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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46화 (46/407)

〈 46화 〉 #23 환계(幻界) (3)

근데 이거. 들을 순 있는데 말할 수도 있는 건가?'

변화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마력 재생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창조 경제 아니, 창조 숙련도잖아?'

변화는 물론이거니와 마력 재생까지 상승하니까 숙련도를 복사할 수 있다. 이걸 왜 진작에 생각 못 했지? 악식으로 흙을 퍼먹을 생각은 했으면서.

'잠깐 옆으로 샜네.'

"그르릉… 그륵."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늑대가 나 말하는 거냐?"

"와~ 늑대가 우리 말을 해! 요정 늑대야~! 요정 늑대!"

왕관을 쓴 요정이 방방 뛰었다.

"요정은 우리 친구~ 그럼 요정 늑대는 우리 친구야? 이히히!"

'대화하는 게 쉽지가 않네.'

천진난만을 넘어서 정신 사납다.

애들을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착하게 말하기로 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내가 원래 있던 세계와는 다른 것 같은데."

"여기? 여기는 환계야!"

환계… 역시 모르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세계인지는 윤곽이 보인다.

'정령계랑 비슷한 건가?'

마력의 농도가 높고 상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세상…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일단 궁전부터 나가야겠다.

"벌써 가는 거야?"

"응. 잘 있어."

볼 일 봤으면 가야지. 착한 말 예쁜 말이 나오는 건 픽창과 첫킬을 따이기 전까지. 이후부터는 지옥의 불가마였다. 얼른 나가려고 했는데 왕관 요정이 귀를 쭉쭉 잡아당겼다.

"치사해치사해치사해! 놀아주지도 않고 가 버리는 거야? 치사해!"

그런다고 끌릴 리가 있겠니? 왕관 요정은 궁전의 입구까지 따라오더니 거기서부턴 어쩔 수 없다는 듯 귀를 놓았다.

'불쌍하긴 한데.'

아마 여왕의 전령 역할을 수행하느라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안쓰럽긴 했지만 내 알 바 아니다. 풀죽은 얼굴로 검지를 비비는 왕관 요정을 슬쩍 보곤 깊게 한숨 쉬었다.

"…다음에 올게."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진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는 요정. 말해주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옹이를 넘었다.

***

"뀨류룩. 뀨루룩~?"

요정어를 배웠으니 혹시 하고 기대하긴 했지만 페어리 드래곤과 말이 통하진 않았다.

'그래 뭐. 사실 종족이 다르니까 말이 통한다는 게 힘들긴 하지?'

말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날 구해준 장본인… 장본용과 말하지 못한다는 게 퍽 아쉬웠다.

"늑대야. 늑대야. 여왕님은 뵙고 왔니?"

"그래. 잘 뵙고 왔어."

"늑대가 말을 했어!"

그 이후 반응이 왕관 요정과 Ctrl + C, V였다. 한바탕 소란을 겪고 나뭇가지로 가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불꽃 나비가 날개를 펄럭였다.

'불꽃에 휩싸인 나비라…'

다시 녀석의 등 위에 오르자 불꽃 나비는 에메랄드색 바다를 유영하며 도심의 가장 높은 건물까지 내려주었다.

"늑대야~ 이제 돌아갈 거야?"

요정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아니. 이 세상을 좀 더 둘러보고 싶어. 여기를 환계라고 부른다며?"

"맞아! 여기는 환계야~ 늑대는 괴물인데 아는 게 많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내가 볼만한 게 있을까? 이 세상의 명물이라던가."

"웅~ 모르겠어!"

당당히 허리를 짚는 요정. 기대도 안 했다. 그리고 어차피 할 일은 대충 정해놓았다.

'환계 생물들이랑 접촉해보고 싶다.'

불꽃 나비, 요정을 포함한 환계의 주민들은 다른 스테이터스에 비해 마력이 높은 편이었는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확히는 마력을 늘릴 방법.'

환계의 순도 높고 농도 짙은 마력과 분명 연관이 있으리라. 어떻게 마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지, 또 이 마력의 근원은 무엇인지.

"그럼 다른 환계 주민들을 소개해줄래?"

"응~!"

어느새 머리에 똬리를 튼 페어리 드래곤이 뀩뀩 울었다. 마치 '나는?'이라는 토라진 듯한 태도에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촉수로.

'다른 환수들을 만나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요정을 따라가는 와중에 많은 생물들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환계에는 어떻게 들어오는 거지?'

페어리 드래곤을 슬쩍 보았다. 녀석은 점멸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이 아닌가 싶었으나, 요정과 용벌레들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스킬이 아니라면?

'싸울 때도 써먹을 수 있겠는데.'

