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51화 (51/407)

〈 51화 〉 #25 대전의 밤 (3)

"우리?"

꼬리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여긴 원래 뭐 하는 장소였을 것 같아요~?"

말꼬리를 올리며 묻는 말에 팀장은 슬쩍 훑어보더니 말했다.

"몬스터가 갇혀 있었겠군요."

"정답~! 저도 그럴 것 같아요. 로미오랑 통했네요~?"

주인 없는 구속구. 비록 제대로 된 마법사는 없다지만, 동물들을 그렇게 엄중히 관리했을 것 같지는 않다. 십중팔구 몬스터이리라.

"키메라의 소재일 것 같습니까?"

"아마 그렇겠죠?"

잠깐 살펴보던 팀장은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피 냄새?"

우리의 반대쪽 벽을 빙 돌아가니, 스위치와 버튼이 잔뜩 있는 방에 처참하게 죽은 사체들이 있었다.

"혹시 우리가 여길 지나왔습니까?

"아뇨? 그런 적 없는데."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설마하니 둘 다 건망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마법?"

내분이겠냐는 뜻에 꼬리털은 잠시 살피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마법은 이 사람들 거예요."

"…이빨 자국도 있군요."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짐작 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마력의 패턴. 짐승에게 습격당한 듯한 상흔. 그러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꼬리. 탕아. 위협.'

늑대가 말했다던 세 단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꼬리털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놈이 도심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놈에겐 전과가 있다.

이미 도심 속에서 사람을 습격했던 전과가.

'―알파.'

놈이 이곳에 있다고. 팀장은 강한 확신을 가졌다.

***

'여긴 이미 전멸이네.'

커다란 연구실이 피와 시체로 가득했다. 끔찍한 살육의 현장에 잠깐 골머리를 앓다가 얇은 검에 찔린 듯한 상흔을 발견했다.

'세검.'

피 냄새가 짙긴 했지만, 후각 스킬은 한 번 맡은 냄새는 얼추 기억한다는 것도 있고.

'설마설마했는데.'

세검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구진하가 맞는 것 같다. 놈이 왜 여기에 있지?

'구진하가 사각지대랑 엮인 적이 있었다고?'

아니다. 구진하는 상당히 나중에 사각지대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그전까지 엮인 적도 없을 텐데…?

'소설 속이랑 내용이 틀어졌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가 탕아들에 대한 정보를 흘려서?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작용했나?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당장은 도망치는 게 더 급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구진하 정도 되는 실력자에게 은신으로 숨을 자신은 없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B동으로 가고 싶었는데…

'망할.'

칼리굴라고 나발이고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숨겨진 길이 있는가 싶어 감지를 사용해봐도, 촉수로 벽을 더듬어도 찾지 못했다.

'설마 A동과 B동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건가?'

만약 전혀 별개의 건물에 지어진 거라면? 지하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아냐. 그럴 확률은 희박해.'

통화내용을 떠올려보면 놈은 'A동에서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B동까지 오게 되면'이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 A동에서 B동으로 이어진 길이 있다는 뜻이다.

'길이 없다면 막는 게 아니라 도망친다고 했을 거야. 아니, 전화도 안 왔겠지.'

분명 B동으로 향하는 길은 있다. 아니, 있을 거라는 전제하에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B동으로 가는 길은 없다…?

'아.'

문득 떠오르는 것.

처음 지하로 내려왔을 때, 커다란 철문으로 된 입구 앞에서 만났던 괴인이 떠올랐다. 곧바로 내게 죽긴 했었지만.

구진하가 놈을 놓아줬을 리가 없으니 도망쳤다는 소리인데…

'구진하는 어디로 갔었지?'

피 냄새가 옅은 순서대로. 놈은 입구에서 거의 직선으로 향했다. 아니, 그냥 직선으로 달렸다고 해도 좋으리라.

'…….'

반대로 나는 몬스터의 기척을 쫓아 왼쪽 통로로 향했었다. 왼쪽 길에는 격벽이 쳐져 있었으니 침입자는 물론이고 사각지대의 일원도 지날 수 없다.

