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21 던전에서 꼬리잡기
눈을 떴을 때, 정신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지?'
마지막 기억은 던전이라고 소리쳤던 몽크의 외침이었다.
'그 타이밍에 공원이 던전으로 변했다고?'
모르겠다. 하지만 감지로 확인한 수 많은 기척이 적어도 도심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광활한 숲이 그 증거였다.
'아마존에 온 것 같네.'
어둡지 않은 걸 보면 날이 밝은 모양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공원이 던전화된 거라면 구마준을 비롯한 전쟁의 신전 인물들도 휘말렸을 터.
'주변에는 없는 것 같지만.'
코발트 광산과는 다르다. 미궁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동굴처럼 어둡지도 않다. 이런 던전도 있는 건가?
'신기한데.'
어차피 던전을 찾을 생각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 이리 된다는 게 참 공교롭다.
'행운인가?'
구사일생. 도망칠 자신도 없었고 휘말려서 목숨을 부지했으니 행운이리라.
'아직 놈도 던전을 빠져나가진 못했을 거야.'
단순한 감이지만. 미약한 육감이 약한 육감으로 변한 뒤부터 어지간한 일에는 묘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억측이 아니라, 육감이 알려주는 것처럼.'
예를 들어 신전 사무실에서 1급 신자 등록명부를 찾았을 때처럼.
'일단 구마준부터 찾자.'
감지의 성능도 상승했다. 포착 범위는 물론이요, 구분 가능한 범위는 3km까지.
'그런데도.'
그런데도 찾지 못했다. 적어도 구분 가능한 범위에 사람으로 추정되는 기척은 없다. 뿐만 아니라 후각도.
'…빨리 찾아야하는데.'
기회였다. 동시에 위기였다.
근처에 있던 이들과 뿔뿔이 흩어진 거로 보아 구마준도 신전 사람들과 합류하지 못했을 터. 급히 찾으면 놈을 죽일 수 있다.
만약 죽이지 못하면?
'탕아들이 알게 될 거야.'
방해하는 늑대가 있다고. 아직 놈들에게 대항할 만한 힘을 기르지 못한 상황에서 덜미가 잡힐 순 없다. 놈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
"좋아. 찾았어."
자신만만한 홍유리의 말에 팀원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길었던 추적전의 끝이 보인다.
"멀리도 갔네. 차는? 운전할 수 있지? 2팀은 알아서 따라오라고 하고."
"차 안에서도 괜찮겠어?"
"쓸데없는 걱정 말고 운전이나 하시지?"
"하여간에."
애마는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다는 걸까? 자신이 대신 운전하겠다는 우택의 말을 팀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밟아도 괜찮겠어?"
"등신아. 이 똥차로 밟으면 가기나 해?"
"…기어코 선을 넘는군."
기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팀장은 비장한 눈빛으로 액셀을 밟았다.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 성격이 변한다지만, 팀장은 정말 망설이지 않았다. 룸미러로 보이는 그의 이마에 혈관이 빠직 돋아나있다.
"헌터 전용…!"
텅텅 비어있는 도로로 빠진다. 헌터들이 긴급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선. 범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동체시력을 가진 덕에 전용 도로의 시속은 제한이 없다. 섬뜩해진 팀원들은 재빨리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팀장님! 제가,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이러다 2팀이 우리 놓치는… 우와악!"
헌터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도로를 질주한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가 하면 보이지도 않던 차량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시속 184km]
SUV로 이렇게 밟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나! 절규하고 싶었지만, 홍유리는 팔짱을 끼고 쫄았냐고 왜 더 안 밟느냐고 기름에 불을 지폈다. 우택은 장담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뚜벅이라서 지금 얼마나 달리고 있는지 모르는 거라고!
'역시 내가 운전했어야!'
그 도발에 자극받아 200km까지 올라간다. 210km… 220km… 커브 길에서도 속도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되려 속도를 높이며 운전대를 확 꺾어 드리프트! 도로에는 타이어 자국이 남았고, 가드 레일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으아아악!"
그리고 뒷좌석의 사람들이 차량이 기운 방향으로 쏠렸다. 이미 운전이 아니라 레이싱의 영역. 엑셀에 올라간 발은 접착제라도 붙인 것마냥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발! 멈…"
뒷좌석의 사람이 말을 하다 혀를 씹자 우택이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당당해진 건 홍유리였다. 뒤에서 무서워하니까 의기양양해진 것일 터.
"아이고 쫄보들아~. 어차피 헌터는 사고 안 나거든?"
'운전 안 해본 사람이 말하지 말라고!'
그리고 마침내 광란의 질주가 끝났을 때, 그들은 대구에 있었다.
"…죽겠다."
