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25 대전의 밤 (2)
'핸드폰이랑 충전기.'
아지트로 삼은 폐건물에 전기가 끊긴 건 당연했고, 대신에 소형 발전기가 있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충전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하긴 그렇게 날뛰었으니.'
개중에는 헌터도 있다. 아마도 소란을 듣고 모여든 모양. 문 앞에 인파가 깔려있으니 정면으로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
'아무리 C등급 은신이라도 이건 좀.'
꼬리인 이백섬이 경계하고 있어도 공격당하기 직전까지 찾을 수 없었다지만, 저렇게 많은 인파 앞에서 당당히 지나갈 자신은 없다.
'좋은 방법이…'
숨어서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은자의 숲 클랜장이 오고 있을 테니 튀는 게 맞다. 잠깐 고민하다가 건물 뒤편, 골목으로 이어지는 창문을 열었다.
'예전 같으면 무서웠을 텐데.'
이래저래 구르다 보니 감각이 변하기는 했나 보다. 건물 아래로 훌쩍 뛰어내려 가볍게 착지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저번 같은 실수를 또 할 수는 없다. 은신을 유지한 상태로 제법 멀리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못 쫓아오겠지?'
회사 건물인 듯한데 다 퇴근한 모양인지 사람이 없다. 하긴 새벽 1시에 누가 회사에 남아 있겠는가?
'잠깐 전기 좀 빌립시다.'
충전하면서 휴대폰을 켰다.
'아 하필이면.'
패턴 잠금이었다. 촉수로 패턴을 그리다가 푹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느새 하고 앉았냐?'
5번 실패할 때마다 30초씩. 그렇게 패턴 잠금을 몇 번인가 실패하던 와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
문을 앞에 두고, 팀장은 숨을 골랐다.
"더 들어갈 겁니까?"
"고민되네요. 그래도 나중엔 쥐새끼들이 다 도망가지 않을까요?"
"이만한 시설을 없앤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입니다."
"글쎄요? 어차피 굴은 다시 팔 텐데~?"
돌아갈 생각 자체가 없다. 여기서 끝을 볼 심산으로 꼬리털이 팀장과 눈을 마주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느끼셨잖아요? 정리할 필요 있다는 거. 아니면 아직 절 의심하고 있나요?"
그래서 돌아가자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물음에 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거의 믿고 있습니다."
"어머~ '거의'요?"
팀장은 꿈틀거리는 괴물을 짓눌렀다.
"그러는 당신은 절 믿습니까?"
"물론이죠! 잘 생겼으니까."
'미친년.'
팀장은 물어봐서 손해 봤다고 생각하며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아마 키메라겠죠. 맞습니까?"
"네~ 그럼요!"
밟혀 터져나간 키메라의 살점이 꾸물거렸지만, 꼬리털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휴. 그래서 그놈의 저울. 이제 어디로 기울었습니까?
꼬리털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음~ 슬슬 수평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보기엔 한참 기울었는데요. 잔금은 다음에 받죠. 스퀘어에서 증원은 없습니까?"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오긴 옵니까?"
"아마도…요?"
자신 없어 하는 모습에 팀장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기대하면 안 되겠군.'
"들어가죠."
***
"안에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주의하세요."
경찰이 모여든 인파를 통제하는 와중, 헌터로 이루어진 임시 수색대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엘리베이터가?'
철문이 뜯겨나갔다. 어차피 폐건물이라 작동하진 않겠지만…
"이건 심한데요. 도대체 누가 이렇게."
"올라가 보죠."
여성, 대표 클랜의 로드인 은자림이 성큼성큼 계단을 따라 오르자 다른 헌터들이 뒤따랐다.
'계단 곳곳이 파여있어.'
마력까지 사용했을 정도로 급했다는 뜻. 분명 쫓기고 있는데, 쫓는 이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느긋하게 쫓고 있었다?'
그리고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많은 파편이 계단 층계참에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바닥이 깨진 걸까요?"
"위층을 보세요. 저기서 여기까지 떨어진 거예요."
층계참이 부서져 떨어진 파편이었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파편 일부엔 피가 묻어 있었고, 만져보니 아직 끈적했다.
"얼마 되지 않았네요."
"여기서 싸운 거겠죠?"
"그렇겠죠. 근데 여긴 뭐 하는 건물이랍니까?"
