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68화 (68/407)

〈 68화 〉 #33. 마녀의 재앙 (4)

올림픽 대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만한 소란이라면 진작 지정 대피소로 이동했을 터.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찾기 쉬웠다. 이 어둠 속에 올림픽 대교 아래, 그 근처에 떠 있는 한 척의 보트. 보트 안에 숨어 있는 여섯 명. 모터를 달고 있는데 바다로 나갈 리는 없으니 강화도 정도까지만 가지 않을까.

'보내줄 생각은 없어.'

느껴지는 기척은 다섯. 여기서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놈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성된 공원의 초목이 휘날리고, 낌새를 눈치챈 놈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다섯ㅡ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잡히지는 않았을 텐데. 백소율은 안 보여.'

시선이 집중된 사이, 초목의 그림자를 타고 뻗어간 영량이 배의 갑판 아래 구멍을 뚫었다. 서서히 물이 차오를 테고, 머지않아 가라앉을 터.

"저 씹. 이건 또 뭐야?"

"아가리 다물고 영창이나 해."

굳은 표정으로 두 명이 중얼거린다. 전사 둘. 궁수 하나. 마법사는 둘ㅡ 그리고 나는 등 뒤로 촉수를 휘둘렀다. 목이 꿰뚫린 채 들어 올린 시체를 대충 내동댕이쳤다.

"……!"

그 어리석다 못해 병신같은 짓에 한숨이 나왔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면 은신 등급이 제법 높았을 텐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바람을 마주 보고 왔었어야지.'

발소리는 죽였지만, 냄새는 감추지 못했다. 은신은 기척을 없애는 것과 인지를 저해하는 능력이었지 투명화가 되고 냄새를 감추는 게 아니다.

'…….'

가진 스킬이 아깝다. 기본도 못 하는 행태를 보고 숨을 뱉었다. 순간, 탕아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난리에 대교 아래 배를 정박 시켜 두었겠는가.

'꼬리는 보이지 않는다.'

왜? 이유를 생각하는 대신 물어뜯었다. 가장 앞에 있던 전사는 자기 손목이 떨어져 나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허망히 사각 방패가 떨어졌다. 기겁한 궁수가 화살을 쏘았으나, 날아오는 것을 대충 쳐내 떨어뜨렸다.

"Zidul pământului!"

바닥에서 벽이 솟아오르는 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막다른 곳에서 길을 틀어막는 것도 아니고 이 탁 트인 공간에서 벽을 세운다고 뭐가 달라지나? 오히려 벽 때문에 생긴 그림자에 심장이 꿰뚫려 사망했다.

'아무리 말단이라도 그렇지.'

마법사가 절명했고, 마법으로 솟아오른 벽이 처참히 무너졌다. 돌풍을 일으켜 무너지는 벽의 흙더미를 쏘아 보냈다. 기껏 영창을 마치려던 마법사는 흙이 입에 들어오자 마지막 영창을 뱉지 못했고, 손목이 떨어져 방패 없어진 전사의 숨통을 끊었다.

처참히 쓰러진 놈들을 모조리 귀화로 불태웠다. 검은 불꽃에 잠식되자 남은 셋이 기겁해 놀랐다. 이젠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고 하는 걸 위압으로 억눌렀다.

'마력탄.'

어스 서펜트에게는 통하지 않고 아가일에게는 검은 마력이 잠식하고 있어 쓰지 못했지만, 마력탄은 제법 효용이 좋았다. 남은 전사 하나가 들어 올린 방패에 마력탄이 틀어박혔고, 처참히 꿰뚫고 벌집이 되었다. 전열이 사라졌다면 남은 건 후열 뿐. 궁수는 활까지 집어 던지고 냅다 도망쳤으나 그보다 빠르게 촉수가 쫓았다.

"사, 살았…"

촉수의 범위 끝에서 일그러진 미소를 띠던 놈은, 촉수가 바닥에 비친 그림자에 복부를 꿰뚫려 절명했다. 남은 마법사는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얼어붙은 턱 때문에 영창하지 못했다. 놈까지 마저 처리하고, 어느새 가라앉기 시작한 보트를 바라보았다.

'꼬리는 자리를 비운 모양인데.'

놈들이 남아있던 거로 보아 오기는 올 모양이다. 그렇다면 굳이 자리를 뜰 필요는 없다. 여기서 놈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니까. 저 멀리서 살덩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뒤늦게 성동구와 광진구에 미완성품을 사용하겠다던 놈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잠깐 기다리고 있자니,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찾았다.'

건장한 남성이 누군가를 어깨에 들춰 매고 있다. 그리고 그건.

'백소율.'

생각할 것도 없이, 백소율이리라.

***

그림자가 뭉뚱그리듯 나타내는 형상은, 두말할 것 없는 늑대였다. 유창백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부하들이 처참히 스러져있는 모습을. 하물며 보트는 가라앉아 더 쓸 게 못 됐다.

헛웃음을 터뜨리며 유창백은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없군."

어쩐지 다른 팀과 연락이 안 되더라니. 도대체 이 늑대는 뭐란 말인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유창백이 이마를 짚었다.

"고작 몬스터 한 마리에 이렇게까지."

그것의 눈빛은 그림자 속에서도 붉게 빛나고 있었다. 짙은 광기를 담은 눈과 마주하자, 유창백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고작 몬스터 한 마리? 아니었다. 이건…

'이건 위험하다.'

유창백은 침을 삼켰다. 그의 머리는 냉정했고, 곧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싸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도주하려던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선지, 어깨에 메고 있던 백소율이 없었다. 크게 눈을 뜬 그는 주변을 살폈고, 웬 날개 달린 뱀 한 마리와 함께 멀리 떨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언제?'

