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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39화 (39/407)

〈 39화 〉 #22 악의 태동 (2)

수많은 살덩이들을 뛰어넘으며, 팀장은 자신의 애검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정교한 기계일수록 부서지기 쉬운 것처럼.

'…전부 다 막을 수는 없겠는데.'

홍유리는 '키핑'하라고 했다. 즉, 알아서 지키라는 소리였다. 안 한다고 했다면 모를까 시작한 이상 말은 지켜야 한다.

"우택아!"

"예! 팀장님!"

"잠깐! 잠깐이면 된다! 멈출 수 있겠어?!"

그의 말에 듬직한 부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하겠습니다!"

'됐어.'

한다고 했으면 그는 무조건 한다. 홍유리의 영창이 읊어지는 가운데, 그녀의 마력이 검게 물들어갔다.

"Acoperit în foc negru―"

'휴. 아주 작정을 했구나.'

지금까지 4절 영창. 고속 영창으로도 5절로 이어지고 있다. 도심에서라면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대마법이었다. 소름 돋는 마력이 해방되는 걸 느끼며, 저 아래에서 폭풍이 일었다.

'좋아.'

우택은 훌륭히 약속을 지켰다. 그의 철권이 괴물을 반파시켰다. 살덩이가 출렁이며 무너지고, 느리게 무너져 내리는 사이에 모조리 재생됐다.

'3초.'

그렇게 막았는데도 고작 3초. 우택이 물러난 사이, 팀장은 애검을 보며 한숨 쉬었다.

"…새로 만든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차라리 그 양반처럼 대검이나 쓸까. 아니, 아니지. 그런 무식한 철판을 휘두르는 건 자신과 맞지 않는다. 사실 시도를 안 해본 것도 아니었고…

'어쩔 수 없지.'

팀장은 검을 거꾸로 쥐었다. 역수로 쥔 검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깊게 꽂혀 힐트만을 남기고 파고들자, 팀장은 조용히 읊조렸다.

"Explozie."

간단한 단문영창과 함께 괴물을 파고든 세검의 칼날이 산산이 폭발했다. 괴물의 움직임이 다시 한번 멈췄고.

"Arzând în abis și transformându-se în cenușă―!"

마침내, 홍유리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

"크르르?"

대기를 잠식하고 완전히 뒤덮었던 마력… 물론 보고 있었다.

'미친년.'

흑점 폭발. 그렇게밖에 설명을 못 하겠다. 모든 걸 지배하던 진홍의 마력이 그녀가 행사한 마법에 따라 사라져 아니, 한 점에 모여 검은 불꽃을 만들어냈으니. 그리고 그 불꽃이 터진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손동작과 말 한마디 모든 것에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니.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였다. 검은 살덩어리는, '태동하는 악'은 홍유리의 마법에 끔찍하게 불살라져 잿더미로 화했다.

[푸른 갈기 도약개구리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포만감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6 스킬에 의해 포만감이 경험치로 치환됩니다]

[악식(D) Lv.6 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6 → 악식(D) Lv.7]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8 → Lv.9]

떠오른 메시지를 치우고 저편을 바라보았다.

코발트 던전에서 아라네아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실제로 내가 약한 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정말 가감 없이 헌터와 몬스터를 줄세워 놓으면 나름 강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저 새끼들이 괴수인 거지.'

그래도 절망하진 않았다.

처음 검은 늑대를 보았을 때는 공포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지만, 그간의 경험이 날 증명하고 있었으니.

'난 강해질 수 있어.'

그런 확신이 있다. 강해질 방법도 안다. 지리산에서도 그랬지 않은가?

가장 약한 슬라임으로 태어나 결국엔 괴물 늑대까지 무찔러 산의 폭군으로 등극했다. 쥐와 싸워 겨우 살아남았던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그러니까.'

어차피 강해지는 건 시간문제. 아직 조금 멀기는 하지만, 암담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태동하는 악, 키메라가 쓰러졌으니 홍유리가 좋다고 달려오겠지. …그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9레벨은 찍었는데…'

황급히 [획득 가능 스킬 목록]을 열어 D등급 은신을 획득했다.

[은신(D)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은신(D) Lv.1이 은신(D) Lv.7에 통합되었습니다]

[은신(D) Lv.7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은신(D) Lv.7 → 은신(D) Lv.10]

[은신(D) Lv.10이 최대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은신(D) Lv.10 → 뛰어난 은신(C) Lv.1]

'C등급.'

당초 생각했던 목표는 달성했다. D등급 은신이 C등급으로. 이거라면 그나마 도망칠 가능성이 생겼다. 그래, 이제 던전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겼다.

'근데…'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착각이면 좋겠지만.

'…저거. 꿈틀거린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홍유리가 추락하고 있었다.

"……?"

갑작스레 변한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질 않았다.

***

"……."

성기사는 그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A클래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고 있다. B클래스가 재능 있는 이들이 평생을 갈고 닦아 가까스로 닿을까 말까 한 곳이라면 A클래스는 그야말로 선택받은 이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헌터의 정점이라는 것도.

'그래도 이건 너무.'

너무, 격이 다르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한 자그마한 회의감이 들 정도로.

"…형제님."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나도 같은 기분이니."

저런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과연 필요한 걸까? 성기사는 그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흑점이 폭발하는 순간 성기사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녀가 우릴 공격할 리 없는데도.

완벽하리만치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거였나.'

