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6화 (26/407)

〈 26화 〉 #16. 코발트 광산? 아니 코발트 던전!

"……."

조용히 숨을 죽였다. 새벽의 광안리 사건 이후, 헌터들이 사방 천지에 쫙 깔렸다. 어깨의 견장에 그러진 광명회(光明會)라는 글이 너무 선명하게 적혀있다.

'광명회…'

부산에 자리잡고 있는 클랜. 두 쌍둥이 형제가 이끌어가는 경상도 일대를 책임지고 있는 대표 클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 하수도 건이겠지만.'

홍유리가 광명회에 알린 거겠지. 광명회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헌터들까지 부산 일대를 감시하듯 돌아다녔다. 심지어 하수도 뚜껑마다 헌터들이 다 깔려있는데…

'대응 참 빠르네.'

도시 안에서 키메라 실험이 자행됐었으니 오히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마 내가 묻어놨던 무덤도 봤을테고…

[광명회는 경상도 일대 각 클랜들을 긴급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광명회의 헌터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수많은 의문에도 광명회를 비롯한 각 클랜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파음. 사람이었다면 듣지 못하겠지만, 약한 청각은 미세한 전파음조차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또, 그들은 하수도 진입로를 막으며 환경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여명의 홍유리 헌터가 광안리 해수욕장을 초토화시킨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 중에 있으며…]

'곤란한데…'

헌터들이 쫙 깔린 이상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건 어려워졌다. 언제 어디에 헌터가 숨어있는 지 알 수 없으니 설령 은신을 사용하더라도 들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재앙을 막은 건 좋았지만, 그 영향으로 그가 소속되어 있는 광명회가 이렇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게 됐다.

'…순서를 바꿨어야 했어.'

그를 죽이고, 그다음에 재앙을 막았어야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행착오였다. 아니, 애초에 하수도의 재앙이 들킬 거란 생각 자체를 안 했으니…

'재수도 없지.'

돌아서려는 순간.

[속보입니다. 현재 경산 코발트 광산이 던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태는 동굴과 미궁의 복합형이며 관할 지역 클랜은 이 사건을 타 클랜들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코발트 광산이 던전화됐다고?'

뜻밖의 소식이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언뜻 들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런 곳이 던전화됐다고?

'이런 시나리오가 소설 속에 있었나?'

내가 기억하기에 언급된 적도 없다. 하지만 2년 전 시점이었으니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대구로 갈 생각이었는데 미궁이 활성화됐다면…

'안 갈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레벨은 올려야한다. 새삼 동물들을 학살해봤자 내 레벨이 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악식으로 경험치 치환은 되겠지만 그렇게 레벨 업 하는 것은 너무 효율이 좋지 않다.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일단 목표는 경산이었다.

***

"안녕하세요! 그, 사무부에서 다시 수색 3팀으로 복귀하게 된 이은하라고 합니다!"

은하는 자신을 향한 싸늘한 눈초리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은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사과해야…'

사과해야한다. 은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준비했던 말을 생각했다.

"제, 제가! 얼마 전에. 아니, 며, 며칠 전에. 지리산에서…"

더듬더듬거리면서도 '말하자. 말해야 해.' 끊임 없이 되뇄지만, 정작 머리가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하려고 했더라? 뭐라고…'

미리 할 말도 생각해뒀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굳어진 은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분명 입은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머리는 새하얘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는 자신을 마치 뒤에서 지켜보는 것 같다.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방관자가 된 것 같았다.

어느새 은하는 허리를 꺾은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 허리를 숙였지? 할 말은 다 했나? 모르겠다. 엉망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짝. 짝. 짝.

하나의 박수 소리. 그 소리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우후죽순 커진 박수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짝짝짝짝짝짝!

"……!"

그제야 은하는 꺾었던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다들 안 그래요?"

"아직 어리잖아. 혼자 엎어져서 자기 코가 깨진건데. 괜찮아. 괜찮아."

"그래. 앞으로 잘 하면 되는거지. 잘 해보자."

들려오는 격려에 그녀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이은하 양은 이로써 3팀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본인도 이렇게 사과하네요."

