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16. 코발트 광산? 아니 코발트 던전! (2)
구상섭.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박쥐 같은 인물? 혹은 기회를 엿보는 인물? 아예 대놓고 악인은 아니었다. 다만 야망과 야심에 부풀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던 인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랫 맨을 도왔던 조직― [이단의 탕아들]과 손을 잡고 광명회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계획의 주춧돌이 된다. 참고로 하수도의 재앙 또한 그 계획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설 속에서는 광명회 소속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다른 클랜 소속인 듯 보인다는 점?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없을까.'
먼저 그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 드물다는 헌터 중에서도 구상섭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이 경상도 지방에서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적겠지.'
십중팔구, 아니 백중구십구는 원작의 구상섭 본인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구상섭은 지금 죽여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광명회가 무너져.'
부산을 지탱하는 광명회가 무너진다는 것은 그만큼 혼란을 초래하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절호의 기회잖아. 죽일 수 있는 찬스.'
이후에 광명회 소속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죽여둬야 한다. 광명회에 들어가게 되면 손을 쓰기 어려워진다.
'헌터로 대단한 인물은 아닌데.'
그냥저냥 못 쓸 정도는 아닌 헌터. 2년 후에는 C클래스 헌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잠깐 이용당하는 인물에 불과해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C클래스면 오크 정도는 혼자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아직 D클래스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나머지 둘도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문제는 내가 저들을 쓰러뜨릴 수 있느냐는 거였다.
'불가능.'
오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오크를 수월하게 잡은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라고?
'도망칠 수는 있겠지.'
도망치는 게 고작일 터. 한 번 공격하고 도망치고 약한 재생으로 회복하고 다시 공격하면?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도박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잡히면 끝인 데다가 그런 방식으로는 구상섭을 죽일 수 없을 터.
'그 전에 탈출할 것 같은데.'
소설 속 헌터들은 구명수단으로 소모품들을 들고 다닌다. 여느 게임들처럼 단번에 회복되는 사기템은 아니더라도, 지속성으로 상처와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포션은 물론이요, 준비가 철저한 헌터들이라면 단거리 이동 주문서까지. 히트 어 웨이로 쓰러뜨린다고 하더라도 소모품들을 이용하면 도망칠 수 있겠지.
'…어쩔까?'
조금 무리를 하자면, 구상섭 외의 헌터들은 죽이고 싶지 않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구상섭이었지 그 외의 다른 헌터들이 아니었으니까.
'헌터들과 구상섭을 떼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찰떡 연계를 자랑하는 팀을 떼어놓을 수 있을까?
'어려워. 하지만 셋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생각해보자.
저들을 뿔뿔이 흩어놓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
"오늘도 결국 꽝이네요."
"부팀장님이 있어서 기대는 했는데…"
결국 온종일 수색해봐도 알파는 물론이요. 한 마리 더 있으리라 여겨지는 워그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도착하고 갈라진 선발 2팀도 그럴진 모르겠지만, 일단 수색 3팀의 수확은 없다. 결국 해산할 때까지 어떠한 흔적조차 찾지 못했고.
"구진하. 잠깐 이야기 좀 하지?"
홍유리가 팀장을 툭툭 건드렸다.
"뭔데?"
"팀원들 앞이라 말은 안 했는데. 여기에 없어."
없다. 뭐가 없다는 말일까? 팀장은 그 말을 바로 이해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알파가 이미 지리산에 없다고?"
"빠져나간 지 오래야."
"……미치겠군."
그녀의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홍유리가 가지고 있는 B등급의 추적의 마안은 그 어떤 작은 흔적이라도 쫓을 수 있었으니.
"생각해봐. 알파는 진화 했을거라며? 작아지진 않았을 거 아냐. 그 덩치로 숨는 게 어디 쉽겠어? 하다못해 워그랑 연관 있어 보이는 사체나 핏자국을 본 적은?"
"……."
"아무리 못해도 발자국이라도 찾을 수 있었어야지. 그동안 놀았던 건 아닐 거 아냐?"
