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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1화 (11/407)

〈 11화 〉 #7. 지리산의 괴물 늑대 (2)

나무를 오르고 타며 가장 높아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다. 끝까지 올라갔더니 거기에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표지판은 낡고 닳아 부서지기까지 했어도 바위에 음각한 글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般若峰

반야봉

1732m

반야봉…… 역시 모르겠다. 천지나 백록담이면 모를까 산악인이라도 아닌 이상에야 산봉우리 이름으로 위치를 찾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면 도심이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도심은커녕 사방이 산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립공원이라는 말이 괜히 붙어있는 건 아니리라. 이렇게 넓으니 곰을 풀어 놓을 수 있었던 거겠지. 1700m에서도 산 밖에 안 보이는 산맥이라니…… 실제 몸으로 겪어보니 그냥 암담하게 느껴진다.

일단 어디로든 한 방향으로만 쭉 가다 보면 언젠가 도심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생각하면 알 수 있을 테니까.

지리산은 경상도와 전라도에 걸쳐져 있을 터. 어떻게든 북쪽으로만 가면 서울이 나오리라.

방향을 찾는 법을 알고는 있지만, 그건 시계가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일단 어설프게나마 생각해보자.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 동쪽이고 반대편이 서쪽이라면 그 중심에 섰을 때, 오른쪽이 북쪽이 되리라. ……아마도?

***

"팀장님. 지금 막 칠선봉 도착했습니다."

[발견한 건?]

"먹다 남긴 고기뿐입니다."

먹다 남긴 고기. 그 말에 무전기 너머로 팀장이 의아해했다.

[먹다 남긴 고기?]

"오면서 보니 제법 있더라고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 괴물이 아니고서야, 이 지리산에 장난으로 사냥할만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반달가슴곰이겠지만, 애초에 반달가슴곰은 사냥하는 경우 자체가 드무니까.

"…피도 굳었고 사체도 딱딱합니다. 근처엔 없을 것 같습니다."

흔적을 살피며 우택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마력을 넓게 펼쳐봐도 감지되는 건 없다.

[쫓을 수 있어?]

"일단 해보겠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해보겠다는 말에 팀장이 그러라 답했고, 무전이 끊어졌다.

"알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우택은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다. 거기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해당 발자국은 대형 늑대 과로 추정되나 비정상적으로 거대함. 예상 추정치는 체고 2미터이며…]

"2미터?"

의뢰했던 발자국 감정 결과. 하지만 우택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장이 아니라 체고가 2미터라고?'

……이상하다.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워그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체고가 2m라면 호랑이나 사자같은 대형 맹수도 가볍게 능가하는 크기였으니까. 눈을 감고 그 크기를 상상해본 우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영상속의 워그도 그렇게 크진 않았었는데……?

잠깐 뇌리에 스친 어떤 생각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 알려야한다고 생각한 우택이 황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

언뜻 느껴진 기척…… 금세 사라졌지만 보통 놈은 아니리라. 쫓고 있던 워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은하는 일단 가보기로 맘먹었다. 금세 사라져 느껴지지 않아 혹시 착각했나 싶지만, 마력 감지는 여전히 이 방향이 바르다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건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니까. 워그라면 분명 가능하리라.

'여기서 더 가면 반야봉인데…'

지정받은 위치는 진작에 지났다. 잠깐 고민하던 이은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멀리 와 버렸지만 어쩔 수 없다. 뒤늦게 보고하려 무전기를 들었을 땐, 시끄러운 전파음만 울려퍼지고 작동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는 거리를 조금 지나쳐버린 모양. 고민은 있었지만, 얼른 끝내고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워그 한 마리니까.

"마력은 안 쓸 생각이었는데……"

입술을 짓씹으며 그 힘을 끌어올렸다.

마력. 사용자의 기량과 역량에 따라 한없이 만능에 가까워지는 힘. 선천적인 재능이 안에 잠들어있던 마력을 끌어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면 기겁할 사용법이요 응용법이었지만, 놀라운 재능이 말도 안 되는 방법을 가능케했다.

'세그웨이. EUC.'

속된 말로 왕발통이라 불리는 탈 것. 마력으로 만든 세그웨이에 두 발을 올리자 바퀴가 천천히 구르더니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은 좀 빠른 것이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은 모양. 거의 시속 80km는 나오는 것 같은데…… 이래도 워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기왕 내친 김이었다.