환계와 원래 세계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면 사실상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점을 요정에게 물어보니.

"응? 늑대는 바보! 괴물은 환계에 들어올 수 없는걸?"

약 올리듯이 말한 요정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라라? 그런데 늑대는 어떻게 들어왔지?"

의아해하는 요정. 아무래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페어리 드래곤이 데려왔지만… 이 녀석은 말을 못 하니까.

'다른 환수한테 물어봐야겠네.'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데?"

"있어. 엄청 착한 친구야!"

이윽고 도착한 곳은 커다란 숲… 이었다.

'숲?'

아니, 숲이 아니라 던전. 던전으로 변한 이현 공원이었다.

'여기에 왜 다시?'

의아함을 담아 묻자 요정은 방긋 웃었다.

"여기가 좋다고 자리 잡아 버렸어!"

"좋다고?"

"응! 넓어졌다고 좋아하던걸!"

넓어졌다라. 던전화는 유지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 던전 안을 제법 걸은 끝에 만난 환수는 사슴이었다.

'…흰 사슴?'

환계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맞물려 숲에 있으니 한 장의 그림이었다. …공중에 둥둥 떠서 거꾸로 있지만 않았다면.

"백록은 환계에서 제일 똑똑해!"

자랑하듯 떠벌리는 요정의 말에 백록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사슴에게 늑대를 데려오다니…"

백록은 요정을 꾸짖더니 발로 땅을 디뎠다.

"그렇다 해도 자네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니 괘념치 말게."

"말을 하네?"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백록(白鹿)]

[체장 4.26m] [체고 2.14m] [체중 831kg]

[힘 266] [민첩 471] [체력 351] [마력 511]

[보유 스킬]

[축지(B)] [마력 감지(C)] [마력 재생(D)] [안목(E)] [질긴 피부(E)]

'스테이터스가 신기하네.'

힘은 낮지만, 민첩과 마력이 상당히 높다. 싸우면 아마도…

'지겠는데.'

0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승산이 낮을 것 같다. 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백록을 보니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게 자네가 살아가는 법이군."

"……?"

"언제나 경계하고 언제나 방심하지 않는 것."

백록은 휘휘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것 같군. 그래서 저 수다쟁이들을 데리고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생각보다 호의적이네?'

말하는 투로 보아 통찰 당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데 따지지 않았다. 요정이 착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너희 환계 주민들이 마력이 높은 이유."

"그렇군. 확실히 자네의 마력은 보잘것없어. 더 강한 마력을 탐낼 만도 해."

이 동네는 팩트가 무기인가? 왜 이렇게 팩트로 사람을 때리지? 툴툴거리는 사이 백록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냥 알려줄 수는 없지."

'그럴 거라 생각은 했는데.'

깐깐하네. 더 호의적인 환수를 찾는 게 나을까? 곧바로 백록이 말했다.

"하나 도와준다면 알려주겠네. 어떤가?"

"…뭔데?"

"현계(現界)가 그러하듯, 우리 환계에도 던전이라는 건 생긴다네."

"던전이 있다고?"

의아해하는 내게 요정이 방방 뛰었다.

"응! 맞아! 던전이 있어! 있고말고!"

거기에 이어 페어리 드래곤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알아듣긴 하는구나?'

"제법 오래 방치된 곳이네. 아무튼 던전 하나를 안정화시키면 된다네.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그렇긴 한데.'

손해 볼 것 없는 이야기였다. 던전의 수준을 봐야 알겠지만 바라는 바였다.

"던전은 어디 있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네. 타게나."

"나도나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등에 올랐다. 백록이 가진 축지라는 스킬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풍경이 휙휙 바뀌네.'

괜히 B등급 스킬이 아니었다. 3초도 되지 않아 10km는 달린 것 같다.

'조금 이상한데?'

가본 적 있는 곳이었다.

백록의 말대로라면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는데 원래 세계, 현계에서는 이런 던전을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환계는 현계에 영향을 못 미치는 건가? 현계는 환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이제 좀 이 세계에 대해서 알 것 같다. 마치 거울. 거울 속 세상의 일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리는 없지만, 거울은 현실을 비치는 법.

'…그래서 환계의 던전은 현계에 없었던 거야.'

동등한 세계가 아니라 종속된 세계 같았다.

"자, 여기라네."

도착한 곳은 환계의 던전… 아니, 커다란 건물이었다.

'여기가 경계인가 본데.'

안으로 들어가면 여타 던전들처럼 달라지겠지. 조심스레 건물 내부로 한 발을 디뎠다.

'발이?'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 마력을 일으키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던전을 클리어하라고?