고작 10분 남짓이었는데 죽음을 느꼈다. 헌터가 된 이후, 차멀미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내에선 속도를 줄였지만.
"여긴 어딥니까?"
"대구 수성구. 더 가야 해?"
팀장이 홍유리에게 묻자 유심히 바닥을 살피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리자. 근처인 것 같아."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가는가 싶더니 우뚝 멈춘다.
"저기네. 왜 이리 사람이 몰려있어?"
"재난 문자 떴습니다. 이현공원에 던전 발생. 가능한 접근하지 말라고요."
"부팀장님. 설마 저기입니까?"
우택의 물음에 홍유리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에 들어간 것 같은데?"
"…골치 아프군. 대표 클랜은?"
"금방 확인해 보겠습니다."
***
"이상한데."
여기가 던전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이렇게 몬스터가 널린 곳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문인 건 던전이 아니라, 어쩐지 마력을 사용하는 게 힘들다는 거였다.
"던전이 마력 사용을 방해하고 있는 건가?"
형태는 아마 숲(Forest)의 단일형.
하지만 던전이 마력 사용을 방해한다는 건 들은 바 없다. 구마준은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먹은 약물에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가하고.
"설마… 정말로?"
곧 그의 눈이 흐리멍덩해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린 뒤였다.
***
"…그렇게 전쟁의 신전이 위임받았답니다."
"아니. 말이 되냐? 던전 열린 지 하루도 안 됐다며? 근데 어떻게 벌써 넘겨?"
"신전 사람이 휘말린 것도 있고, 가깝기도 하니까요. 말이 대표 클랜이지 전쟁의 신전 쪽이 영향력이 더 센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거 들어가는 게 쉽진 않겠는데요?"
"우리끼리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 2팀도 오잖아."
광란의 질주를 따라가지 못해 위치를 찍어줬는데 마침 도착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좀 밟기는 했네."
"좀입니까? 좀?"
가장 먼저 차량 보조석에서 내리는 장대한 체구의 사내. 2m가 넘는 저 거구가 차량 보조석에 구겨 앉은 모습은 상상이 안 된다.
"진하야! 그렇게 달리면 어떻게 하냐? 우리 팀 못 따라가잖아."
"아,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가 아니라~"
"일단 상황 브리핑부터 들으시죠."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그래. 지금 이게 뭐 하는 시추에이션이냐?"
이미 신전 인물들이 공원을 통제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해주자 거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알겠다. 잠깐 기다려 봐."
2팀 팀장, 거한은 맡기라는 듯 고릴라처럼 가슴을 퉁퉁 치곤 곧잘 신전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우택은 관자놀이를 문질렀고, 홍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아오. 저 근육 뇌가."
2팀 출신의 두 사람이 부르르 떨고 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신전까지 도착한 거한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안 따라와도 된다니까?"
"2팀장님. 이건 정말 아닙니다. 차라리 저희가 먼저 들어갈테니까, 밖에서 기다려주시죠."
"…아니. 진짜 괜찮다니까?"
"……."
좌중의 간절한 눈빛에 결국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난 거한이 그러라고 한다. 그제야 숨을 돌린 팀장은 한숨이 나오는걸 참아야만 했다.
'이미 낙장불입이다.'
무대뽀 근육뇌.
속으로 거한을 욕한 팀장은 잠깐 할 말을 떠올렸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신전 인물들이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상냥한 목소리가 화답해온다.
"들어오시지요."
밖에서 있던 소란을 듣고 있었던 거겠지. 들어가기 직전에 팀장은 다시 한 번 간절한 눈빛으로 거한을 바라봤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시선에 거한은 찝찝한 얼굴로 끄덕였다.
"아니… 진짜 이럴 필요 없는데?"
"아 좀. 닥치라고요. 머리까지 근육인 양반이."
"넌 어째 아직도 입이 거칠다?"
홍유리와 거한이 투닥거리는 사이, 주교는 인자한 미소로 팀장을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교님.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명망 높으신 세검사를 어찌 잊을까요? 오랜만이군요."
"바빠서 찾아뵙질 못한 거죠."
겉으로는 종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다국적 클랜이었다. 이 인자해보이는 노파야말로 전쟁의 신전의 주교. 즉, 한국 전체를 교구(敎區)로 하여 관리하는 이라는 뜻이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예.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던전 출입 허가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는요?"
손깍지 위에 턱을 올린 주교는 인자한 눈웃음으로 그를 마주했지만, 팀장은 그게 오히려 껄끄러웠다.
'속을 읽기 힘든 사람이다.'
"저희는 어느 늑대를 쫓고 있습니다. 개체의 이름은 알파. 해당 개체는 지리산에 서식하던 워그의 특수종이었고…"
"잘 알겠어요. 그래서 그 늑대를 쫓아 여기까지 오신 거군요."
