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35 걷힌 악몽 (2)
[서울에 있었던…]
[어제 새벽 2시경부터…]
"에휴."
어디를 틀어도 같은 내용이었다. 심지어 예능과 드라마 채널에서도 같은 속보를 전하고 있을 뿐. TV뿐만 아니라 라디오,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사상 초유의 유례없던 규모의 습격. 조금 다른 형태지만, 늑대가 바라던 대로 인류는 크나큰 경각심을 가졌다. 인류에 등 돌린 이들을 모두 없애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대전의 밤으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서울 전체에서 아카데미 학생을 포함해 무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니, 그 규모를 생각하면 겨우 이 정도로 끝난 게 기적이었지만, 헌터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제법 있었다.
"……."
채널을 돌리던 홍유리는 결국 시무룩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이래저래 혼란이었다. 고원과 창선이 입을 다물고 두문불출한다는 것에 성토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럴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다니까."
대중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창선이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필경 광휘와 함께 보았던 그 괴인에 의해서.
"칠영웅이 둘이나 쓰러졌다고 말할 순 없을 테니까. 감수해야지."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순 없다는 판단하에 고원은 창선의 중상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는데…"
홍유리가 깊은 한숨을 뱉었다.
무엇보다 무노의 죽음이었다. 은거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카데미의 교사이자 학장이던 이의 죽음을 어찌 숨길 수 있을까? 칠영웅이란 인류의 정신적 지주와 같다. 무노와 아카데미 교사진의 사망 소식은 사회에 큰 혼란과 충격을 야기했다. 이젠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경각심을 자극했다.
"그래도 나쁜 분위기는 아니야."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건 변절자들을 뿌리 뽑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니까.
'…뿌리 뽑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문제이지만.'
팀장의 한숨이 깊어졌다. 괴인은 갑주가 깨진 정도에 그쳤지만, 창선은 중상을 입었다. 그런 이를 도대체 어떻게…
"일단 백소율. 그 애는?"
"밑에. 솔직히 난 믿기 힘든데."
홍유리의 투덜거림에 구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탕아들의 타겟이었던, 그리고 알파에게 구해진 아카데미 학생. 분명 이번 습격의 중심이 되는 인물… 조금 뛰어난 학생이기는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타겟이 됐을 것 같지는 않다. 분명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일단 가자."
그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생각보다도 빨리 돌아왔군."
"…조금 꼬여서."
아카데미의 건물이 대부분 무너져 내렸고, 뒤늦게 접한 뉴스에서 무노의 사망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머리가 복잡했다.
'대체…'
누가 무노를 죽였단 말인가? 잠깐 꺾인 손가락을 떠올렸지만, 꺾인 손가락이 무노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세계관에서 칠영웅이란 건 스퀘어와 함께 인류 최후의 보루와 같은 존재였으니.
'아무리 탕아들이라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 중에서 무노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건 아니다. 떠오르는 이들만 셋 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 명은 아직 영입되지 않았을 거고, 침묵하는 입은 회복하지 못했을 터.
'모조 엘릭서는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본래의 힘을 되찾았을 리 없다.
소거법으로 무노를 죽이는 게 가능한 건 한명 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래저래 소설 속 세계와는 많이 달라지고 말았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미래― 대전의 밤이 결정적인 변환점이 된 것 같다.
'이젠 참고 밖에 못 하겠어.'
소설의 전개를 알고 있다는 이점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됐다. 미래가 뒤틀렸으니, 모두가 거기에 맞춰 행동하고 움직일 터. 그 모든 걸 내가 예상하고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카데미가 반파된 이상, 주인공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건물도 건물이었지만, 교사들이 죽어나간 상황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 리 없다. 잠정적으로 휴학 상태가 됐고, 때문에 일단 환계로 돌아왔다. 고성공룡 박물관― 용의 황무지가 자리한 이곳으로.
"들어갈 텐가?"
백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삭막하고 황량한 황무지가 우리를 반겼다. 감지를 사용해봐도 단 한 마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마녀의 재앙을 막는 동안, 백록은 황무지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붕괴되진 않았어.'
모든 몬스터가 사라졌다면 던전은 붕괴되어야 한다. 분명 백록은 모든 몬스터를 쓸어버렸다.
'…그래. 지상은 말이야.'
어스 서펜트의 뱃속에서 보았던 용거북을 떠올렸다. 남은 몬스터들은 황무지가 아니라 그 밑바닥에 있다. 지하로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백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게."
"뀨루룩!"
이전, 어스 서펜트가 충돌했던 바닥 아래. 뛰어내려 한참을 떨어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곧바로 감지를 사용했다.
'생각보다…'
호수의 규모에 비해 몬스터가 적었다. 어스 서펜트가 수영 스킬을 가지고 있던 점을 감안해보면 종종 호수로 내려와 포식했던 게 아닐까. 남아있는 몬스터 중에는 이전에 봤던 용거북도 있었다.
녀석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멍청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알아서 오네.'