'그때, 구진하가 여기에 있었고.'

바로 이 커다란 연구실에 말이다. 그렇다면…

'입구로부터 중앙 연구실 이전에 숨겨진 길이 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곧바로 길을 되돌아가 입구까지 향하던 중에 들린 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이거 설마.'

벽이 둘러진 장소, 화장실. 하지만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방금 들린 소리는 분명.

'설마…?'

도르래. 나는 홀린 듯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인지라 조금 더럽긴 하지만 평범한 화장실…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네.'

화장실 안 칸막이 너머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B동이라는 게 지하를 말하는 거였어?'

이어진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이었던 것. 벽이란 벽은 전부 다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화장실은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감지로 확인해봐도 화장실에 아무도 없으니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크륵."

헛웃음을 터뜨렸다. 심리의 맹점, 심리의 사각을 잘도 찌르고 있다.

'사각지대라고 불릴 만하네.'

화장실에 엘리베이터라니. 궁하면 통한다고 마법사들끼리 머리를 싸매 꺼내놓은 지혜였다.

'조심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히 문을 열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 있는 건 빈 공간이었는데, 촉수로 벽을 짚으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야 있겠지만,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설마하니 유일한 통로인 엘리베이터를 지키지 않겠는가? 당연히 밑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겠지. 그렇게 내려오던 와중에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마력?'

마력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 있었다. 직접 닿지 않았더라면 이런 막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한 막이었다.

'이거였구나.'

설마하니 다른 헌터들이 멍청해서 사각지대나 탕아들을 쫓지 못했겠는가? 감지 같은 스킬을 피할 방법이 이 마력의 막이리라.

막을 지나자 드디어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기다리고 있었네.'

예상했던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둘러싸고 진을 치고 있다. 개개인은 위층에 있던 마법사보다 높은 수준이었지만 숫자는 적었다.

[데릭 클라크(인간)]

[신장 177.6cm] [체중 56.4kg]

[힘 125] [민첩 116] [체력 115] [마력 401]

'제대로 된 마법사.'

물론 홍유리 같은 괴물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위에 있던 잔챙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마법사였다. 아가일처럼 스퀘어에서 추방당한 마법사일까?

'조금 부담스러운데.'

어떤 수단을 썼을지 어떤 준비를 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놈 혼자라면 문제 될 것 없지만, 다른 마법사들도 함께 있는 게 꺼려졌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B동에 도대체 무엇을 감춰 놓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엘리베이터의 천장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 천장 위, 조그마한 환풍구가 있었다. 조그마한 강아지나 지나갈 수 있을 법한 크기였지만.

'이 정도라면.'

환풍구를 막고 있는 철창을 조심스레 뜯어내고 그 사이로 조심스레 기어들어갔다.

'전기실?'

커다란 발전기와 함께 선들과 스위치. 그러더니 마법사 둘이 급히 들어왔다.

'……!'

"이거 맞아?"

"어. 그것만 내려. 다른 건 건들지 말고."

버튼을 휙 내리자, 무언가 시동이 꺼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킨 줄 알았네.'

갑자기 들어와 놀랐지만, 역시 은신을 꿰뚫어 본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여기는 볼 일 없어.'

놈들이 빠져나간 것과는 반대쪽 문을 열었다. 아직 침입자가 B동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격벽은 내려와있지 않았고, 문 너머로 들어가니 넓은 방이 있었다.

'뭐지?'

내가 알지 못하는 설비들로 가득한 방이었다. 위층에 있었던 연구실들이 장난이라고 생각될 만큼 정교하고 중요해 보이는 설비들로 가득하다. 한쪽 벽에는 시약이 가득했고, 그 시약 중 대부분이 동물이나 몬스터들의 혈액이었다.

혈액 샘플로 가득한 방― 그에 자연히 떠오르는 생각.

'이건 설마…'

나는 홀린 듯 그 중앙을 바라보았다.

***

"데릭 님. 지원은 오는 겁니까? 아니, 그 전에 아가일 님께서는."

