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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9화 (19/407)

〈 19화 〉 #11. 산의 폭군

수십 차례의 공방의 교환. 놈의 턱이 벌어지면 물러나고, 피가 줄줄 흐르는 앞발을 휘두르면 거리를 두어야 했다. 놈과 지근거리에서 공방을 주고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역량. 그나마 스킬의 보조로 차이를 억지로 메꾸고 있을 뿐. 가시에 꿰뚫려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놈과 호각을 이루기도 힘들 만큼 크나큰 격차가 있다.

일단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녀석이 가만히 있는다면 뚫을 수야 있겠지만 그럴 리가. 격렬히 움직이는 와중에 힘을 집중할 기회 따위는 없다. 그러다가는 단숨에 물어 뜯겨 죽고 말리라.

그러니 눈과 입 안을 비롯, 가죽으로 덮여있지 않은 곳을 노려야만 한다.

"……!"

그리고 그건 드러난 상처도 마찬가지.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던 내가 상처를 노리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놈이 분기에 찬 눈으로 노려본다. 반쪽짜리 성공. 공격은 성공했지만 경계심을 키우고 말았다. 검은 늑대와 마찬가지로 상처 속으로 파고 들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탐식의 효과가 옅다.

…왜? 모르겠다. 아무래도 저번처럼 잘 풀리지는 않을 모양.

지원은 오는 걸까?

잠시 거리를 벌린 틈에 감지로 확인해봐도 주변에 감지되는 인기척이 없다. 이은하를 제외하고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지원이 오기로 했던 게 아닌가? 7분이라 말했던 건 지원이 오는 시간을 뜻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이에도 놈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다. 전에도 보았지만, 놈 또한 재생 스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뱀장어가 나랑 싸웠을 때 이런 기분이었나?'

선수를 쳐야한다. 달려든 이후, 놈이 반격한다고 직감으로 느끼고 회피했다.

놈의 상처와 더불어 준족, 탄력, 직감, 간파의 네 가지 스킬이 합쳐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다. 달리 말해, 스킬 하나를 더 추가하면 승기는 내게 기운다. 그리고 그럴 스킬이 하나 남아 있다. 단번에 달려들자 놈의 눈이 낮은 울음을 토했다.

'돌진.'

적을 향해 달려들 때 작용하는 스킬. 한 층 빨라진 속도에 놈의 타이밍이 어긋난다.

"―――!"

틈을 노려 물어 뜯어 곧바로 탐식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감각이 옅다. 왜 놈에겐 탐식이 듣질 않는 걸까? 녀석의 그간 벌였던 행동. 단서는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동물을 끝도 없이 먹어 치운 이유. 포식, 아니 탐식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설명이 된다.

탐식은 접촉한 순간 섭취할 수 있게끔 효과를 발하는 스킬. 다시 말해 내가 녀석에게 접촉해 탐식을 사용했을 때, 놈 또한 탐식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서로가 탐식했지만, 내가 먹어치웠다는 건 그나마 내 탐식의 레벨이 조금 더 높다는 뜻이리라.

효과는 옅지만, 분명 섭취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놈의 탐식이 통할 일은 없다는 뜻이니까.

"――!"

놈에게로 돌진. 크게 울부짖는 놈의 공격을 연달아 피하고 파고들자 놈이 처음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상처를 헤집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생채기를 냈을 뿐이니까. 역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놈과 맞붙을 때마다 체면적이 줄어들 정도. 놈이 자세를 낮추고 도약을 준비했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노려지는 건 이은하일 테니까.

이어지는 공방.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그러지 못한 채 계속 달려들었다. 수십 수백의 공방에서 매번 우위를 점하더라도 한 번의 실수가 그 이상의 데미지로 돌아온다.

마치 불합리한 슈팅 게임을 연상케한다.

'…….'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는 나와 재생으로 서서히 회복되는 놈.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으드득, 이빨이 맞물렸다.

"아우우우우!"

승리를 확신한 듯, 놈이 고개를 들어 울부짖었다. 내가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더라면 이은하와 함께 쓰러뜨릴 수 있었을 거다.

"――♪"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선율. 상황과 맞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 이은하일까? 하지만 그녀는 기절해있다. 알 수 없는 허밍 덕분에 상념에서 돌아왔다. 괴물 늑대는 뚝뚝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신다. 그 시선은 내가 아니라 이은하에게 향해있었다.

"……?"

놈은 다리가 풀린 듯, 잠시 비틀거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걷는다. 일순이라 잘못 봤나 싶었지만, 남긴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련한, 여러 감정이 담긴 듯한 허밍을 멍하니 듣다가 숨을 골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 잘 싸워왔는가하는.

나름 잘했다고 생각한다.

뱀장어도, 검은 늑대도 하나같이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길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나아가겠다는 의지였다. 뱀장어와 싸울 때는 변형으로, 검은 늑대와의 싸움에서는 직감과 간파로.

그럼 나는 잘 싸우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잘 다루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부족한 스테이터스를 메꿀 수많은 스킬. 그 스킬들을 다룰 인간의 지능.

다시 자문했다. 제대로 쓰고 있느냐고.

돌아온 답은 여전히 같다. 모른다고. 알았다면 진작 고쳤을 테니까.

혹시 다른 건 없느냐고 묻자 스스로 답이 돌아왔다.

……그래. 마력이 있었다. 아직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고 끌어낼 방법조차 모르는 미지의 힘이.

그걸 놈은 어떻게 사용했었는가?