"그래. 사실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었는데…"
알파는 지리산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색의 흑호'처럼 자기 의지로 산을 내려오지 않는 것도 아닐테고. 며칠간 수색해서 흔적조차 찾지 못한 것이 의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상하지. 대체 어디로? 그만한 덩치가 이동했다면 분명 눈에 띄었을 텐데. 갑자기 사라지지라도 않은 이상."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근데 확실한 건 이 산에는 없다는 거. 아니면 아예 숨어서 동면이라도 하고 있던가."
"4월에 동면? 그것도 몬스터가?"
"있으면 그것밖에 가능성이 없다는 거지. 꼬우면 다시 올라가 보던가."
산을 가리키는 홍유리의 손가락에 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무리지. 오늘도 지리산 전체를 수색한 건 아니잖아?"
"등신아. 안 해봐도 알거든?"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쓰던 홍유리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일주일쯤 됐나? 알파의 마지막 행적이 법계사였다며?"
"그래. 법계사에서 은하가 습격당해 죽을 뻔했지."
"그럼 내일 법계사만 가 보자고. 그 정도면 아직 내가 찾을 수 있는 범위일 테니까."
"그럼 지금 가 보는 건?"
"아 쫌! 나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다고. 좀 쉬자. 쉬어! 사람 못 부려먹어서 난리야. 이 새끼는. 너 그거 워크홀릭이야. 알아?"
홍유리의 타당한 투정에 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전우택이나 이 새끼나 헌터라는 새끼들은 왜 하나 같이 정상이 없다니까?"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방면이기는 했지만, 홍유리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건 정말 참기 어려웠다.
"그래. 아무튼 내려가자. 내일 다시 오는 걸로 하고."
차 키를 꺼내는 팀장에게 홍유리는 코웃음을 쳤다.
"차 좀 바꿔라. 너 그거 몇 년 타냐? 나 2팀에 있었을 때도 그거 타고 있더니."
"바꾼 거야."
"어떤 얼간이가 똑같은 차로 바꿔? XT16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2069년형이거든? 올해 나온 새 차라고. 그리고 너 인마. 너는 장롱 면허잖아. 차 몰아본 적도 없는 뚜벅이가 어딜?"
"응~ 그래봤자 XT16~"
"…후우우우우."
***
"시간 다 됐어."
손목을 톡톡 건드리는 제스쳐. 그의 손목시계가 어느덧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벌써 그렇게 됐어?"
"그래. 슬슬 나가자. 오늘 탐색은 여기까지. 우리가 먼저 들어온 것만 해도 특권이라고."
던전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이 곳의 대표 클랜에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던가? 자그마치 10억. 그동안 모아온 돈을 다 썼음에도 겨우 사흘간 선점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클랜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잠깐. 뭐가 오는 것 같은데?"
"뭐가 온다는 거야?"
"등신아. 여기서 올 게 뭐가 있겠어? 몬스터겠지."
"…시발. 이거 좀 큰데? 오크인 것 같은데 빨리 튀는 게 낫지 않겠어?"
궁수의 말에 전사가 고개를 저었다.
"야. 어차피 오는 거면 그것까진 잡고 가지? 어차피 오크 한 마리면 오래 안 걸리잖아. 길어야 10분인데. 이틀 후면 다른 클랜들도 들어온다니까? 내일이면 끝이야. 우리가 여기 독식하는 거."
"그래도 시간이 좀…"
궁수는 내켜 하지 않는 모양새였지만, 상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껏해야 오크 한 마리에 뭐 얼마나 걸리겠어? 한 마리 정도는 괜찮다니까? 8시까지만 나가면 되는 거잖아."
"…알았어. 그럼 저거 한 마리까지만이다?"
"아 짜식. 쫄았냐?"
투덜거리던 궁수가 방향을 가리켰고, 전사는 위풍당당 길목을 막아섰다.
"―왔다."
열을 센 뒤, 오크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놈은 무척이나 흥분해 달려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굶주린 거겠지. 착각일까? 오크가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것 같았다.
"배틀 엑스(Battle Axe)? 조심해."
"맞으면 무서운 거지. 저런 건 오히려 피하기 쉽다고."
"…좋아. 준비해!"
오크가 커다란 도끼를 단번에 들어올리더니 내리찍었다. 거기에서 마구 튄 돌멩이들이 전사를 때렸다.
