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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28화 (28/407)

〈 28화 〉 #16. 코발트 광산? 아니 코발트 던전! (3)

구상섭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또 스크롤을 되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깨닫고 곧잘 도주한다. 입구로 향하는 통로는 내가 가로막고 있었는데, 구상섭은 다소의 피해는 각오하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빠른데.'

놈의 힘은 214. 민첩은 162. 그에 반해 나는? 18레벨로 상승하며 힘 120에 민첩 136이었다.

'불리하긴 해.'

스테이터스만 따진다면 말이다. 놈도 헌터인 이상 스킬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솔직히 나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만한 게 아니라 팩트야.'

비록 자기 레벨과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없는 세계관이지만 보유 스킬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나처럼 스킬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 중에 구상섭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꺼져!"

구상섭의 말에 변화에 포함된 변형으로 몸을 부풀렸고 통로 전체를 뒤덮었다. 늘어난 만큼 두께는 줄었지만.

[경화(D) Lv.3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경화(D) Lv.3 -> 경화(D) Lv.4]

때마침 경화의 레벨도 타이밍 좋게 올랐다.

"하?"

변한 내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을 터뜨리는 구상섭. 놈은 멈추지 않았다. 양손으로 쥔 숏소드에 찔려 구멍이 나고 말았다.

"…시발."

그런데도 좌절한 건 놈이었다. 214나 되는 힘을 가진 구상섭은 분명 날 뚫을 여력이 있었다. 뒤에서 괴성을 지르는 오크가 쫓아오지만 않았다면. 곧잘 숏소드를 뺀 구상섭이었지만, 이미 반토막이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3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꺼어어억―!'

잘 먹었습니다.

어김없이 악식의 효과로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반 토막 남은 칼과 나를 어이없다는 듯 번갈아보던 구상섭은 곧잘 바닥을 굴렀다.

"꾸, 꾸루룩?!"

오크와 코볼트가 쫓는 와중에 옆을 나란히 달리는 오크를 보고 코볼트가 움찔거렸다.

'…쟤는 진짜 불쌍하네. 구상섭만 잡으면 살려줘야지.'

그 와중에 감지를 사용해봤더니 놈의 일행인 궁수와 전사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던전 입구까지 내달리고 있었다. 좋은 징조였다.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이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시간이 더 끌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데굴데굴 구르는 구상섭을 향해 남은 코볼트 한 마리가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던졌다?!

'아.'

잘 생각해보니 활만 주고 화살은 주지 않았다. 코볼트의 제구력은 형편없었고 구상섭은 데구르르 구르는 와중에도 활을 잡았다. 마치 캐치볼이라도 하는 것처럼 간단히 받는 모양새에 배알이 꼴렸다.

'무친?'

화살통을 잠깐 건드리더니 무슨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딸깍- 소리가 들렸다. 바로 화살을 꺼내든 구상섭이 오크에게 화살을 날리…긴 개뿔. 그런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구오오오!"

자리를 박차는 와중 구상섭은 재주 좋게도 오크의 허벅지에 화살을 박았다. 맨손으로.

'잘 싸우는데?'

괜히 헌터가 아니었다. 오크 한 마리뿐이었다면 이기고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뒤에서 코볼트가 덮치자 녀석은 잠깐 발이 묶였고.

"쿠오오오!"

분노한 오크의 배틀 엑스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쳤다. 코볼트를 내팽개치고 다시 거리를 벌린 구상섭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힘겹게 이쪽을 흘겨보지만, 굳이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는다.

'…흥미진진하네.'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항상 치열하게 싸우다가 이렇게 방관자의 입장에서 나중에 어부지리를 취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구상섭이 선전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면 오크를 빈사 상태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동귀어진이면 Best of Best!

[단거리 이동 주문서를 섭취했습니다. 마력이 1 증가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91에서 92로 증가했다.

'마력이 복사가 된다고?'

놀라운 사실. 앞으로 주문서를 보면 죄다 섭취해야지.

'마력도 조만간 100을 넘겠는데?'