"폐건물인 줄 알았는데…"
겉과는 달리 내부는 제법 정리가 잘 되어 있다.
"……."
자세히 살펴보니 계단으로부터 이어진 핏자국이 어느 방까지 이어져 있다.
"저 방으로 간 것 같네요. 따라가 보죠."
"아, 예. 알겠습니다."
다른 헌터들이 경계하는 와중에 은자림은 마력을 넓게 펼쳤다.
'역시 아무도 없어.'
이미 빠져나간 모양.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그 안으로부터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무슨 연기가 이렇게?"
매캐한 연기 속에 섞인 냄새에 은자림은 아미를 찌푸렸다.
'사람을 태운 냄새.'
상상하기 싫어도 한 가지 경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같은 생각을 한 헌터가 있는 모양. 은자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백섬.'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기 할 일은 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B클래스 헌터 한 명이 어이없이 죽었다는 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도대체 왜 이 새벽에 여기까지 온 걸까? 그리고 누가 그를 습격했을까?
여러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었다.
'그리고 이 털은…'
마치 짐승의 것과 같은 검은 털과 곳곳에서 발견한 발톱 자국…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전화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목소리는 흉내 낼 수 있어.'
잠깐 변화를 사용해 녀석의 목소리를 흉내 내보고 조금 조정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습니까! 이 핸드폰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한 건 당신이잖습니까!]
'다른 핸드폰이 있었나?'
그야 있었겠지. 명색이 꼬리인데 대포폰 정도야 준비해뒀을 터. 존대를 해야 하나 반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말꼬리를 흐렸다.
"잠깐 일이 있어서…"
[A동에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침입자?"
[꼬리털 그 미친년이 왔다고요!]
'꼬리털?'
이 시점에서 탕아들을 쫓았던 인물이 있나? 의아했지만, 일단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도와주시죠. 연구소가 파괴되면 곤란한 건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가일 님이 돌아오시기까진 시간이 좀 걸립니다]
"……."
[젠장. 동맹 아니었습니까? 나중에 아가일 님이 이 일을 알게 되시면 당신도 무사히는…]
얼추 관계를 이해했다. 동맹이라는 말에 매달리는 걸 보니 꼬리였던 이백섬이 통화하고 있는 상대방보단 높은 지위였으리라.
"…알겠다."
혹시나 하는 약간의 불안을 숨기며 반말로 답하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안심했다는 듯 낮아졌다.
[휴.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A동에서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만약 B동까지 오게 된다면…]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잠깐 생각했다.
'아가일?'
알고 있다. 아가일. 아가일 모레스트가 누구인지.
'사각지대였구나.'
사각지대의 수장. 아무래도 꼬리털이라는 인물은 탕아들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쫓고 있던 모양인데…
'동맹이라고 했지?'
원래 같았으면 굳이 벌집을 쑤시느니 도망치겠지만, 통화하는 상대편은 '아가일은 지금 없다'라는 정보를 줬다. 물론 돌아온다고 했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럼 상관없어.'
솔직히 말해 아가일을 제외한 나머지 사각지대는 그다지 무섭지 않으니까.
'사각지대는 스퀘어가 쫓고 있을 텐데…'
꼬리털은 스퀘어의 마법사일까? 만약 발각되어 스퀘어 차원에서 온 거라면 도와달라는 통화조차 못 했을 터. 아니, 차후에 주인공이 사각지대라는 조직을 만날 일이 없었겠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꼬리털이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어.'
이 시점에서 죽어서 언급되지 않은 걸까? 물론 본명도 아니겠지만…
'일단 가보자.'
A동. A동이라고 했지? 나는 감지를 최대한으로 활성화했다.
***
"저항이 거세졌군요."
문을 닫고 도망치는 정도로 가능한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놈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날아오는 마법을 쳐내며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검은 고맙지만, 이건 왜 붙여 놨습니까?"
"어머 왜요? 로미오를 위해 준비한 건데."
"휴. 말을 말죠."
손잡이 끝에 달린 하트 무늬 장식이 유난히 거슬려 떼버렸더니, 꼬리털이 우는 시늉을 했다.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하세요…"
"닥치고 일이나 합시다."
"넵~ Halucinaţie~."
꼬리털의 자색 마력이 짧게 퍼진 순간, 저항하던 마법사들의 눈이 몽롱해졌고 팀장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와도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에이~ 키메라한테는 안 통하잖아요."