바위를 들어 올렸었다. 단순하고 투박한 방법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 이은하는 어떻게 사용했는가?

거미줄과 같은 그물. 공간의 왜곡. 무수한 가시. 거대한 송곳. 같은 마력이더라도 워그와 이은하가 가진 마력은 결과 격이 달랐다.

아니, 정말로 물어야 할 것들은 그런 게 아니다.

괴물 늑대나 이은하가 아니라 나 자신. 나는 어떻게 사용했었는가? 바로 그것이었다.

순간, 내면에서 무언가가 들끓었다.

커피포트 속 물이 끓는 것처럼 작았지만, 분명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그것을 느꼈다.

형태가 없다. 색이 없다. 색깔도 없다. 느낌이 없다. 소리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마치 악마(魔)가 속삭이는 듯,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 힘(力). 그래서 마력.

[변화 : 물체의 특성이나 성질을 특징을 다르게 한다]

모습을 다르게 할 뿐인 변형과는 달리 특성과 성질조차 변화시킨다. 그 힘의 대가는, 마력이었다.

커피포트 속 물이 끓어 증발하자 현기증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정신 고갈이었다.

사용법조차 몰랐던 마력의 방아쇠를 당기고 차츰 변화를 끌어냈다. 이미지하고 구체화해서 만들어내자.

놈을 이길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같은 늑대로서는 안 된다. 놈은 우월종이었고, 나는 워그의 모습을 흉내냈을 뿐인 반쪽짜리니까. 생물로서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늑대가 아니라, 슬라임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

그 이미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

노래가 멈췄다. 이제는 부를 필요가 없다는 듯 콧노래를 멈추고 경내를 바라보는 소녀. 등 돌린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기뻐해도 좋아. 너희가 찾던 아이는 살아 있으니까."

다만 우택은 소녀의 목소리가 어딘가 들떴다고 느꼈다. 들떴다? 저만한 존재가 기뻐할 만한 일이 있단 말인가? 이를 으드득 물고 최대한으로 마력을 일으켜 저항했다. 그런데도 상반신을 일으키는 게 고작이었지만, 소녀는 의외라는 듯 돌아보았다.

"살아있, 다는 말입니까?"

한마디 말을 내뱉는 게 힘겨웠다. 고작 한마디 말에 숨이 가빠와 답답했다.

"그래."

압박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간신히 견디고 있던 팀장이 비틀거리면서도 물었다.

"당신이…… 당신이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

"대답해주십시오! 질병은 사라졌습니까? 역병은 쓰러졌습니까?!"

"아니."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팀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확인하러 왔을뿐이야."

"그것이, 당신이 그것들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일입니까?!"

순간,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팀장의 다리가 풀렸다.

10초라니 이 얼마나 오만했는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라 한들, 그녀에겐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새삼 그 격차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팀장은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소녀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팀장을 향해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나에겐 그래."

어딘가 아련한 듯한 목소리. 그 속에서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깊은 슬픔 혹은 회한이 느껴졌다.

"가보도록 해. 이미… 끝났으니까."

생략된 말은 무엇이었을까? 순식간에 소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잠시 멍하니 있던 우택과 팀장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숨에 경내로 뛰어든 둘은 바닥 한가운데 쓰러져있는 이은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가 흥건한 채로 기절해있다. 팀장은 재빨리 포션을 꺼내 그녀에게 복용시켰다.

"아…"

몇 분이 더 지나고 몇몇 팀원이 뒤늦게 합류하자 은하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정신이 드냐?"

"…선배? 팀장님?"

"넌 진짜. 정신이 있어? 없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온 거야? 죽고 싶으면 차라리!"

"우택아."

"…죄송해요."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은하를 보며 우택은 간신히 화를 눌렀다.

"…일단 내려가시죠."

"그래."

경내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이미 갈변한 피가 바닥을 흥건히 물들이고 있고 경내 여기저기가 엉망이었다. 분명한 전투의 흔적. 이미 마력으로 구현했던 현상들은 사라졌지만, 그 잔향은 남아 있었다. 팀장은 눈쌀을 찌푸렸다. 워그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워그가 살아있다는 뜻인데 어째서인지 은하도 살아 있다.

'왜?'

모르겠다. 몬스터의 행동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두 번이나 그녀를 놓아준' 워그의 행동은 특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분께서는…'

이은하를 보러 왔던 걸까? 분명 재능도 있고 센스도 있다. 세련됐지만, 훈련되지 않은 방식이었다. 갈고 닦으면 분명 높은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편린이 보이더라도 아직은 원석. 스퀘어의 마스터인 그녀가 고작 재능따위를 보려 이 산까지 찾아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도대체……?

"――아우우우우우우!"

울부짖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은 순간, 팀장은 전신에 소름이 돋은 것을 느꼈다. 경계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감지가 닿지 않는 훨씬 먼 곳에서 들려온 메아리 친 울음이었다.

"티, 팀장님."

팀원들이 벌벌 떨고 있다. 마치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처럼 공포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아… 아!"

특히, 이은하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처럼 두려워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건 우택과 자신을 비롯한 B클래스 이상의 일부 헌터들 뿐.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 피식자로서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고작 워그 따위한테?'

고작 워그. 고작, 커다란 늑대. 특수개체라고 해봤자 찾기가 어려웠을 뿐이지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는 정도였을 터. 이윽고 포식에 생각이 미치자 팀장은 질끈 눈을 감았다.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난 것 같다고. 종을 뛰어넘어서 결국, 이 산에 새로운 폭군이 태어나고 말았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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