촉수를 뻗어 녀석의 뒤를 잡았다. 꼬리와 뒷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더니, 놓으라는 듯 발버둥 친다. 신체구조상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뒷다리와 꼬리에 닿질 않는다. 그대로 접촉 섭취로 먹어 치웠다.
[고대 용거북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조금 불쌍하네.'
버둥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안쓰럽긴 했지만, 가능한 피는 흘리고 싶지 않았다. 냄새를 맡고 모여들면 수중에서는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잠수(F) Lv.8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잠수(F) Lv.8 → 잠수(F) Lv.9]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잠수했더니, 어스 서펜트의 뱃속에서 9레벨로 상승했던 수영을 따라 잠수도 9레벨로 상승했다. 두 스킬 덕분에 수중의 어지간한 몬스터는 어렵잖게 처치했고.
[경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Lv.10 → Lv.11]
11레벨을 달성했을 땐, 딱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와이번, 어스 서펜트, 암갑룡. 그 셋으로 처리하기 힘든 몬스터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하 호수에도 아직 하나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호수 도마뱀(Lake Saurus)]
[체장 8.41m] [체고 2.11m] [체중 3.61t]
[힘 451] [민첩 462] [체력 401]
[보유 스킬]
[수륙양용(D)] [포식(F)]
마치 모사사우루스와 같은 체형이었으나, 지느러미 대신 다리가 붙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차라리 숲의 던전에서 보았던 늪의 용과 흡사한 외형이었다.
'…물론 비교하긴 무안하지만.'
단순히 스테이터스가 높을 뿐. 생긴 건 용종과 유사하지만, 마력이 없는데 용종이라고 부르긴 힘들다. 아마 그 점 때문에 용이 아니라 도마뱀이라 이름 붙여진 모양.
혼자 남았단 걸 뒤늦게 깨달은 녀석은 두리번거리더니, 내 존재를 발견한 듯 달려들었다. 놈의 덩치에 물살이 휘청였으나, 수영과 잠수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촉수를 가능한 많이 뽑아냈고, 녀석은 그 전부를 유유히 피했다.
'그렇겠지.'
462라는 민첩은 장식이 아니니까. 수중이 아니라도 촉수로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가능한 많이 뽑아낸 촉수의 그림자와 영량으로 넓은 범위를 덮었다. 실체 있는 촉수가 물의 저항을 받는다면 실체 없는 그림자를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따라잡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몸 곳곳에 상처가 늘어갔다. 머잖아 녀석은 도망 칠지 싸울지를 선택해야 했다.
곧 네 다리로 수중을 박찬다. 녀석은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살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영리하네.'
헛웃음이 나왔다. 놈은 내 호흡이 다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설령 잠수 스킬이 있다 하더라도 아가미가 생기는 건 아니다. 실제로 숨이 벅찬 건 사실이었다. 한번 올라가려는 순간, 녀석이 조금씩 다가온다.
'시간 끌어봤자 좋을 게 없어.'
이미 몇 번이나 낭패 한 녀석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 먼저 움직이는 건 나여야 한다. 순식간에 몸의 형태를 바꿨다. 유선형의 몸체, 그리고 지느러미가 수중을 휘저었다.
"……!"
내가 수면 위로 오르려 하자 재빨리 따라붙는다. 아무리 변화를 사용했다지만, 놈보다 빠를 순 없었고 수면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위를 가로막아 거리를 둔다.
'그래봤자.'
촉수와 그림자를 뻗자 기겁하며 비켜선다. 드디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 꼬리를 붙잡혔다.
'그럴 줄 알았어.'
예상했던 일. 그에 돌풍을 일으켰다. 깊은 바닷속에서는 와류를 일으키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수면에 가까운 곳이라면 물을 흩어낼 수 있다. 내 꼬리를 붙잡은 녀석이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귀화.'
이전, 어스 서펜트의 뱃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물을 밀어낸 사이에 귀화를 일으켰다. 꼬리를 물고 있던 녀석이 화들짝 놀라 잠수한 사이, 폐 가득히 공기를 밀어 넣었다. 다시 수중 아래로 내려갔을 때, 놈은 도망치고 있었다. 질식시키겠다는 유일한 방법도 통하지 않은 이상,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
'이걸로 됐어.'
민첩 462. 하물며 수중에서 놈을 잡는 건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급하지 않게, 녀석과 거리를 두고 감지의 범위 안에서만 벗어나지 못하게끔 녀석을 쫓았다.
[수영(F) Lv.9 스킬의 숙련도가…]
[잠수(F) Lv.9 스킬의 숙련도가…]
마침내 수영과 잠수가 최대 레벨에 도달해 '뛰어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E등급 스킬로 상승했다. 각기 '뛰어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두 스킬은.
[뛰어난 수영(E) Lv.1과 뛰어난 잠수(E) Lv.1가 합쳐져 수륙양용(D) Lv.1으로 변합니다]
―놈이 가진 수륙양용 스킬로 변했다.
'언뜻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보여주는 획득 가능 스킬 목록에서 수륙양용의 하위 스킬이라 생각될 만한 게 수영과 잠수뿐이었으니까.