열심히 피하던 구상섭이었지만, 결국 창에 찔렸다. 그러면서 코볼트의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게 여간한 독기가 아니었다.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를 삶에 대한 강렬한 집착. 그것이 구상섭을 지탱하고 있었다.

"망할 돼지 새끼가!"

구상섭은 힘 214의 놀라운 괴력으로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벌였다. 눈두덩이를 찌른 양 손가락으로 코볼트를 들어올린 것이다.

"꾸, 꾸루룩?!"

"구오오오!"

촤악-! 코볼트가 양단되었다. 훌륭한 방패가 된 코볼트의 상반신을 내던진 구상섭은 반 토막 난 칼을 오크의 허벅지에 박았다.

'아. 코볼트….'

깊게 파고들어 간 칼은 오크의 동맥을 찌른 모양. 솟구치듯 피가 나오는데도 오크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커다란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커흑!"

그 거력에 구상섭의 손목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그나마 활로 막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터.

'…나이스.'

쓰레기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합리화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구상섭은 여기서 죽어줄 필요가 있었다.

'광명회를 무너뜨리게 둘 수는 없어.'

둘의 치열한 싸움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코볼트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 슬슬 끝을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일단 오크부터.'

구상섭은 1:1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오크는 1:1로는 이긴다고 확신할 수 없다.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둘의 뒤에서 은신을 사용해 조심스레 접근해 오크의 얼굴을 덮었다.

"헉, 헉. 헉?!"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구상섭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크는 질식사시키려는 날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동맥으로부터 흘린 피가 너무 많았고 지친 몸으로 낼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견딜만해.'

내가 잠깐 오크를 막은 사이 구상섭은 이를 악물고 자리를 이탈, 도주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왼손을 들고 눈을 크게 뜨면서.

'통로로 가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걸까? 놈이 향하는 방향은 던전의 심층부였다. 입구로 나가도 모자랄 판에 더 깊은 곳으로 가다니. 자살 행위도 정도가 있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의아했지만, 이미 단거리 이동 주문서는 없을 텐데…?

'…설마 여기서 애드를 더 내려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몬스터들끼리 견제하게 할 속셈은 아닐까? 그사이에 잘만 한다면 빠져나갈 수 있다… 낮은 확률이지만 도박이라도 걸어보려는 심산일 터.

'해볼 테면 해보라지.'

그게 잘 될 리가 없지.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세계관이 얼마나 개같은지. 몬스터가 얼마나 엿같은지.

'그게 잘 되면 헌터들이 죽어나겠니?'

감지와 후각으로 계속해서 구상섭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오크의 숨통을 옥죄었다. 놈의 억센 힘에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조금 잔인한 방법으로 견딜 수 있었다.

'악식.'

악식으로 녀석의 얼굴 그 자체를 소화했다. 가장 먼저 녹아버린 건 눈이었다. 비어버린 안와(眼窩)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어 머지않아 오크의 머리통 전체를 잠식했고 녀석의 두개골을 안팎으로 녹여갔다.

'……흠. 그로테스크하네.'

오크는 곧 숨을 거뒀다. 제아무리 몬스터라 한들 뇌가, 아니 머리가 통째로 없어지고 살아있을 순 없는 법이었다.

[오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8 -> Lv.19]

[공복(E) Lv.9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공복(E) Lv.9 -> 공복(E) Lv.10]

[공복(E)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공복(E) Lv.10 -> 식탐(D) Lv.1]

[Lv.20 달성 조건 : 업을 0.1% 이상 획득할 것]

'식탐?'

공복이 마침내 10레벨에 도달했고, 식탐으로 변했다. D등급의 식탐. 과연 어떤 능력일까?

[식탐 : 음식을 탐하는 욕심]

'……?'

눈을 크게 뜨고 식탐의 설명을 다시 읽었지만 그대로였다. 정말 평범한 설명. 내가 알고 있던 뜻 그대로였다. 탐식이 악식으로 상승했을 때처럼 뭔가 숨겨진 기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구상섭부터. 놈은 예상했던 대로 애드를 냈다. 미친 자살행위지만, 어차피 죽게 된다면 뭐라도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은 기특했지만 역시 실패한 모양.