상황을 정리하는 것처럼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건 이은하 양이 평소에 잘해왔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은하가 평소에 잘하긴 했으니까."

수긍하는 분위기에 찬물이라도 끼얹는 것처럼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어. 뭐야?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누가 이렇게 회의실 문을 박차고 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붉은 머리가 보였다.

"부, 부팀장님?"

"뭐야? 왜 다 여기 모여있어?"

"…은하가 3팀으로 다시 복귀했거든요."

"은하? 엥? 왜? 다른 데 갔었어?"

"사무부로 옮긴 지 상당히 됐었는데요?"

"몰라. 이 자식아. 부산에 몇 달은 있었는데."

"홍유리."

"왜?"

뻔뻔하게 답하는 홍유리를 보며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여기 공석이야. 그리고 너 새벽에 광안리… 그건 나중에 말하자."

"엉. 알았어. 근데 나 먼저 들어가도 되냐? 출발하기 전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나중에 호출할게."

"오케이~ 아 그리고 아무튼 3팀으로 돌아온 거 축하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사라진 부팀장을 보며 팀원들이 수군거렸다. 은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지만.

"…에휴. 또 난리가 나겠네."

"부팀장님 파견 갔을 때가 좋았는데… 또 난리겠는데요."

"조용조용! 아무튼 해산합니다. 지리산 차출 인원은 출발은 1시니까 점심 드시고 다시 여기로 모이시고요. 자기가 가는지 안 가는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

팀장이 가장 먼저 방을 나서자 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부팀장님 부산에서 맡은 일 벌써 끝났냐?"

"아뇨. 끝나진 않았는데 알파 때문에 급하게 온 거라고 들었는데요."

"아오… 망할 알파. 끝나면 다시 돌아가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어차피 부팀장님 오셨으니까 일은 빨리 끝날 것 같은데요."

"이야. 우택이는 좋겠다? 잠깐 편해지겠는데?"

"하하…"

정작 당사자는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그동안 부팀장님 일 대신 하느라고 힘들었잖아? 고생했다. 우택아. 어디 보자… 지금 밥 먹을 거냐?"

"아뇨. 조금 있다가요. 먼저 식사하러 올라가세요."

"그래. 고생해라~"

"어~ 아저씨! 같이 가요."

"뭐 이 자식아. 네가 왜 같이 와?"

"어허. 이 사회초출 아저씨가?"

"아~ 요놈 이거 진짜 우려먹네. 알았다. 같이 가. 가! 인마."

"……나도 이제 밥이나 먹어야겠다."

"…선배!"

"뭐. 왜. 인마."

"고맙다고요. 아까 먼저 박수 쳐줬죠?"

"그거 나 아니야. 그리고 너. 이번에 차출 안 됐다고 또 혼자서 지리산…"

"아~ 괜찮아요. 얌전히 있을 테니까."

"그래. 뭐. 그 사이에 설마 또 사고 치겠냐만은."

회의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곧 혼자 남게 된 은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왠지 이번엔 안 잡힐 것 같으니까요."

***

"―그르릉."

양산까지 오는 건 쉬웠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경산으로 가려면 어디 방향이지?'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표지판 같은 것만 보면서 찾아가는 게 여간 쉽지가 않았다. 사람들한테 길을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은 기차역이나 고속도로를 찾으면 그럭저럭 찾을 수 있었는데, 큰길에는 종종 광명회나 그 외 헌터들이 깔려있어 함부로 다니기 어려웠다.

'…산에 있을 때가 편했네.'

어떻게 코발트 광산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저물어 있었다.

"그르릉."

통제하고 있기는 했지만 헌터들이 많지는 않았다. 아직 사건을 맡을 클랜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조심스레 숨어서 염탐으로 확인해 본 결과.

[오구환(인간)]

[신상 162.8cm] [체중 66.2kg]

[힘 151] [민첩 194] [체력 170] [마력 185]

'할 만한데?'

스테이터스를 보면 헌터가 맞기는 했지만,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저게 정상이겠지.

