변화는 스킬뿐만이 아니다. 원래 뱀장어의 것이었던 '뱀사골의 주인' 칭호가 종족명 앞에 떡하니 붙게 됐으니까.

[*뱀사골의 주인 : 뱀사골의 지배자. 뱀사골의 주민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복종한다]

……애매하다. 주민이라고 해봤자 어류들밖에 없을 텐데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까.

다시 계곡 밖으로 나와 보니 한 층 몸이 커졌단 걸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끌어올린 끝에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11레벨에 도달한 체장이 어느새 2.6m에 달해있었다.

'……뱀장어보다 길어졌네?'

얼떨떨한 기분.

진화한 것도 아닌데 진화한 것보다 큰 변화가 생겼다. 외견은 그대로였지만 덩치가 몇 배로 불어났다. 무엇보다 체중이 30kg. 닭이나 토끼같은 동물들은 누르기만 해도 압사할만한 무게. 고작 몇 시간만에 몇 배는 성장했다.

'그래도 그 늑대는 아직 이길 것 같지 않아……'

단 1%의 승산도 없다. 소수점을 수없이 붙여서 종이를 가득 메울 듯 쪼개면 그제야 끄트머리에 1이 붙을 것 같다. 고비 하나는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언덕에 올라와 보니 커다란 산이 있는 셈. 무엇보다 그 커다란 산도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래도, 이제서야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

안주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만 한다.

더 성장할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

그러고 보니 칭호의 효과가 뱀사골의 주민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고 했던 것 같은데…

***

"대체! 왜! 사무부! 인데! 내가! 맨날! 파견을! 가는! 거냐고! 이러면! 내가ㅡ!"

투덜거리는 말소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자 내뱉지 못한 채 안에서 맴돌았다. 힘들어 죽겠는데, 문제는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멀다는 점.

기진맥진 고개를 든 이은하는 산길을 올려다봤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는 길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도 옛말.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성히 자란 식물들은 길을 가리고 덮고 있었다.

암담해서 다시 내려가고 싶어진다…… 차마 그럴 수 없어 한숨과 함께 힘겹게 오른 끝에, 맑은 계곡 보였다.

양손 가득 물을 받아 얼굴을 적셨다. 세수하고 나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지만, 막상 쓰고 나니 좀 찝찝했다.

동물들이 마시던 물일 테니까…… 세수하지 말 걸.

배낭을 내려놓고, 어설프게나마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여긴 하류인 모양… 상류까지 가야 하려나?

누군가 했던 말― 모르겠으면 해 보고 말하라는 잔소리를 떠올린 이은하는 표정을 구기며 일어났다. 배낭 아래 잔뜩 묻은 흙을 털어내고 물길을 따라 오르자 상류까지 도착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계곡에 손을 넣고 쉬고 있던 이은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물고기가 없지?"

***

'쫄깃쫄깃하니 괜찮네.'

맛은 못 느껴도 식감은 알 수 있다. 가시고 나발이고 죄다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소화. 육감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작은 물고기들도 먹어봤지만, 이젠 그런 송사리들로는 경험치가 오르지 않아 가능한 30cm 이상 되는 커다란 녀석들로만 먹어 치웠다.

그래도 작은 녀석들은 남겨두었으니 생태계가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아마도.

수영과 잠수가 있다고 해도 물고기들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았지만, 칭호의 효과까지 가세하자 질릴 정도로 먹을 수 있었다. 결국 탐식이 4레벨, 소화는 9레벨에 오르고 나서야 식사가 끝났다. 뱀장어 한 마리 잡은 것뿐인데 나머지가 디저트로 딸려 들어온 느낌. 마지막 물고기까지 포식하고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뱀사골의 공포(부정형 점액체) Lv.14] [EXP 3474 / 5302]

[체장 3.11m] [체고 12.8cm] [체중 36.9kg]

[힘 51 (73.7%)] [민첩 39 (44.9%)] [체력 127]