느끼지 못했다. 그에 늑대는 이제 되었다는 듯, 이를 드러냈다. 놈이 한 걸음 내딛자, 그는 저도 모르게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별안간 불어온 바람에 그는 늑대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위기를 느껴 구르자 허공을 씹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놈은 분명 자신보다 빠르다.

'빠르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빠른 상대한테 어떻게? 이를 악문 유창백이 도박하는 심정으로 마력탄을 쏘아 보냈다. 늑대에게가 아니라 백소율에게. 예상은 적중했고, 늑대의 시선이 마력탄에 집중되자 그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도망쳤다. 저것과 싸워봤자 절대 좋은 꼴은 못 본다.

'아마도 놈이…!'

연락이 끊긴 다른 팀까지 죽인 게 틀림 없다. 거기엔 분명 꼬리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즉, 놈은 꼬리 여럿을 죽이고도 멀쩡할 정도로 강하다는 뜻.

'……?!'

유창백의 눈이 커졌다. 분명 앞을 보고 달리고 있었는데, 벽이 솟아올랐기 때문에.

곧 그는 벽이 솟아오른 게 아니라 저도 모르는 사이 쓰러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킬레스건이 잘려있었다. 초목 사이에서 수십 개 그림자가 마치 뱀처럼 넘실거린다. 그것이 코앞에 다가오자 놀란 유창백이 발을 굴렀다.

'이건…?'

잠깐이지만 그림자가 주춤거린다. 뇌리에 떠오른 생각에 마력을 담아 바닥을 내리찍자, 망막 앞까지 다가온 그림자가 사라졌다. 놈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거친 숨을 연신 내뱉으면서 그는 품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틱틱, 라이터를 재빨리 초목 사이로 던졌고, 머잖아 불길이 조성된 공원 전체를 태웠다. 아까처럼 그림자를 쉽게 쓸 수는 없을 터. 비록 도망갈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싸워볼 만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놈이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 생각할 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그는 처음에 그것을 초목이 타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라 생각했으나― 그런 무른 게 아니었다.

"이건…!"

검은 불꽃이 화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번져 나가더니, 머지않아 일대가 검은 불로 뒤덮였다. 칠흑 같은 불 속에서 그는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안구의 수분이 증발하고,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

하지만 어느새 번진 검은 불꽃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력을 담아 뛰어오르려고 했으나― 그건 불가능했다.

"아…"

아까 잘린 아킬레스건. 커다랗게 번진 검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아아아아아!"

서서히 검은 불이 다가온다. 손끝부터 진물처럼 녹아내린다. 본능적으로 물러났더니, 이번엔 등이 타올랐다. 불길은 점점 다가오며 남은 공간을 좀먹고 있다. 확실한 죽음이 천천히 다가오는 가운데, 살점 하나하나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유창백은 최후의 순간― 절망해 불살라졌다.

***

"아…"

외마디 소리를 뱉은 백소율이 멍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깊게 한숨 쉬었다.

'이걸로 끝.'

탕아들의 계획은 저지했고, 백소율은 구했다…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어색한 박수 소리'.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

방금 죽인 놈을 포함, 꼬리가 이렇게나 많다. 그렇다면 그 꼬리들을 통솔하는 이가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

허리춤에 '먹다 남긴 듯한' 신체 부위를 주렁주렁 달고 대교의 난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인영.

'간부.'

탕아들의 간부. 그것이 대교에서 뛰어내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기이한 웃음을 띠고 있다. 마치 기아처럼 영양실조에 걸린 듯한, 뼈에 가죽이 간신히 들러붙은 듯한 모습. 무엇보다 기형적으로 변형된 커다란 손과 녹색 빛을 띠는 손톱.

'꺾인 손가락.'

탕아들의 간부― 꺾인 손가락.

그것은 별안간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보트가 가라앉은 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죽은 말단의 시체 앞에서 내게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

역겨움에 토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미리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몰랐다면 그 끔찍한 행태에 속을 게워냈을지도 모른다. 시체식(屍體喰). 그 기이하게 변형된 손으로 그것이 말단의 목과 몸통을 분리했다. 뜯어낸 목에 붙어있는 경추를 보며 그것이 미소지었다.

"크힉."

뱀처럼 크게 벌린 턱이 마치 그것이 사과라도 된다는 양 씹어댔다.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입을 가리지도 않고 그것은 맛있다는 듯 삼켰다. 분명하게, 목구멍 사이로, 사람 고기를 삼켰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였던 이들을.

으드득. 으드득.

보고도 믿기 힘든 식인의 광경에 아득해졌다. 놈은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시체를 먹어 치우더니 만족스레 미소지었다.

마치, 대접해주어 고맙다는 듯이.

'…….'

새빨간 피가 입술에 묻어있다. 손목으로 입가를 훔친 그것이 새하얗게 웃었다. 이빨에 낀 머리카락과 손톱을 떼어내면서.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냥 멍하니 있던 게 아니다. 통찰로 놈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한낱 슬라임이었던 내가 탕아들의 꼬리를 위협이라고 느끼지도 않을 만큼 성장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놈을 이길 수 있는가?

'힘들어.'

스테이터스의 격차란 그런 것이다. 그나마 스킬의 보조로 화력과 수 싸움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아니, 다른 A클래스 헌터라면 싸워볼 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것에 승리를 점칠 수 있는 건 구진하 정도가 아니면 힘들다.

'왜냐하면.'

[꺾인 손가락(ㅡ)]

[신장 177.9cm] [체중 42.6kg]

[힘 515] [민첩 574] [체력 367] [마력 545]

[보유 스킬]

[거짓불멸(B)] [현혹의 마안(C)] [독조(D)] [약한 시각(E)] [미약한 재생(F)]

―저건 애초에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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