"쿠오오오오오!"
괴성을 지르는 오크의 돌진을 더킹으로 피한 전사는 단숨에 등 뒤로 돌았다. 빠르고 경쾌한 움직임. 공격할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무언가가 발을 건 것처럼 전사의 중심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풀렸나?!'
오크의 주먹이 전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전사는 크게 나가떨어졌지만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200대에 이른 체력이 그를 간신히 지탱한 것이다. 그러나 철 투구가 완전히 찌그러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투구가 없었더라면 머리통이 그대로 박살났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였다.
'후우우. 두 번은 못 쓰겠군.'
찌그러진 투구를 냅다 벗어 던지고 손으로 땀을 훔쳤다. 오크는 망설이지 않고 전사를 끝장내려 했지만, 궁수의 화살이 오크의 가죽 갑옷 사이로 정확히 명중했다. 오크는 심기가 불편한 듯 표정을 구기더니 목표를 변경했다. 궁수는 뛰어난 발놀림으로 오크를 피했고 상섭은 쥐고 있던 활을 던지고 보조 무장으로 들고 있었던 숏소드를 꺼냈다.
"…뭐 하는 거야? 집중 안 해?! 네가 오크 잡자며!"
"제기랄!"
오크와 거리를 둔 전사는 재빨리 포션의 코르크 마개를 뜯고 들이켰다.
"푸후!"
즉효성은 아니었지만, 머지않아 회복될 터. 전사는 10초를 세며 숨을 가다듬었다.
"됐어! 교체!"
한 숨 돌린 전사가 외치자 상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게나마 탱커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진짜 전사만큼 노련하진 않았다. 잠깐 상대했을 뿐인데 어깨가 뻐근했다. 충격을 제대로 흘리지 못한 탓이었다. 포션을 마신 전사가 다시 오크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상섭은 바로 이탈해 활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내던졌던 활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상섭아! 너 뭐해?!"
"내 활이 없어! 망할. 대체 어딜 간 거지?"
"장난치냐! 빨리 참전하라고!"
궁수의 큰 호통에 상섭이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숏소드를 다시 쥐었다. 잃어버린 무기를 찾고 있을 틈은 없다. 하다못해 전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
"꾸루룩?!"
요상한 소리를 내며 코볼트 세 마리가 가로막는다. 왠지 모르게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모습. 그러나 곧 상섭에게로 달려든다. 심지어 코볼트 중 한 마리가 가지고 있는 건…
"내 활이잖아? 이런 씨팔!"
그의 눈에 불이 켜졌다. 자신의 무기를 가져간 게 고작 코볼트였다고? 다른 때였더라면 단숨에 쳐 죽여 버렸을 테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오크에 이어 코볼트가 세 마리나?
"애드?! 구상섭 이 병신같은 새끼!"
"내가 안했다고!"
"닥쳐! 등신아!"
애드(Add). 더하다. 추가되다. 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전투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상대해야 할 적이 더 나타난 상황을 의미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애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건 당연히 도주였다.
"튀어! 이미 망했어! 튀어! 튀라고!"
"이런 씹할!"
잠깐 오크를 상대하던 전사는 거리를 벌리더니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당연히 오크는 전사를 놓치지 않고 쫓았고, 전사는 오크의 커다란 배틀 엑스를 비스듬히 방패로 비꼈다. 그런데도 방패는 큰 힘을 받아 찌그러졌다.
"염병!"
피해야 한다. 전사는 대번에 바닥을 굴렀고 오크의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오크의 다음 일격이 다가오는 순간 빛에 휩싸인 전사가 모습을 감췄다. 당연히 전사가 사라지자 오크의 시선은 가까이에 있던 궁수에게로 가게 되었고.
"어그로가 나한테…!"
이미 스크롤을 찢었던 궁수 또한 아슬아슬하게 전장을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순식간에 두 명이나 눈앞에서 사라지자, 오크는 분노에 찬 노성을 내질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코볼트를 뿌리치느라 시간이 걸린 상섭 또한 스크롤을 찢으려 꺼내 들었지만, 그 순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이 가진 스크롤을 낚아채갔다.