"고작 단문 영창으로…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스퀘어에서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을 터. 그러자 꼬리털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한쪽 눈을 감았다.
"A secret makes woman woman."
"그거 되게 오래된 만화 아닙니까?"
"어머~ 알고 계시네요? 제가 사실 만화를 조금 좋아해서."
팀장은 아직 환각을 보고 있는 마법사들의 목을 베었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낫겠지.'
손에 피를 묻히는 건 꺼려졌지만, 나중에 뒤통수 맞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낫다.
"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마스터를 들들 볶아서라도 고원의 뒤를 캐다 드릴 테니까요! 창선님 팬티 색깔까지요!"
"그건 필요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 격벽이 내려오는 걸 보며 팀장은 힘의 중심부를 찔렀다. 얇은 세검이 격벽과 맞부딪쳤는데 두꺼운 격벽이 산산이 부서졌다.
"어머나."
놀랐다는 듯 입을 가리는 꼬리털. 구진하는 부서진 격벽 너머를 보며 물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습니까?"
"글쎄요? 제가 여길 와본 건 아니라서. 대신 수준은 다 거기서 거기일걸요? 얘네, 다 낙오자들이거든요."
"낙오자?"
"떨거지라고 해도 좋고요."
조금 과격한 발언에 그녀를 본 아주 짧은 순간, 팀장은 그녀의 눈빛에서 명백한 경멸을 읽었다.
"일단 계속 가도록 하죠."
"그래요~ 빨리 끝내야죠~."
***
'여기인가 본데.'
거센 싸움의 흔적과 얼핏 느껴지는 피 냄새. 언뜻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폐건물 같아 보이지만, 아래에 커다란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참 재밌게도 하네.'
참 재밌는 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유난히 길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각 층의 높이는 비슷했으니, 1층 천장과 2층 바닥 사이에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야 정답을 알고 하는 거지만.'
공간은 숨겨도 냄새는 못 숨기기 때문이었다. 곧 미세한 틈이 있는 바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걸 잡아 들어올리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이 나왔다.
'허리 굽혀서 가면 어떻게 지나갈 수 있긴 하겠네.'
너무 공간이 넓으면 눈치채기 때문이리라.
'애초에 지하로 가는 길이 2층에 있단 생각 자체를 못하겠지만.'
생각의 허를 찔렀다. 하수도도 그랬었는데 얘네들은 이런 게 기본 옵션인 모양이다. 공간의 틈 사이를 지나자 계단이 나왔는데, 아마 세로로도 비밀 공간을 만든 모양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폐건물.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처음부터 탕아들이 아지트로 쓸 목적으로 만든 건물이었을까? 그걸 사각지대가 빌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긴 계단을 따라가 아래로 내려가자 예상했던 것처럼 커다란 지하가 있었다.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후 발각돼서 스퀘어가 없애버린 걸지도. 당연히 사각지대는 여길 버리고 도망쳤을 테고. 제법 긴 통로를 따라가자 커다란 철문을 볼 수 있었다.
'이 너머에 있어.'
문손잡이를 돌렸지만 잠겨있다. 부술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하필 세검사가…!"
문틀을 사이에 두고 음침한 로브를 입은 괴인이 얼어붙었다.
'세검사?'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세검사면 구진하잖아?'
대체 왜 세검사라는 이름이 나오는 거지? 꼬리털이라는 게 설마 구진하를 말하는 건가?
'아니. 미친년이라며?'
미친놈이라고 했으면 그나마 이해하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Ha, Halucinaţie―!"
얼어붙었던 괴인이 주문을 외웠다. 놈은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렸지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피해 감소(D) Lv.5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피해 감소(D) Lv.5 -> 모든 피해 감소(D) Lv.6]
'너 그게 되겠니?'
진작에 통찰로 확인했다. 놈의 마력은 207. 마법이 통하려야 통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잠깐은 괴인도 의심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자 마법이 통했다고 믿은 듯 주절거렸다.
"후. 몬스터도 풀어놨을 줄이야… 근데 어떻게 밖에?"
'아. 그래? 몬스터도 있나 보네.'
좋은 정보를 얻었다. 놈이 문 너머로 나온 순간, 촉수로 심장을 꿰뚫었다.