[보유 스킬]

탐식(E) Lv.4, 촉수(F) Lv.8, 열 감지(F) Lv.7, 약한 재생(E) Lv.5, 약한 은신(E) Lv.6, 관찰(F) Lv.8, 기척 감지(F) Lv.6, 미약한 청각(F) Lv.5, 미약한 육감(F) Lv.3, 미약한 시각(F) Lv.4, 물리피해 감소(E) Lv.3, 약한 경화(E) Lv.3, 변형(F) Lv.7, 미약한 독 내성(F) Lv.1, 위협(F) Lv.3, 소화(F)Lv.9, 수영(F) Lv.4, 잠수(F) Lv.4, 탄력(E) Lv.3

[남은 스킬 포인트 5]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장을 이뤘다. 뱀장어를 먹을 때까지만 해도 E등급 2레벨이었던 탐식이 4레벨까지 상승했다. 수십 년 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계곡 생태계를 완전히 털어버렸으니 당연한 일. 무엇보다 칭호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뱀사골의 공포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굳이 관찰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효과는 대충 알 것 같지만, 다시 덕을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뱀사골의 주민들은 전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었으니.

또한, 시스템이 표시하는 스테이터스가 다소 변했다. 염원하던 수치가 등장한 것. 뒤에 % 가 붙어있기는 한데 무슨 뜻인지 얼추 알 것 같다. 이전의 스테이터스에 미루어 보건대 이번에도 비교하는 것이리라. 관찰을 사용해 확인해 본 결과,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체중의 동물들의 신체 능력 평균이라고 알려준다.

'체력은 아예 표시되지도 않는구나.'

비교 불가. 체력 하나만큼은 괴물이라는 뜻. 손가락 마디보다 작아졌는데 살아남은 슬라임의 생명력이 새삼 놀라웠다.

……뱀사골에선 제법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됐다.

…….

나무 위에 올라있는 청설모를 보니 식욕이 돋워졌다. 하지만 나무 위까지 도달할 방법이 없다. 은신으로 속여서 먹는 거라면 몰라도 작정하고 도망치는 청설모를 잡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러다 문득 '정말 불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탄력을 원숭이가 나무타듯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실패해서 떨어지더라도 물리피해 감소와 약한 재생이 있는 한 죽을 걱정은 없다. 무엇보다 산속에서 나무를 탈 수 있다는 건 큰 이점이 되리라. 지금처럼 힘겹게 오르막을 오를 필요도 없어질 테고. 나무만이 아니라 암벽을 타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여겨 가장 가까운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로 미끄러졌지만, 촉수로 나무의 틈을 파고들어 지지하자 충분히 오를만했다.

다만, 느리디 느려 나무 하나를 오르는 데 3분이나 걸렸다. 가장 낮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려 했는데 이제야 떠오른 게 있었다.

30kg. 자신의 체중. 나뭇가지가 과연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

일단 해볼 생각으로 나뭇가지 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뻗은 첨단, 끝으로 갈수록 꺾일 듯 휘청였다. 설령 떨어진다 해도 죽지도 않고 고통도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조금 무섭다. 생리적인, 어쩔 수 없는 두려움. 애써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떻게든 자기암시를 걸며 간신히 끝 부분까지 도달했다. 매달린 채로 그네를 타듯 진자운동을 했는데 나뭇가지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우드드-―드득!

나뭇가지가 부러짐과 동시에 간신히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 가까운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걸렸다.

일단은 성공, 원래 목표했던 지점은 아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어디인가? 게다가 생각보다 더 높게 뛰어올라 나무 꼭대기 가까이까지 올라 있었다. 수중에서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 때 예상해야 했는데 탄력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강하다.

'높게 뛰었으면 더 멀리 가면 되는 거야.'

중간에 걸리는 것 없이 일직선이 될 수 있는 위치를 포착하고 거기까지 점프했다.

