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13. 하수도의 재앙 (3)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괴물. 몸 전체에 박힌 눈알의 갯수는 키메라 비스트를 연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실물은 상상 이상으로 기괴하고 흉물스러웠다. 붉은 고깃덩이에 쥐의 가죽을 덕지덕지 엮었고 가죽에 박힌 눈알. 놈의 외형에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을 느꼈다. 랫 맨은 몬스터이자 연금술사. 그들에게 금기시되는 단 하나의 철칙을 괴물 연금술사는 코웃음을 치며 깨트린 것이다. 철창 너머의 끔찍한 흉물. 이미 염탐으로 확인한 녀석의 스테이터스는 결코 얕잡아볼 수 없다. 처음부터 오지 않았다면 모르되, 열쇠로 문을 연 순간부터 싸움은 각오해야했다.
불쾌감이 아닌 놈의 강함. 보다 정확히는 녀석이 가진 스킬이었다. 급속 회복. 내가 가진 E등급의 약한 재생보다 두 단계나 높은 C등급의 스킬. 이어붙인 누더기 모습의 괴물이지만, 아니 오히려 저런 모습으로도 살아있다는 것이 C등급 스킬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는 셈.
소설 속 주인공은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 모양. 놈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구르는 것에 혐오감밖에 느끼지 못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구르다가 다시 나를 주시했다. 확실하게 나를 인지한 놈은 거세게 철창에 쾅! 하고 부딪혔다. 부서질 것처럼 철창에 거센 충격이 가해졌지만, 그렇게 쉽게 부서질거라면 랫 맨이 놈을 이 안에 가두지는…?
쾅――!
시발. 하수도에 있는 철창이 좋아봤자지. 랫 맨을 믿은 내가 등신이었다. 애초에 놈은 연금술사.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키메라를 진정시킨다든가 했겠지.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아직 철창 안에 갇혀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재빨리 마력을 끌어올렸다. 16레벨이 되면서 49로 상승한 마력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잠깐 놈을 처치할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마력탄은 깨끗하게 관통하겠지만, 그만큼 회복하기 편하리라. 놈에게 급소는? 급소는 있나?
소설 속에서는 숫자로 밀어붙였다. 애초에 하수도가 아니라 부산에 나타난 괴물이었고 그리 강하지도 않았으니까. 어디까지나 부산에 나타난 재앙을 처리하고 뒷처리를 하던 와중에 놈들의 본거지가 이 하수도라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한다. 급한대로 마력을 뭉뚱그려 녀석을 망치로 내려찍듯 찍었다. 콰직! 마치 밟은 껌처럼 변했지만, 실시간으로 부풀어오르고 있다.
예상했던 일. C등급 스킬의 위력. 충격으로 녀석의 살점이 튀어오르고 눈알이 빠져 굴렀지만, 그 살점조차 꾸멀꾸멀 기면서 몸으로 돌아가려하고 있었다. 이 살점이 꾸멀꾸멀 기어가기만 해도 회복될 터. 데미지는 입히더라도 그 데미지가 회복되는 속도가 실로 불합리했다.
C등급 스킬을 가진 괴물을 이기기엔 아직 부족한걸까? 아니, 아니다. 이길 방법은 있다. 다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후의 보루일 뿐. 어느새 철창은 거의 다 휘어졌다. 한 번 아니면 두 번 정도 견디고 폭삭 무너지고 말리라.
선택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먹어야 해.'
먹으면 이길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먹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문득, 차라리 도망치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대신 놈이 하수도 밖으로 나가게 되면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가겠지.
…하지만 결국 허구 아닌가? 어차피 소설 속 세상이니까. 게다가 다 죽을 사람들이니까.
그런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까지 하면 정말 가까스로 사람인 채로 남은 마음이 완전히 바스라질 것 같다. ――진짜 괴물이 되고 말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것만큼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람을 소재로 쓴 키메라. 그럼 이건 인육일까? 키메라를 먹는 건 식인일까? 사람 고기를 먹는 게 나을까 아니면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나을까? 한참 고민하다 흔들리는 철창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공복(E) Lv.6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공복(E) Lv.6 → 공복(E) Lv.7]
쿠광-! 마침내 철창이 부서지고 녀석이 밖으로 기어나왔고, 헛구역질을 참아야 했다. 창 밖으로 나와 전구의 빛을 받은 놈의 모습이 더욱 선명히 보인다. 부딪친 충격으로 터진 망막과 수정체가 뒤섞여 가죽으로 덮인 고깃덩어리를 하얗게 물들였다.