"흠…"

지켜보는 백록. 의아해하는 요정과 머리 위에서 하품하는 페어리 드래곤. …느끼지 못하는 건가?

'어차피 들어가야 해.'

뚫고 완전히 들어갔을 때,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다리가 벌써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몬스터를 사냥하기는커녕…!

"역시나."

그런 내 상태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백록이 끄덕였다.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게. 자네는 대자연을 이길 수 있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무슨 개소리야.'

마력을 풀었다간 단번에 짓눌러져 호떡이 되고 말 거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백록이 입구를 막아섰다.

"크르르―"

"자네가 원한 것이지 않던가?"

'내가 뭘 원했다고?'

정신 나간 마력 농도 때문에 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마력에 취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환계의 주민들이 마력이 높은 이유를 묻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부의 마력만을 사용하는 건 멍청한 괴물이나 할 행동이라네."

"……."

"그 점에선 인간도 비슷하지. 마법이라는 형태로 빚어낸 건 참신했네만, 우리 환수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네. 어째서인지 알고 있나?"

"비켜."

"마력의 질이 다르기 때문일세."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가 벌써 한계를 예고해왔다. 200에 가까워진 마력으로도 저항하기 어려웠다.

"대자연의 거대한 마력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자신을 가두지 말게. 한계 속에 구분 짓지 말게."

백록이 떠드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력에 짓눌리게 생겼는데 사슴이 하는 말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백록은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저항하지 말게. 그저 받아들이게."

저항하지 말라고?

'그러고 보니.'

요정과 페어리 드래곤은 왜 그러냐는 듯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백록은 그렇다치자. 하지만 요정과 페어리 드래곤의 마력은 나보다도 낮은데 어째서 멀쩡할 수 있는 걸까?

의문이었다. 그리고…

"늑대는 바보야~!"

요정과 페어리 드래곤이 귀를 물어뜯었다. 마치 당연한 것을 모르는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받아들이라고?'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네만의 상식을 벗어나게."

백록이 담담하게 내려다보는 가운데.

'상식에서 벗어나라고?'

하지만 이 거대한 마력에 저항하지 않으면? 숨 막히는 농도의 마력이란 그 자체로 강한 압박이었다. 마력을 거둘 수는 없다… 단번에 짓눌려질 것이다.

그러나.

'…마력을 거두지 않으면?'

백록은 입구에 당당히 서 있다. 과연 이런 중압감 속에서 백록을 비키게 만들 수 있을까?

"끄드드득―"

"자네가 살아온 삶이 그랬을 테니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지게."

"달라, 지라고?"

"다른 이를 믿어 보라는 걸세."

백록의 시선이 향한 곳엔 머리 위에 똬리를 튼 페어리 드래곤이 있었다.

'…믿으라고?'

투쟁의 연속인 삶이었다.

몬스터와 인간. 어느 쪽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베풀었던 호의가 돌아온 거라면. 그것만큼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뀨루룩!"

페어리 드래곤이 날개로 두개골을 감싸 안았다.

"한계를 두지 말게. 스스로를 가두지 말게."

법문(法問)처럼 끝없이 두드리는 백록의 말.

그러는 와중에도 요정은 계속 쓰다듬었다.

"늑대야~ 많이 아파?"

숨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소용없는 거라면.'

나는 서서히 마력을 거두기 시작했다.

'저항하지 마.'

당장이라도 온몸의 뼈가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다시 마력을 일으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순간, 백록의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순리대로 흐르게 놔두어 받아들이게."

순리(順理). 도리를 따르는 것.

환계의 짙은 마력에 저항할 순 없다. 나라는 개체와 환계의 마력을 감히 비교할 순 없는 법이었으니.

그러니.

'순리에 따라서 환계의 마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윽고 마력이 전신을 뒤덮었다. 그러나 찾아온 건 예상했던 강렬한 압박이 아니었다.

[마력이 2 상승합니다]

'아.'

그때, 내가 가진 의문이 풀렸음을 느꼈다.

"깨달은 모양이군."

환수들이 마력이 높았던 이유…

"그게 자네가 궁금했던 것이었지?"

환계의 마력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현상처럼 존재할 뿐인 의지 없는 마력. 당연히 저항하지 않으면 마력에 짓눌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멋대로 커다란 마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한계와 상식을 부수라는 게 그런 뜻이었구나.'

오랫동안 이런 마력을 받아들였다면 백록의 마력도 납득할 수 있었다.

'…….'

돌아보자 요정이 만세를 하며 팔을 벌렸다.

페어리 드래곤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즐거워했다.

'호의…'

둘을 멍하니 보고 있던 와중에 백록이 말을 걸었다.