"오고 계시니 좀 더 기다립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데릭이라 불린 마법사는 침음을 흘렸다. 아가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탕아들의 소식이 너무 늦지 않는가말이다.

'설마 우릴 버린 건 아니겠지?'

그럴까 봐 세검사도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아니. 우릴 버릴 수 있을 리가.'

[부수적인 성과]는 여기에 있다. 설마하니 놈들이 여길 버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어째서인지 도착이 늦어지고 있지만…

'어찌 됐건 지금은 견딜 수밖에 없다.'

"차단막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쉽게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전기는 끊어놨겠죠?"

"네. 방금 끊었습니다."

그럼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을 터.

"그래요."

초조한 와중에 마법사는 입술을 씹었다. 가능하면 발견하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 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이곳, B동에 내려온다면.

'안 된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미완성품들만이면 몰라도 완성품이 여기에 있다는 것만큼은 들켜선 안 된다.

'꼬리털, 이 망할년이!'

어떻게 여길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싸울 수 없다.

'하필이면 세검사를 데려오다니…!'

설령 B동을 찾지 못하더라도 여기는 버려야 한다. 마법사는 으득으득 이를 갈았다. 그렇게 깊게 생각에 빠져 있었기에, A동에서부터 내려온 무언가가 이미 자신을 지나쳤음을 알지 못했다.

***

"아무리 둘러봐도 길은 없는 것 같군요."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까불거리던 태도는 어디 가고 꼬리털은 초조한 모습으로 손톱을 씹었다. 고민하던 그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데릭이 없어요."

"데릭?"

"데릭 클라크. 사각지대의 수장…의 측근이에요."

여태 말하지 않았던 사실에 팀장의 눈 사이가 좁혀졌다.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에요."

"장난합니까?"

비난하는 팀장의 말에 꼬리털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도 그랬듯 나도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순 없었어요. 놈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하. 만전을 기했다? 정작 당신이야말로 날 의심하고 있었군."

"마법사란 족속이 원래 그래요."

꼬리털은 자조했다.

"미안해요."

이어지는 사과에 팀장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차피 서로 믿는 사이는 아니었지.'

신뢰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일시적인 협력 관계였을 뿐.

"그것 말고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까?"

"…없어요."

잠시 고민한 듯하더니 내뱉은 말에 팀장, 구진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거 알고 있습니까?"

"……?"

의아해하는 꼬리털을 보며 구진하는 냉소했다.

"당신은 여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거."

눈살을 찌푸리며 꼬리털이 되물었다.

"무슨 뜻이죠?"

"나는 네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데."

"……."

"너는 나를 두 번이나 기만했군."

구진하는 차가운 어조로 명백히 선을 그었다.

"이제 내가 너를 믿을 방법이 있나?"

최후통첩. 이 이상 기만하면 동맹은 끝일 거라는강한 의지. 꼬리털은 잠깐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알았어요. 하지만 이건 꼭 비밀로 해야 된다는 걸 잊지 말아요."

"……."

"이건 농담이 아니에요. 반드시 비밀로 해 줘야 하니까."

"그건 네가 정할 게 아닐 텐데."

입술을 짓씹던 꼬리털은 질끈 눈을 감았다.

"제 이름은 아넬라."

"……."

"아넬라… 아넬라 모레스트에요."

아넬라 모레스트… 팀장은 그 이름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처음 듣는 이름이나― 어째서인지 귀에 익었다.

그러다가 낯익은 것은 '아넬라' 라는 이름이 아니라 '모레스트'라는 성이었음을 깨달았다.

"설마?"

모레스트… 그게 누구의 성이던가?

마침내 환영의 나비의 이름을 떠올린 팀장이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부수적인 성과의 미완성품]은 구마준이 마셨던 물질의 이름이었다.

'물론 구마준처럼 될 리는 없겠지만.'

어떤 기적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놈은 '태동하는 악'이라는 끔찍한 악의의 화신이 되었었다. 물론 부수적인 성과의 미완성품에 그 정도 효과는 없다. 설령 완성품이라 한들 그것과 같은 효과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

탕아들은 엘릭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했고, 거기서 엘릭서에 한없이 가까운 물질을 만들어냈다.