알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다. 검은 털을 가진 늑대. 위협적인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두려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 외견 때문에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몬스터. 상섭 또한 당연히 그 몬스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씨팔, 워그가 왜 여기 있냐고!"
***
'등신.'
저들을 흩어지게 하는 게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몬스터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즉시 실행에 옮겼고, 감지로 찾은 오크를 도발했다.
"쿠오오오오오!"
솔직히 그 덩치가 쿵쾅거리며 쫓아오니 지릴 뻔했지만 200도 안 되는 민첩으로 날 잡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내가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전사가 가로 막고 있는 일자 통로를 남겨두고 코너를 돌자마자 은신을 사용, 녀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크는 당연히 분노해 길을 따라갔고 결과―
"배틀 엑스? 조심해."
"맞으면 무서운 거지. 저런 건 오히려 피하기 쉽거든?"
역시 오크의 접근은 이미 알고 있던 모양. 전투를 피하지 않는다.
'예상대로야.'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오크의 등 뒤로 회전한 전사의 발을 촉수 다발로 걸었다. 넘어뜨릴 속셈이었지만, 전사의 힘이 생각보다 억세서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 그쳐야 했다.
'아쉽긴 한데…'
이걸로 오크는 더 선전하리라. 전사가 균형을 잃자 궁수가 급히 쏜 화살이 오크를 적중. 화가 난 오크가 궁수에게 달려들자 구상섭이 숏소드를 꺼내 들었다.
'활을 던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구나. 구상섭이 버린 활을 물고 다른 기척을 찾아나섰다.
'오크는 조금 과한데.'
조금 더 약한 녀석들이 필요했다. 빙고! 감지가 아니라 약한 후각이 냄새를 포착했다. 세 마리― 이미 맡아본 적 있는 냄새였다.
'코볼트들이구나?'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 마주쳤던 코볼트들. 원래 네 마리였지만 한 마리는 내가 죽였으니 머릿수가 맞다. 나는 재빨리 녀석들에게 접근했고.
"히이이이익!"
도망치려는 녀석들의 정면에서 위협을 사용했다.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얼어붙은 코볼트의 손에 구상섭의 활을 쥐어줬다.
'사실 부러뜨릴까도 생각했지만…'
이게 녀석을 더 화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리둥절하던 코볼트들은 '살려주는 건가?' 하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봤지만.
"크르륵― 크와아악!"
큰소리를 치자 녀석들은 눈물을 흘리며 도망쳤다. …그 와중에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진 녀석에게는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녀석들을 쫓아 구상섭 일행이 싸우고 있는 공간까지 내몰았다. 코볼트들은 도망칠 다른 통로를 물색했지만, 한발 앞서 이미 은신한 내가 떡하니 막고 있다. 놈들도 갯과답게 후각은 뛰어나니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도 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터.
'정확히는 코볼트 피 냄새겠지만.'
예상대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가 결국 구상섭에게 달려들었다.
'좋았어.'
도망칠 곳 없이 몰아넣은 결과 성공적으로 구상섭에게 달려드는 코볼트 세 마리. 구상섭의 숏 소드에 코볼트 한 마리의 목이 달아나고 쓰러졌지만,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코볼트들에게는 헌터인 구상섭보다 내가 더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어 있으니.
'…두 명은 도망쳤고.'
그 사이에 궁수와 전사가 스크롤을 찢어 도망쳤다. 뒤이어 코볼트를 재주 좋게 뿌리친 구상섭이 스크롤을 꺼내 들었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스크롤을 꺼내든 순간, 스킬을 중첩해 낚아챘다. 구상섭은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스크롤을 빼앗기고도 내 존재를 모를 정도로 등신은 아닌 모양. 그에 나도 은신을 그만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의 정적. 그리고 그 뒤.
"씨팔, 워그가 왜 여기 있냐고!"
"꾸룩. 꾸루룩!"
"우오오오오!"
측면에는 활과 창을 든 두 마리 코볼트.
배후에는 분노한 오크.
그리고 정면에 통로를 막고 선 워그.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놈의 입장에서.
―구상섭. 미안하지만, 여기서 먼저 퇴장해줘야겠다.
"크르륵."
늑대의 낮은 울음이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