"흠. 설마 의문이 풀렸다고 내뺄 생각은 아니겠지?"

어차피 던전은 클리어할 생각이었으니까.

…왠지 모르게 아주 조금 가슴이 먹먹했다.

***

"고원의 뒤를 캐라고요?"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 팀장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고원이 어떤 클랜인가? 최초이자 최고이자 최강의 클랜. 굳이 창선과 광휘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설적인 헌터가 즐비한 곳이었다. 2위 클랜인 여명과도 격이 다른 독보적인 클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묻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고원이 용납하는 수준까지는."

자신 없다는 소리였다. 팀장은 작게 숨을 흘렸다.

"어느 선까지 가능하지?"

"동선 정도라면요. 그나마도 작정하고 숨기면 답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더하군.'

나름 이쪽 업계에서 유명한 수완가임에도 이랬다.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 그간의 거래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딱 잘라 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사람은?"

"나리. 아시잖습니까? 누구도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저니까 이 정도라도 하는 거죠. 고원, 아니 광휘에 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없나?"

"후… 정 원하신다면 이 사람을 찾아가 보시죠. 어떤 의뢰든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추천은 못 하겠는데요."

정보상이 내미는 사진 속 인물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지?"

"모릅니다. 하지만 완수율은 100%죠. 고원한테도 그럴지는 의문이지만요."

"100%? 그런데 아무 정보도 없다고?"

정보상은 서로를 견제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했고. 그런데도 '모른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팀장의 의문에 정보상이 쓰게 웃었다.

"그러니까 추천해 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너무 수상쩍거든요. 그나마 아는 거라곤 자기를 '꼬리털'이라고 부른다는 것 정도입죠."

"꼬리털?"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팀장은 사진을 품 안에 넣었다.

"어디로 찾아가면 되지?"

"대전입니다. 자세한 위치는 사진 뒤에 적어 뒀습니다."

"…다음에 보지."

"살펴 가시죠."

나름 오래 거래했는데도 붙잡을 생각이 없다. 정보상이 고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전히 멀다는 거군.'

***

"크르륵!"

환계의 던전이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몬스터의 종류였다.

"와! 박쥐야~ 박쥐!"

[마력에 노출된 박쥐]

[체장 24.4cm] [체고 2.7cm] [체중 126g]

[힘 21] [민첩 31] [체력 24] [마력 69]

박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눈을 빛내자 방금까지 좋아하며 방방 뛰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잔뜩 겁먹은 요정이 두개골로 쏙 들어가 숨었다.

"꺄아아악!"

소리 울리잖아.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몬스터가 아닌데?"

"왜. 망설여지는가?"

"아니."

몬스터건 아니건 상관없는 일이다. 천장에 붙은 박쥐들을 모두 처리하는 건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력에 노출된 박쥐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몬스터가 맞네?"

동물이라면 경험치를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네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는지 모르겠지만, 마력을 품은 시점에서 동물일 리가 있겠는가."

"너희는 어떻게 구분하는데?"

"마력을 온전히 품으면 영물. 우리처럼 환수가 될 가능성이 생기지. 허나 저렇게 이지를 잃고 취한다면 괴물이라네."

납득할 수 있는 구분법이었다.

"그렇게 치면 나도 영물 아닌가?"

이지가 있고 마력을 다루니까. 그 점을 묻자 백록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괴물로부터 비롯된 자네는 별개지. 너구리가 영물이 된다고 들짐승이 아니게 되던가?"

하기야 마랑의 길로 들어섰을 때부터 반쯤 포기하긴 했다.

"근데 따라올 거면 직접 해도 되잖아."

"위협적인 던전은 아니라네. 귀찮아서 아무도 손대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귀찮아서 안 한다는 소리였다.

"마침 자네가 온 거라네."

"환계에는 동물들이 올 수 없는 거 아닌가?"

박쥐를 가리키자 백록이 갸웃거렸다.

"괴물이라고 했잖나?"

아 그랬지. 던전이었다.

"근데 나도 몬스터… 괴물인데 이지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백록은 미묘하게 웃었다.

"자네는 참 호기심이 많군. 마치 어린아이처럼."

슬쩍 요정을 보는 것이 수준이 비슷하다고 돌려 까는 것 같았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네. 자네는 눈이 없긴 하지만… 대신 요정과 페어리 드래곤을 믿었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라."

"뀨루룩?"

눈이 마주치자 페어리 드래곤은 갸웃거렸고, 요정은 방긋방긋 웃었다.

"…대충은 알겠네."

"훗. 그사이 제법 둥글어졌군."

"개소리."

"그런 거로 해두겠네."

그렇게 세 마리와 한 명은 던전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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