'그렇게 위험한 던전은 아닌가 보네?'

지키고 있는 사람이 헌터 둘…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니, 전우택이나 홍유리같은 인간들이 헌터 중에서도 뛰어난 거겠지.

'근데 스킬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무시할 순 없겠네.'

쉽지는 않겠지만, 못 이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게끔 조용히 은신으로 숨어들었다. 악조건이었긴 하지만 홍유리도 잠깐 속였던 D등급 은신. 들킬 리가 없지.

'음.'

코발트 광산으로 들어가자마자 "코루룩. 코루룩!"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광산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개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몬스터였다. 잠깐 갸웃했지만, 금세 어떤 몬스터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설마 코볼트인가?'

개 머리에 사람 몸. 내가 알던 코볼트는 모 게임에서 등장하는 조그만 갈색의 광산에서 광물을 캐는 걸 낙으로 즐기는 몬스터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랬다.

[코볼트]

[신장 144cm] [체중 31kg]

[힘 51] [민첩 84] [체력 76]

'…코볼트 맞네.'

염탐으로 확인해 본 결과였다. 민첩이 84. 체력이 76. 확실히 내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다 먹어 치울 생각인지라 은신을 풀었더니.

"―깨, 깨갱!"

녀석들이 단번에 엎드렸다… 아니, 아예 조아리고 있다.

'뭔 상황이야?'

"낑. 끼잉."

네 마리나 되는 코볼트가 납작 엎드려서 손을 모아서 비볐다. 영락없이 비는 모양새.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나도 개고…'

얘네도 개다. 아마 내가 자신들보다 훨씬 강하니까 보스로 모시겠다… 뭐 이런 뜻 아닐까? 녀석은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미친 듯 끄덕였지만,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장 앞에 있던 코볼트에게 [돌진]. 민첩 84가 장식은 아니라 반응은 한 모양인데 한 박자 늦어서 이미 목덜미를 물어뜯긴 상태였다.

'조금만 빨리하지 그랬냐?'

남은 세 마리 코볼트는 조아리다 화들짝 놀라 창을 겨눴다.

'창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실제 무기가 겨눠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무섭거나 두려운 건 아니었지만.

"…끼잉. 끼잉!"

녀석들은 겨누기만 한 채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발아래 숨이 끊어진 코볼트가 악식에 속한 접촉 섭취 효과로 점점 사라져가자 놀란 코볼트 한 마리가 창을 찔렀다.

'오~ 동료애.'

나도 모르게 창을 물었다가 입이 찔리고 말았다.

'아. 실수.'

아프지는 않았지만 실수. 그런데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릉?"

"깨개갱?!"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3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실화냐?'

창을 섭취해버렸다…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면 착각이라고 여겼겠지만 메시지가 떠버린 이상 착각의 여지가 없다.

'…생각해보니까.'

[악식 :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된다]

악식의 설명이 뒤늦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편식을 안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주어가 없었다. 아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이런 뜻이었다고?'

'뭐든지'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된다. 돌이든 나무든 광물이든. 심지어 코볼트가 찌른 창조차. 녀석은 힘겹게 창을 뽑았지만, 창의 날이 없다. 뽑힌 게 아니라, 내게 섭취된 것이었다. 내가 헤 하고 입을 벌려주자 녀석들은 동요하더니.

"낑. 끼기깅!"

숫제 괴물을 보는 시선. 혼비백산 도망가는 녀석들을 쫓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니, 것보다…

"그르릉―"

시험삼아 바닥에 놓인 돌을 먹어봤다. 돌을 섭취했다는 문구는 뜨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돌을 소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이가 없네.'

이거 그냥 흙이나 돌만 먹고도 레벨업 할 수 있게 된단 소린데? 물론 효율은 별로겠지만.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계속 사용하고 있었을 텐데.

'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잖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었다. 효율을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24시간 365일 내내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나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스킬이었다.

'레벨은 둘째치고 악식의 스킬 레벨도 올릴 수 있겠는데.'

그것뿐 아니라 공복의 스킬 레벨도 오를 텐데. 입 한가득 흙을 집어넣었다. 미각이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다시 출발해볼까?'