――생각하지 마.
토할 것 같아도 먹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알고 있는데도 끝없이 되뇌며 싸움에 대한 것만을 떠올릴 수 있게 노력했다. 녀석의 민첩은 고작 80 언저리. 그래도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다. 놈이 가진 거라고는 힘과 회복력. 오직 두 가지 뿐.
달려들어 크게 입을 벌렸다. 다소 질기지만, 뜯어먹을 수 있다. 놈의 물컹한 살점과 가죽을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데구르르 구르는 눈알이 콰작하고 씹어져 날계란처럼 흐물거렸다. 몇 번이나 달려들어도 날 잡을 순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녀석의 몸으로부터 기다란 촉수가 뻗어나왔다. 서너가닥에 불과한 촉수였지만 공기를 가르며 붕붕-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사람의 손으로 음속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채찍이라고 한다.
그 원리는 손잡이에서 끝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는 것. 스윙으로 인해 발생한 운동량이 채찍 끝부분으로 옮겨지고 채찍 끝의 질량은 손잡이 부분에 비해 적기 때문에 속도가 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촉수의 속도가 음속까지 닿지는 않겠지만 쉽게 피할 만한 속도는 아니다. 녀석의 힘은 265. 경시할 수 없는 수치. 그 힘에 저런 속도로 얻어맞으면 모든 피해 감소와 경화를 합치더라도 견딜 수 있을 턱이 없다.
따라서, 전부 피할 생각으로 움직여야한다. 다행히 그 숫자가 많지는 않다. 제아무리 빠르다한들 간파와 직감으로 경로를 미리 예상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다.
한 발 먼저 움직이면 된다. 날아오는 두 갈래 촉수를 피하고 앞에서 뻗어오는 촉수를 뛰어서 피했다.
공중에서 탄력을 사용하고 거기에 돌진 보정까지 받았다. 사정거리가 긴 무기의 단점은 품 속으로 파고들면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점. 녀석의 촉수는 이제 무용지물… 아니, 아니다! 놈은 멈추지 않았고 그걸 가까스로 피했다. 녀석의 촉수는 기어코 멈추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을 깊게 파고들었다. 덕분에 상상만 하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볼 수 있었다.
――멋대로 깊게 파고들면 멈출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걸 눈치채는 게 한 순간만 늦었더라도 쓰러지는 건 나였으리라.
녀석은 망설이지 않는다. 공포와 두려움이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이지를 상실한 키메라일 뿐이다. 고통을 느끼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있는지 없는지 모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또한, 녀석에게는 급속 회복이라고 하는 C등급 스킬이 존재했다. 놈에겐 자기 자신을 공격할 위험이 있더라도 나를 배제하는 게 합리였다.
콰작-! 물어 뜯은 살점을 잘근잘근 씹으며 염탐을 사용했다.
[체중 166kg]
그래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얼마나 먹어치워야 놈이 멈출까? 놈의 행동을 멈추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먹어치워야할까?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악식의 접촉 섭취가 아니었다면 단번에 3kg나 먹어치울 순 없었으리라.
물론, 회복하고 있지만 꾸물꾸물 형태만 이루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녀석은 찰흙과 비슷하다. 뜯어진 부분이 보기 싫어서 다시 만들더라도 없어진 찰흙이 다시 생겨나는 건 아니다. 마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재생과는 다르다. 놈은 회복하지 못한다.
상처를 복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낫게하는 것의 차이. 언뜻보면 재생이 회복의 상위 능력 같겠지만, 회복은 다른 이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이 싸움의 행방은 죽기 전에 놈을 먹어치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
"……."