"……!"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하고 괴인이 절명했다. 괴인을 내버려 두고 나는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몬스터도 있다고 했었지?'
딱 좋네. 20레벨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경험치를 채울 절호의 기회였다. 감지를 넓게 펼쳐 몬스터라 추정되는 기척을 찾았다. 얼마 머지않은 곳에 격벽을 부수자 안에 있던 마법사들이 경악했다.
"스, 스컬 울프가 어떻게?"
"몬스터가 풀려났다! 빨리 확인해!"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놈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물어 죽였다. 화들짝 놀란 마법사들이 주문을 영창했지만.
"Halucinaţie!"
"Halucinaţie!"
아까와 똑같은 마법과 비슷비슷한 마력. 당연히 통하지 않았고 그사이에 두 명을 더 죽였다.
"환각이 통하지 않는다!"
"Fereastra de gheață!"
마법사들이 소란스럽게 주문을 영창했다.
'얼음송곳?'
투박하고 조잡하지만, 고드름처럼 날카로운 얼음이 공기를 갈랐다. 간단히 피하고 중얼거리는 마법사를 물어 죽였다.
"Fereastra fulgerului―!"
이번엔 번개가 날아왔다. 가지각색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맞겠냐고.'
마법사라는 양반들이 생각이 없다. 하다못해 이은하처럼 그물이라도 쓰던지. 남은 마법사들을 죽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긴 아직 수준이 낮을만해.'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각지대(Blind Spot).'
현 퍼플 스퀘어 마스터인 환영의 나비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아가일 모레스트가 만든 조직. 지금이라면 놈이 퍼플 스퀘어에서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터.
'기껏해야 3,4년?'
그러니까 조직이 제대로 자리 잡았을 리가 없다. 아마 이 시설도 탕아들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을 터. 게다가 사각지대의 특성상, 아직 약할만 했다.
'스퀘어로 들어가지 못한 마법사들을 모았으니까.'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아카데미에서 기초적인 마법 정도만 배운 애매한 이들. 그 중, 정말 일부는 노력해서 클랜에 들어갔겠지만, 그조차 실패한 이들.
'그게 사각지대야.'
사각지대라는 이름답게 그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곳.
'그러니까 이따위지.'
특히 마법사란 직종은 재능이 99%를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재능이 부족한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는 아가일이 쫓겨난 이유와 함께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지금 아가일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는 싹을 잘라두는 게 낫겠지.'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내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한때 스퀘어의 후계자였던 이와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쿠와아악!"
울음소리가 들리는 대로 따라갔더니, 많은 몬스터가 갇혀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일단 하나같이 움직일 수 없게 구속돼있다.
'무슨 뷔페냐?'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척을 감지했는지 울부짖기 시작했지만 몇몇 몬스터들은 심지어 재갈까지 물려 있었다.
그러다가.
[스컬 울프]
[체장 4.15m] [체고 1.56m] [체중 560kg]
[힘 246] [민첩 309] [체력 221] [마력 145]
스컬 울프를 발견했는데 거의 내 3배는 되는 덩치였다.
'…존나 크네.'
마냥 생각하고 있던 스컬 울프보다 커다랬다.
'나도 이 정도로 커지는 건가?'
[스컬 울프를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스컬 울프를 비롯해 몇 마리를 더 먹어 치우자 남은 경험치를 채울 수 있었다.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9 -> Lv.20]
20레벨 달성 조건은 현계로 돌아온 시점에 완료되었으니, 바로 20레벨에 도달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남은 몬스터들도 모조리 먹어 치우기로 했다.
[악식(D) Lv.8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악식(D) Lv.8 -> 악식(D) Lv.9]
'아쉬운데.'
갇혀있는 몬스터의 질이 낮아 제대로 경험치를 얻지 못한 탓에 21레벨은 되지 못했다.
'여기가 아마 A동일 테고…'
얼마 가지 않았으니 아직 A동이리라.
'분명 B동이 있다고 했지?'
통화했던 상대방은 침입자가 B동까지 도달하는 걸 무척이나 꺼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B동에 뭐가 있길래? 중요한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꽁꽁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있나?
'B동이라…'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가일도 없겠다.'
그나마 있는 마법사들도 침입자를 막느라 바쁜데다가.
'내가 들어온 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고.'
―원래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유독 하고 싶어지는 법.
그러니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칼리굴라 효과가 나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