얼마 가지 않아 발을 멈춰야 했다.

[동굴과 미궁의 복합형이며…]

뉴스로 들었던 말. 과연 미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그냥 기척을 따라서 가장 가까이 가려 했는데 몇 번이나 막다른 길을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가봤던 길목에는 발톱으로 표시를 했다.

'…광산이라는 이미지는 전혀 없는데.'

광산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광석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장소만 코발트 광산일 뿐이었고 동굴 안에 미궁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킁킁. 킁?"

별안간 맡아지는 피 냄새.

'미궁에선 후각이 더 낫구나.'

[약한 후각(E)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약한 후각(E) Lv.3 -> 약한 후각(E) Lv.4]

냄새가 벽을 통과해서 오는 건 아니었기에 냄새를 쫓으면 길도 자연스레 나왔기에 적어도 미궁에선 후각이 더 편했다.

"구오오오!"

"산개!"

명백한 언어. 말소리였다.

'대표 클랜이 다른 클랜들에 맡기겠다고 하더니. 벌써 들어왔다고?'

전사 하나. 궁수 둘. 총 세 명의 헌터가 돼지 인간과 맞서고 있었다.

[오크]

[신장 195cm] [무게 216kg]

[힘 317] [민첩 176] [체력 295]

…코볼트와 마찬가지로 모 게임의 이미지가 강해서 순간 몰라봤다. 당연히 초록 피부의 전사를 생각했었는데, 실제 오크는 돼지머리에 거대한 장한 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무게가 200kg에 달하는데 뚱뚱하다는 이미지보다는 강건하다는 느낌이었다.

'힘이 317?'

오크 두 마리면 괴물 늑대와도 승부를 겨뤄볼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오크도 잡몹일텐데 방금 싸웠던 코볼트랑은 격이 달랐다. 그런데도 헌터들은 요령 있게 오크를 압박해갔다. 그들에겐 한 두번 있었던 일이 아니겠지.

"집합! 다시 산개!"

"화살 장전!"

다만 흔히 생각하는 게임 속의 레이드 같은 전투와는 양상이 달랐다.

'하긴. 오크랑 힘 싸움 하는 건 무리겠지.'

전우택이라면 모를까. 설령 홍유리라도 순수 힘으로 오크와 맞서는 건 무리일 터.

팀 내에 방패를 사용하는 전사가 있기는 했는데, 맞받아치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회피하고 있다. 오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전사가 물러나면 후열을 노려 돌진했다. 단숨에 전열이 돌파되었지만, 이미 그 순간엔 후열이 산개해 멀어져 있었다. 오크는 후열을 쫓았지만, 그 발걸음은 다시 전사가 막았다. 전사라기보다는 끈질기게 달려들고 귀찮게 하는 게 차라리 사냥개 같았다. 그러면서도 공격은 허용하지 않는 기술이 대단했다.

"구오오오오!"

오크도 멍청하진 않았다. 날아오는 화살은 어깨에 달린 견갑(肩甲)으로 쳐냈다. 그렇게 오크가 팔을 들어올리면 전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했고. 그러나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오크의 힘을 뺄 목적이지 단번에 끝내려하지 않았다.

'침착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정교한 차륜전 같은 싸움이었다.

'내가 저 오크라면 어떻게 할까?'

딱히 방법이 없다. 손이 부족하니 당할 수밖에 없고. 민첩이 부족하니 달려들 수가 없다. 내가 싸웠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나마 좁은 골목을 차지하고 한 명씩 상대하는 정도? 아니 그랬다면 화살 공격에 일방적으로 샌드백이 되고 말겠지. 결국 이변 없이 승리를 차지한 것은 헌터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히 [은신]을 사용해 몸을 숨겼다.

그러다 호기심에 염탐을 사용했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상섭(인간)]

[신장 176.8cm] [체중 82.5kg]

[힘 214] [민첩 162] [체력 151] [마력 164]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들 일행 중 한명이 바로 내가 죽여야 한다 맘 먹었던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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