"망할…"

어디선가 들려온 욕설에 흠칫한 성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방금까지 함께 싸웠던 전우… 아니, A클래스의 헌터가 있었다.

성기사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저들이 가진 힘에 태도를 달리한다면 주를 뵐 낯이 있겠는가?

"왜 그러시오? 괴물은 멋지게 무찌르…"

"도망치십시오! 최대한 빨리!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까요!"

다급한 음성. 권사는 그들에게 달아나라고 소리쳤다. 폭풍을 일으킨 대가로 만신창이가 된 손으로.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던가?

"……!"

성기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제야 이해했다. 그녀의 마법은 분명 성공했다. 그건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흑점은 폭발했고 충분히 괴물을 죽이고도 남을만한 위력이었다.

"커, 흑!"

그러나,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검사가 그녀를 안고 내려선 순간,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쥐고 있는 검에는 검신(劍身)이 없었고, 그가 안고 있는 마법사는 한쪽 옆구리가 완전히 뜯겨나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

꿀렁! 꿀렁! 꿀렁!

괴물은 죽지 않고 살덩어리를 출렁이고 있었다.

"씨발… 개 같은 새끼… 마지막, 에 수작질을."

"…미안하다. 내가 제대로 막질 못했어."

고개를 떨구고 자책하는 팀장에게 홍유리는 힘겨이 코웃음 쳤다.

"등, 신아. 이런 걸로… 안 죽어."

정신고갈의 영향일까 아니면 출혈의 영향일까? 표정을 일그러뜨리던 마법사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성기사는 그 모든 걸 지켜보며 아연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최후의 순간, 촉수가 그녀를 꿰뚫은 건가? 그래서 조준이 빗나갔고? 방금까지 허망해하던 성기사는 순식간에 차오른 위기감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은 급변했다. 잿더미가 되었다고 생각한 괴물은 꿈틀거리며, 박동하고 있었다.

"……!"

물론 이번엔 온전히 재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마법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큭!"

그러나 확실한 건. 놈의 재생력이라면 언젠가 그 상처도 회복하고 말리라는 점이었다.

"…야단났군."

폭풍을 일으켰던 권사의 주먹은 그 대가로 끔찍한 형태로 변해 있었고, 검사의 칼은 산산이 조각나 손잡이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법사는 옆구리를 꿰뚫려 정신을 잃었고. 조금만.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되는데. 괴물에게도 여력은 남지 않았다. 그 증거로 제대로 재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몰아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지금이 찬스였다. 지금 막지 않으면 가능성조차 사라진다. 대구가 유령 도시가 되는 걸 멍하니 지켜볼 텐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터전이 이렇게 짓밟히는걸?

'그럴 순 없지!'

설령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지켜내고 말리라. 각오를 다지고 무장한 성기사는 망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형제님!"

방금과 같은 상황. 그러나 이번에 손을 뻗는 것밖에 하지 못했던 성기사는 철의 권사 옆에 당당히 어깨를 마주했다.

"나도 함께 싸우겠소."

"…지금은 피하시는 게."

우택의 만류에도 성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내 힘이 부족하단 건 알고 있소. 그러나! 저주받을 몬스터에게! 주의 터전을 짓밟았던 괴물들이!"

쿵! 그의 거대한 망치가 지면을 강하게 찍었다. 그 반동으로 해머를 어깨에 짊어진 성기사는 세찬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또 다시 우리 터전을 짓밟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

***

'홍유리가 실패했구나.'

뒤졌으면 하고 바랐는데 진짜로 실패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샘통이라고 느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홍유리가 추락하는 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대체 무엇에 직격당한 건지는 보지 못했지만.

'…이럼 나가린데.'

저 살덩어리를, 태동하는 악을 누가 막지?

'아니, 막을 수는 있을 거야.'

그래. 막을 수는 있겠지. 다만, 그런 이들이 올 때까지 대구를 누가 지킬까? 신전의 주교가?

'그래도 힘들 것 같은데.'

막을 수 있다고 해도 쑥대밭이 되고 말리라. 놈이 여기서 벗어나게 만들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왠지 나를 쫓고 있는 것 같은데?'

[Lv.10 달성 조건 : 태동하는 악을 유인할 것]

'…….'

시스템이 이런 조건을 걸었다는 건 아마도.

'지금 날 쫓고 있다는 소린가?'

설마, 박요한을 구해서 앙심이라도 품었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홍유리를 쫓는 게 먼저 아닌가? 난 박요한을 구했을 뿐이지만 홍유리는 아예 반죽음을 만들어놨는데? 우선순위가 이상하지 않나?

'…설마 홍유리가 죽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처기는 했다.

'망할.'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Lv.10을 평생 달성 안 하고 살 게 아니라면 결국 놈을 유인해야 한단 소리였다.

'아오오오.'

시스템은 대체 왜 걸어도 이런 조건을 걸지? 좀 쉬운 미션으로 하면 어디가 덧나나? 매번 시험하는 것 같은 미션만…

[……]

묵묵부답인 시스템. 다그쳐봤자 돌아오는 건 없다. 결국 각오를 다져야했다.

'이걸 어쩜 좋냐.'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민첩이 가장 낮다는 점일까. 409… 아라네아가 438이었으니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지금이야 빌빌대고 있지만 곧 완전히 재생할 걸 생각하면 그것도 버거울 텐데. 그리고 유인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치겠다. 진짜로.'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간에. 저 미친 살덩어리 괴물한테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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