이야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심유한 눈빛으로 알았다는 듯 답한다. 아니, 미리 알고 있었던거겠지.
"던전에는 가능한 한 손대지 않겠습니다. 부산물도 전부 넘기겠습니다."
"……."
"저희가 쫓고 있는 건 그 늑대 한 마리니까요.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밤낮으로 노력하는 여명의 뜻은 알겠지만…"
인자했던 미소는 팀장의 눈에는 싸늘하게 바뀌지만, 주교의 표정과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던전에 들어간 거라면 저희 신전에서 알아서 처리할 텐데요?"
지당한 말이었다.
타 클랜을 굳이 던전 안으로 들일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 자신같아도 거절했으리라.
'…그래도 들어가야 한다.'
그 늑대의 행적을 보면 안심할 수 없다. 산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간 놈의 행적을 좇아보면, 놈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었으니.
'놈은 분명 지성이 있어. 그것도 고등한 수준으로.'
사람이 없는 곳을 따라 이동했다는 건 사람을 피한다는 뜻. 헌터도 아닌 이들을 피해 움직였다는 건 그들을 건드리면 헌터가 온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아라네아를 처치하기 위해 헌터들과 협력하기까지 했다. 본능이 아니라 이성을. 그것도 고등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놈이 쉽게 잡힐까? 팀장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자색의 흑호나 질병(Disease)처럼 손을 쓸 수 없게 될지도…'
그 전에 죽여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만약 한번 더 종을 뛰어넘으면…
'상상만해도 아찔하군.'
그만한 지성을 가진 몬스터가 종을 뛰어 넘으면 어떤 개체가 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몬스터라니.
'…가능한 신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허락 받을 방법은?'
돈도 명성도 무력도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그렇다고 굽히고 들어갈 수도 없다. 대체 어떻게 하면?'
클랜의 대표로 온 상황이었으니. 생각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그냥 전쟁의 신전을 믿고 기다릴까?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이 자리는 생각보다 바쁘답니다."
확실한 축객령에 팀장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닫혔던 주교실의 문이 큰소리와 함께 열렸다.
"2팀장님!"
"왜 이리 오래 끌어?"
"미쳤습니까?!"
모든 게 수포가 되고 말았다. 아찔해진 팀장이 그를 데리고 나가려는 때, 주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검공(劍公)?"
"할멈. 오랜만이유. 아직 신전에서 해먹고 있었소?"
"세상에! 검공께서 오실 줄 알았다면 이 늙은이가 마중이라도 갔을텐데요."
"오바하지 마시고. 그래서. 던전에 좀 들어가고 싶은데 힘들겠소?"
"하지만… 아니, 알겠습니다. 검공께서 원하신다면야…"
갑작스레 반전된 분위기. 제멋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따라가지 못한 팀장이 쭈그리가 되었다.
"됐다. 근데 다는 힘들고 다섯 명만 들어가라는데?"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
"몰라서 물으십니까? 주교님을 단번에 설득했잖습니까?"
설득 정도가 아니라 프리패스였다. 대체 이 근육뇌랑 무슨 사이길래?
"아~ 소싯적에 나랑 형이 좀 도와드렸지."
"그럼 그렇다고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난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네가 멋대로 들어갔잖아?"
"…망할."
나지막이 욕설을 뱉자 거한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튼 이제 들어가자. 알파 잡아야지?"
"휴.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흐하하. 짜식. 이제 좀 이 형님이 믿음이 가냐?"
"…쥐꼬리 만큼은요."
***
[얼룩 점박이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숲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광대한 던전의 크기 때문인지 다양한 생물 종이 서식하고 있다. 대부분 몬스터였지만.
'이럴 때가 아닌데.'
한시라도 빨리 구마준을 찾아야 하는데, 놈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숲을 달려본 결과 대충 지름 30km 정도되는 거대한 원형 같았다. 방향이 엇갈린 건지 아니면 놈이 냄새를 숨기고 있는 건지.
'영화 생각나네.'
그러니까, 백악기 월드. 공룡에게 쫓기는 주인공이 차량 아래로 들어가 기름을 덮어써 냄새를 숨기는 장면이 있었다. 비슷한 행동으로 냄새를 감출 순 있지 않을까? 아님 머드팩이라도 했나?
'나가진 못했을 텐데.'
벌써 이 방대한 던전을 벌써 빠져나갔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정말 운이 좋아서 계속 엇갈린 거라면 모르겠지만.
'일단 무턱대고 나가는 건 곤란해.'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100% 신전 혹은 대표 클랜이 밖을 점령하고 있을 터. 던전 밖으로 나가는 건 간단했지만, 고작 D등급 은신 하나 믿고 나갔다가는 죽기 십상이었다.