아까 느꼈던 기척.마력 감지로 느낀 그것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막 빠르진 않다. …혹시 워그가 아닌 걸까? 이제 1분도 되지 않아 도착할 거리. 겨우 그만한 거리를 남겨두고 이은하는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붉고 붉다…… 대체 왜? 곧, 그것이 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변이 온통 피로 가득하다. 그리고 여기저기 끔찍한 모습으로 엉망진창 널려있는 뼈와 살과 사체들…… 그 끔찍한 광경이 정신을 갉아먹는다. 마력이란 사용자의 정신이 토대가 되는 힘. 집중이 끊어지자 구현했던 세그웨이가 사라져갔다.

'……!'

잠깐 멍하니 있던 이은하는 입을 틀어막아 치솟아오르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

보급받은 무전기가 전파음을 흘린다. 지정받은 위치 이상으로 멀리 갔기 때문인지 역시 전파가 잘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조작하려 했지만, 손이 떨려 잘 움직이지 않았다. 티딕, 티딕- 작동하지 않는 무전기에 입술을 짓씹으며 이은하는 몸을 돌렸다.

여긴, 여긴 위험하다. 지금,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

높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이은하는 반사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뒤늦게 쾅! 하고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무에 머리를 박은 검은 늑대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세게 부딪쳤을 텐데도 충격따위는 없어 보인다. 역시 몬스터다운 맷집…

'……워그.'

정말, 정말 있었다. 검은 늑대의 모습을 주시하며 이은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계속 쫓아왔던 건 역시 놈이었던 모양… 아니, 차라리 잘 됐다.

쓰러뜨리고 보고하면 되니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라긴 했지만, 침착하기만 하면 워그 한 마리 쯤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스스로를 타이른 이은하는 손바닥을 펼치고 마치 무언가를 구기는 듯한 흉내를 냈다.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워그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곧 왼손으로 오른손을 깍지 끼듯이 붙잡자 워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한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 힘을 행사하는 법. 마력의 짓누름을 사방으로 조여들게 응용했을 뿐인 기술.

"Distort…!"

공간 왜곡― 워그는 가능한 한 저항하려했으나, 견디지 못한 채 조여들기 시작했다. 이은하의 손이 주먹에 가까워 질수록 워그의 떨림이 심해졌다. 우득, 우드득. 뼈가 부러져 가죽을 뚫고,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에 워그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고합니다. 지리산에 서식하는 워그는 ―― 이상으로 추정― 그 중 한 ……는 특수 ―니다. C클래스 이하의 ―들은 ―― 귀환하세요. 명령입… ――.]

반쯤 주먹을 쥔 이은하와 공중에 뜬 채로 갈비뼈가 가죽을 뚫고 나온 워그. 처음부터 워그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팀장이 생각했던 그대로 여명의 일원이라면 그 누구라한들 워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그녀의 마음이 느슨해진 순간,

"――!"

등 뒤에서 치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충격에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토하며 몇 바퀴나 굴러 나가떨어졌다. D등급 스킬, 마력 갑옷이 아니었다면 단번에 죽었을지도 모를 위력.

……도대체 왜?

그 의문은 아까 놓친 전파음이 흘러나오자 해소됐다.

[다시 경고합니다. 지리산에 서식하는 워그는 2마리 이상으로 추정. 그 중 한 마리는 특수종으로 추정됩니다. C클래스 이하 헌터들은 즉시 귀환하세요. 명령입니다]

몇 바퀴를 구르는 동안 전파가 가까워진 모양인지 선명히 들리는 음질.

'…두, 마리?'

돌아본 그녀가 마주한 것은 칠흑같이 검은 털을 가진 가히 절망이라 부르기에 합당한 커다란 늑대였다.

무전기의 전파에 흘러나온 말― 특수종 워그. 그게 바로 눈앞의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광기가 깃든 것처럼 붉게 물든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낮은 울음 소리에 심장이 멎은 것처럼 두근거렸다.

피를 흘리면서도 손을 그러모았으나 어디 해보라는 듯, 가소롭다는 듯한 태도로 괴물은 코웃음 쳤다. 있는 힘껏 공간을 일그러뜨렸으나 되려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가 찢어질 듯 아팠다.

아까 그 워그처럼 쉽게는 되지 않는다.

특수종. 종족이 가지고 있는 것 외에 개체로서 또 다른 스킬을 보유한 몬스터.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 거대한 크기가 보통의 것보다 훨씬 월등한 우월종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특수종, 그리고 동시에 우월종인 괴물……!

힘겹게나마 어떻게든 놈을 막으며, 이은하는 가벼운 현기증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과도한 마력 남용으로 사용자를 끝내 코마 상태로 빠뜨리는 현상― 정신 고갈의 전조였다.

'오는 게 아니었는데……'

언제나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이은하는 잘근잘근 입술을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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