틀림없이 여기가 입구. 지하층이 있는 건물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딜 가봐도 이보다 더 깊숙이 들어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
부팀장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빌어먹게 구름 한 점 없는 이상적인 날씨였다. 이런 날에 야외 피크닉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고개를 떨구자 거기에 있는 게 현실이요, 진실이었다.
"이 미친 자식들은 왜 하수도에 있냐고!"
한참을 망설이던 부팀장은 떨리는 손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아 씻팔! 우웨에에에엑!"
……1초 만에 후회했다.
***
[체중 146kg]
146kg. 처음 169kg에서 20kg이 넘게 줄어들었다. 육안으로도 놈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몸 전체의 눈알은 절반 가까이 터져나갔지만 어차피 회복할 터.
슬슬 놈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있다. 채찍같은 촉수를 피하는 게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문제인 점은 촉수의 갯수가 그 이상으로 많아지고 있다는 것.
독이 바짝 오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촉수가 무려 10개로 늘어나고 말았다. 이제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보장이 없는 걸 넘어서 자신이 없었다.
[간파(E)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간파(E) Lv.3 → 간파(E) Lv.4]
간파의 레벨이 상승함과 동시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잘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힘들게 싸울 필요는 없지 않았나?'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조금 물러나자 녀석은 그 만큼 앞으로 나서 거리를 좁혔다. 일정 거리를 두고 촉수로 공격하거나, 너무 다가오면 몸으로 받아버린다. 단순무식하고 지성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싸움법. 어쩌면 속을지도 모른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손해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냅다 몸을 돌려 달아났다. 놈은 그걸 빈틈이라고 여긴 모양인지 촉수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돌바닥이 깨지며 알갱이들이 튀어오르는 중에 녀석이 꾸멀꾸멀 기어오고 있었다.
물론 내 기준이었고, 사람들이 뛰는 속도보다는 빠르다. 아마 우사인볼트 정도 되는 게 아니라면 도망치는 건 포기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달린 것을 도움닫기로 이용, 뛰어올랐다.
"……?"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10m가 되는 고랑을 너무 가볍게 뛰어넘은 것.
"……?"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도움닫기를 하긴 했지만, 천장이 낮아서 제대로 된 도약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m는 될 법한 고랑을 너무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심지어 탄력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스스로의 한계를 재단하고 있던 게 아닐까? 이럴 거면 굳이 물에 몸을 담글 필요도 없었겠는데…….
아니. 어차피 경험치 때문에 들어가긴 했을 터.
그 때, 녀석도 고랑 속으로 몸을 내던졌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 육중한 몸이 고랑에 잠겼다가 다시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 어떻게 떠오르긴 해서 다가오는데 그 속도가 무척 느리다. 예상대로의 전개에 나는 씩 웃었다. 수영과 잠수의 보정으로 물 속을 활보하는 나와는 달리 녀석은 가라앉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첨벙첨벙, 촉수로 물장구치며 발버둥치며 반대편으로 나가려한다. 그러나 나는 깊숙이 잠수해 녀석을 물었다. 촉수가 채찍처럼 휘둘러졌지만, 물의 저항 속에서는 그 힘을 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경화를 사용해 충분히 견딜만하다. 거의 데미지를 받지 않는 나를 보고 화가 난 모양인지 몸으로 들이받았지만, 물의 저항으로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110kg]
놈의 부족한 지성은 고랑에서의 탈출보다 통하지 않는 공격을 우선시했다. 결국 채찍처럼 휘두르는 공격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은 놈은 물 속에서 나를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다. 진짜 워그였다면 그대로 갈비뼈를 압박당해 질식사 했겠지만, 부정형인 내게는 큰 의미없는 공격. 그 압박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1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뒤늦게 소화한 살점이 경험치로 치환됐다. 몇 번이고 나를 사로잡았지만 그때마다 빠져나왔다. 굳이 마력을 쓸 필요도 없이 녀석은 점점 내 먹이가 되어갔다. 최후의 발버둥을 쳐 보지만, 촉수조차도 씹어 먹으며 녀석의 체중을 점점 줄여나갔다.