[청설모를 섭취했습니다. 포만감과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뛰어오르는 중에 있었던 작은 사고. 부딪힌 청설모가 식포 속으로 쏙 하고 들어와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새삼 그 위력을 실감했다. 따지고보면 30kg 덩어리가 대포알처럼 날아와 부딪히는 거니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물론 더 무거워지면 나뭇가지가 꺾여 못하게 될 테지만.

아무튼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 슬라임의 몸으론 도심으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방법도 생각해둬야 한다. 계속 야생에서만 지낼 순 없을 테니까.

'그 검은 늑대를 먹을 수만 있다면……'

단번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터. 변형으로 조금만 형태를 바꾼다면 도시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설령 그 검은 늑대를 먹어치워서 같은 늑대가 된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자유자재까지는 아니어도 변형 스킬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변형하는 건 가능할 터. 레벨이 오를수록 더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을 테고. 변형이 있는 이상, 굳이 슬라임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슬슬 다른 생물로 진화하는 걸 염두에 두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진화 가능 목록]

1. -

……당면의 목표는 아마 이 지리산의 지배자일 게 분명한 그 검은 늑대로 진화하는 것. 놈을 먹기 위해선 당연히 그만큼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성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생물에 눈을 끔뻑였다.

풀을 뜯는 고라니. 놈을 보곤 몸을 팽팽하게 당겼다. 시위에 걸린 활줄처럼 팽팽해졌다가 단번에 놓아버리자, 순식간에 날아가 부딪쳤고 고라니는 순식간에 그로테스크한 덩어리로 변했다.

차마 말로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바닥에 늘어붙어 고라니였던 것이 되고 말았다.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애써 이게 다 경험치라고 되뇌며 시각을 비활성화한 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식포로 집어넣었다.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효과적인 공격이었지만, 반동도 있다. 부딪친 충격으로 내 몸도 상당히 손실됐으니까. 마지막에 약한 경화를 사용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는 무기를 얻은 셈. 37kg짜리 바위가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이미 생태계 최강자가 된 걸지도 모른다. 그 검은 늑대만 빼놓으면.

약한 재생의 힘으로 잃어버린 체면적은 금세 복구됐고, 피떡이 된 고라니를 먹어치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라니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소화(F)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소화(F) Lv.9 → 소화(F) Lv.10]

[소화(F) Lv.10가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소화(F) Lv.10 → 공복(E) Lv.1]

촉수가 먼저 E등급에 도달할 거로 생각한 예상을 뒤엎고, 소화가 먼저 E등급에 도달했다.

소화 다음이 공복? 좀 차이가 있지 않나……?

[공복(E) : 식탐이 증가하며 소화 활동을 돕는다]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걸 모르겠다. 그나마 소화 능력은 그대로 남아있어 다행인 듯 싶었다. 아니, 스킬 등급이 올라도 이전 스킬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가던 길을 계속 걷는 중, 뒤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열 감지의 거리 바깥인데도 감지될 만큼 강렬한, 일개 생물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 마치 멀리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그런런 느낌.

그리고 그 거대한 에너지는 이미 한 번 느껴본 바 있다. 진화하기 이전, 어설프게나마 사용한 것만으로 은신의 레벨을 단번에 끌어올렸던 괴물.

검은 늑대와도 다르다. 가능성을 점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한 트럭이 몰려와도 이길 수 없을 거란 강렬한 예감, 아니 확신이 들었다.

[미약한 육감(F)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미약한 육감(F) Lv.3 → 미약한 육감(F) Lv.4]

어째 강해졌다 싶으면 더 강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있다. 쥐와 싸우고, 닭과 사투를 벌이고, 뱀사골에서 괴물 늑대를 보고, 뱀사골의 주인을 잡아서 이제 좀 강해졌다고 생각했더니 그 생각을 단번에 깨놓고 만다.

쉴 틈이 없다는 걸 계속해 상기시키듯이.

'……일단 튀고 보자.'

용감한 것과 무모한 건 다르다. 개죽음은 사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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