'뭐 좋은 방법 없나?'
전쟁의 신전도 더 들어올 텐데. 상황이 힘들다.
'1순위는 구마준. 놈을 찾으면서 계속 성장해야 해.'
"꼬끼오오오오!"
웬 닭?
파닥파닥 홰를 치며 다가온 놈이 부리로 쪼아댄다. 피했지만 피하지 못할 뻔했다. 명백히 먹이로 보는 행동이었다.
'뭐야?'
[코카트리스]
[체장 5.27m] [체고 2.51m] [체중 770kg]
[힘 241] [민첩 360] [체력 215] [마력 145]
'아~ 코카트리스 아시는구나!'
소설 좀 읽은 사람이라면 알만한 몬스터. 고블린 오크 오우거같은 메이저 몬스터 3대장에게는 비빌 수 없지만, 나름 유명했다. 잘 살펴보니 꼬리 부분은 닭이 아니라 뱀 같은 파충류의 꼬리와 닮아 있다. 부리에 이빨이 달린 건 둘째치고, 시뻘건 혀가 튀어나와 뱀처럼 식식거리는 게 신기했다.
'…달걀을 도마뱀이 품는 거였나?'
뱀이던가 도마뱀이던가. 아무튼 그렇게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는 녀석이었다.
'저렇게 큰데 체중도 가볍고.'
새는 몸 속에 공기주머니인 기낭을 가지고 있어 가볍다고 했던가? 코카트리스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놀랍게도 닭인데 날았다.
'…진짜 나네?'
민첩이 360인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나머지 스테이터스를 생각하면 별로 위협적이진 않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됐다.
"꼬끼이이이익!"
한껏 숨을 들이키더니, 단숨에 뱉는다. 입김과는 달리 회색으로 보여 기겁하고 피했다. 뒤늦게 내가 있던 자리가 회색으로 물든 걸 볼 수 있었다.
'태웠어?'
아니, 태운 게 아니다. 석화(Petrification)된 풀과 꽃이 서서히 바스라져 가루가 되어간다.
'…맞으면 위험하겠는데?'
모든 피해 감소가 있어도 장담할 수 없다. 석화 브레스의 위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아니, 그래서 언제 내려와?
'와! 존나 치사해!'
놈은 안전지대에서 브레스만 뿜었다. 마력이 고갈되면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저 새는 해로운 새다!'
그냥 피하면서 기다릴 생각은 없다. 촉수 다발을 이용해 나무를 타고 올랐다. 금세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기다렸다는 듯 놈이 입을 벌렸다.
'어우. 깜짝아!'
오르는 와중이라 보지 못했다. 놀라서 다시 뛰어내리니 놈이 깔깔거렸다.
"식식! 식식식!"
'넌 진짜 뒤졌다.'
다시 나무를 타고 꼭대기에 오르기 직전에 뛰어올랐다. 탄력과 돌진을 이용해 브레스를 뿜기 전에 녀석을 붙잡고 늘어졌다. 몇 차례 휘청거린 놈은 다시 날아올랐지만, 날갯죽지를 물어뜯자 결국 추락했다.
"꼬끼이이익!"
어차피 추락할 거면 땡깡이라도 피워보겠다는 걸까? 공중에서 몸을 뒤집은 코카트리스가 발을 뻗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휘감아오는 뱀의 꼬리. 하지만 공중에서 추락하고 있는 놈과 놈을 밟고 있는 나. 누가 유리한지는 볼 것도 없다. 놈을 밟은 채 다시 한번 탄력. 힘들긴 했지만 떨어지는 중에 한 번 더 뛰어올라 나무에 매달렸다.
'10m는 되는 것 같은데.'
등으로 추락한 코카트리스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척추가 내려앉았나?
"그르르―"
낮게 울며 녀석의 위에 올라타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닭의 눈에 공포가 드리웠다.
[위협(F) Lv.7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위협(F) Lv.7 -> 위협(F) Lv.8]
'칭호 때문인가? 잘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다른 던전에서도 적용 되는 모양이었다.
"꼬끽! 꼬끼이이익!"
날개를 파리처럼 쉴새없이 비빈다. 어지간히 살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그러게 왜 겁도 없이 덤비나.
"꼬끼이익…"
[코카트리스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증가합니다]
[EXP 49602 / 57128]
'좋은데?'
비록 레벨 업은 하지 못했다지만, 상당한 경험치를 획득했다. 레벨 업이 가까워질 정도로.
'이대로만 가면 10레벨 찍을 만하겠어.'
물론 달성 조건은 있겠지만.
'…잠깐 까먹었네.'
코카트리스와 싸우느라 잠깐 까먹었는데, 감지에 포착되는 기척이 있었다.
'가볼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구마준부터 찾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