'미친놈.'

거대한 새가 두 마리가 놈을 쫓았다. 일견 타조랑도 비슷했지만 옛날 생물 도감에 공포 새라고 있지 않았나? 그것과 무척 닮아있었다.

[공포 포식자]

[체장 2.5m] [체고 1.46m] [체중 196kg]

[힘 134] [민첩 169] [체력 201]

'…진짜 크네.'

그사이에 잘도 저런 애들을 데려왔구나. 구상섭은 힐끔 돌아보더니 잘린 손목은 웃옷으로 대충 감아 피가 흐르지 않게끔 만들어 놓고 다시 통로쪽으로 선회했다.

'너 그거 맞어?'

민첩이 비슷하더라도 사람이 뛰는 것과 말이 달리는 것을 비교할 수는 없다. 아니나다를까. 두 마리 공포새는 눈 깜짝할 새 구상섭을 따라잡았다.

'거 봐. 쉽지 않지?'

"큭! 이런 씹!"

구상섭의 위협에도 공포새는 구상섭의 전신을 쪼아댔고, 그 날카로운 부리는 어김없이 숭숭 구멍을 뚫었다.

"이 씹!"

최대한 반항하던 구상섭은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토막 난 숏소드를 휘둘렀다. 공포새는 비웃었지만, 이번엔 결과가 달랐다.

"끼에에엑!"

쫓아오던 공포새의 목이 반쯤 잘려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아껴두던 마력을 쓴 모양이었다.

"제기랄―! 이게 아닌데! 이런 씹할!"

아마 적당한 몬스터를 데리고 와서 나한테 떠넘길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놈이 멍청했던 건 두 가지를 간과했다는 거다. 하나는 공포새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던 것이고.

'하나는 어차피 데려와도 소용없었단 거지.'

은신으로 숨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차라리 그냥 나와 1:1로 싸웠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자기 생각대로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병신.'

결국 자기가 끌고 온 공포새 두 마리를 제 손으로 처치한 꼴이 됐다.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았다고 해야겠지. 숨을 몰아쉰 구상섭은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약간의 기대를 품고 통로로 향하다가.

"망할."

기척을 느꼈는지 넋 나간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는 뛰어난 헌터는 아니지만, 멍청하진 않았다. 한 번 속은 은신에 두 번 속을만큼 아둔하진 않다. 있다고 의식하고 경계하고 있으면 평범한 헌터라도 내 은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 하다.

'…아니면 구상섭이 감이 좋은 거거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듯 구상섭이 천천히 칼을 들어올렸다.

"너만. 너만 뚫으면!"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그의 칼이 내 목을 꿰뚫었다. 아주 잠깐, 화색이 돌던 구상섭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워그가. 아니었구나."

이미 남아있는 힘이 없다. 마력까지 다 소진해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다. 툭 떨어진 숏소드가 바닥과 부딪쳤다. 이제 가만히 내버려 둬도 차갑게 식어 싸늘하게 죽어가겠지.

"왜, 나를?"

구상섭의 마지막 물음은 자신을 죽이는 이유였다.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모습을 바꾸지도 않았지만, 늑대의 입으로부터 언어가 흘러나왔다. 말할 것도 없이 변화의 능력이었다.

"주."

"……말? 말을 한다고?"

"주. 죽어. 줄. 필요가. 있. 었으. 니. 까."

스스로도 어색한 말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주저앉아 멍청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구상섭은 이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죽어줄 필요가… 있었다고?"

"……."

"왜! 왜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난 씨발! 할 일이…"

절규하는 놈의 소리보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언어가 어색하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소리치던 구상섭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이내 포기했는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하. 참 좆같은 날이군."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묻어는. 줘야겠지."

발톱에 묻은 피를 담담히 닦았다.

첫 살인― 인데도 생각보다 와닿는 게 없었다.