바다에서 일생을 사는 고래조차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어야 하는데 고작 도마뱀에 불과한 녀석이 단 한 번도 수면에 고개를 내밀지 않았던 이유는 이 스킬 덕분이었다. 단순히 숨을 참는 걸 도와주는 잠수와는 달랐다.
'―지상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수륙양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중에서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수압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촉수를 잔뜩 뽑아내 휘저었다. 체면적이 늘면 받는 저항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지만, 아까 얻은 스킬이 저항을 줄였다. 변화시킨 지느러미와 촉수가 노를 젓듯 쫓는다. 거기에 더해 촉수 끝에 일으킨 돌풍이 마치 프로펠러처럼 와류를 일으켜 밀어냈다.
'재밌네.'
그 추진력 덕분에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따라잡힌 놈이 기겁하며 입을 벌렸다.
선회해 놈을 지나치는 순간, 촉수 사이의 그림자가 뻗어나가 도마뱀을 마구 찔렀다. 맑은 호수를 놈의 피가 물들이고, 머지않아 그 숨이 끊어졌다.
[호수 도마뱀을 섭취했습니다. 경험치와 포만감이 상승합니다]
황무지의 마지막 몬스터. 곧바로 경험치를 확인했다.
[EXP 102467 / 178923]
'경험치가 정말.'
녀석을 먹어치우고 거의 10만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했다. 호수에 몬스터가 많이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12레벨까진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혹시나 싶어 감지로 살펴봐도 더 느껴지는 기척은 없다. 지상과 지하, 양면으로 깨끗이 정리했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을 거다. 그걸 반증하는 것처럼 던전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너져내리는 세계는 어느새 있어야 할 모습을 되찾아갔다.
끝없이 펼쳐진 듯했던 황무지는 다시 박물관의 모습을 되찾았고, 시스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멸망 확률 96.19% → 96.08%]
[0.11%의 업을 획득합니다]
[업(業) 2.82%]
음영랑으로 진화한 것을 포함해 한동안 신세 졌던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게 시원섭섭하다. 지하 호수― 아니, 지하층에서 올라오자 백록이 끄덕이며 반겼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페어리 드래곤이 머리 위로 날아오며 피곤하다는 듯 하품했다.
"백록. 다른 던전은?"
"자네는 정말 지치지도 않는가 보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가만히 있으면 주저앉을 것 같아서. 함께 걷는 사이에 대전으로 돌아왔고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호들갑을 떠는 요정 때문에 잠자던 페어리 드래곤이 다시 깨어났다.
"뀨~!"
"페리야!"
페어리 드래곤이 졸린 눈을 비비자,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이름 지어주기로 했었는데.'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뭔가 좋은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잘 떠오르지 않아 그냥 요정이 부르는 대로 페리라고 불러보았다. 그러자 녀석의 눈이 커지고, 약간 빛무리가 어렸다.
"뀨우우우…!"
백록이 놀라워하고 요정이 신기해하는 가운데, 빛무리는 금세 사라졌다. 녀석은 기쁘다는 듯 날개를 휘젓고, 꼬리로 토닥였다.
'뭔가 달라진 것 같기는 한데.'
[페리(페어리 드래곤)]
[체장 28.2cm] [체고 3.1cm] [체중 271g]
[힘 19] [민첩 17] [체력 28] [마력 91]
[보유 스킬]
[점멸(D)] [마력 재생(D)]
통찰로 확인해보니, 종족명이 자리하던 곳을 이름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가진 칭호처럼. 슬쩍 돌아보니, 백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 페리! 페리!"
자신이 지은 이름이 인정받아 마냥 좋아하는 요정과는 달리 조금 심란해졌다. 이럴 거면 제대로 이름을 지어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뀨우우우!"
좋아하는 녀석을 보니 그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동안 함께 지내며,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 두 배는 커진 페어리 드래곤. 아니, 페리는 꼬리 끝으로 내 코를 쓸었다. 살랑이는 감촉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싫은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아까까지만 해도 활발하던 녀석은 이내 피곤하다는 듯, 다시 잠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줬다는 게… 조금 싱숭생숭했다.
***
백소율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명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나를 노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유창백에 대해서. 아카데미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구해준 늑대에 대해서. 그들의 질문에 백소율은 가능한 성심성의껏 답했다. 답했으나, 모두 어영부영한 대답이었다. 실제로 아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몰랐던 것들을 더 알게 됐을 정도다.
자신을 노린 조직이 탕아들이라는 것.
자신을 구한 늑대는 알파라고 불린다는 것.
―차마 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명의 정보력이라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른 모든 의문을 제쳐두고, 백소율이 알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그는 왜.'
늑대는, 알파는 왜 나를 구해줬을까. 그리고 어떻게 날 알고 있었을까.
[―마녀의 재앙은 일어나지 않는다]
몇 번이고 구해주겠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화인처럼 각인된 말을 몇 번이고 떠올리다가 백소율은 안주머니를 뒤졌다.
늑대를 안았을 때, 손안에 남았던 털.
한참을 바라보던 백소율은 다만, 몇 가닥 되지도 않는 털 뭉치를 소중한 듯 다시 품속에 넣었다.