'모조 엘릭서.'

더욱 뛰어난 모조 엘릭서라면 엘릭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놈들은 기적을 만들려 했으나, 결국 만들어진 거라고는 모조 엘릭서의 미완성품들뿐. 엘릭서는커녕 모조 엘릭서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건.'

[모조 엘릭서(Imitation Elixir)]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몸이 덜덜 떨렸다. D등급의 통찰로는 알아내기는커녕― 너무나 많은 정보량에 뇌가 터질 것 같았다.

'……!'

억지로 통찰을 멈췄을 때는 마치 정신 고갈을 겪는 듯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이건… 진짜야.'

의심할 여지 없는 완성품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그 어떤 이라도 살려낼 수 있는 기적의 시약, 모방한 신의 피. 이 세상에 딱 하나 존재하는 연금과 마도의 극의.

'이게 왜 여기에?'

생각할 것도 없다. 원본을 보고 모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 시설 자체가?'

키메라를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키메라는 어디까지나 겸해서 진행하는 실험일 뿐. 진짜는 이거였다.

'무조건 챙긴다.'

[수납(E) Lv.1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바로 스킬을 획득했다.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모조 엘릭서를 보관하기엔 충분했다.

'됐어.'

생각지도 못한 성과. 흥분으로 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업을 획득할 수 있을까? 구마준을 죽였다? 이백섬을 죽였다? 그런 자잘한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성과였다.

'진정하자.'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뻐하는 게 아니라 다음 일을 생각하는 거였다.

'일단 진정하고, 더 둘러보자.'

모조 엘릭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성과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 들어왔던 통로가 아니라 다른 통로로 걷자 복도가 나왔다.

'일단 놈들이 없는 곳부터.'

복도를 지나자 커다란 연구실이 있었다. 아니, 연구실이라기보단 고문실 같았다. 날붙이와 날붙이가 붙은 기계들이 잔뜩 있었으니.

'이미 하고 있었던 거야.'

이후, 사각지대의 일원들이 강해지는 방법. 동시에 아가일이 퍼플 스퀘어에서 쫓겨난 이유.

'인체 실험.'

으드득 이를 갈았다.

실험이라 하기도 부끄럽다. 놈들은 사람을 물리적으로 갈아서 마력을 쥐어짜고 있었으니.

놈들에게 있어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재료, 소재일 뿐.

더 효율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마력을 착취할 수 있을지 그것만이 고민이겠지.

'쓰레기 새끼들…!'

되려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고 머리가 차가워졌다. 방안을 둘러보다가 기척을 느꼈다.

'하…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연구실 너머에 공간이 있다.

그 틈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지독한 혈향. 십중팔구 사람들을 가둬놓았으리라.

'…….'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인 건 막연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

잠깐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봤다.

상상을 뛰어넘고,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되었고, 그런데도 꿈틀거린다.

좁은 틈에서 서로를 비집고 마치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다.

"으… 어…?"

바닥을 기며 마치 짐승처럼 신음하는 사람들.

빈 눈두덩이에 구더기가 들어차 꿈틀거렸고, 굶주림에 볼살을 뜯어먹은 듯 입안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글로 읽었던 것보다, 마냥 상상하던 것보다 끔찍한―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마모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충격에 머리가 얼어붙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그들 중 하나가 멍하니 있던 내 다리를 건드렸을 때, 나는 흠칫 물러나고 말았다.

"으어, 아으?"

눈이 없고, 혀가 없는 사람이 올려다보았다.

날 위협하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어째서 물러났을까.

'망할.'

당장에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사육장―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공간이 벽 너머에 있었다.

'―정했다.'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마법사와 싸우는 건 크나큰 모험이었다.

놈들의 아지트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언제 아가일이 돌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은자림이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구진하와 꼬리털이 아래층으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모조 엘릭서도 챙겼고, 놈들이 뭘 하는지도 알았다.

당장 여길 벗어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그런 계산이 모조리 날아갔다.

'전부 죽여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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