나는 묵묵히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멸망 확률 99.97% -> 99.93%]

[0.04%만큼의 업을 획득합니다]

그냥 묵묵히. 파고 또 팠다.

***

"상섭이 이 새끼 너무 안 나오는데…"

벌써 20분이 지나가는데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스크롤도 있었을 텐데.

"설마 스크롤이 사기 물품이었던 거 아냐?"

"등신. 같은 곳에서 샀잖아. 사기였으면 너랑 나까지 아직 던전 안일걸?"

"아니 이상하잖아. 갑자기 애드 난 것도 그렇고. 혹시 수작 부리는 새끼들 있는 거 아냐?"

"저 헌터가 여기 지키고 있었잖아. 우리가 쓴 돈이 얼만데?"

그렇게 말하면서 궁수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던전 안에서 혼자 남았을 때 생존률은 체류 시간과 반비례한다. 아직 20분이 지났을 뿐이라면 아직 죽었을 확률은 낮다.

"야. 일단 신고하자."

"들어가 보는 건…"

"좀 있으면 나오겠지. 뭘 들어가? 신고하고 조금만 기다려 보자니까."

그러나 구상섭이 던전 밖으로 다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두 번 다시.

***

"하필 이걸 놔두고 와서."

멍청하게 누가 핸드폰을 두고 다니나. 덕분에 클랜까지 와야했다며 투덜거린 우택이 클랜을 나서려던 순간.

"……?"

지하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퇴근할 시간은 지났는데 누가 남아있나? 지하로 내려간 우택은 엉망인 연무장을 발견했다.

"여길 이 꼴로 만들어놨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벽면은 탄소와 철의 합금강이라 뛰어난 강도와 연성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스퀘어에 의뢰해 자가복구의 마법이 걸려있었으니. 비록 6개월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점검해줘야 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어지간해선 힘들 텐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잠깐 눈살을 찌푸리던 우택은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은하를 발견했다.

"너 여기서 뭐하냐?"

"…어? 선배?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는 게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놓고 가서. 넌?"

"뭐… 연습이죠? 마력도 안 쓰니까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서요."

"이 시간까지?"

"왜요? 기특해요?"

"…저건 네가 그랬어?"

어느새 반쯤 복구가 되어 있었지만, 처음의 상흔은 제법 굉장했다. 자신이라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 도대체 어떻게?

"아. 네."

무표정으로 답하는 은하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열심히 하면 알파 수색에 껴줄지도 모르잖아요?"

"뭐?"

우택은 그 짧은 순간에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지만 착각이라 치부했다.

'요즘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어쨌든 슬슬 정신 고갈 아니야? 집 가서 자. 이 자식아. 내일 출근 못 하지 말고. 적당히. 알아들어?"

"아~ 잔소리. 알았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 퇴근했어?"

"아마도요? 원래 임무 없으면 5시 칼퇴근이잖아요?"

평일과 주말. 밤낮을 구분하지 않는 게 헌터지만, 간혹 임무가 없을 때가 있었다. 그때가 유일한 꿀 시즌. 1년에 얼마 안 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고.

―물론 알파 수색에 차출되지 않은 인원들의 경우였지만.

"…뭐. 알겠다. 혼자 갈 수 있지?"

"걱정 마요. 그 정도로는 안 했거든요~."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기는 하네. 나 먼저 간다."

"웬일이래? 선배한테 칭찬도 다 듣고."

클랜 밖은 밤이라 그런지 어두웠고 제법 쌀쌀했다.

[21:06]

"벌써 9시라고?"

하긴 여기서 지리산이 멀기는 하지… 납득한 우택이 핸드폰의 잠금 화면을 풀었다.

주변에서 일벌레 소리를 듣긴 하지만 우택 자신도 사람인지라 지치기는 했다. 들어가서 밥이나 먹어야지.

"어디 보자…"

뒤늦게 이은하가 도대체 언제부터 연무장에 틀어박혀 있었는가― 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배달 어플을 뒤져보다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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