[91kg]
어느새 절반 가까이 쪼그라든 놈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오물 속에서 더럽혀지면서도 눈꺼풀이 없어 눈들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다. 실험체로 이용당한 희생자들의 원통함… 그런 게 느껴질리도 없건만, 눈알 하나하나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
최후의 발악일까? 녀석은 기다란 촉수를 뿜어냈다. 열 가닥의 촉수 대신 기다란 촉수 하나를 뽑아낸다. 그 촉수는 고랑 속을 마구 헤집었지만, 텔레폰 펀치에 당해줄 정도는 아니다. 코웃음친 순간, 녀석은 이내 날 사로잡는 걸 포기하고 목표를 바꿨다.
드디어 지상으로 촉수를 뻗는 놈. 줄어든 자신의 몸이라면 끌어당길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 실제로 그건 사실이다. 여기가 수면이 아니라면 싸움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 하지만 얌전히 수면 밖으로 보내 줄 생각은 없다.
올라가게 놔두지 않는다. 놈을 물어 뜯으며 끌어내렸지만, 생각보다 끌어올리는 힘이 강했다. 쿵쿵 들썩이며 고랑 벽을 치고 박는 놈과 나.
물 속에서도 충혈된 눈을 뜨며 나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려 한다. 올라가려는 자와 끌어내리려는 자. 양자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패한 건 나였다. 민첩이라면 스킬의 보정까지 합해 나보다 빠른 상대에게도 맞설 수 있겠지만, 힘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미 충분했다. 탐식인 시절부터 획득했던 접촉 섭취로 인해 실랑이를 벌이며 놈을 상당량 섭취할 수 있었으니까.
[체중 64kg]
처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아진 덩치. 절반 정도 먹으면 죽을거라 여겼는데, 급속 회복이 생각보다 뛰어난건지 아직까지 살아 있다.
이 지경까지 와도 놈은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아니, 랫 맨이 하수도에 숨어서 만든 것이니만큼 발각되지 않기 위해 애초부터 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 거겠지만.
놈을 처치하고도 둘러봐야할 곳이 남아있다. 이제 남은 건 겨우 64kg. 이제껏 아낀 마력을 일으켰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다. 강화하는 방법은 이미 랫 맨이 보여줬었으니. 덩치가 줄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촉수는 14가닥으로 늘어났고, 놈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촉수는 휘릭거리며 섬뜩하게 공기를 갈랐다.
지면에서 발이 떨어짐과 동시에 쇄도했다. 돌진의 보정으로 가속. 네 가닥의 촉수를 피했으니 남은 건 10가닥. 곧 직감과 간파가 경종을 울렸다. 두 스킬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줬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다섯 가닥의 촉수― 탄력을 사용해 피했다. 세 가닥의 촉수가 대기하고 있다. 반대편을 쳐다보니 두 가닥의 촉수가 있었다. 양옆으로 휘어잡으려는 속셈. 그러나 촉수가 반응해 움직이기도 전에 마력으로 강화된 육체가 포위망을 뚫었다. 단숨에 물어뜯고 굴렀다. 뒤늦게 따라온 세 가닥의 촉수가 녀석 자신을 때렸고, 고통은 없다해도 충격으로 크게 휘청인다.
[57kg]
물어뜯은 촉수 둘. 남은 12가닥의 촉수가 꿈틀거렸다. 급속 회복이 녀석을 회복시키듯, 약한 재생 또한 나를 회복시켰다. 다음 일격을 준비.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자 강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에 한 차례 틈을 보인 순간, 촉수가 육박해온다. 그리고, 코앞에서 멈췄다.
'……!'
삼킨 숨을 뱉었다. 고전? 고전하지는 않았다. 난적이기는 했으나, 단 한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정신적으로 지치는 싸움이기는 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두통과 현기증이 '마력. 더 쓰고 싶지 않아?'라고 유혹해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정말로 마력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이를 악물고, 그 욕망을 어떻게든 억눌렀다. 전능감에 취해 멍청하게 적진에서 기절할 수는 없다. 속삭이는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죽은 키메라의 남은 살점으로 고개를 쳐박았다.
[키메라 비스트를 섭취하였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키메라 비스트의 완전한 죽음.
――지금 이 순간, 하수도의 재앙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재앙을 극복한 나는 두통과 현기증에도 굴하지 않고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